사회진보연대


  • 2007-06-22

    박래군, 새로운 사회운동,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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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서-박래군] 새로운 사회운동, 가능합니다 결코 기다려주는 법이 없는 게 시간입니다. 어느새 6월,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들도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주의의 요구도, 최소한 권력교체의 요구도 내걸지 않은 채 한 판 축제판이 끝났습니다. 87년 헌법이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정치적 담합으로 귀결되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요구는 철저히 배제한 채 탄생한 것처럼 항쟁 20년을 기념하는 일도 그런 구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저는 군사독재자의 자리에 신자유주의 독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거리를 달리던 투사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는 이때, 그들이 주도하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한미FTA 체결은 내줄 거 다 내주고도, 더 내줄 것이 있다는 미국의 요구에 끌려 재협상으로 가고 있고, 7월부터 시작되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거리로 내몰리거나 알량한 일자리라도 유지하려고 자존심을 팔아버려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아직도 항쟁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무기력하게 저들의 기념행사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6월은 투쟁일정들이 빽빽합니다. 한 투쟁사안 끝내고 나면, 다른 사안으로 빨리 넘어가야 합니다. 회의는 많은데, 언제 회원들과 공유하고, 투쟁을 준비할까 걱정이 앞섭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중요한 투쟁 일정들이죠. 정신없이 달력투쟁을 하다가 또 한달 후딱 지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무언가 뚜렷한 전환점 하나는 만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 너나없이 힘들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면 일의 성과도 남고, 대중도 남고, 조직은 강화되어야 하는데, 투쟁의 작은 성과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의 기록만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1년 내내 투쟁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미FTA 협상 저지하지 못했고,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법의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기본권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제국주의의 패권적인 침략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공권력을 앞세운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투쟁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매일 회의며, 투쟁이며, 술자리며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운동하다 병난다고 산재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고용보장이 되는 것도 아닌데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 진출한 진보세력도 아닌 정치인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기도 하고, 운동진영 내에서 발생한 이러저러한 비도덕적인 일들로 인해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힘들게 활동하는 우리들의 충정은 아랑곳없이 비난의 화살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저는 올해 초 제안서를 돌렸습니다.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제목의 꽤나 긴 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동감을 해주었고, 또 다른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포럼의 집행위원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습니다. 한국진보연대(준)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운동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라느니, 좌파 블록을 만드는 것 아니냐하는 오해도 받고 있습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합의회의를 통해 진보운동의 과제를 만들어 보자는 게 말은 좋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냐는 말에는, 운동 구력이 그래도 20년이 넘는 사람을 그렇게 순진하게만 보아준다는 것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말들이 많다는 것은 그래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가장 나쁜 점은 아무런 관심도, 의욕도 없는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걱정스러운 일은 이런저런 오해가 아니라 우리는 차이를 강조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그 차이로 인해서 의도부터 의심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이유로 삼는 것입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다르지만 같은 지점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가능한 연대부터 찾아내는 것, 그리하여 차이가 결국은 운동의 풍성함으로 발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민중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운동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새로운 운동을 만들 수는 없나요? 작은 운동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운동들을 엮어보자는 것, 그래서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야별로 자생적으로 커왔고, 운동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단위들, 그리고 지역마다에 뿌리내린 자치운동체들이 서로 운동을 점검해주고, 상호침투해주는 그런 운동은 가능합니다. 각자의 전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단위들, 그러기에 지침이나 방침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진보운동의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운동, 집회판이라면 중앙무대에 얼굴마담 하는 몇몇 연설가가 정치 선동하는 게 아니라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주체가 되는 그런 집회, 그렇게만 된다면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으로 전체 진보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만나면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관계, 소통을 통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 열어놓자는 생각입니다. 포럼에 들어와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만 갖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것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안으로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그리는 원칙은 수정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적인 조직표 대신에 둥근 원으로 조직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깃발이 아니라 작은 깃발들이 꿰매어져서 큰 깃발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의제별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획단들이 들어 있고, 사회운동대토론회와 사회운동총회를 준비하는 기획단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집행위원회와 위원장, 사무국이 있을 뿐입니다. 단체나 모임만이 아니라 다른 진보의 세계의 꿈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런저런 진보운동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생각입니다. 재원도 어디 돈 많은 재단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개인들로 조직위원을 만들고, 그 개인들의 참여로 한푼 두푼 모아서 재정도 만들고자 합니다. 이제 운동의 분화가 아니라 총체적인 현실에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강력한 중앙이 있고,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비슷한 입장의 단체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충분한 운동, 실천에서는 제도화된 운동양식, 관성에 찌든 운동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존중하는 운동, 운동권만의 친목대회가 아니라 대중들과 호흡하는 운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진보운동의 위기는 진보운동에 진력하는 활동가들이, 그리고 현장의 대중들이 함께 극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만들고자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합니다. 한 번의 회의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그런 포럼이고자 합니다. 8월말 3박 4일로 열리는 우리의 포럼에 동원되고, 조직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모여 열띤 토론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제안합니다. 우리의 포럼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협소한 기존의 운동틀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들의 논의로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봅시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가능하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2007-06-11

    [smf]1차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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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07

    [기획연재⑤ 한국여성운동사] 한국여성노동자운동, 그 길찾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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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마주침의 공간에서 여성노동권 쟁취투쟁은 가능하다 1987년은 노동운동사와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해이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그러하고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및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한여노>)의 결성이 그러하다. 1987년 3월 창립된 <한여노>는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최초의 독자적인 여성노동자들의 조직건설이라는 역사적 출발'이라고 평가된다.1) <여연>은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상설적인 여성운동 공동 투쟁체'라는 성격을 표방하며 결성되어 한국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자리 매김한다.2)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여성노동자운동은 소멸되었으며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은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당시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 모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양자가 서로를 자신의 무능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극대화되었으며, 또한 2007년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을 둘러싼 대응에 있어서도 반복되고 있다. 1. 87년 전후로 시작된 노동의 불안정화, 그리고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확립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여성 생산직 노동자의 비율은 크게 감소한 반면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3) 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과 더불어 남한사회 산업 구조가 변화하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노동의 불안정화가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으로 하여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문제는 노동자 운동의 중심 투쟁과제로 부각되지 못하였다. 이는 1987년 7·8·9월 대투쟁 이후 활성화된 노동자 운동이 임금인상 및 기업복지를 투쟁의 중심 요구로 해왔던 흐름과 관련이 있으며, 노동자 가족의 중산층 이데올로기 수용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1987년을 전후로 하여 노동자 운동은 중공업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의 조직된 힘, 즉 사업장 교섭력을 바탕으로 가족임금과 기업복지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당시의 노동자 운동의 전투성을 통해 쟁취되기도 하였지만, 남한사회 가족정책의 일환과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하였다. 남한사회에서는 1961년부터 시행된 가족계획 사업으로 소가족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산업구조의 변화와 도시화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경제적 자원을 독점했던 가부장권의 약화라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의 변화에 의해 남한 사회의 핵가족화가 진행된다.4) 가족임금은 이러한 핵가족 모델의 물질적 조건이 된다. 그런데 이는 양성간의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여성의 노동을 일시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5)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무급의 가사노동을 강제함으로써 여성의 이중부담을 강화한다. 생산의 영역에서 남성 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임금은 남성 가장의 노동을 통해 나머지 가족이 부양될 수 있다는 환상의 물적 조건이 되지만, 이는 사실 허구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은 가족임금을 오히려 노동자민중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중심요구로 삼았고, 이에 따라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가사전담자라는 도식은 강화된다.6)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가시화되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농촌 여성들을 대거 생산직 공장노동으로 흡수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한 남한사회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유연한 노동력으로써 여성을 활용해 감에 따라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확대되었으나, 생산영역에서 여성의 노동은 결혼 이전의 일시적인 것이거나 혹은 아이들의 교육비 부담 등과 같은 보조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운동의 해결과제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성운동 진영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물론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급속하게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을 겪게 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부재한 채 경공업이나 여성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 강조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1987년 이후 가시화된 '가족투쟁'을 여성운동사에 있어서의 '새로운 영역의 개척'으로 평가한다.7) "이전의 노동자투쟁에서 가족들이 했던 역할은 파업투쟁 현장에서 남편이나 자식들을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7·8·9 대투쟁에서 가족들은 변화하였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니까 궁금해서 농성장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비로소 남편이 일하는 작업 환경을 보게 되었지요. 이전에는 허리띠를 졸라가며 살아도 못사는 이유가 남편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남편의 주장이 왜 정당한지, 왜 노조가 필요하며 임금인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따라서 이전의 가족들과는 달리 남편들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함께 투쟁하게 되었지요."8)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가족투쟁'이 처음으로 출현하고 노동자 가족이 활발한 투쟁을 벌인 점은 특기할만한 점으로 꼽힌다. <한여노>를 비롯한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노동자 부인들을 조직하여 가족투쟁을 일구어내는 것을 노동자운동에 연대하는 여성운동의 역할과 임무로 상정하고 다양한 실천들을 전개해나갔다.9) 그리고 주부 조직화를 이후 여성운동의 과제로 삼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투쟁이 노동자 계급을 남성으로 표상하고, 전업주부인 아내와 어린 자녀가 있는 핵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즉 한국사회에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되고 여성의 이중부담이 심화되어 가는 현실을 여성운동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여성운동 역시 가족형태에 대한 맹목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된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 취해지지 못했던 이유는 대게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성에서 찾아지지만, 대공장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노동자 운동이 재편되는 과정에는 산업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가족형태의 변화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남성생계부양자와 전업주부로 구성되는 핵가족 모델에 대해 무비판적이었던 여성운동 역시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비가시화 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여노> 및 <여연> 등의 여성운동단체들은 주부 조직화를 새로운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면서 탁아소 운영, 직업훈련, 취업알선, 상담 등의 지원활동 및 법제도 개선활동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게 된다.10) 또한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대중적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의 과제로 이전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여성노동자회 등의 여성단체를 여성노동문제에 대한 외곽 지원단체로 자리 매김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에서 여성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의 중심과제로 놓여지지 못하였다. 결국 여성노동자들, 특히 저임금 영세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과 비공식 부문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은폐하는 데 있어서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은 서로를 알리바이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 양자의 한계는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대응을 어렵게 하였고, 결국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여성노동자들은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현실에 맞딱뜨리게 된다. 2. 19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리고 여성독자노조 건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본격화된다. 그리고 이는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기존 노동조합은 무심하거나 무능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11) 1998년 파견법 제정문제에 대한 노조의 대응방식도 마찬가지였는데, 파견 근로대상 업종으로 논의되던 직군 중 '남성 업종'은 협의를 통해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여성 업종' 중심의 26개 직군만이 남겨졌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성 노동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회의감으로 노조를 탈퇴하거나, 스스로 여성 사안을 제기하기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결국 여성의 문제를 간과했던 노동자 운동의 '성맹목(sex-blind)'은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탈퇴하고 무관심해지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여성독자노동조합은 이러한 정세적 배경 하에서 건설되었다.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 노조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여성독자노조12)가 제시된 것이다.13) 그렇다면 여성노조는 독자적인 여성노동자 운동을 어떻게 실현하고자 하였나? "이제, 여성노조의 깃발은 올라갔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추진과정보다 앞으로의 해결과제가 더 많이 남아있다.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영세 미조직 사업장,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노동권과 인권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섭권과 교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독자노조가 교섭권과 교섭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여성노조의 교섭력 확보는 기업별 노조,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한 우리 노조문화의 틀을 극복해야 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내의 성평등 실현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노조의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 조직화의 경험이 없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여성노조의 깃발 아래 결집시켜낼 것인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노동운동의 역사, 10만 여명의 조합원을 포함하고 있는 외국의 여성노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여성노동운동사에서도 1999년이 중요한 획을 긋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14) 당시 여성운동 진영에서 여성독자노조 건설의 대표적인 의의로 꼽던 것은 바로 교섭권과 교섭력의 강화였다. 업종과 지역에 관계없이,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미조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독자적인 노조를 표방했던 것은 결국 조합원 확대를 통한 세력화의 문제로 결론 내려진다. 그러나 더 큰 교섭력 확보를 위한 실리적 선택이라는 것은 여성운동이 그렇게 비판해마지 않았던 기존 노동조합의 모습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대규모 남성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교섭력에 기반 한 노동자 운동이 중소영세 사업장 여성노동자의 현실 및 여성비정규직문제를 주변화했다고 했을 때, 바로 그러한 노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여성독자노조 스스로가 기존 노조의 한계를 답습하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전국여성노조>는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문제를 기존 노동자 운동의 전략을 바꾸는 것으로까지 사고하지 못한 채, 기존 노조의 코포러티즘적 실천을 반복하게 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및 조직화와 관련하여 <전국여성노조>가 보여주는 코포러티즘적 면모는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실업자를 조직대상에 포함시켜 법외노조로 출발한 <서울여성노조>의 경우에는 기존의 노동조합적 실천과는 다른 대안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2003년 전체 조합원의 1/3에 달하는 이들이 조직의 비민주성을 이유로 대거 탈퇴하는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현재는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기쁨이 넘치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던 <서울여성노조>에서 조직 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양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서울여성노조>가 기존 노동조합의 문제를 권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운영 때문으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성들간의 의사소통에 기반 한 형식을 초월한 조직운영을 추구했던 점과 관련된다. 서울여성노조는 … 주체의 변혁,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동성 있는 작은 조직을 지향한다. 운동체는 커지지 않고도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노조의 힘은 주먹수에 비례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조직이 거대화, 집중화되면서 관료적인 운영이 지배하고 그럴수록 여성들의 특수요구는 더욱더 은폐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15) 기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과정 및 조직질서를 '권위적=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부정하는 경향16)은 반대로 여성들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환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결집이라는 것 자체로 여성들이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는 조직과 민주적인 운영이 담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울여성노조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노동조합에서는 여성노동자 조직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여성독자노조 역시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는 결국 기존 노동자 운동의 한계에 대한 분석상의 오류와 여성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인식의 미흡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변혁지향성을 상실하고 코포러티즘적으로 변모한 현실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지 못했던 것은 여성독자노조 역시 기존 노동조합의 한계를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단지 여성들을 조직하는 것만으로 여성노동권쟁취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여성들로 운영되는 것만으로 페미니즘적 조직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여성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고 있다. 기존 노동자 운동에서 여성의 과제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의 독자성이 해법으로 등장했던 것은, 조직 형식적인 문제로 여성문제를 왜곡하고 은폐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여성의 독자적 권리로서의 여성권은 단지 조직분리의 독자성으로 협소화되었다.17) 1990년대 말 여성운동의 시도가 이렇게 한계를 노정함으로써 여성노동자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정세적 질문, 즉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운동'과 '여성(노동자)운동'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는 1997년 이후 또다시 해결 불가능 한 채로 남겨지게 된다. 3. 2007년 한국사회 여성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위한 과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선 해고되고,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던 한국사회 여성노동자들은 2007년 현재,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이니, 중·고령 취약계층 여성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정책이니,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해주는 듯하다. [%=사진1%]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코 여성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여성노동자 우선퇴출이라는 방식으로 그 자신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했던 신자유주의는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여성노동자들을 그 자신의 입맛에 맞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관리하고자 할 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야기한 10년 간의 변화가 한국사회의 빈곤심화 및 사회적 안전망 파괴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자, 이 위기관리를 위해 다시 한 번 여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이 여성을 활용하는 방식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현시기 여성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정세적 요구에 부합하고 있는가? (…) 우리들의 요구는 정부의 대책대로 상시업무를 하는 전 직종에 대해 즉각 무기근로로의 전환을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은 2002년부터 학교비정규직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싸워왔던 전국여성노동조합에게 6년의 투쟁 끝에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각종 근로조건 등에서 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해 나가야 하는 일이 그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이 정당화되었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하며, 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하는 일이다. 무기근로계약의 산을 넘고 차별해소의 산을 넘어갈 것이다. (…)18) <전국여성노조>에서는 5월 15일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를 열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근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는 '반복적으로 근로계약기간을 갱신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상시적·지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근로계약근로자)'가 담당토록 하고 다만 명백하게 기간을 정하여 사용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때에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당기관에게 상시지속업무를 파악하여 무기계약 전환 계획과 외주화 타당성 검토 요구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전국여성노조>는 이러한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이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모델 마련'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19) 그러나 무기근로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며 정규직이 될 수도 없다. 정부의 무기근로계약화는 '정규직화'의 최소한의 기본방향마저 뒤엎으며,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할 뿐이다.20) 이러한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이 마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해법인 양 주장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당장에 바꿔내기란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즉 여성노조는 그 자신이 비판했던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적인 경향성을 스스로 답습하는 모습을 이번 무기계약전환 문제에 있어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여성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여성들을 단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포섭'하기도 하고 '활용'하기도 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몰인식으로,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의 요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성노동자 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이러한 비판은 곧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21) 이렇게 여성노동자운동이 기존 노동조합이 보여온 코포러티즘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한 여성문제를 성별간의 갈등의 문제로 왜곡하는 경향은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투쟁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이 서로의 무능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는 안타까운 현상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원인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들이 소실되는 데에 노동자 운동과 여성운동이 서로에게 알리바이 역할을 했다는 점을 우리는 반성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활용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한 역사적 가족형태가 자본주의의 요구에 어떻게 충실하게 화답하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22) 나아가 성별화 된 권리로서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여성노동자 운동의 독자성이란 바로 그러한 권리에 기반한 투쟁에서부터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권 쟁취투쟁으로써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임하자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라는 현실은 여성운동에게 비정규직철폐투쟁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정세적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저임금·미조직의 가장 취약한 노동자', '소수자 내지 사회적 약자' 정도로 그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노동 유연화의 결과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로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문제가 제기되지 못하고 단지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당사자의 안타까운 문제로만 협소화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도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을 통한 교섭력 강화, 그리고 그러한 사업장 교섭력을 통한 고용평등 쟁취 이상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 운동 진영에서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오히려 우회한 채 문제를 성차별 해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23)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나타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심화가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빈곤의 여성화'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및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우회될 수 없는 여성운동의 과제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생계'보조'자, 가사노동의 일차적 담당자라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보편적인 노동자로서의 여성의 지위가 확보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별 분업에 기반한 직무·직종 분리, 저임금 등의 특질을 갖는 여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노동현실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핵가족 유지 전략으로 뒷받침되는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기 여성운동은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써의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임해야 한다. 이는 비단 기존의 노동운동에 여성의 요구를 끼워 넣는 방식이 결코 아니라, 여성권에 기초하여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화하고, 그녀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한 혁신의 지점을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 및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한 비판을 조직하자 얼마 전부터 한국사회는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현상이 함께 이야기되면서 새로운 위기담론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담론에 힘입어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24) 여성운동은 이를 여성노동자의 '기회'로 여기고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 양립지원을 위한 정책마련과 시행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 및 '저출산·고령화 현상 해소'라는 담론이 여성의 주변적 노동자 지위를 지속시키고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입장을 조직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현상은 누구의 입장에서, 왜 위기적으로 진단되고 있는가? 현재 공고해지고 있는 사회적 담론25) 을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다시금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실지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은 그 발생의 원인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책임은 바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여성의 출산기피와 사회진출로 인한 것인 양 지배계급은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유연한 노동력으로써의 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니, 여성은 직장생활을 중단하지 않으면서도 출산과 양육을 지속하고 가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 및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한 비판을 조직하면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넘어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권리,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문제에 대해 어떤 과제를 제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위한 일자리 사업'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2007년 3·8 여성의 날을 전후로 하여 또다시 확인된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과 처절한 투쟁은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노동권 확보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게 한다. 즉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이 당면한 정세는 여성 운동과 노동자 운동이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성맹목(sex-blind)은 이러한 결합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가부장성과 여성문제에 대한 몰인식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의 문제제기와 노조 내 여성의 과소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들을 계기로 노조 내 상설적 여성기구로서 여성국-여성위원회 신설, 할당제 도입 등의 흐름이 형성되었으나,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노동자 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에 어떠한 기여와 한계를 남겼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26) 따라서 여성운동은 기간 노동조합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초하는 실천을 위해 진행해왔던 시도를 평가하고 대안적인 노동조합 페미니즘의 단초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 건설의 주역이 되었던 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의 단절, 여성의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심화에 맞선 투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는 현시기 여성운동의 곤란함의 원인이 바로 이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개조는 여성운동이 우회할 수 없는 과제이다.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주도하며 시대의 모순을 폭로했던 여성노동자운동은 1980년대 산업구조의 재편 및 한국사회 가족형태의 변화와 맞물려 소멸한다. 그 이후로 한국사회의 여성노동자 운동은 더 이상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채 각개약진, 고립 분산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1990년대 후반 이후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존재를 가시화 했고, 또한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정세적 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현시기 여성운동은 그에 걸 맞는 운동을 조직할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하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맞서는 새로운 여성운동이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마주침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이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온전히 살아갈 권리를 온몸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나갈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면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던 늙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눈치 보고 숨죽이며 살아왔던 인생이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까지도 무수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쓰레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습니다. (…) 노동자의 그 어떤 투쟁이 절박하지 않겠으며, 힘들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당장이라도 광주로 달려가 광주시청 여성동지들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손만 잡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멀리서 마음으로라도 동지들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승리하는 그날까지 지금 잡은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울산과학대 여성노동자들이 광주시청 여성노동자들에게 보낸 연대의 편지글 中 [참고자료] 강인순,『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2』,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기획, 한울, 2001 김지수,「한국 여성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여성2』,창작과 비평사, 1988 박기남,『여성노동자들의 의식변화 과정에 관한 한 연구』,연세대 석사학위논문, 1994, 박홍주,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 <창비> 주간 논평, 2006.12.19 석정남,『공장의 불빛』,일월서각, 1984 이꽃맘, 「100년, 30년 그리고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의 여성노동자: 알몸을 선택한 여성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가」, 민중언론 <참세상>, 2007.3.9. 이미경, 「여연 10년사」,『열린희망』, 1998 이미경,『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 도서출판 공감, 1999 이옥지,『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1』,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기획, 한울, 2001 이혜순,「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노동사회』5월 호, 2007 윤정은, 「노동계, 무기계약 전환 놓고 ‘찬반’ 갈라져」, <일다>, 2007.5.14 유현경,「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질라라비』4월 호, 2007 장남수,『빼앗긴 일터』,창작과 비평사, 1984 전국여성노동조합 추진위원회,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전국여성노동조합 건설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1999 정미숙,『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활성화에 관한 경험 세계적 연구-섬유업을 중심으로』,이대 석사학위논문, 1993 전순옥,「민주노총 10년의 역사 속에서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민주노총 10주년 여성정책토론회』, 2005 정양희,「스스로 커가는 풀뿌리 조직, 서울여성노동조합」,『진보평론』2호, 1999 정현백,「여성노동자의 의식과 노동세계」,『여성1』,창작과 비평사, 1985 조순경,「KTX 문제의 성격과 대안」,『철도공사의 성차별과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토론회 자료집』, 2006.9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외,『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방안 워크샵 자료집』, 1998 허성우,『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 조직활동가의 여성해방의식 연구-대전지역을 중심으로』,이대 석사학위논문, 1994 최명숙,「한국여성민우회 사무직 여성노동자운동의 현황 및 과제」,『여성노동운동 방향에 대한 워크샵 자료집』, 1999 최상림,「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기억과 전망』 2004 여름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 참가자 결의문, 2007.5.14 1)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의 창립과 발전」,『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본문으로 2) 이미경,「여연10년사」,『열린희망』, 1998본문으로 3) 1987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동안 남성 생산직 노동자의 감소 폭은 13.6%임에 비해 여성은 35.3%였다. 반면 시간제 전체 노동자 중에서 여성비율은 1980년 45.9%에서 1993년 64.7%로 증가하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1998)본문으로 4) 이러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남한사회의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핵가족이라고 개념 규정을 할 경우 그것은 비단 가족 구성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제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미경,『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 도서출판 공감, 1999)본문으로 5) 실지로 1970년대 이후로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의식주, 양육 수단, 초기 교육이 상품화되면서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은 변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남편에 대한 내조와 아이의 양육에 대한 여성의 책임이 더욱 강조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산영역에서의 여성 노동은 결혼과 출산 이전의 일시적인 것으로, 혹은 아이들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한 정도의 보조적인 것으로 위치 지워진다.본문으로 6) 핵가족 모델은 불균등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핵가족으로의 이행은 근대화 진행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동자 계급 역시 이러한 핵가족 모델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본문으로 7)"가족투쟁이 이렇게 활발해진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이제 가족단위로 노동자 세대로서 정착되어 계급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이 가족투쟁의 중심인 부인들의 경우, 적지 않은 수가 여성노동자 출신이라는 사실과 현 사회구조 속에서 기혼여성들도 점점 생활고 등으로 생산현장에 저임금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여성노동운동의 한 부분으로 이들에게도 앞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김지수,「한국 여성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여성2』,창작과 비평사, 1988)본문으로 8)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본문으로 9) 남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직접 확인하고 투쟁에 동참해야함을 공감하는 현장방문 프로그램, 가족투쟁의 필요성에서부터 자녀교육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가족투쟁위원회 조직을 위한 상담과 지원활동 등이 진행되었다.본문으로 10)이는 1987년 이후의 국면을 민주화의 확대로 규정한 여성운동 진영의 태도와도 관련된다. <여연>은 6월 항쟁 이후를 '불완전하고 왜곡된 상태이긴 하나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이 구축된' 상황으로 평가했다. 이런 인식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렴하여 법을 제·개정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서 오히려 알 수 있는 것은 <여연>이 표방한 기층여성 중심성과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이 분리되고, 기능적으로 결합되게 되었다는 점이다.본문으로 11) IMF가 몰고 온 구조조정에 맞선 첫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19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투쟁의 '꽃'이 되었던 그녀들이었지만 최종 교섭 안에 '밥 짓는 아줌마'들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본문으로 12)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노동자, 여성실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어떤 상급단체도 두지 않은 <서울여성노동조>이 1999년 1월 11일 조합설립신고를 내고 여성독자노조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어 1999년 1월 15일에 영세사업장 등의 여성노동자 25명을 조합원으로 한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이 서울시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전국여성노동조합>이 1999년 8월 28일 출범식을 갖고 활동전개에 나섰다.본문으로 13) 더불어 여성의 문제를 조직의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거리 마련의 절실함을 근거로 '여성할당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본문으로 14) 최명숙,「한국여성민우회 사무직 여성노동자운동의 현황 및 과제」,『여성노동운동 방향에 대한 워크샵 자료집』, 1999본문으로 15) 정양희,「스스로 커가는 풀뿌리 조직, 서울여성노동조합」,『진보평론』2호, 1999 본문으로 16) 여기서 <서울여성노동조합> 구성원 대부분이 반성폭력 이슈를 중심으로 1990년대 대학가에서 형성된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여성활동가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위계적인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과정을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했고, 유토피아적 미래 공동체의 상을 예견하는데 치중했다. 또한 남녀 간의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원한의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반성폭력 운동 평가가 필요한 또 하나의 지점이기도 하다. 남녀관계에 대한 적대와 냉소는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을 통한 여성노동자운동의 대안모색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 17) 여성노동자들이 이미 노동의 불안정화를 겪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운동 역시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대응에 취약했으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기초로 하는 핵가족 형태를 수용했다는 사실을 앞서 살펴본 바 있다. 이는 여성운동 역시 여성(노동자)의 독자적인 성별화 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사고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본문으로 18)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 참가자 결의문(2007년 5월 14일) 中본문으로 19) 이혜순,「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노동사회』5월 호, 2007본문으로 20) 정부는 무기근로계약이 정규직이라고 호도하고 있지만, 실제 무기근로계약전환 계획서를 제공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전환계획서에서 정규직 정원을 늘리는 것은 예산문제와 결부되는 만큼 현실적이지 못하므로 차선책으로 무기계약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무기근로계약노동자들을 현행 직급체계와 달리 별도의 직급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즉, 기간제 노동자의 채용방식을 따르고 별도로 평가를 진행하고 처우도 정규직과의 차이를 전제하고 있는 무기근로계약은 차별을 고착화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무기한' 계약직인 것이다. (유현경,「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질라라비』4월 호, 2007본문으로 21) 일다(www.ildaro.com)에서는 5월 15일자 기사(윤정은, 「노동계, 무기계약 전환 놓고 '찬반' 갈라져」)에서 '무기계약 철회 주장, 누구의 목소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정규직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노동조합 내부의 현실적 조건이 있으므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이나 외주화 타당성 검토 등의 문제에 대해 정부, 사용자, 노동조합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여성계나 여타 시민사회 단위에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여성계가 이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 조순경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본문으로 22) 기간 여성운동이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해 보였던 맹목 역시 현재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권의 일과 가족의 양립 정책, 여성인력활용방안,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에서 여성운동이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 파트너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핵가족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없이 여성노동자들의 독자적 권리 쟁취는 불가능하다.본문으로 23)"(…) 비정규직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기업이 이윤획득을 위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도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측면이 존재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관련 법안이 표류하던 지난 1년 간 비정규직 노동자가 30만 명이나 늘어날 정도로 그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으며,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날로 심화되면서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철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안적 원칙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작년 12월 노무현정부의 비정규법안의 통과 직후 인터넷 매체를 통해 '비정규직 철폐'는 여성노동자에게 있어 대안이 아니며 차라리 '동일노동·동일임금 표준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발표되었다. (박홍주,「'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창비> 주간 논평) 2006.12.19) 이러한 입장은 KTX 승무지부 외주화 반대 투쟁 과정에서도 쟁점적으로 드러났는데, 조순경 교수를 비롯한 여성 운동 진영은 KTX 여승무원 문제를 '고용형태에 의한 성차별의 전형적 사건'으로 보면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아닌 성차별의 문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조순경,「KTX 문제의 성격과 대안」,『철도공사의 성차별과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토론회 자료집』, 2006.9)본문으로 24)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써 여성이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보육정책 등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던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거론되고 추진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노무현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 지원제도를 활성화하고 계속해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고자하는 별도의 법률(가칭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법')을 제정"하기로 했다.본문으로 25)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오히려 그것에 적극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저출산·고령화 연석회의' 참여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조준호 민주노총 前 위원장의 발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파생하는 문제를 확인했다. 정치와는 무관한 연석회의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에 한정해서 대응하자는 것이 결정이다. 그 밖에는 더 진행하지 않겠다. 대화 창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많이 극복되었다고 판단한다." 『노동과 세계』371호.본문으로 25)일례로 여성노조에서 제기한 '여성친화적 노동조합 활동 프로그램'을 노동조합을 여성친화적으로 개조하는 방안이자 미조직비정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고 적극 수용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나, 이는 기존의 '여성성'을 여성의 '다름'으로 치환할 뿐 ('여성은 관계를 중요시한다','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소규모 관계를 선호한다','위계적 지휘체계의 위(top)에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중심(center)에서 리더쉽을 발휘한다')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새롭게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본문으로

  • 2007-06-07

    [기획연재⑤ 한국여성운동사] 한국여성노동자운동, 그 길찾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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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마주침의 공간에서 여성노동권 쟁취투쟁은 가능하다 1987년은 노동운동사와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해이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그러하고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및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한여노>)의 결성이 그러하다. 1987년 3월 창립된 <한여노>는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최초의 독자적인 여성노동자들의 조직건설이라는 역사적 출발'이라고 평가된다.1) <여연>은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상설적인 여성운동 공동 투쟁체'라는 성격을 표방하며 결성되어 한국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자리 매김한다.2)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여성노동자운동은 소멸되었으며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은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당시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 모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양자가 서로를 자신의 무능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극대화되었으며, 또한 2007년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을 둘러싼 대응에 있어서도 반복되고 있다. 1. 87년 전후로 시작된 노동의 불안정화, 그리고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확립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여성 생산직 노동자의 비율은 크게 감소한 반면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3) 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과 더불어 남한사회 산업 구조가 변화하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노동의 불안정화가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으로 하여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문제는 노동자 운동의 중심 투쟁과제로 부각되지 못하였다. 이는 1987년 7·8·9월 대투쟁 이후 활성화된 노동자 운동이 임금인상 및 기업복지를 투쟁의 중심 요구로 해왔던 흐름과 관련이 있으며, 노동자 가족의 중산층 이데올로기 수용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1987년을 전후로 하여 노동자 운동은 중공업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의 조직된 힘, 즉 사업장 교섭력을 바탕으로 가족임금과 기업복지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당시의 노동자 운동의 전투성을 통해 쟁취되기도 하였지만, 남한사회 가족정책의 일환과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하였다. 남한사회에서는 1961년부터 시행된 가족계획 사업으로 소가족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산업구조의 변화와 도시화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경제적 자원을 독점했던 가부장권의 약화라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의 변화에 의해 남한 사회의 핵가족화가 진행된다.4) 가족임금은 이러한 핵가족 모델의 물질적 조건이 된다. 그런데 이는 양성간의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여성의 노동을 일시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5)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무급의 가사노동을 강제함으로써 여성의 이중부담을 강화한다. 생산의 영역에서 남성 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임금은 남성 가장의 노동을 통해 나머지 가족이 부양될 수 있다는 환상의 물적 조건이 되지만, 이는 사실 허구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은 가족임금을 오히려 노동자민중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중심요구로 삼았고, 이에 따라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가사전담자라는 도식은 강화된다.6)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가시화되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농촌 여성들을 대거 생산직 공장노동으로 흡수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한 남한사회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유연한 노동력으로써 여성을 활용해 감에 따라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확대되었으나, 생산영역에서 여성의 노동은 결혼 이전의 일시적인 것이거나 혹은 아이들의 교육비 부담 등과 같은 보조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운동의 해결과제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성운동 진영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물론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급속하게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을 겪게 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부재한 채 경공업이나 여성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 강조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1987년 이후 가시화된 '가족투쟁'을 여성운동사에 있어서의 '새로운 영역의 개척'으로 평가한다.7) "이전의 노동자투쟁에서 가족들이 했던 역할은 파업투쟁 현장에서 남편이나 자식들을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7·8·9 대투쟁에서 가족들은 변화하였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니까 궁금해서 농성장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비로소 남편이 일하는 작업 환경을 보게 되었지요. 이전에는 허리띠를 졸라가며 살아도 못사는 이유가 남편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남편의 주장이 왜 정당한지, 왜 노조가 필요하며 임금인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따라서 이전의 가족들과는 달리 남편들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함께 투쟁하게 되었지요."8)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가족투쟁'이 처음으로 출현하고 노동자 가족이 활발한 투쟁을 벌인 점은 특기할만한 점으로 꼽힌다. <한여노>를 비롯한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노동자 부인들을 조직하여 가족투쟁을 일구어내는 것을 노동자운동에 연대하는 여성운동의 역할과 임무로 상정하고 다양한 실천들을 전개해나갔다.9) 그리고 주부 조직화를 이후 여성운동의 과제로 삼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투쟁이 노동자 계급을 남성으로 표상하고, 전업주부인 아내와 어린 자녀가 있는 핵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즉 한국사회에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되고 여성의 이중부담이 심화되어 가는 현실을 여성운동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여성운동 역시 가족형태에 대한 맹목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된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 취해지지 못했던 이유는 대게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성에서 찾아지지만, 대공장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노동자 운동이 재편되는 과정에는 산업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가족형태의 변화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남성생계부양자와 전업주부로 구성되는 핵가족 모델에 대해 무비판적이었던 여성운동 역시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비가시화 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여노> 및 <여연> 등의 여성운동단체들은 주부 조직화를 새로운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면서 탁아소 운영, 직업훈련, 취업알선, 상담 등의 지원활동 및 법제도 개선활동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게 된다.10) 또한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대중적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의 과제로 이전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여성노동자회 등의 여성단체를 여성노동문제에 대한 외곽 지원단체로 자리 매김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에서 여성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의 중심과제로 놓여지지 못하였다. 결국 여성노동자들, 특히 저임금 영세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과 비공식 부문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은폐하는 데 있어서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은 서로를 알리바이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 양자의 한계는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대응을 어렵게 하였고, 결국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여성노동자들은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현실에 맞딱뜨리게 된다. 2. 1997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리고 여성독자노조 건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본격화된다. 그리고 이는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기존 노동조합은 무심하거나 무능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11) 1998년 파견법 제정문제에 대한 노조의 대응방식도 마찬가지였는데, 파견 근로대상 업종으로 논의되던 직군 중 '남성 업종'은 협의를 통해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여성 업종' 중심의 26개 직군만이 남겨졌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성 노동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회의감으로 노조를 탈퇴하거나, 스스로 여성 사안을 제기하기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결국 여성의 문제를 간과했던 노동자 운동의 '성맹목(sex-blind)'은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탈퇴하고 무관심해지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여성독자노동조합은 이러한 정세적 배경 하에서 건설되었다.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 노조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여성독자노조12)가 제시된 것이다.13) 그렇다면 여성노조는 독자적인 여성노동자 운동을 어떻게 실현하고자 하였나? "이제, 여성노조의 깃발은 올라갔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추진과정보다 앞으로의 해결과제가 더 많이 남아있다.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영세 미조직 사업장,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노동권과 인권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섭권과 교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독자노조가 교섭권과 교섭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여성노조의 교섭력 확보는 기업별 노조,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한 우리 노조문화의 틀을 극복해야 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내의 성평등 실현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노조의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 조직화의 경험이 없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여성노조의 깃발 아래 결집시켜낼 것인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노동운동의 역사, 10만 여명의 조합원을 포함하고 있는 외국의 여성노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여성노동운동사에서도 1999년이 중요한 획을 긋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14) 당시 여성운동 진영에서 여성독자노조 건설의 대표적인 의의로 꼽던 것은 바로 교섭권과 교섭력의 강화였다. 업종과 지역에 관계없이,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미조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독자적인 노조를 표방했던 것은 결국 조합원 확대를 통한 세력화의 문제로 결론 내려진다. 그러나 더 큰 교섭력 확보를 위한 실리적 선택이라는 것은 여성운동이 그렇게 비판해마지 않았던 기존 노동조합의 모습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대규모 남성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교섭력에 기반 한 노동자 운동이 중소영세 사업장 여성노동자의 현실 및 여성비정규직문제를 주변화했다고 했을 때, 바로 그러한 노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여성독자노조 스스로가 기존 노조의 한계를 답습하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전국여성노조>는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문제를 기존 노동자 운동의 전략을 바꾸는 것으로까지 사고하지 못한 채, 기존 노조의 코포러티즘적 실천을 반복하게 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및 조직화와 관련하여 <전국여성노조>가 보여주는 코포러티즘적 면모는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실업자를 조직대상에 포함시켜 법외노조로 출발한 <서울여성노조>의 경우에는 기존의 노동조합적 실천과는 다른 대안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2003년 전체 조합원의 1/3에 달하는 이들이 조직의 비민주성을 이유로 대거 탈퇴하는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현재는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기쁨이 넘치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던 <서울여성노조>에서 조직 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양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서울여성노조>가 기존 노동조합의 문제를 권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운영 때문으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성들간의 의사소통에 기반 한 형식을 초월한 조직운영을 추구했던 점과 관련된다. 서울여성노조는 … 주체의 변혁,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동성 있는 작은 조직을 지향한다. 운동체는 커지지 않고도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노조의 힘은 주먹수에 비례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조직이 거대화, 집중화되면서 관료적인 운영이 지배하고 그럴수록 여성들의 특수요구는 더욱더 은폐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15) 기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과정 및 조직질서를 '권위적=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부정하는 경향16)은 반대로 여성들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환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결집이라는 것 자체로 여성들이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는 조직과 민주적인 운영이 담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울여성노조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노동조합에서는 여성노동자 조직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여성독자노조 역시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는 결국 기존 노동자 운동의 한계에 대한 분석상의 오류와 여성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인식의 미흡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변혁지향성을 상실하고 코포러티즘적으로 변모한 현실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지 못했던 것은 여성독자노조 역시 기존 노동조합의 한계를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단지 여성들을 조직하는 것만으로 여성노동권쟁취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여성들로 운영되는 것만으로 페미니즘적 조직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여성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고 있다. 기존 노동자 운동에서 여성의 과제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의 독자성이 해법으로 등장했던 것은, 조직 형식적인 문제로 여성문제를 왜곡하고 은폐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여성의 독자적 권리로서의 여성권은 단지 조직분리의 독자성으로 협소화되었다.17) 1990년대 말 여성운동의 시도가 이렇게 한계를 노정함으로써 여성노동자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정세적 질문, 즉 1980년대 후반 '노동(조합)운동'과 '여성(노동자)운동'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는 1997년 이후 또다시 해결 불가능 한 채로 남겨지게 된다. 3. 2007년 한국사회 여성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위한 과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선 해고되고,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던 한국사회 여성노동자들은 2007년 현재,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이니, 중·고령 취약계층 여성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정책이니,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해주는 듯하다. [%=사진1%]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코 여성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여성노동자 우선퇴출이라는 방식으로 그 자신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했던 신자유주의는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여성노동자들을 그 자신의 입맛에 맞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관리하고자 할 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야기한 10년 간의 변화가 한국사회의 빈곤심화 및 사회적 안전망 파괴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자, 이 위기관리를 위해 다시 한 번 여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이 여성을 활용하는 방식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현시기 여성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정세적 요구에 부합하고 있는가? (…) 우리들의 요구는 정부의 대책대로 상시업무를 하는 전 직종에 대해 즉각 무기근로로의 전환을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은 2002년부터 학교비정규직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싸워왔던 전국여성노동조합에게 6년의 투쟁 끝에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각종 근로조건 등에서 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해 나가야 하는 일이 그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이 정당화되었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하며, 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하는 일이다. 무기근로계약의 산을 넘고 차별해소의 산을 넘어갈 것이다. (…)18) <전국여성노조>에서는 5월 15일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를 열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근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는 '반복적으로 근로계약기간을 갱신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상시적·지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근로계약근로자)'가 담당토록 하고 다만 명백하게 기간을 정하여 사용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때에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당기관에게 상시지속업무를 파악하여 무기계약 전환 계획과 외주화 타당성 검토 요구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전국여성노조>는 이러한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이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모델 마련'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19) 그러나 무기근로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며 정규직이 될 수도 없다. 정부의 무기근로계약화는 '정규직화'의 최소한의 기본방향마저 뒤엎으며,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할 뿐이다.20) 이러한 무기근로계약으로의 전환이 마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해법인 양 주장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당장에 바꿔내기란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즉 여성노조는 그 자신이 비판했던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적인 경향성을 스스로 답습하는 모습을 이번 무기계약전환 문제에 있어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여성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여성들을 단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포섭'하기도 하고 '활용'하기도 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몰인식으로,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의 요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성노동자 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이러한 비판은 곧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21) 이렇게 여성노동자운동이 기존 노동조합이 보여온 코포러티즘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또한 여성문제를 성별간의 갈등의 문제로 왜곡하는 경향은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투쟁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이 서로의 무능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는 안타까운 현상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원인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들이 소실되는 데에 노동자 운동과 여성운동이 서로에게 알리바이 역할을 했다는 점을 우리는 반성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활용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한 역사적 가족형태가 자본주의의 요구에 어떻게 충실하게 화답하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22) 나아가 성별화 된 권리로서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여성노동자 운동의 독자성이란 바로 그러한 권리에 기반한 투쟁에서부터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권 쟁취투쟁으로써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임하자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라는 현실은 여성운동에게 비정규직철폐투쟁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정세적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저임금·미조직의 가장 취약한 노동자', '소수자 내지 사회적 약자' 정도로 그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노동 유연화의 결과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로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문제가 제기되지 못하고 단지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당사자의 안타까운 문제로만 협소화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도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을 통한 교섭력 강화, 그리고 그러한 사업장 교섭력을 통한 고용평등 쟁취 이상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 운동 진영에서는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오히려 우회한 채 문제를 성차별 해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23)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나타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심화가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빈곤의 여성화'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및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우회될 수 없는 여성운동의 과제이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생계'보조'자, 가사노동의 일차적 담당자라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보편적인 노동자로서의 여성의 지위가 확보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별 분업에 기반한 직무·직종 분리, 저임금 등의 특질을 갖는 여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노동현실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핵가족 유지 전략으로 뒷받침되는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기 여성운동은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으로써의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임해야 한다. 이는 비단 기존의 노동운동에 여성의 요구를 끼워 넣는 방식이 결코 아니라, 여성권에 기초하여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화하고, 그녀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한 혁신의 지점을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 및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한 비판을 조직하자 얼마 전부터 한국사회는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현상이 함께 이야기되면서 새로운 위기담론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담론에 힘입어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24) 여성운동은 이를 여성노동자의 '기회'로 여기고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 양립지원을 위한 정책마련과 시행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 및 '저출산·고령화 현상 해소'라는 담론이 여성의 주변적 노동자 지위를 지속시키고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입장을 조직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현상은 누구의 입장에서, 왜 위기적으로 진단되고 있는가? 현재 공고해지고 있는 사회적 담론25) 을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다시금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실지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은 그 발생의 원인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책임은 바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마치 여성의 출산기피와 사회진출로 인한 것인 양 지배계급은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유연한 노동력으로써의 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니, 여성은 직장생활을 중단하지 않으면서도 출산과 양육을 지속하고 가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방안' 및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한 비판을 조직하면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넘어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권리,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문제에 대해 어떤 과제를 제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위한 일자리 사업'에 대한 비판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2007년 3·8 여성의 날을 전후로 하여 또다시 확인된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과 처절한 투쟁은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노동권 확보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게 한다. 즉 현시기 여성노동자들이 당면한 정세는 여성 운동과 노동자 운동이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성맹목(sex-blind)은 이러한 결합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가부장성과 여성문제에 대한 몰인식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의 문제제기와 노조 내 여성의 과소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들을 계기로 노조 내 상설적 여성기구로서 여성국-여성위원회 신설, 할당제 도입 등의 흐름이 형성되었으나,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노동자 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에 어떠한 기여와 한계를 남겼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26) 따라서 여성운동은 기간 노동조합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초하는 실천을 위해 진행해왔던 시도를 평가하고 대안적인 노동조합 페미니즘의 단초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 건설의 주역이 되었던 70년대 여성노동자 운동의 단절, 여성의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심화에 맞선 투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는 현시기 여성운동의 곤란함의 원인이 바로 이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개조는 여성운동이 우회할 수 없는 과제이다.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주도하며 시대의 모순을 폭로했던 여성노동자운동은 1980년대 산업구조의 재편 및 한국사회 가족형태의 변화와 맞물려 소멸한다. 그 이후로 한국사회의 여성노동자 운동은 더 이상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채 각개약진, 고립 분산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1990년대 후반 이후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존재를 가시화 했고, 또한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정세적 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현시기 여성운동은 그에 걸 맞는 운동을 조직할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하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맞서는 새로운 여성운동이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마주침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이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온전히 살아갈 권리를 온몸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나갈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면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던 늙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눈치 보고 숨죽이며 살아왔던 인생이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까지도 무수한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쓰레기에서 인간으로 돌아왔습니다. (…) 노동자의 그 어떤 투쟁이 절박하지 않겠으며, 힘들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당장이라도 광주로 달려가 광주시청 여성동지들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손만 잡고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멀리서 마음으로라도 동지들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승리하는 그날까지 지금 잡은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울산과학대 여성노동자들이 광주시청 여성노동자들에게 보낸 연대의 편지글 中 [참고자료] 강인순,『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2』,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기획, 한울, 2001 김지수,「한국 여성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여성2』,창작과 비평사, 1988 박기남,『여성노동자들의 의식변화 과정에 관한 한 연구』,연세대 석사학위논문, 1994, 박홍주,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 <창비> 주간 논평, 2006.12.19 석정남,『공장의 불빛』,일월서각, 1984 이꽃맘, 「100년, 30년 그리고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의 여성노동자: 알몸을 선택한 여성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가」, 민중언론 <참세상>, 2007.3.9. 이미경, 「여연 10년사」,『열린희망』, 1998 이미경,『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 도서출판 공감, 1999 이옥지,『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1』,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기획, 한울, 2001 이혜순,「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노동사회』5월 호, 2007 윤정은, 「노동계, 무기계약 전환 놓고 ‘찬반’ 갈라져」, <일다>, 2007.5.14 유현경,「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질라라비』4월 호, 2007 장남수,『빼앗긴 일터』,창작과 비평사, 1984 전국여성노동조합 추진위원회,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전국여성노동조합 건설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1999 정미숙,『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활성화에 관한 경험 세계적 연구-섬유업을 중심으로』,이대 석사학위논문, 1993 전순옥,「민주노총 10년의 역사 속에서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민주노총 10주년 여성정책토론회』, 2005 정양희,「스스로 커가는 풀뿌리 조직, 서울여성노동조합」,『진보평론』2호, 1999 정현백,「여성노동자의 의식과 노동세계」,『여성1』,창작과 비평사, 1985 조순경,「KTX 문제의 성격과 대안」,『철도공사의 성차별과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토론회 자료집』, 2006.9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외,『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방안 워크샵 자료집』, 1998 허성우,『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 조직활동가의 여성해방의식 연구-대전지역을 중심으로』,이대 석사학위논문, 1994 최명숙,「한국여성민우회 사무직 여성노동자운동의 현황 및 과제」,『여성노동운동 방향에 대한 워크샵 자료집』, 1999 최상림,「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기억과 전망』 2004 여름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 참가자 결의문, 2007.5.14 1)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의 창립과 발전」,『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본문으로 2) 이미경,「여연10년사」,『열린희망』, 1998본문으로 3) 1987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동안 남성 생산직 노동자의 감소 폭은 13.6%임에 비해 여성은 35.3%였다. 반면 시간제 전체 노동자 중에서 여성비율은 1980년 45.9%에서 1993년 64.7%로 증가하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1998)본문으로 4) 이러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남한사회의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핵가족이라고 개념 규정을 할 경우 그것은 비단 가족 구성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제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미경,『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 도서출판 공감, 1999)본문으로 5) 실지로 1970년대 이후로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의식주, 양육 수단, 초기 교육이 상품화되면서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은 변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남편에 대한 내조와 아이의 양육에 대한 여성의 책임이 더욱 강조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산영역에서의 여성 노동은 결혼과 출산 이전의 일시적인 것으로, 혹은 아이들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한 정도의 보조적인 것으로 위치 지워진다.본문으로 6) 핵가족 모델은 불균등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핵가족으로의 이행은 근대화 진행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동자 계급 역시 이러한 핵가족 모델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본문으로 7)"가족투쟁이 이렇게 활발해진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이제 가족단위로 노동자 세대로서 정착되어 계급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이 가족투쟁의 중심인 부인들의 경우, 적지 않은 수가 여성노동자 출신이라는 사실과 현 사회구조 속에서 기혼여성들도 점점 생활고 등으로 생산현장에 저임금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여성노동운동의 한 부분으로 이들에게도 앞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김지수,「한국 여성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여성2』,창작과 비평사, 1988)본문으로 8)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여성노동자회10년사 :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1998본문으로 9) 남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직접 확인하고 투쟁에 동참해야함을 공감하는 현장방문 프로그램, 가족투쟁의 필요성에서부터 자녀교육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가족투쟁위원회 조직을 위한 상담과 지원활동 등이 진행되었다.본문으로 10)이는 1987년 이후의 국면을 민주화의 확대로 규정한 여성운동 진영의 태도와도 관련된다. <여연>은 6월 항쟁 이후를 '불완전하고 왜곡된 상태이긴 하나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이 구축된' 상황으로 평가했다. 이런 인식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렴하여 법을 제·개정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서 오히려 알 수 있는 것은 <여연>이 표방한 기층여성 중심성과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이 분리되고, 기능적으로 결합되게 되었다는 점이다.본문으로 11) IMF가 몰고 온 구조조정에 맞선 첫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19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투쟁의 '꽃'이 되었던 그녀들이었지만 최종 교섭 안에 '밥 짓는 아줌마'들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본문으로 12)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노동자, 여성실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어떤 상급단체도 두지 않은 <서울여성노동조>이 1999년 1월 11일 조합설립신고를 내고 여성독자노조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어 1999년 1월 15일에 영세사업장 등의 여성노동자 25명을 조합원으로 한 <서울지역 여성노동조합>이 서울시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전국여성노동조합>이 1999년 8월 28일 출범식을 갖고 활동전개에 나섰다.본문으로 13) 더불어 여성의 문제를 조직의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거리 마련의 절실함을 근거로 '여성할당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본문으로 14) 최명숙,「한국여성민우회 사무직 여성노동자운동의 현황 및 과제」,『여성노동운동 방향에 대한 워크샵 자료집』, 1999본문으로 15) 정양희,「스스로 커가는 풀뿌리 조직, 서울여성노동조합」,『진보평론』2호, 1999 본문으로 16) 여기서 <서울여성노동조합> 구성원 대부분이 반성폭력 이슈를 중심으로 1990년대 대학가에서 형성된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여성활동가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위계적인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과정을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했고, 유토피아적 미래 공동체의 상을 예견하는데 치중했다. 또한 남녀 간의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원한의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반성폭력 운동 평가가 필요한 또 하나의 지점이기도 하다. 남녀관계에 대한 적대와 냉소는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을 통한 여성노동자운동의 대안모색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 17) 여성노동자들이 이미 노동의 불안정화를 겪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운동 역시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대응에 취약했으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기초로 하는 핵가족 형태를 수용했다는 사실을 앞서 살펴본 바 있다. 이는 여성운동 역시 여성(노동자)의 독자적인 성별화 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사고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본문으로 18) '학교비정규직 전 직종 무기계약 전환 촉구대회' 참가자 결의문(2007년 5월 14일) 中본문으로 19) 이혜순,「비정규조직화, 같은 길은 없다」,『노동사회』5월 호, 2007본문으로 20) 정부는 무기근로계약이 정규직이라고 호도하고 있지만, 실제 무기근로계약전환 계획서를 제공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전환계획서에서 정규직 정원을 늘리는 것은 예산문제와 결부되는 만큼 현실적이지 못하므로 차선책으로 무기계약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무기근로계약노동자들을 현행 직급체계와 달리 별도의 직급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즉, 기간제 노동자의 채용방식을 따르고 별도로 평가를 진행하고 처우도 정규직과의 차이를 전제하고 있는 무기근로계약은 차별을 고착화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무기한' 계약직인 것이다. (유현경,「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질라라비』4월 호, 2007본문으로 21) 일다(www.ildaro.com)에서는 5월 15일자 기사(윤정은, 「노동계, 무기계약 전환 놓고 '찬반' 갈라져」)에서 '무기계약 철회 주장, 누구의 목소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정규직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노동조합 내부의 현실적 조건이 있으므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이나 외주화 타당성 검토 등의 문제에 대해 정부, 사용자, 노동조합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여성계나 여타 시민사회 단위에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여성계가 이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 조순경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본문으로 22) 기간 여성운동이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해 보였던 맹목 역시 현재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권의 일과 가족의 양립 정책, 여성인력활용방안,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에서 여성운동이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 파트너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핵가족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없이 여성노동자들의 독자적 권리 쟁취는 불가능하다.본문으로 23)"(…) 비정규직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기업이 이윤획득을 위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도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측면이 존재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관련 법안이 표류하던 지난 1년 간 비정규직 노동자가 30만 명이나 늘어날 정도로 그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으며,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날로 심화되면서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철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안적 원칙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작년 12월 노무현정부의 비정규법안의 통과 직후 인터넷 매체를 통해 '비정규직 철폐'는 여성노동자에게 있어 대안이 아니며 차라리 '동일노동·동일임금 표준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발표되었다. (박홍주,「'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창비> 주간 논평) 2006.12.19) 이러한 입장은 KTX 승무지부 외주화 반대 투쟁 과정에서도 쟁점적으로 드러났는데, 조순경 교수를 비롯한 여성 운동 진영은 KTX 여승무원 문제를 '고용형태에 의한 성차별의 전형적 사건'으로 보면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아닌 성차별의 문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조순경,「KTX 문제의 성격과 대안」,『철도공사의 성차별과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한 토론회 자료집』, 2006.9)본문으로 24)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써 여성이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보육정책 등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던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거론되고 추진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노무현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 지원제도를 활성화하고 계속해서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고자하는 별도의 법률(가칭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법')을 제정"하기로 했다.본문으로 25)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오히려 그것에 적극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저출산·고령화 연석회의' 참여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조준호 민주노총 前 위원장의 발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파생하는 문제를 확인했다. 정치와는 무관한 연석회의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에 한정해서 대응하자는 것이 결정이다. 그 밖에는 더 진행하지 않겠다. 대화 창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많이 극복되었다고 판단한다." 『노동과 세계』371호.본문으로 25)일례로 여성노조에서 제기한 '여성친화적 노동조합 활동 프로그램'을 노동조합을 여성친화적으로 개조하는 방안이자 미조직비정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고 적극 수용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나, 이는 기존의 '여성성'을 여성의 '다름'으로 치환할 뿐 ('여성은 관계를 중요시한다','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소규모 관계를 선호한다','위계적 지휘체계의 위(top)에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중심(center)에서 리더쉽을 발휘한다')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새롭게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본문으로

  • 2007-06-04

    [사회운동포럼]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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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운동포럼 준비위원회에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란 사전연속워크샵이 진행됩니다. 사전연속워크샵 세부기획안입니다. ...................................................... 연속워크샵 제안서 2007. 6. 4.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연속 워크샵을 제안합니다. ▷ 기획 취지 이른바 노동자운동의 가부장성은 지속적으로 비판되어 왔다.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남성 가부장을 노동조합의 주체로 상정하는 노동조합의 의식과 관행, 여성활동가와 여성노동자를 단지 여성으로만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 여성활동가의 과소대표성 등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적인 인식과 활동방식, 문화 등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이 분리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지 더욱 폭넓은 인식이 요구된다. 비정규직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화, 빈곤의 여성화, 사회위기 담론으로 활용되는 저출산 현상 등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심화된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직장․가족에서의 이중부담 때문에 발생한 여성의 현실이다. 노동권, 생존권 박탈에 내몰리며, 직장과 가족에서 이중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자 운동은 노동의 불안정화, 성별 차이를 매개로 노동자를 분할하고, 성별 분업을 심화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운동은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을 구조조정의 방패막이로 삼거나, 저출산 담론을 계기로 확대되는 여성에 대한 공격이나 여성의 의무 강화 담론을 비정치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그러한 담론을 수용하는 데 조응하고 있다.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의 상은 저임금, 미조직 여성노동자의 조직화, 임금 인상 등을 넘어서 노동자운동이 여성의 노동권과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의 과제를 제시하고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현재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현실 운동 진단과 쟁점, 노동조합에서의 페미니즘 실천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노동자운동의 혁신 지점은 무엇인지, 노동조합 내 페미니즘의 한계는 무엇인지 인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투쟁을 어떻게 다뤄왔는가, 왜 여성노동자들이 대다수의 비정규직을 차지하는가, 노동조합에서 여성의 권리와 요구에 관한 의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과제로서 여성노동자 투쟁의 과제, 노무현 정부의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을 둘러싼 노동조합과 정부의 전략 비판, 노조 내 페미니즘 실천의 현황과 과제 등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성노동자의 주체화와 조직화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동자운동이 혁신해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이념과 전략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자리를 사회운동포럼 참가단위에 제안한다. 일정 1차> 6월 14일(목): 왜 현재 ‘비정규직철폐투쟁’이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이 아닌가 2차> 6월 28일(목): 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한계와 과제 3차> 7월 12일(목): 노동조합 내 페미니즘 실천의 현황과 과제 ▷ 구체 기획안 1차> 왜 현재 ‘비정규직철폐투쟁’이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이 아닌가 - 1997년 IMF 구조조정 이후 노동 전반에 확대된 비정규직화가 야기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대항하는 기간제, 파견제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운동의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방어하는 데 그치고 있는 노동조합의 대응은 비정규직투쟁을 통한 반신자유주의 저항 주체 형성을 도모하지 못하고 있다. - 특히 비정규직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비정규직철폐투쟁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정세적인 질문이 요구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비정규직화가 노동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참혹한 양상을 통해 비정규직의 문제가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성별 차이와 결합된 고용의 불안정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노동자를 주변화하거나 구조조정의 방패막이로 삼는 몰성성을 드러냈다. 더욱이 현재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인식은 ‘저임금·미조직의 가장 취약한 여성노동자’, ‘소수자 내지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노동자 당사자의 문제로만 협소화하거나,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하는 구조적인 조건은 무엇인지 독자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성별화된 비정규직화는 이미 노동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존재했던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과 열악한 노동 조건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심화확대된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쟁취는 단지 고용안정(정규직화)만으로 달성될 수 없는, 여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념과 이데올로기, 노동 조건, 사회구조 전반을 변화시키는 요구를 포함한다. 성별 분업에 기초한 직무·직종 분리, 저임금 등의 특질을 갖는 여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노동 현실은 공사 분리 이데올로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 등에 기반해 있다. - 비정규직보호입법 이후 벌어지고 있는 계약해지사태, 분리직군제, 무기근로계약화 도입 등에 대해 노동조합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는가.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 도입에 민주노총과 여성노동조합은 환영의 성명을 냈고, 전국여성노조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에게 무기근로계약화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사안을 둘러싼 쟁점은 무엇인지, 투쟁 방향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여성노동자의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 투쟁을 지지·연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자운동과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와 이를 유지·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인식하고 여성의 요구로 제기할 수 있는 여성들의 주체화와 운동이 필요하다. 이는 현재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비판, 이념과 전략의 혁신 작업을 필요로 한다 <토론내용> - 비정규직 투쟁을 다루는 노동자운동의 관점, 전략 비판 (민주노총, 여성노조) -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의 구조적 조건과 여성노동자의 현실 (성별화된 비정규직화, 가족 비판, 등) - 비정규직보호입법, 공공부문비정규직 대책을 둘러싼 입장과 쟁점 (분리직군제, 무기근로계약화,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등) <프로그램> □ 일시와 장소 : 2007년 6월 14일(목), 오후 7시,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당 □ 사회 :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책기획국장) □ 발제 : 여성 비정규직 투쟁 진단과 평가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 □ 토론 : 이은순 (사무금융연맹 여성위원장) 박준형 (공공노조 조직부장) 김주환 (한국비정규센터 부소장) 정지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2차> 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한계와 과제 - 최근 일-가정 양립에 관한 논의는 노동정책·제도 중에서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이다. 최근 일-가정 양립이라는 하나의 정책 틀 안으로 한편으로는 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이제까지 여성노동자의 모성과 양육책임 보호 차원에서 시행되던 제도가, 또 한편으로는 육아휴직 아버지 할당제 등 남성의 육아와 가정에 대한 책임을 확대하는 새로운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일-가정 양립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권리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 그러나 실제 정책 영역에서 일-가정 양립이 중요하게 대두된 배경에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 위기 진단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의 임금노동-가사노동의 이중 부담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이며, 따라서 여성이 직장생활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출산, 양육을 지속하거나 그 부담을 일부 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면서 일-가정 양립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실제 최근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주목하는 대상은 여전히 ‘여성’, 그리고 여성의 육아와 직장생활의 병행이라 할 수 있다. - 문제는 이렇게 시행되는 일-가정 양립 정책,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여성의 주변적 노동자 지위를 지속시키고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점, 여성의 가사전담자로서의 지위를 건드리지 못한 채 이중 부담을 확대할 위험성 또한 확인되고 있다. 이에 일-가정 양립에 관한 논의가 성별분업에 기초한 노동시장 구조와 관행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가 페미니즘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현재 노동조합 운동에서 일-가정 양립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문제는 이제까지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에서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일-가정 양립을 여성‘만’의 문제로 보는 현재의 사회적 논의에 대해 노동운동은 비판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 최소한 이러한 논의를 자기 과제로 수용이라도 할 수 있는가. - 이번 워크샵은 현재 일-가정 양립 논의의 한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문제제기를 살펴보면서, 향후 노동자운동이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넘어 여성의 노동자 지위와 권리,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의 사회적 재분배(혹은 재배치) 문제에 대해 어떤 과제를 제기해야 하는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이러한 자기 과제를 ‘인식’하기 위한 전제로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전략적 변화 방향을 주요하게 짚어보자. <프로그램> □ 일시와 장소 : 2007년 6월 28일(목), 오후 7시,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당 □ 사회 : 이봉화 (서울시당 여성위원장) □ 발제 : 일-가정 양립 논의에서 한국사회 노동자운동의 한계와 과제(김원정,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 토론 : 김복희 (전교조 여성위원장) 박지영 (공공노조 조직) 강상구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국장) 3차> 노동조합 내 페미니즘 실천의 현황과 과제 노동조합의 가부장성과 여성문제에 대한 몰인식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이러한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조직적 혁신 과제는 미루어져왔다. 2000년 들어 100인위원회의 문제제기와 노조 내 여성의 과소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들을 계기로 노조 내 여성위원회가 건설되거나 여성활동가 그룹들이 형성되었다. 노조 내 상설적 여성기구로서 여성위원회-여성국의 건설, 할당제 도입, 반성폭력 규약의 신설 등은 노조 내 페미니즘 인입의 계기가 되거나, 노조 내 여성운동의 현재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 혁신에 어떠한 기여와 한계를 남겼는지 여전히 모호하다. 또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나타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 심화가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빈곤의 여성화’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내 페미니즘(여성운동)은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요구를 어떻게 담아내고 결합하고 있는 지 현재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진단 역시 필요하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페미니즘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노조 내 여성운동의 흐름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진단, 평가함을 통해,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을 위한 구체적 과제들을 모색해보는 자리를 가져보고자 한다. <토론내용> -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여성운동의 비판 ‘다시 읽기’ - 노동조합 내 여성이슈의 현황과 평가 : 반성폭력 운동, 노조 내 여성 대표성 제고를 위한 요구(할당제)가 남긴 것 - 대안적인 노동조합 페미니즘의 단초 모색 : 사회운동적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 : 이탈리아, 캐나다 노조페미니즘의 실천이 남긴 교훈 : 공동대응 과제(현재적 이슈) - 신자유주의 비판에 있어 페미니즘적 함의,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여성 비정규직 투쟁, 저출산 고령화 대책 비판 등 <프로그램> □ 일시와 장소 : 2007년 7월 12일(목), 오후 7시,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당 □ 사회 : 정지영(사회진보연대 편집국장) □ 발제 : 노동조합 내 페미니즘 실천의 현황과 과제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장) □ 토론 : 현정희 (공공노조 여성위원장) 유현경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김은주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은아 (증권노조 교육선전실장, 여파 편집장) 박승희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 금속노조 등..

  • 2007-06-04

    [여성,삶,노동] 여성위 2007년 5월호 소식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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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계약’이라는 함정을 넘어

    김혜진 |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

    정부에서 작년 8월 9일 ‘공공부문비정규대책’을 발표한 이래 주류 언론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이 대거 정규직화 되는 것처럼 보도했고,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선도’한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지금도 장기간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KTX 승무원 노동자, 전북도청, 옥천, 파주 등지의 환경 미화원, 광주시청 노동자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공공부문비정규대책이 오히려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해지와 처우악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지난 5월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여성에게 평등한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 발제는 이화여대 조순경 교수와 한국여성개발원 김영옥 선임연구원이 맡았고, 토론자로는 전국여성노조의 빈순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여성노동법률지원센타 정형옥 등이 참가했다. 먼저 이 날 주 발제자였던 조순경 교수는 “공공부문에서 남성은 여섯 명 중 한명이, 여성은 두 명 중 한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지적을 시작으로 정부/정책 및 노동 운동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무기계약 반대’는 정규직 노조의 입장이다?

    조순경은 <2006년 공공기관 경영혁신 지침>에서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인력은 필요 최소한으로 운영하되, 운용 인력은 기관의 핵심 업무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인사관리의 합리화”를 꾀할 것을 명기해 공공부문에서 여성 비정규직 증대에 정부가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기획예산처가 정부투자기관의 인사, 조직, 예산을 비롯, 경영 전반을 통제해오면서 인력구조의 슬림화와 아웃소싱의 증대를 통한 비용절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여성 등 저임금 노동자층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편, 현재 노동계가 ‘무기계약직’을 둘러싸고 이해와 이견을 달리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계열의 노조들에서 무기계약으로의 전환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무기계약’ 내용은 매우 다양하며 반드시 우리은행식의 분리직군제나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은 매우 큰 의미이기 때문에 비정규 보호법이 시행되는 현재 시점에서 무기계약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고용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학교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최순영 의원의 법안이 노조의 철회 요구로 발의 되지 못한 것은 기억되어야 할 “스캔들”이며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무기 계약직은 ‘차선책’이라며 노조의 무기계약 반대 입장을 비판했다.


    한편 김 연구원은 정부가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현행 공기업 경영 평가지표 틀을 바꾸고 ‘공익성 제고 및 사회적 책임성 강화’지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유도해내고, 비정규직의 양산을 막아낼 수 있는 내용을 담도록 구체화하고, 인적자원회계의 적용 방안 등 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여성노동자를 위한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참석한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무기계약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김유선, 빈순아 등은 무기계약과 직무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과 정부를 넘어선 여성계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통된 지적이 이루어졌다. 이 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대책과 관련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정부(기획예산처)와 “정규직 중심의 남성 노동자 운동”을 꼽았다. 특히 무기 계약에 반대하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 운동이 여성의 고용안정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에 입을 모은 것이다. 토론회 이후 우먼타임스나 일다 등의 매체에서는 “노동계, 무기계약 전환 놓고 ‘찬반’ 갈라져”, “무기계약을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란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생색내기 운동’일 수 있다는 것”라는 제목과 내용을 담은 유사한 입장의 기사를 게재했다.


    무기계약의 함정과 나아가야 할 길

    그런데 앞서의 입장에는 몇 가지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먼저 몇몇 여성/노동운동계에서는 무기계약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점차적인 차별 탈피’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처우 개선의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자체가 비정규직의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용 불안정을 확산하고 고착화시키는 것임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무기계약은 정부가 밝힌 공공부문 비정규대책 초안 상의 상시고용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 대책이 당정 협의와 부처 간 협의과정에서 ‘무기계약근로’로 수정되며 제시된 것으로 이는 비정규직에 대해서 기존의 정규직 직제가 가지는 고용안정의 권리를 그대로 보장해주지 않으며, 처우 상의 차별을 용인하겠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기계약에 기대하는 ‘고용안정’ 역시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대책 관련 언론보도에서는 약 2천 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예산 확보방안은 없는 상태이며, 이미 무기계약으로 간주된 지자체 상용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조례 등을 통해 ‘예산이 폐지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게 하여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정이 독립적인 공기업, 산하기관의 경우에는 정부가 실효성 있게 강제하지 않을 경우 대책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고용안정’에 대한 기대는 일종의 ‘눈가리개’용 미끼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실제로 몇몇 직업에서는 무기계약으로 고용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은 “합리적인 외주화(간접고용) 원칙 확립”조항을 두어 ‘주변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주변업무로 저평가되어 오던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을 다시 한 번 ‘주변’적인 업무로 떼어내 외주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선별 기준을 가지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의 무기계약이 마치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적’ 대안인양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대다수 여성노동의 현실을 은폐하는 효과를 나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조순경 교수가 지적한 ‘국무총리 훈령의 간접차별’의 성격을 초과하는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여성 직종에 대한 공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운동이 여성 노동의 배제를 전제한 무기계약을 덥석 받아들이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동임과 동시에‘무기계약’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듯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무기계약’은 불안정 노동을 심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제시된 안이기 때문에 이러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우먼타임스 기사처럼 “노동운동의 대의나 원칙을 위해” 무기계약직 전환 그 자체를 반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의 불안정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성을 심화하는 비정규법안과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에 대한 반대의 전반적인 맥락 안에 ‘무기계약’에 대한 입장도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문제를 노동자간의 성별 대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되 다만 그 안에 성별화된 시각을 접목시켜야 하는 문제이다.


    물론 조순경 교수가 주장하듯 현재 노동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접목시켜낼 수 있는 시야와 실천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때로는 여성 노동자를 배제시키는 조력자 역할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비판해마지 않아야 할 점이지만, 이것이 노조의 ‘무기계약’에 대한 입장의 근원적 배경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조순경 교수 등이 제기하듯 ‘무기계약 반대(정규직 남성 노조) vs 무기계약 찬성(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지금의 노동문제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현재의 쟁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기계약 찬/반’쟁점을 넘어 불안정한 노동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배제를 종식시키려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와 비판과 투쟁의 대상을 명확히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현재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단적으로 ‘전문화’와 ‘빈곤화’라는 결과로 귀결시키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남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과거에 비해 실제로 몇몇 ‘전문’분야, 주류 영역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조해서 확인해야 할 점은 소수의 여성들이 ‘전문화’되고 있는 것에 비해 전 세계 빈곤 인구의 70%에 여성이 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빈곤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또 특이할 만 한 점으로 ‘노동의 여성화’ 경향을 들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여성화란 여성이 노동 시장에 많이 진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성 노동에 대한 부차화와 저평가가 노동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을 해도 가난한(비정규직 고용형태의) 노동을 많은 여성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남녀를 떠나 노동자 전반의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순경 교수와 김영옥 연구원이 거론한 기획예산처와 같은 국가 기구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는 시장의 영역으로부터 철수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각종 경제규제의 완화나 철폐 등을 적극적으로 국가기구가 주도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확산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속성을 종합해봤을 때야, 비로소 지금 남한 여성 노동자의 삶의 양상을 이해해볼 수 있다. 남한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조응해 들어가면서 여성 노동이 증가하지만, 동시에 불안정 노동에 처하게 되며, 즉 ‘일을 해도 가난한’ 형편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했듯 신자유주의 그 자체에 원인이 있으며 근본적으로 이를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은 채, 노동 조건이 ‘단계적’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것이’ 당장 가능하지 않다면 무기계약이 ‘차선’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대단히 한계적이다. 현재 제시된 안은 ‘최선’과는 전혀 출발지가 다르기 때문에 최선 다음의 ‘차선’이라기보다 오히려 ‘차악’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올곧은 여성 노동권 쟁취투쟁에 나서고자 한다면, 남/녀 노동자의 성간(性間) 대결이 아니라 성별화된 권리를 향한 공동의 전략을 만들어 연대해야 할 것이며 신자유주의 반대와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현재 노동운동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과 성별화된 권리를 위한 투쟁은 지난 역사에서 노동 운동 역시 수행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들은 노동시장에서 비용 절감과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 유연화’를 달성하고자 하는데, 이 때 더 순종적이면서 노조를 조직할 경향이 더 낮고, 더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감내할 수 있으며, 부족한 가계 소득으로 출혈 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성을 활용한다. 지난 98년 제정된 파견법이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간병인, 조리사 등 소위 ‘여성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즉 노조 조직률이 낮고,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는 직종의 업무가 선정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여성과 남성에게 중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값싸고 더 유연한 여성 노동자를 활용하여 구조조정을 단행해나가고, 그를 기반으로 노동강도의 증대와 유연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노동시장을 안착화해 왔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정점에 바로 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투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에서 이러한 여성 노동의 성격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노동자 전반의 노동조건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가 겪는 특수한 경험은 성별 관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및 국가의 구조를 변혁시키기 위한 중요한 토대를 형성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서로의 해방을 위한 연대를 이루어나가야 하며,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공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여성 노동자의 권리, 여성권과 노동권의 융합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현실의 운동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 개악안의 예고편과 다름없는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은 저임금의 차별적인 일자리를 고착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정부에서 스스로 민간부문에 ‘모범’을 보이려는 방안임을 이해해야 한다. 지난 5월 17일 노동부가 비정규법 시행령을 확정한 것도 기간제 예외조항을 16개 직종에서 26개로 확대했으며, 고객 상담 업무 등 파견대상업무 또한 입법예고안보다 10개 직종이 확대되었다.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는 고객상담 등 고객 관련 사무원 업무가 추가되었으며, 우체국 노동자들과 택배 노동자들까지 파견을 허용하여 심각한 고용불안에 빠지게 하였다. 이렇듯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에서부터 시작하여 노동 전반의 불안정화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반대 투쟁은 여성운동, 노동 운동 양자에 모두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는 분할과 대립을 넘어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여성 노동권 쟁취!의 기치 아래 연대와 투쟁을 모색하자.




    ‘죄가 안 됨’ 한 통의 편지

    이꽃맘 | 회원, 참세상 기자

    편지가 한 장 도착했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온 편지였다.


    지난 2월 안양경찰서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가 떠올랐다. 안양경찰서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거참 별 일이 다 생기는 구나. 결국 발렌타인데이 날 나는 용산경찰서로 갔다. 고소한 사람은 내가 쓴 성폭력 관련 기사의 가해자였다. 그는 내가 허위사실을 유포했으며 실명을 공개했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고소했다.


    그 기사는 쓰기 까지 그리고 쓴 후에도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제보를 받고 많이 망설였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기사를 쓰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노조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쓰는 일은 더 어렵다. 왜냐면 그 사건으로 인해 얽혀서 드러나는 많은 일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취재를 요청 받았을 때 사건은 명확했다. 노조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고 이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한 것도 명확했다. 이미 꾸려진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성폭력 사건으로 이에 대한 결과를 보고한 바 있었고, 가해자와 노조는 실명으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명예훼손이었다. 기사를 쓴 날, 나를 고소한 그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은 참 당당했다. 기사에 대한 충고는 물론이며 기자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했다.


    나는 경찰에 가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왜 이 사건을 다뤘는지, 왜 성폭력 사건인지, 노조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이로 인해 얽혀진 정치적 관계는 무엇인지, 내가 기자인지…. 등등 세 번의 경찰서 출입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앞으로 노조 안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였다.


    결국 5월 17일자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온 편지는 나에게 ‘처분죄명: 명예훼손’, ‘처분결과: 죄가 안 됨’이라는 사실을 통보했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황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동안 해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남긴 후과였다. 물론 그간 해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남긴 성과는 많다.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는 것, 이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실을 알린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이다. 그리고 해결의 과정을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주체로 나서서 문제제기 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다.


    하지만 또 남겨진 성과(?)는 성폭력 사건이 특정한 정치적 관계에서 활용이 되고 있다는 것, 그저 해결의 과정만 남을 뿐 그것이 어떤 공간에서의 운동으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에 있는 여성위원회는 무수히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이것을 넘어서는 고민은 부재하다. 겉으로 드러났던 몇몇 반여성적 행태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를 쓸 때면 “잘 몰랐다. 알아보고 고쳐나가겠다”라는 말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은 공동체의 반여성적 문화와 모순들을 벗기는 하나의 운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해결하면 되는 폭력 사건 정도로 남는다. 답답하다. 답답해.


    그래도 반성폭력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반성폭력 운동은 단순히 폭력이 아니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억압에 대한 일상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여성이 처해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바꿔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나에게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해도 계속 써야 한다. 나는 누구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일들이 그저 조용히 해결하고 넘어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운동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흐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성폭력 사건도, 고소도...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