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문서


사회운동포럼여성전략기획단을 제안한다.




호성희 |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장



“페미니즘 없이 운동의 혁신도 불가능하다!”

현재 운동의 위기는 조직적, 이념적, 주체적 위기입니다. 87년 민중항쟁 이후 대중조직들이 건설되고, 노동자운동, 여성운동들이 성장해왔다곤 하지만, 운동들이 상호 결합하지 못한 채 따로 그러나 ‘함께’ 해오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분리가 위기의 징후임을 운동주체들이 인식하지 못해왔습니다. 기간 사회운동에서 여성문제는 부문의 영역으로 축소되어 역할 분담의 문제로 돌려지거나, ‘비정세적’ 사안으로 취급되거나 이미 위계화된 운동들 간의 우선성 속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97년 IMF 이후 삶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노동자(시민)들의 내부 분할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사회운동은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자기이익을 방어하거나 기존의 운동양식을 고수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면서 현재의 위기는 증폭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사회 상황에서 여성운동의 주체들의 형성도 지체되어 왔고, 현재 그 토대도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사회운동의 성 맹목에 대한 비판조차 2000년 말 ‘100인 위원회’의 문제제기를 통해 가시화되었습니다. ‘100인 위원회’는 운동사회의 몰성성을 넘어 ‘반여성성’을 폭로, 비판하였고 이를 계기로 ‘반성폭력 운동’이 확산되었지만, 이 역시 운동의 혁신, 여성운동 주체형성에 남긴 성과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성폭력은 단지 가해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운동의 이념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여성해방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성폭력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은 개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걸 전담하게 되면서, 운동주체들의 역량을 소진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기존의 주류 여성운동 또한 변혁성, 연대성을 상실하는 과정에 있고 여타의 사회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사회에서 기존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현재 페미니즘과 결합하지 못하는 아니, 몰성적 운동에 대한 자기비판을 대체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여성운동)이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존 운동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물리적인 결합과 연대를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이 페미니즘과 결합할 수 있도록 현재의 운동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여성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운동을 혁신하고 공동전략과제를 수립하기 위한 사회운동포럼에서부터 그러한 실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회운동포럼은 운동들의 연대와 소통의 장이자 매개로서, 새로운 운동양식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도모하는 여성운동전략을 모아내자

사회운동포럼 내에서 여성운동을 고민하는 주체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될 사회운동포럼의 각종 준비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내 여성운동을 확대하고 결합하기 위한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의 혁신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사회운동의 여성운동전략과제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자임하고자 합니다. 사회운동의 ‘공동전략과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녹아들고 사회운동 스스로의 과제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 여성운동 전략회의 기획단에서는 사전워크샵을 진행하고 사회운동포럼 내에서 여성대회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여성운동 전략 기획단은 사회운동의 페미니즘의 결합을 실천코자 하는 모든 활동가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관심 있는 활동가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이랜드-뉴코아 투쟁]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여성 노동권 쟁취 투쟁을 온 민중의 보편적 권리 쟁취 투쟁으로!




김 혜 진 |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진정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향한 투쟁이기 위하여

7월 비정규악법 시행을 계기로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분노와 눈물과 투쟁이 폭발하는 가운데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도 싸움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랜드-뉴코아 투쟁이다. 이 투쟁은 비정규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그룹이 뉴코아에서 300여명, 홈에버에서 4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또 홈에버 비정규직에게 ‘영원한 비정규직’인 직무급제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했지만 이랜드 자본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노동자들에게 불법 딱지를 붙이고, 이에 질세라 국가는 연행과 구속 등 형벌권까지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일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진행 중인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이 시대의 상징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어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비정규법안 시행을 계기로 하여 집단해고가 일어났고, 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법안이 실은 더욱 그들을 착취하겠다는 의도를 반영한 법안이며 이것은 앞으로 불안정한 노동을 더욱더 확산시키겠다는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한미 FTA에서도 국가와 자본은 유통산업을 ‘시장개방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를 내리면서 유통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착취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투쟁은 앞으로의 싸움들에 승리를 예비하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 모두에게 사활적이며 상징적이다.

그렇다면 이 투쟁에서 승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이하 ‘이랜드 투쟁’)을 통해 최근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과 마찬가지로 단지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의 투쟁’ 이상의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왜 갈수록 비정규직 투쟁의 상당 부분을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조적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홈에버, 뉴코아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발언을 들어보면 그 대부분은 남편의 소득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이들 학원비와 가계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어려운 가계 형편에 대한 것이거나 남편이 부재한 상태로 실질적인 생계부양 책임자로서의 열악한 처지에 관한 것이다. 이 여성들에게 차이가 있다며 생계 ‘보조’냐 생계 ‘부양’이냐 정도이며 사실 그 차이마저도 결국 그녀들의 출혈 노동 없이는 가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의 형편이 실제로 ‘안쓰러운 아줌마’들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 ‘보편’적인 여성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에 동질감을 느끼는 대중들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 시대 민중의 보편적인 삶이게 된 구조적 배경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지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여성

1980년대를 거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경제규제의 완화나 철폐, 국영기업과 공기업의 민영화(사유화), 무역이나 자본 거래 등 대외 거래의 자유화, 복지제도의 축소,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의 특징적 양상을 보인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은 소득 및 기타 자원 분배의 극심한 불평등, 대량 실업, 궁핍화 등 사회 위기를 가속하였고 민중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 악화를 가져왔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는 가족 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국가의 복지 체계도 부재한 가운데 사회적 재생산의 책임이 개별 ‘가족’, 특히 여성에게 떠맡겨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은 충격 흡수층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IMF외환위기 때에는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적인 해고 대상으로 삼아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한다. 이것은 노동자가족의 생계가 남성 생계 부양자의 ‘가족 임금’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애초에 불가능한 ‘가족 임금’은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을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다시 노동 시장에 진입하게 했다.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극심화 속에서 대다수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노동은 여전히 뿌리깊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로 인해 항상 ‘부수적’인 것, 즉 남성 생계부양자의 노동에 대한 ‘보충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자본은 노동 시장에서 비용 절감과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의 유연화’를 달성하는 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본은 남성에 비해 순종적이며, 노조를 조직할 경향이 더 낮고, 더 열악한 작업환경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대상인 여성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즉, 이런 면에서 여성의 고용이 확대된다는 말은 곧 저임금 서비스 부문과 비공식 부문으로의 고용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 노동력은 전반적으로 ‘주변화’와 성별 분업구조에 따라 구축되었다.

특히 이랜드와 같은 한국의 유통서비스산업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급성장했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한국정부는 UR 협상 이후 수도권 지역 유통시설 신축 허용, 할인판매에 대한 규제 완화, 외국인 투자기업 부동산 취득 제한 완화, 판촉사원 파견 허용 등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90년대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구조화되던 국내 유통산업은 더욱 대형화·독점화되고, 하이퍼마켓과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유통기업의 진출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유통시장 개방과 유통업체 간 경쟁 심화는 유통산업 고용구조를 상용직 중심에서 임시직 중심으로 전환하여 불안정한 고용계층을 확대시켰고, 특히 판매노동과 계산노동을 중심으로 여성 비정규직, 임시직 고용을 크게 증가시켰다. 여성 노동력 활용, 영업시간 연장을 통한 매출증대를 특징으로 하는 유통업의 활성화는 장시간 영업에 따른 시간제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기혼여성들의 분절화 된 노동시간을 활용하여 기혼 시간제 여성의 고용을 증가시켰는데, 이는 주부라는 지위로 여성을 이차적 노동자 지위에 가두는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바탕으로 질적 저하된 고용형태에 여성을 배치하는 과정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일부 여성의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대표적 모델로 제시하지만 실상은 시간제, 임시직, 파견직, 특수고용직 등에서 여성 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고, 육아와 가사 부담이라는 여성의 책임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적극적으로 여성을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의 노동을 수행하다가 해고당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이 어떻게 활용되고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에 처해지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하나의 사례다.



이랜드 투쟁을 시작으로 가족임금 중심의 투쟁이 가져온 함정을 탈피하자!

그렇다면 향후 이랜드 투쟁에서 진지하게 모색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투쟁에서는 지금까지 남한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서 공백으로 가져왔던 여성 노동권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과 실천이 요구된다. 여성 노동자들이 1970, 80년대 “빠르고 싼 손가락”으로 활용될 때부터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0순위가 될 때까지 노동자 운동은 속수무책이거나 오히려 그 과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민주노조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던 80년대에도, 중공업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 사업장 교섭력을 바탕으로 가족임금과 기업복지를 요구한 당시 노동자 운동은 여성 노동의 문제를 노동자 운동의 중심 투쟁 과제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양성간의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여성의 노동을 일시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여성 노동을 활용하려는 자본의 시도와 궤를 같이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운동은 1980년대 후반 여성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과 더불어, 노동의 불안정화가 여성노동자들을 ‘우선’으로 하여 ‘본격화’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되는 오류를 겪어야만 했다.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여성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대해 기존 노동조합은 무심하거나 무능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IMF가 몰고 온 구조조정에 맞선 첫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19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또 98년 파견법 제정 문제에 대한 노조의 대응방식도 마찬가지였는데, 파견 근로대상 업종으로 논의되던 직군 중 ‘여성업종’ 중심의 26개 직군만이 협의에 의해 남겨졌다. 결국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손쉬운 공격을 시작으로 이제 여성과 남성 노동자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안전판’이 오히려 함정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제 노동자 운동은 여성권과 여성 노동자 투쟁에 대해 보여왔던 맹목을 탈피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찬 값 벌러 온 아줌마’의 진실
- 여성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이 민중의 보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이다!

이렇게 이랜드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수적 증가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와 ‘가족 임금’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그리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자본의 전략에 대응하고 그것을 끝장내는 것이 노동자 운동의 과제라면 이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온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해갈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랜드 투쟁에서는 먼저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과 유연한 노동이라는 ‘충격 흡수층’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대중적으로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단지 심정적 안쓰러움이나 동질감을 넘어서 ‘왜 그녀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분석과 구조적인 이해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가들이 비아냥대며 ‘반찬 값 벌러 온 아줌마’라고 하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남편의 임금만으로는 반찬은 살 수 없어 따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진실이다. 이러한 그녀들의 문제가 왜 나의 문제이며, 우리의 문제인지에 대해 즉, 이 시대 민중의 보편적인 투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대사회적인 쟁점을 만들고, 신자유주의의가 어떻게 민중들을 착취하는지에 대한 발언과 더불어 허구적인 가족 임금 이데올로기와 대결해나가는 것이 관건적이다. 남성 가장이 생계부양자라는 전제 하에 ‘부수적인 수입을 위한 여성의 유연한 노동’이라는 지위가 지금 그녀들의 투쟁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이를 건드리지 않고는 고용안정과 같은 요구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랜드 투쟁은 남성 생계 부양자에게 종속된 부수적 수입의 여성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권리를 위한 ‘여성 노동자 주체’를 형성하는 것에 고민이 모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의 악순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 주체를 형성해내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여성의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해 파악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여성들이 노조 활동 시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기혼 여성의 가사 노동 부담’이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육아 문제 있는 사람은 빠져서 더 강하다’라는 방식이라면 결코 여성 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는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본이 여성의 이중 부담과 착취를 기반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면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 운동은 여성의 비가시화된 가사노동의 문제, 이중 부담의 문제에 대해 공론화해내고 여성의 노동권을 발굴해내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 또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쟁취가 단지 고용 안정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념과 이데올로기, 노동 조건, 사회구조 전반을 변화시키는 요구를 포함시켜낼 수 있어야 한다. 성별 분업에 기초한 직무·직종 분리, 저임금 등의 특질을 갖는 여성을 둘러싼 차별적인 노동 현실이나, 공사 분리 이데올로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 등을 어떻게 변화시켜낼 것인지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지금의 투쟁은 이런 점에서 바로 보편적 투쟁이어야 하며 상징적인 싸움이 되어야한다. “비정규직으로 비참하게 살아갈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그녀들의 발언에서 이미 자신들의 투쟁이 향후 비정규 투쟁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대한 투쟁임을 직감하고 있다. 여성을 우선적으로 비정규직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것은 결국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노동의 권리 해체로 이어지고 있음을 투쟁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랜드 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굴레에 빠지는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안고 올 전체 노동자들의 비참한 미래에 맞서 싸우는 오늘의 투쟁인 것이다. 여성 노동권에 대한 고민과 실천으로, 적극적인 연대와 투쟁으로 온 민중에게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굴레를 씌우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승리하는 투쟁으로 만들어가자!



[2007.7.27 사회진보연대 성명]

경북대병원은 ‘환자들의 선택권’을 핑계로, 공공병원으로서 자기책임을 회피하고,
간병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기만적인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지난 9일부터 경북대 간병노동자들은 병원로비에서 ‘도시락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간병노동자들이 이렇게 농성에 나선 것은 경북대병원이 그동안 간병노동자에게 지급하던 식권지급을 중단하고, 간병사무실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경북대병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병서비스 질 관리와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서” 유료간병소개업체 도입을 통해 경쟁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경북대병원 스스로 환자 치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간병노동자에게 떠넘기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유료간병소개업체를 도입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경북대병원은 지난 10년 동안 간병노동자를 공개채용방식으로 근로계약서까지 써가며 고용해왔고, 병원이 직접 간병노동자들을 교육, 관리해왔다. 그러나 지난 2006년 갑자기 간병인회가 유료 간병소개업체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강압 추진하였다. 이는 경북대병원이 간병사고 발생 시의 책임과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경북대병원은 지난 1년간 유료 간병소개업체를 통해 운영하게 되면서 환자들의 불만이 증가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공병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유료소개업체를 들여와 경쟁체계를 도입하면 해결될 문제인양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2003년 서울대병원 간병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알려졌듯이, 유료소개업체는 간병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병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로 인해 간병서비스의 질 하락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유료소개업체는 법에서 허용한 3만원의 월 회비 이외에도 등록비, 교육비, 옷, 신발 등의 명목으로 중간착취를 일삼고 있다. 왜냐하면 대다수 유료소개업체들은 더 많은 소개비를 받아내 이윤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지, 환자의 치료에는 아무런 관심도,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간착취로 인해 안 그래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병원에서 24시간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또한 직업안정법상 소개업체는 간병 소개 및 알선 이외에 간병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관리․감독 모두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만약 한다면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사고 발생 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간병은 치료과정에서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의료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간병노동자들은 수간호사나 병원의 지시와 감독 하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이는 경북대병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병원이 간병노동자를 직접 교육, 관리․감독하는 것은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기 위해서 병원이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인 것이다. 결국 2006년부터 경북대병원이 유료간병소개업체를 들여오고자 한 것은, 병원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불법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2006년 환자들의 불만은 간병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가 환자와 가족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간병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관리․감독의 부실로 나타난 결과이지, ‘경쟁적 체계’가 없어서가 아닌 셈이다. 환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해지는 것이지,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려 시장에서 줄 세워진 간병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경북대 병원은 알아야 할 것이다.

간병노동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간병서비스의 질이 보장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노인요양보험법 제정, ‘보호자 없는 병동’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등 간병노동의 중요성과 사회적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간병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런 논의에서 간병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권리는 여전히 부재한 실정이다. 현재 간병노동자는 병원에서 환자 치료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아무런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4시간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병원에는 간병노동자가 편안하게 쉴 곳은커녕 밥 먹을 곳조차 없다. 또한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해, 정작 자신은 간병과정에서 허리를 다치거나 감염이 되어도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대 간병노동자들이 지난달 16일 노조에 가입하고, 환자 부담만 증가시키는 중간착취를 없애기 위해 무료소개소 ‘희망간병’을 통해 일하고자 했다. 이러한 간병노동자들의 자구적인 노력에 대해 경북대병원은 식권 지급을 중단하는 등 치사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간병은 대인 서비스 노동이기 때문에 그 서비스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조건이 서비스의 질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간병노동자가 권리를 보장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때 환자들도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경북대병원은 공공병원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고 간병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간병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성실히 교섭에 나서고 사태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경북대병원은 간병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라!

- 경북대병원은 유료간병소개업체 도입을 중단하라!

- 경북대병원은 간병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

잡초처럼 단단했던 홈에버, 뉴코아의 언니들



이꽃맘 | 회원, 참세상 기자

이랜드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한 달에 80만 원 받으면서 10시간 꼬박 앉지도 못하고 일하면서도 팀장의 말 한 마디에 잘릴까봐 떨어야 했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멈추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싸우고 있다.

그녀들은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연행이 되어도,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끊임없이 집회를 방해해도 “끝까지 싸우겠다”라며 물러섬이 없다. 오히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단단히 일어서는 잡초처럼 더욱 강해지고 있다.

농성장에서 그녀들이 끌려나오던 날 잠시 임무를 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기자란 것이 감정이 없는 듯 노동자들이 울부짖으며 끌려가도 셔터를 눌러야 하고, 영상을 담아야 하고, 시간을 확인하며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순간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매일 밤 농성장 앞에서 경찰의 움직임에 초초해 하며 규찰을 섰던 그녀의 얼굴이 보여서, 아들 같은 전경들이 불쌍하다며 한숨을 내쉬던 그녀들의 얼굴이 보여서, 노래만 나오면 힘차게 박수를 치던 그녀의 얼굴이 보여서, 파업기금이 부족하자 직접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먹던 그녀들의 얼굴이 보여서, 당당하게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부르던 그녀들의 얼굴이 보여서, 집에 두고 온 자식 걱정에 눈물을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보여서….

그녀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그저 언제까지 이런 싸움을 이렇게 아파하며 해야 하는가라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법 때문에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뺏겨야 하는 세상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야 하는 세상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녀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점거농성 내내 조합원들은 단 한 번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도부를 압도하며 투쟁을 이끌어갔다. 마지막 교섭이 중단된 18일, 이랜드일반노조는 그간 요구해왔던 ‘3개월 이상 노동자의 고용보장’안을 전격 철회하고 양보안을 제시했다. 이도 사측의 고집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지도부도 장기화되는 농성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달랐다. 교섭을 마치고 돌아온 농성장에서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이 교섭에서 양보안을 낸 사정을 설명하자 한 조합원은 손을 번쩍 들고 “다시는 그런 양보안 내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조합원들도 동의를 표했다. 그러자 김경욱 위원장은 “네 알겠습니다. 다시는 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녀들은 솔직했으며, 원칙적이었다. 김경욱 위원장도 고백했듯, 그녀들의 결의는 이미 지도부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21일 동안 홈에버 상암점에서, 13일 동안 뉴코아 강남점에서 전기가 끊기기도 하고, 용역이 밤마다 행패를 부리고, 경찰은 출입문을 봉쇄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는 싸움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언니도 같은 홈에버 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던 김정애 조합원은 말했다.

“이건 언니만의 문제도, 나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문제고, 우리의 문제예요. 어디선가 힘들게 일하고 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까지 보태서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녀들의 얼굴에는 70년대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있었으며, 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경찰에게 끌려나왔던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있었다. 세상이 좋아졌다던 2007년 알몸으로 투쟁했던 울산과학대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있었으며, 여전히 싸우고 있는 광주시청의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해고되었다며 자살을 기도했던 어느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도 있었으며, 송파구청의 여성노동자도 있었으며, 구로선경오피스텔에서 옥쇄투쟁을 했던 여성노동자도, 1년이 넘게 싸우고 있는 KTX, 새마을호 승무원 노동자들의 얼굴도, 기륭전자, 하이텍 여성노동자들의 얼굴도 있었다.

그녀들은 70년대도, 80년대도, 한 세기가 변한 2000년대에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한 달 160만 원과 8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말로는 ‘하나’임을 떠들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정규직의 알량한 위선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온몸으로 증언하는 ‘그녀들은’ 어떤 꽃보다 귀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이다. 그렇다 그녀들은 꽃이길 강요받고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제야 진정한 꽃이 되었다. 그녀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어떤지, 비정규직법이 왜 문제인지, 여성노동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온 몸으로 울부짖고 싸워왔기에 투쟁의 꽃이 된 것이다. 이제 관용구가 되어버린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에 일침을 가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투쟁으로,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그녀들은 투쟁의 꽃이 된 것이다. 그저 이쁘게 꽂혀 있는 꽃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꽃 말이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호혜경 조합원은 말했다.

“나올 때는 차별받는 비정규직이었지만 돌아 갈 때는 떳떳한 정규직이 될 거예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그렇다. 그녀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녀들은 반드시 홈에버로, 뉴코아로 돌아갈 것이다. 웃으며 다시 고객들을 맞이하며 신나게 일할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넘어 노동자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말이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녀들은 특유의 웃음소리로 극복할 것이며, 함께 나눴던 도시락의 힘으로 극복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구호지만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라는 말이 사무치게 돌아오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