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12.06.06

이기적 의사 집단만 없으면 보건의료체계는 개선되는가?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의사-정부 간 갈등의 구조적 원인

보건의료팀
지난 5월 2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구조적으로 공급자에게 불리하다고 문제제기하면서 전격 탈퇴를 선언했다. 의협의 탈퇴는 7월 1일부터 전면 실시되는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뜻이다. 의협은 ‘진료비정액제’라고도 불리는 포괄수가제가 과소진료를 조장하여 결국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를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를 통해 현재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일어나는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97년 시범사업과 2002년 선택 적용을 통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의 질 저하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5월 30일 의협이 불참한 건정심 회의에서 7월 1일부터 포괄수가제를 당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의협과 정부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의사들 내부에서는 포괄수가제에 이어 총액계약제까지 시행된다면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할 때처럼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5월 23일 ‘포괄수가제는 국민을 위한 제도다’라는 사설을 통해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넣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논평을 했다. 또한 건정심에 참여하는 가입자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의협이 이해득실에 급급해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의약분업부터 최근 포괄수가제까지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반대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 포괄수가제는 진정 ‘국민을 위한 제도’인가?

건강보험제도에 국한된 정책개혁이 만드는 갈등과 왜곡

포괄수가제의 목적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억제해서 재정을 안정화하는 것에 있다. 포괄수가제를 통해 공급자에게 의료서비스의 비용에 대해 일정정도 책임을 주어서 과잉의료를 줄이려 한다.
현재의 의료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위주의 왜곡된 공급체계를 공공적 성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없이 정부는 포괄수가제라는 건강보험에 국한되는 수가제도의 도입만으로 의료비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민간병원을 운영하고 재정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의사들은 정책변화에 반발하거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건강보험제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게 된다.
게다가 의사협회가 정부 정책에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정부와 여론이 이러한 행태를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혁의 진정한 쟁점은 가려진다. 정부는 제도의 관철에 집중하면서 공급자 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수가 인상 등의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도는 왜곡되어 그나마 내세웠던 취지마저 상실되기도 한다.
만성질환관리제가 왜곡되었던 과정이 단적인 사례다. 만성질환관리제는 선택의원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추진되었다. 이 제도의 목적은 만성질환 환자가 의원을 선택해서 꾸준히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게 하는 것, 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제도 참여를 높이는 방법으로 정부는 환자관리표를 제출하고 관리 실적 평가를 받은 선택의원들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주고, 환자들에게는 선택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경감시켜주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의협, 그 중에서도 현 노환규 의협 회장이 대표였던 전국의사총연합 등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선택의원제가 신규 개원의의 진입장벽이 될 것이고, 정부가 의사를 통제하는 주치의제로 가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환자가 의원을 선택하는 과정과 의원이 환자관리표를 정부에 제출하는 제도 등은 삭제된 후 만성질환관리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포괄수가제도 현재 같은 갈등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타협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가 주는 교훈

만성질환관리제와 포괄수가제로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은 정부의 정책이 의사와 갈등을 만들고 사회적 쟁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의약분업과 비교해 볼 수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를 통해 정책개혁의 한계가 어떤 갈등과 왜곡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약분업은 광범위한 임의조제, 음성적 약가마진 등 의약품을 둘러싼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과잉처방, 약제비 지출 증가의 구조적 문제인 민간 의료기관의 경쟁과 제약자본의 특허 독점 문제 등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리베이트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의사들의 부도덕성을 공격하고 제도를 합리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추진과정에서 4차에 걸친 의사파업과 같은 의사집단의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의사·약사·정부 간의 타협과정에서 의약분업은 의료수가와 조제수가의 인상, 상품명 처방, 대체 조제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애초의 안과는 상당히 달라진 타협안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타협안의 결과로 인해 의약품 리베이트로 대표되는 음성적 약가마진 통제와 의약품에 대한 보장성 강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시행 이후 오리지널 약 처방의 증가와 의약품 가격 관리 실패로 인해 약제비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민중의 의료비부담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제약자본과 민간의료보험은 더욱 성장했다.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진정 바라보아야 할 쟁점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진정한 쟁점은 바로 의료공급체계의 성격이다.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자본, 제약자본, 민간보험자본의 확대가 바로 의료비 증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는 이론상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행위별 수가제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병의원들은 수익을 위해 다른 방법을 추구할 수 있다. 실제 증상보다 더 심각한 진단명을 기록할 수 있고, 허위 진료건을 청구할 수 있고, 비용대비 이득이 적은 건들은 다른 공급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에서 포괄수가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형병원들로 이뤄진 병원협회가 포괄수가제에 대해 조건부 찬성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병원자본의 입장에서 포괄수가제가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오히려 자본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거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허용 등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영역이 확대될수록 민간의료보험의 시장은 커질 것이다. 물론 포괄수가제가 이러한 결과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의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 없이 포괄수가제만 추진한다면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포괄수가제로 인한 의료비의 감소가 민간의료보험사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서 보험사의 이익 증대로 귀결된다는 비판이다. 이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포괄수가제가 가장 광범위하게 도입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관리의료는 단순한 의료보험의 기능을 넘어 보험회사가 의료과정 자체에 개입하면서 비용절감을 주도한다. 포괄수가제가 민간의료보험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공보험이 없는 미국의 사례를 남한 건강보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포괄수가제라는 제도만으로 의료비를 통제하고,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고, 보건의료체계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보건의료운동진영은 나쁜 의협, 착한 정부라는 이분법 속에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의사들이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든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의 근본적 개혁방안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의사들의 반발과 제도의 왜곡은 항상 발생할 수 있으며 의료비 상승과 무질서한 의료공급체계로 인한 피해는 결국 민중에게 돌아올 것이다. 의료공급체계에서의 공적 투자와 통제가 필요하다. 민중이 아파야 의사와 병원이 이익을 얻는 이윤추구적 보건의료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이 건강한 것이 의사에게도 좋은 보건의료체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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