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14.06.22

또다른 참사로 이어질 규제완화, 수직증축 리모델링

건설총파업,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싸움으로

정책선전위원회
또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직증축 리모델링 [출처: 조선비즈]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국가다. 그 중 업종사망률 1위는 건설업이다. 한 해 건설노동자 700여 명이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안전을 위협하는 건설 부문의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작년 정부가 발표한 ‘주택거래 정상화 대책’ 안에는 리모델링시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년 1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올해 4월 22일 주택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으로써 4월 25일부터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허용되게 되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란?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준공한지 15년 이상 된 공동주택에서 최대 3개 층까지 증축을 허용하는 것이다. 주택법이 개정되기 전에도 준공 후 15년이 넘은 아파트는 리모델링이 가능했다. 다만 기존에는 건축물에 옆으로 덧대 면적을 확장하는 '수평증축'과 단지 안의 여유부지를 활용한 '별동신축'만 허용되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별도의 동을 신축하거나 수평으로 증축할만한 여유공간을 두고 설계된 아파트 단지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기존 리모델링 방식으로는 법에서 규정된 용적률 증가 허용분 규정(전용면적 85㎡ 이하는 기존면적의 40%, 85㎡ 초과는 30%)을 활용하기가 힘들어 관련 건설업계와 노후 아파트 주민들의 수직증축 허용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리모델링은 건물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다르다. 재건축의 경우 지은 지 40년 이상 된 아파트여야 가능하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준공 후 15년만 지나면 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아파트가 훨씬 많다. 현재 그 대상이 되는 아파트는 약 430만 호·19만 3000여 동이며, 국내 아파트 재고의 절반(49.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사 기간 역시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재건축에 비해 훨씬 짧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도 단기간에 성과를 노릴 수 있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더 구미에 맞을 것이다. 또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소형평형 아파트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소형평형 의무비율' 강제조항이 없다. 즉 세대수 증가로 인한 이득과 주택가치 상승은 모두 아파트를 소유한 조합원에게 사유화되는 것이다. 특히 비강남권은 주택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이 정책의 수혜는 강남과 분당 등 특정지역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조차 안전성을 이유로 반대한 수직증축

이런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이명박 정권조차도 안전성을 이유로 거부해 왔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0년 연구보고서 ‘공동주택 리모델링 세대증축 등의 타당성 연구’에서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건물의 구조안정성에 대해 “오래된 공동주택의 경우 도면이 없는 경우가 많아 기존 구조물의 성능파악에 한계가 있고 기존에 수직증축에 대한 대비가 없어 수직증축이 진행될 경우 기초 및 수직부재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증축을 위한 접합・보강설계 및 시공이 복잡하게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준 및 시방이 미비한 실정”으로 평가하고 있고, 또한 “기존의 재건축에 버금가는 철거와 이주 및 증축을 수반하는 리모델링으로 […] 이러한 방식은 철거에 의해 구조체의 물리적 수명을 오히려 단축시킬 수 있어 본래의 철근콘크리트(RC)조의 수명이 도래하기 전에 구조체의 전면철거가 불가피”해 질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는 2012년 12월까지도 수직증축 불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요약하자면, 도면이 없어 애초에 구조강성을 파악할 수 없는 건물도 많고, 설사 도면이 있더라도 설계대로 시공이 되었다는 보장도 없다는 말이다. 또 정부에서는 안정성 검사를 이주 전 1차, 이주 후 내장재를 제거한 상태에서 2차로 실시하여 안전성을 확보한 뒤 공사를 진행한다고 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았듯 건설사의 이해 앞에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지는 의문이다. 입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에서 내장재까지 뜯었는데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공사를 할 수 없다고 말할 ‘간 큰’ 기관이 어디에 있을까?

대형참사를 부른 규제완화, 수직증축에도 이어지나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건설사의 새로운 돈벌이가 된다. 리모델링 시 수직증축 여부는 아파트 입주자로 구성된 리모델링 조합에서 결정한다. 그렇다고 자산가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기업과 입주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둬도 될까? 수직증축 허용은 1990년대 이래 정부가 추진해온 전형적인 규제완화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러한 규제완화가 대형참사의 배경적 원인이 되어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서해 페리호 사고 이후 정부가 맡고 있던 운항관리 업무는 선주들의 조합인 해운조합으로 이관되었고, 해운조합에서 임금을 받는 운항관리사들이 선주들의 이해를 침해하면서까지 출항 전 점검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은 당연했다. 또 이명박 정부는 연안여객선의 선령제한을 완화하면서 안전항행검사를 1년마다 받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정부 역시 안전항행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고질적 문제가 있음은 이미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면서 선령제한 완화가 문제가 아니라 검사기관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문제가 터지니 고양이 탓을 하는 꼴이다. 수직증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의 안전성 검사를 하게 되어 있지만, 안정성 검사의 실효성 자체가 의문시 되는 상황에서 이는 규제완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책임 회피 수단에 가깝다.
게다가 2009년 사고 발생시 직접적인 안전 관리자와 함께 기업주를 처벌하던 규정이 완화되어 기업주들은 법에 규정된 안전상 조치를 형식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게 되었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안전을 도외시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안전관리자를 두는 등 소정의 절차를 지키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뒤 면죄부까지 쥐어준 격이다. 이렇듯 규제는 정부의 책임을 분산하고 기업주의 이해에 부합되는 쪽으로 변화해 왔다.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용 역시 그간 규제완화 공식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방도를 갖추고 기업의 이해에 맞게 등장했다.

건설총파업,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싸움으로

건설노조는 7월 22일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총파업 공통요구안 1번은 “산재사망 처벌 특별법(기업살인법) 제정”이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건설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발생한 광교 현장 타워크레인 사고 역시 노조가 몇 달 전부터 안전문제를 제기하였지만 공사를 강행하다 발생했다. 이처럼 대부분은 업체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안전을 도외시 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건설노조의 요구안은 비록 산재사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대중교통이나 건설과 같은 공공재를 다루는 산업에서 산재는 곧 대형 참사와 동의어다. 게다가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부실 공사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다.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현장의 건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동시에 수직증축 허용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와 자기 증언을 통해 정부의 규제완화가 가진 문제점을 적극 알려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건설노조의 요구안인 기업살인법 제정은 노동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을 모두 위협하는 핵심고리인 기업주의 탐욕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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