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18.10.10

제주도민은 영리병원에 반대했다

녹지국제병원의 쟁점과 경과

보건의료팀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화조사위원회 [출처: 제주자치도 홈페이지]

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수도 있는 제주녹지국제병원 설립 허가 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녹지그룹은 2015년 6월에 제주도에 영리병원 설립 허가를 신청했고, 같은 해 12월에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았다. 이제 제주도의 개설 허가 절차만 남은 상태인데, 보건의료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설 허가를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제주도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공론화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를 위해 7월 2차례 도민도론회를 먼저 연 뒤 8월 14일부터 3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시행했으며, 이후 2백 명 규모의 도민참여단을 통해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로, 10월 4일 권고안의 형태로 원희룡 도지사에게 제출되었다. 공론화조사위는 최종 조사결과에서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선택한 비율이 58.9%로, 개설을 허가해야 한다고 선택한 38.9%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도지사는 이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국내법인의 우회적 영리병원 진출로가 될 녹지병원

정부는 2002년부터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국내 여러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설립의 근거를 마련해왔다. 제주도는 그보다 더 완화된 외국의료기관 규정을 가진 제주특별법을 통해 외국 영리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13년의 싼얼병원, 2015년의 녹지국제병원이 대표적이다. 싼얼병원은 CEO가 부정으로 인해 구속되고, 응급의료시스템 부재, 자금조달 문제 등이 드러나며 2014년 9월 사업계획이 불승인 되었다. 그리고 7개월만에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재추진 되었던 것이다.

녹지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병원이 국내 의료법인의 영리병원 설립의 우회로가 된다는 점이다. 국제녹지병원 사업계획은 한 번 취소된 바 있다. 제2투자자가 사실상 국내 성형외과병원이 운영하는 ‘서울리거’라는 점,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신청한 법인이 녹지그룹이 한국에 세운 자회사라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녹지그룹은 1달만에 사업주체를 외국자본 100%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로 바꾸어 다시 허가를 신청했고, 같은 해 12월에 복지부의 승인을 얻어 냈다. 하지만 이 역시 외국영리병원의 사업자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는 의혹을 샀다. 국내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이 녹지병원 설립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녹지국제병원의 설명자로 나선 인물은 현재 비영리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의 이사이자 리드림 의료메디컬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수정 원장이었다. 병원의 서류상 투자 지분만을 해외자본(중국자본) 100%로만 수정했을 뿐, 사실상 국내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이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제주특별법에 의하면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를 위한 심사 과정에서 사업시행자의 유사사업 경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녹지그룹은 중국의 국유 부동산 기업으로, 의료업과 관련하여 유사사업 경험이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이 유사사업의 경험은 오롯이 리드림의료그룹이나 미래의료재단의 것이다.

영리병원 우회진출 의혹에 대해 미래의료재단은 병원컨설팅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단은 재무회계 담당직원을 직접 선발했으며, 재단의 의사가 녹지국제병원 소속 의사로 등록되어 있기까지 하다. 심지어 국내 의료법상 의료법인에 허용된 부대사업의 범위에 ‘병원컨설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미래의료재단의 해명이 맞다면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영리병원 개입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변명을 하다 자충수를 둔 셈이다. 결국 컨설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내 의료법인이 우회적으로 국내에 영리병원을 세우는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의료영리화의 폐해: 의료인력 유출로 인한 의료 양극화

영리병원이 가져오는 폐해는 이미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의료양극화 및 의료비 증가, 고용 저하,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이다.

녹지국제병원은 투자금만 외국자본일 뿐 사실상 국내 MSO(병원경영지원회사)를 통해 모든 병원 건립 과정이 추진되고 있고, 의료진도 100% 한국인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여기서 우려스러운 점이 바로 민간영리병원으로의 의료인력 유출이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이후 공공병원에서 민간영리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의사 수가 2005년에 연간 7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공공병원에 부족한 의사 수는 6,000명에 이른다.

녹지병원은 첫 번째 영리병원이라 그 파급효과가 미비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국내 의료인들의 영리병원으로의 이동은 가속화되어 의료인력의 부문 간 불균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수가나 당연지정제에 대한 반감이 큰 국내 의사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예상한 것보다 인력 유출은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09년 11월에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을 검토한 보고서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병원 도입 시 추가로 필요한 의료인력(의사·간호사·의료기사·약사)의 공급에 있어 비영리병원으로부터의 이동은 불가피하며, 도미노 현상에 의해 현재 의료인력 공급 취약 지역의 의료인력 수급 어려움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의료영리화의 폐해: 의료비 증가


의료관광을 위해 영리병원을 허용한 대표적 국가인 인도에서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인도 도심부의 입원료가 공공병원에서는 9퍼센트 증가했고, 민간병원에서는 36.5퍼센트 증가했다. 의료관광의 메카로 불리는 싱가폴에서는 2010년부터 말레이시아의 병원을 이용했을 때도 싱가폴인들이 평소에 의료비를 지급받는 메디세이브 계좌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병원의 영리화로 인해 싱가폴의 의료비가 지나치게 상승해서 가격이 싼 말레이시아 병원을 이용하라는 취지였다.

위에서 제시한 보고서에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병원이 국민의료비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도 경제나 국민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없거나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연지정제 완화 등의 추가적인 정책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영리병원은 의료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진흥원은 개인병원 중 20%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더라도 연 1조 5천 억원의 의료비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 비급여진료가 1% 늘면 연 1070억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처음 영리병원이 경제자유구역에 도입될 때 정부는 진료 대상을 외국인 환자로 제한했기 때문에 국내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2005년, 2007년 경제자유구역법이 개정되면서 해당 구역 내 영리병원은 내국인을 대상으로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비 상승에 대한 우려가 생기자 이번에는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건강보험 영역 밖에서 작동한다 한들, 내국인이 영리병원을 활발히 이용하기 시작하면 의료비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 8곳이 지정되어 있고, 여기에 제주도를 더하면 총 9개의 구역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다. 전국 어디서나 영리병원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은 공공의료기관에 비해 민간의료기관이 압도적으로 많다. 국민건강보험제도와 당연지정제를 통해 의료비 상승을 통제하고, 영리행위 금지 제도를 통해 비영리로 운영하도록 강제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기관 자체의 수익추구 경향은 사실상 영리병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리병원이 등장한다면 비영리병원은 앞서 말한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의료인력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수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더 많은 비급여를 도입할 것이며 이는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료영리화의 폐해: 고용 감소와 의료의 질 저하

2006년 노무현 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 보고서는, 미국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고용 창출효과를 비교했다. 보고서는 비영리병원이 100병상당 522명을 고용하는 반면 영리병원은 352명을 고용하여 영리병원의 고용이 비영리병원의 67.4%에 불과함을 이미 보고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이윤극대화를 위해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의료 인력을 아끼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해마다 미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한 뒤 순위를 발표한다. 이 잡지가 2018년에 발표한 미국 최고의 병원 20개의 순위를 보면, 20개 가운데 영리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영리병원이 도입될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의료의 질이 비영리병원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 의료관광산업이 의료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제주도가 녹지병원을 도입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발전계획수립연구’ 에 따르면 해외 의료기관을 유치해 보건의료산업 및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녹지국제병원은 제주도가 추진하는 웰니스형 의료관광 계획의 일부이다. ‘웰니스형 의료관광’의 내용을 보면 순수 치료목적보다는 건강관리, 스파 등의 휴양, 치유 등 제주 관광자원과 결합한 상품에 훨씬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앞서 제시한 연구를 통해 제주도의 외국인 환자들의 분포를 살펴보자. 환자 수만 따지면 피부과, 성형외과 환자들이 제일 많다. 하지만 전국평균 대비 내과, 가정의학과 등의 경증질환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1인당 평균진료비가 16지역 중 12위로 최하위권이다. 또한 전체 의료관광객 중 약 80%는 서울, 경기도, 인천의 병원을 이용한다. 제주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 미만이다. 국내 지역별 의료관광 경쟁력을 비교했을 때에도 제주도는 관광분야 경쟁력은 1위이나, 의료분야 경쟁력은 12위로 매우 낮다. 이 때문에 ‘Medical care’ 자체로는 이미 의료관광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태국, 싱가폴과 경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웰니스’, ‘웰빙’ 등의 이미지를 내세워 자연친화적 도시로의 이미지메이킹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기존의 관광사업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지병원을 통해 의료산업을 발전시켜 경제성장을 이루고 양질의 의료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도민들을 현혹하는 것은 기만이다.

의료관광산업 계획에 피부, 성형 등 미용 중심의 의료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전국의 수많은 성형외과, 피부과 병원에서 이미 다수의 외국인 환자에게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행법상 국내 의료기관의 외국인 진료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영리법인병원’인 녹지병원을 세워야 할 필요가 없다. 의료수요가 있으면 지금처럼 국내 의료인 또는 비영리법인들이 관련 의료기관을 개설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녹지병원 개원을 허용하는 것은 국내 의료법인이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을 터줄 뿐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녹지병원 설립을 불허해야 한다

제주자치도 원희룡 도지사 [출처: 제주자치도 홈페이지]

2002년부터 정부는 끊임없이 의료영리화를 밀어붙였다. 시작은 노골적이었으나,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자 그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병원경영지원회사, 의료채권 발행 허용, 투자개방형 병원,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등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의도와 효과를 알기 어려운 정책들이다. 정부는 이런 정책들이 의료’민영화’가 절대 아니라면서 논점을 흐리고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의 미끼를 가지고 민중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영리병원이 들어서지 못한 것은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의 성과라 할 만하다.

의료공공성을 책임져야 할 보건복지부는 제주도가 직접적인 개설 허가권자라는 핑계로 녹지병원 설립 허가 과정을 손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제주도에 ‘정부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공문을 보낸 것이 전부이다. 제주자치도는 이미 상당히 진척된 녹지병원 개원을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녹지그룹이 공론조사 결과를 보이콧하겠다고 하자 제주도가 중국 녹지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발제자로 나서기까지 했다.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제주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8월에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제주도민의 61.6%가 녹지병원 개설에 대해 반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론화조사위의 최종 결과 역시 ‘녹지병원 설립 불허’로 정해졌다. 원희룡 도지사는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영리병원 설립을 불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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