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19.05.15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어떻게 볼 것인가?

소득주도성장 탓? 긴축재정 탓?

사회진보연대
우리나라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이런 마이너스 성장은 이례적이다. 물론 1997~99년 외환위기 이후 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몇 번 있기는 했다. 경기과열 조정기간(2000년 4분기, 2017년 4분기)이거나, 경제적 쇼크(카드대란 2003년 1분기, 세계금융위기 2008년 4분기)가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올해 1분기는 이 둘과도 관련이 그다지 없다. 시나브로 경기가 가라앉았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생산과 소득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의미다. 이는 단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풍요가 감소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체계다. 그런데 성장률이 하락하면 기업 이윤율이 하락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면 투자가 감소하며, 투자의 감소는 성장률 하락을 가속화시킨다. 물론 성장률 하락 시에 노동자 임금이 더 감소하면 기업 이윤은 감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시민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생산된 상품의 소비에도 문제를 야기한다. 성장하지 않으면 위기에 부딪히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이다.
 
침체 원인에 대해서는 개혁·보수 진영의 분석이 갈린다. 먼저 보수진영의 경우 소득주도성장론을 지적한다. 정부가 친노동·반기업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경기가 침체됐다는 분석이다. 다음으로 개혁진영의 경우 정부의 긴축재정을 지적한다. 정부가 민간부분에서 거둬들인 세금보다 지출을 덜 해서 결과적으로 국내수요가 충분히 증가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본 글에서 1분기 성장에 대한 개혁·보수 진영의 분석을 비판하며, 노동자운동이 주목할 바를 제안해 보려한다.
 
친기업 감세정책과 친노동 분배정책의 차이?
 
주류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은 미국과 한국의 경제 지표를 비교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다. 트럼프 정부의 친기업적 감세정책이 미국의 1분기 1.3%성장(연율 3.1%)을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마이너스 성장을 야기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경제성장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모두를 과장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제기관들은 몇 주 전까지도 이른바 “R의 공포”(recession, 침체)를 예상했었다. 금융시장의 여러 지표가 확연하게 경기침체를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분기 실적이 반대로 나왔다. 그렇다면 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의 예상과 달랐던 것일까? 간단하게 말해 트럼프의 무역전쟁 덕분이었다. 무역전쟁은 의외의 곳에서 미국 경제를 성장시켰다. 바로 재고와 순수출 증가였다.
 
먼저 재고증가. 생산은 했지만 팔리지는 않은 상품인 재고는 경제성장 측정 시 투자로 잡힌다. 재고는 3분기 연속 크게 증가 중인데, 미국 경제에서 재고증가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수입관세 폭탄으로 비용이 상승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이 2018년 3분기부터 생산을 앞당겨 재고를 쌓고 있다. 보통 재고증가는 경기확장을 대비하는 것이지만, 이번 재고증가는 트럼프의 럭비공 같은 대외정책을 대비한 것이다.
 
다음으로 순수출 증가. 미국의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공제한 액수)은 매번 경제성장률을 까먹는 마이너스 요소였다. 그런데 이번 1분기는 플러스 요소로 바뀌었다. 당연히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단기간에 높아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순수출 증가는 트럼프가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상대로 벌인 무역전쟁의 결과였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트럼프에 멱살을 잡히지 않으려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을 정책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경제성장은 부정적 효과가 크다. 민간의 생산적 투자와 소비에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경제는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감소하고 있다. 투자 감소는 노동생산성 증가를 둔화시킬 것이다. 소비 감소는 재고증가의 부정적 효과를 더 키울 것이다. 무역전쟁을 통한 순수출 증가는 해외의 미국에 대한 자산투자를 감소시키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올해 1분기 성장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에 대해 우려를 계속하는 이유다.
 
한편,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이론적 타당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정책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분배율을 높여 투자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최저임금인상이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결국 시장의 반작용으로 노동자의 임금소득 증가에 의미 있는 효과를 만들지 못했다. 그야말로 잘못된 정책과 무능한 집행력이 결합한 셈이다. 참고로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설비투자 감소였는데, 설비투자 감소를 이끈 것은 반도체였다. 정부정책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요컨대 소득주도성장과 친기업 감세정책이 경제성장률 차이를 갈랐다고 분석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 경제 모두에 대한 과장일 뿐이다. 미국의 성장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민간 투자나 소비를 증가시키는데 친기업 감세 정책은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만큼이나 무능했다.
 
재정에 대한 맹목과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케인스주의 계통의 연구자들과 개혁성향 언론들은 정부가 돈을 덜 썼기 때문에 1분기 성장이 나빴다고 주장한다. 실제 2018년 말 통합재정수지는 GDP대비 1.7% 흑자로 2017년 1.4% 흑자나, 2016년 1% 흑자에 비해 높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일부분 타당하다. 정부 정책의 대상이 되는 관리대상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기금을 제외한 부분)는 2010~17년까지 GDP대비 평균 1.5% 적자였는데 2018년의 경우 0.6% 적자에 불과했다. 액수로 봐도 2010~17년 관리대상수지의 평균적자는 연 22조원 수준이었고, 2018년에는 그 절반인 11조원에 불과했다.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전보다도 오히려 돈을 덜 쓴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정정책의 문제는 현재 경기침체의 작은 부분만을 설명해 줄 뿐이다. 2010년1분기부터 2019년1분기까지 국민계정의 경제성장에 대한 지출별 기여도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1분기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자. 2017년1분기 이후 경제성장 기여도가 가장 증가한 부분은 정부소비였다. 반대로 기여도가 가장 하락한 것은 민간 총고정자본형성이었다. 즉 2017년 이후 국민경제는 정부의 소비 증가 덕에 좀 더 성장했고, 민간의 투자 감소 탓에 덜 성장했다는 것이다. 2019년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주도한 것은 설비투자 감소였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긴 한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투자를 늘리고, 복지 지출을 늘리면 민간의 건설투자와 소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9년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문제는 재정지출 이후다. 2009년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세계금융위기라는 외부 충격에 대한 일시적 대응이었다. 만약 2010년 이후 수출제조업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는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제조업의 위기와 지속적인 투자 감소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일시적 쇼크에 대한 경기부양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요컨대, 개혁진영의 긴축재정 책임론은 장기적, 구조적 위기를 과소평가하며 재정지출의 효과를 과장한다. 과감한 재정지출이 단기간 경기를 부양할 수도 있겠지만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마르크스의 위기론으로 본 오늘날의 한국경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은 ‘자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학은 자본, 노동, 천연자원 같은 생산요소들이 모두 동등하다고 간주하지만, 이는 기만일 뿐이다. 다른 모든 생산요소를 오로지 ‘자본’만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소유자가 시키는 일을 한다. 천연자원은 잠재적 에너지가 아니라 자본의 수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로 생산요소가 될 자격을 얻는다. 인간의 지적․육체적 능력과 지구의 에너지는 자본이 지배하는 생산관계에서 노동력과 천연자원 같은 생산요소로 나타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분석하려면 무엇보다 자본의 능력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자본축적론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자본스톡이 얼마나 증가하는지, 그렇게 증가한 자본스톡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생산을 해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산술식으로 정의상 경제성장률은 자본스톡증가율과 자본생산성증가율의 합이 된다. 자본스톡증가율은 기업의 자본투자(생산설비, 장비, 건물 등)가 얼마나 활발한지를 표현한다. 자본생산성 증가율은 장기적으로는 기술진보, 단기적으로는 가동률에 의해 자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생산을 해내는지를 표현한다.

최근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2019년1분기 설비투자 감소가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자본스톡증가율의 하락이 핵심원인이다. 외환위기 이전 10% 이상이었던 자본스톡증가율은 2000년대 4%대로 급락했고, 2010년대에는 3%대로 또 하락했다. 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2018년 자본스톡증가율은 재작년에 반도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로 반짝 반등했다 다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나오는 속보들로 보면 2019년에는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왜 자본투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가? 자본의 수익률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익률과 관계없이 정부의 정책자금에 힘입어 자본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다. 예로 1990년대 우리나라 재벌 제조업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400~700%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기업 크기를 늘리기 위해 적자에 무관하게 사업을 확장했던 것이 당시 재벌들의 특징이었다. 정부는 이런 재벌들에게 관대한 신용을 제공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수익성 논리가 시장의 규칙이 되면서 이전 같은 경영이 불가능해졌다. 현재 재벌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대부분 100% 내외에 불과하다. 수익이 충분하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윤만큼만 투자하는 것이다.

자본 수익률은 왜 감소하는가? 자본생산성의 하락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이윤율이라고도 부른 투자 자본의 수익률은 자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생산을 하는지, 그리고 그 생산이 자본과 노동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배율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자본의 수익률은 자본의 생산성에 비례하게 된다. 장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래 자본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정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고도성장기 같은 장기간의 자본생산성 상승 국면이 없었다. 기술 모방과 대규모 투자로 선진국 경제를 추격한 한국 자본주의의 숙명이라 할 것이다. 한국의 자본생산성은 1990년대 폭락했다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효과로 다소 상승했으나, 2010년대 들어 다시 하락․정체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은 마르크스 경제이론 관점에서 봤을 때 시사적이다. 자본생산성의 하락, 자본수익률의 하락, 자본투자의 감소가 연달아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런데 자본투자의 감소, 즉 자본스톡증가율의 둔화는 자본생산성 상승이 없는 한 경제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기업의 자본투자 여력은 더 줄어든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악순환을 구조적 위기라고 불렀다. 우리나라가 바로 이런 구조적 위기 상황이다.
 
자본주의 시장법칙에 도전하자
 
2019년부터 정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올해 3월까지 관리대상수지는 25조원 적자, 통합재정수지는 17조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런 재정적자 덕에 2분기에는 성장률이 반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구조적 위기 시기에는 이런 경제정책의 효과가 줄어든다. 경기확장은 짧아지고 침체는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대범한 운동들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대범한 운동의 시작은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 본연의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참고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수라고 이야기한 계급투쟁은 노동자 일부의 임금극대화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 착취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힘은 노동자 간의 경쟁에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 노동자는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자본의 반대편에 있는 계급으로서 단결해 수요공급 법칙을 거부하면, 노동시장은 수요공급 법칙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취업자와 실업자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으면, 취업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두고 경쟁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시장법칙들은 힘을 잃는다.
 
오늘날 한국경제 상황을 볼 때, 경제성장에 대한 미련이나, 정부정책에 대한 기대보다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대안이 되려는 담대한 포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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