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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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간섭주의, 예멘의 파국을 낳은 지정학적 뿌리

왈리드 하즈분

[역자 해설] 2019년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정유 시설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유전이 드론에 피격되었다. 아브카이크는 사우디 석유산업의 상징이며, 쿠라이스는 수도 리야드에서 가장 가까운 유전이었다. 공격 직후 예멘의 후티 반군은 공격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으나, 미국은 처음부터 이에 회의적이었다. 후티 반군은 첨단기술적 기초가 없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에 대해 거의 동시적으로 복합적인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란이 기술적으로 공격을 집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후티가 이란의 지원 없이 공격을 실행했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미국과 사우디가 후티 반군이나 이란에 즉각 보복을 가할지 여부가 단연 뉴스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러 난점이 예상되었다. 미국이 직접 후티 거점에 공격을 가할 경우,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에 공습을 가했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또한 이란이 후티를 계속 지원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이 이란에 직접 공습을 단행하는 것도 거대한 위험을 내포한다. 공습은 곧 이란과의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며, 유엔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가 이란에 대한 보복을 가하는 경우 역시, 사우디 자신이 경험해야 할 군사적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사태를 전망하기에 앞서, 곳곳에서 격렬한 갈등과 폭력, 혼돈과 파국을 경험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전반적 상황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번역, 소개하는 글은 2000년 이후 중동지역이 극심한 무질서로 빠져들었다고 진단한다. 냉전 시기 중동에서 미국의 지배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일원적 국가 간 체계가 작동했다면, 2000년대 이후 미국의 지배력이 쇠퇴하면서 여러 지역 강국들이 상쟁하는 다극적 체계가 부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극적 체계에서 중동의 지역 강국들은 자신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타국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 봉기, 분쟁, 내전에 개입하고, 때에 따라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는 간섭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는 지역 전반에 불안정과 폭력을 증대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현재까지도 주요 지역 강국들은 대안적 지역 안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를 거부하며 더욱더 강한 상쟁 관계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중동의 현실은 동아시아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의 쇠퇴가 더 평화롭고 더 조화로운 국가 간 체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쟁하는 지역 강국 간 폭력과 무질서로 빠져드는 위험을 의미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대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즉 대안적인 지역 질서를 구축하려는 매우 의식적인 노력이 없다면, 기존 갈등 선을 따라 국가 간 충돌이 다층적으로 발생하는 무질서도 도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후티 운동은 이슬람주의 정치·무장운동이며, 1990년대 북부 예멘에서 출현했다. 창립자가 후티 부족 출신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들은 이슬람 분파 중 자이드 분파이지만(광의의 시아파), 수니 분파도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도 있다. 후티 운동은 경제적 저발전, 정치적 주변화에 대해 싸운다는 목표를 제시하지만, 동시에 후티 부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예멘 내 지역에서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들은 더 민주적이며, 비종파적인 공화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부패에 대한 저항을 가장 중요한 정치강령으로 내세운다.

 
이 글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Waleed Hazbun, American Interventionism and the Geopolitical Roots of Yemen’s Catastrophe, Middle East Report 289 (Winter 2018).
 
 

 
[예멘의 수도] 사나의 전략연구센터가 발표한 2018년 말 평가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멘은 더는 파국 ‘직전’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깊은 구렁에 빠졌고 계속 추락하고 있다.” 예멘이 인도주의적 파국의 구렁 속에서 자유낙하하고 있는 현실은 오랫동안 지속한 내적인 정치 분할과 권력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2011년 예멘의 대중봉기 이후 공개적인 분쟁이 되었다. 하지만 야만적인 전쟁과 현재 진행 중인 인도주의적 파국은 2001년 이후 중동에서 나타난 광범위한 지정학적 전환을 일으킨 변화의 동학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예멘은 초 대륙적 제국들을 위한 전략적 장소가 되거나, 예를 들어 1960년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대리전 사례와 같은 [지역 강국 간] 대리전의 전략적 장소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현재 예멘 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같은 상쟁하는 지역 강국 간 대리전이 아니다. 예멘의 파국은 2011년 아랍의 봉기 이후로, 중동의 지역 질서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즉 미국이 지배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지지하거나 대항하며 조직된 하나의 [국가 간] 체계에서, 다극적 [국가 간] 체계로 변형되었다. 다극적 체계는 (과거에는 지역 내적 분쟁이나 군사력의 활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던) 상호 공유하는 규칙과 외교적 채널 또는 균형 메커니즘이 없다. 중동의 지정학 질서는 폭력과 무질서라는 심연 속으로 새로운 종류의 자유낙하를 경험 중이다. 예멘의 전쟁은 이러한 변형의 징후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지역의 지정학적 무질서는 권력 공백, 지역을 지배하려는 이란의 모색, 시야와 수니 간 종파적 차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의 무모한 리더십 때문에 나타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동 지역에서 현재 나타나는 폭력의 패턴은 2001년 이후 미국이 강압적으로 군사력을 활용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중동지역을 재형성하려고 반복했던 활동에 뿌리를 둔다. 9·11 이후 중동 지역 곳곳에서 미국의 군사적 간섭은 안정적인 지역 안보 구조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정반대로 그러한 간섭은 [미국의] 경쟁 국가와 동맹 국가에서 (또한 각 사회 내부에서) 극심한 불안전을 창출했고, 무장한 비국가 행위자의 확산과 무기 유출입을 촉진했다. 지역 체계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극화되면서, 미국은 (협상과 타협보다는) 강압에 계속 의존했지만, 이는 지역의 불안정성이 낳는 힘을 강화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미국이 원하지 않았지만 통제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2001년 미국의 간섭주의가 지역적 불안전을 창출했다면, 2011년 이후로 미국은 자신의 정치적 지렛대가 약해지면서 지역 질서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축소했고, 이는 지역 강국 간 경쟁과 분쟁을 향한 경향을 가속했다. 그 이전에 미국과 여타 외부 강대국은 지역 갈등을 봉쇄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의 간섭과 지역에서 확산하는 반테러리즘 작전은 (또한 아랍의 봉기 이후 나타난 아랍의 새로운 전쟁들과 함께) 지역 중간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역 체계를 재형성하고자 지역적 수준에 자신의 전력을 투입하도록 이끌었다.
 
이란, 카타르, 터키, 아랍 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 모든 국가는 미국의 지배가 점차 약화하면서 자신의 근접 국가를 넘어서 전력을 투사하고자 모색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지역 수준에서 군사전력을 투사할 능력을 지닌 유일한 지역 강국이었으나, 이제 많은 수의 중간국가가 [이스라엘과] 비슷한 방식으로, 즉 대체로 지역을 불안정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미국은 사우디와 에미리트와 같은 동맹국의 행동에 대해서는 제약을 가하길 거부했지만,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봉쇄할 수도 없었다. 강압적인 군사력을 투사하려는 이러한 국가들의 노력은 지역에서, 새로운 수준의 파괴적인 내전, 무기 확산, 국가의 파편화, 인도주의적 위기를 야기했다.
 
예멘에서 사우디-에미리트 전쟁은 지정학적, 지역적 질서의 지정학적 변형으로 인해 아랍 국가가 겪는 고통의 가장 비극적 사례일 따름이다. 미국 하원은 미국이 파괴적인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제한하고자 하면서 인도주의적 조직과 평화 활동에 참여했지만, 미국의 책임은 현재 진행 중인 무기 판매와 군사 전투 지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최고정치평의회(후티) 통제지역 (이란, 카타르 후원)
■ 하디가 주도하는 정부와 동맹 세력 통제지역 (사우디가 후원)
■ 남부 과도위원회 통제지역 (아랍에미리트 후원)
■ ISIL-YP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 예멘지역 조직) 
□ 안사르 알-샤리아, AQAP(아라비아반도 알 카에) 통제지역
 
 

미국의 간섭주의와 지역적 탈안정화

 
영국과 그 후 미국 주도했던 중동의 국가 간 체계는 2차 세계대전 후, 국가 간 분쟁과 상쟁을 향한 경향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는 외부국가와 지역 국가는 약간의 예외를 빼면, 위협의 균형을 맞추고, 긴장 고조를 제한하며, [현상 유지를 타파하려는] 수정주의적 행위자를 억제하고자 했다. (자신의 동맹국도 억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과거에 분쟁을 완화했던 메커니즘이 부식되었다. 그러한 과정의 중심에는 미국의 정책이 있었는데, 미국은 지역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의 정책은 지역을 탈안정화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과 함께 미국은 불안정성의 행위자가 되었는데, 미국은 정권교체(regime change), 테러와의 전쟁을 확대하기 위해 [무력] 간섭을 실행했고, 여기에는 대리자[예를 들어 정권교체 후 새롭게 수립된 정부]의 무장화도 포함되었다. 이라크 국가의 붕괴, 초민족적 지하디스트[이슬람 원리주의 무장투쟁 운동]를 동원하는 국내 봉기의 부상은 (대규모 미군 주둔, 국제법과 규범에 대한 미군의 무시와 함께) 미국의 라이벌 국가(이란과 시리아를 포함한다) 내에 더욱 고조된 불안전을 창출했다. 지역국가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규범적 억제도 약화했다. 이란과 여타 미국의 라이벌 국가는 무장 민병대와 반란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지역 [무기] 산업과 [무기] 수입을 통해 새롭게 군사적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미국의 권력에 도전하고자 했다. 2010년에 이르면, 미국이 지배하는 탈냉전 시대 지역 안보 구조라는 미국의 미래상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미래상은 이란에 대한 봉쇄, 미국과 동맹을 맺은 정권에 대한 지원, 아랍-이스라엘 평화 프로세스의 관리에 기초를 두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중동에서 미국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동 국가들은 더는 미국이 안전과 질서를 제공한다고 보지 않았다. 2011년 이후로 이러한 동학과 더불어 지역 강국, 외부 강국의 지원은 몇몇 봉기의 급속한 군사화와 다면적 내전의 발발을 가능하게 했고,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예멘에서 영토 통제권의 파편화를 야기했다.
 
상쟁하는 중간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지역 체계를 재형성하고자 했고, 그에 따라 군사력을 배치하고 비국가 민병대를 무장시켰는데, 이는 중앙집중화된 국가와 영토 통제권의 파편화를 낳았다. 미국 동맹국은 미국이 선호하는 정책에 비해 자신의 즉각적인 안보 관심사를 우선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편, 세계적 수준에서 다극성의 부상(중동에서 지렛대를 획득하고자 하는 러시아와 [러시아에 비하면] 그 수준이 덜한 중국의 시도), 상쟁하는 목적을 지닌 다수의 지역 강국의 부상은 이제는 중동이 미국의 지배하에 조직된 단극적 체계나, 사우디-이란의 상쟁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양극적 체계가 아니라는 현실을 의미했다.
 
버락 오바마의 첫 번째 임기(2009~2012) 말로 향하면서 미국은 자신의 정치적 지렛대가 약화하고 새로운 불안정성의 원천이 부상하면서 지역 지배라는 자신의 목표를 축소했다. 미국은 더는 지역 질서를 관리할 수 없었다. 비록 균형과 억지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미국을 국익을 구성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싼 오랫동안 지속해온 아이디어를 두고 이견이 제기되었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전은 미국의 지역 전략에서 오랫동안 중심적이었지만, 이 국가들은 이란을 봉쇄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종식을 촉진하고, 지역의 군비 확산을 제한한다는 미국의 정책적 주도력에 때때로 걸림돌이 되었다. 반면, 이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국과 적대국 양자 모두 점점 더 불안전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경쟁과 분쟁의 증가는 [지역 강국에 의한] 광범위한 [무력] 간섭과 군사력 배치, 즉 새로운 아랍 전쟁을 야기했다.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지역적 혼란이 점증했지만, 오바마는 중동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전략적 안보위협에 미국이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암시했다. 테러리즘과 이란의 지역적 역할은 전략적 도전이었으나, 이러한 관심사는 더 넓은 지역 전략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2015년 이란 핵 합의보다 더 폭넓은 외교적 비전을 통해서 상쟁하는 국가 간 지역적 균형을 수립하고자 시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워싱턴은 억압적 정권을 인내하고, 동맹국에 무기와 군사지원을 제공하고, 상쟁하는 국가에 강압적인 제재를 부과하고, 결국, 분쟁을 다루는 메커니즘을 창설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지역분쟁을 촉진할 따름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IS에 대항하여 군사력을 배치하는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과 예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에서 진행 중인 분쟁을 완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 사이에서 보이는 모순이다.
한편, 지역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새로 출현 중인 비국가 행위자들의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거나 봉쇄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추구했다. 미국의 특수부대는 네트워크 형태의 전투법과 반테러리즘 활동에서 발전시켰고, 정보기구는 비국가 민병대와 특수훈련을 받은 지역 반테러리즘 부대를 지원했고, 그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와 정보의 유입을 촉진했다. 이러한 경향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더 심화하였고, 일방적 형태나 상호거래적 형태가 발전되었다.
 
 

사우디 주도 반혁명의 촉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국가의 붕괴, 시리아의 악몽과도 같은 내전으로의 추락이라는 예외를 빼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노력, 즉 아랍의 봉기에 대항하여 지역적 반혁명을 지도하고, 새로운 지역 질서라는 자신의 미래상을 부과하려는 노력은 지역을 탈안정화하는 데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우디는 지역 정치에 대해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접근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의 침공이 이라크에서 시아파가 지배하는 정부를 탄생시키고 이란의 영향력이 이라크와 그 이상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는 새로운 이라크 정부와 소원한 관계로 남아 있지만, 민간 사우디 기금은 이라크에서 지하디스트와 봉기를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종파적 노선에 따라서 이란과의 지역적 경쟁 관계를 재정의하고자 했는데, 이는 아랍 세계에서 수니파 주민 내부에서 정치동맹을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사우디는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이 이익에 대비하여 자신의 이익을 설정했다.
 
2011년에 미국이 이집트의 장기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몰락을 묵인하자, 중동지역에서 워싱턴의 역할에 대한 사우디의 불신이 치솟았다. 사우디의 지도자들은 특히 오바마의 선언(이 선언에는 모순이 없지 않았지만), 즉 미국의 이익은 튀니스[튀니지의 수도], 카이로[이집트의 수도], 그리고 여타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시위자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선언에서 위협을 느꼈다. 지역 정치에 대한 사우디와 미국의 접근법은 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설사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갈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은 자신의 지역적 역할을 재정의하기 위해 고투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역적 반혁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행동을 개시했다. 리야드는 아랍의 봉기로부터 나타난 민주주의 지향적 전망을 탈선시키고 민주주의의 성과물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예를 들어 바레인의 봉기를 분쇄하고, 예멘에서 엘리트적 이행을 관리하고, 2013년 이집트 쿠데타를 지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우디는 이란의 권력 확대, 터키와 카타르의 영향력 부상에 직면해서 자신의 지역적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고투했다. (터키와 카타르는 종종 사우디의 경쟁자를 지원했다.)
 
한편으로 이런 행동은 미국의 역할이 쇠퇴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단호한 정책을 추구하는 여타 신흥 지역 강국의 경향을 뒤따른다. 다른 한편, 터키와 카타르, 심지어 이란은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추구하지만,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공격적 지도하의 사우디 정책은 (UAE의 지원을 받으며) 2011년 9·11 이후 지역 체계를 재형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조지 W. 부시와 유사하다. 빈 살만과 부시의 사례를 보면, 양자는 지역적·국제적 규범을 위반하며 일방적 군사력을 활용하며, 국가들과 사회들이 [사우디의] 지역 계획에 순응하도록 강압한다.
 
워싱턴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반대에 직면하면서도 이란과의 핵합의를 추구했고, 오바마의 정책은 이러한 사우디의 정책을 부추겼다. 실제로 미국은 외교적 해결책이나 대합의를 통해 지역 체계를 위한 새로운 규칙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을 거의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했는데, 이집트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지지하고, 시리아에서 극단주의적인 무장저항집단을 지원하고, 예멘에서 파괴적이고 비효과적인 군사 전투를 개시했다.
 
사실 UAE는 이러한 공격적인 새로운 접근법을 수립하기 위한 초기 모델을 제공했다. 1990년대 이후로, UAE는 자신의 군사 능력을 발전시켰고, 지역의 지정학에서 훨씬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었고, ‘지역에서 가장 간섭주의적인 대외정책 행위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아부다비의 왕세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와 무함마드 빈 살만의 강력한 지지자는 이라크와 카타르에서의 강경노선 정책과 예멘에서의 군사개입을 장려했다. UAE는 예멘에 자신의 지상군을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남부 예멘에서 다양한 지역 대리군을 모집하고 그에 자금을 지원하고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훨씬 더 깊이 개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자신의 지역 전략이 이란의 지역 영향력 확대에 대한 대응이라고 묘사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위협을 가함으로써 이란에 대항하여 효과적인 지역 균형을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아랍국가 간 이익 경쟁, 그들 간 협력의 실패, 지역 정치를 위한 규범의 침식은 이러한 균형 미달을 설명한다. 그 결과 2011년 집단안보 포럼으로서 GCC[걸프협력회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으로 구성됨]를 부활시키려는 카타르의 시도가 약화하고 단명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란과의 어떤 합의도 반대했고, 지역 질서를 안정시킬지도 모르는 지역적 토론을 막고자 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안보 우산 하에서 오랫동안 보호를 받았으나 (그들은 안보 우산에 재정을 제공했다), 그들은 이제 군사 중심적인 민족전략의 창출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투입한다.
 
 
 

예멘에서 미국의 정책이 낳은 비극

 
1962년, 가말 압델 나세르 하의 이집트가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왕족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북예멘에 개입했을 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사우디에] 통제를 가하고자 했으나, 그 후에는 이집트를 억제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우디 상공에 미국 군용기를 동원했다. 이에 반해, 오바마 정부는 예멘에서 사우디 주도 전투를 지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심지어 다수의 미국 관리들이 이란 핵합의에 대해 [사우디와 입장] 차이가 나타나면서 [그 반대급부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야 할 필요를 제외하면 예멘 분쟁에 걸린 미국의 이익이 없다고 믿었음에도 그렇다. 심지어 오바마는 지역 정책의 변화를 이란과의 대결보다는 봉쇄로 연결하고자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멘에서 드론을 통한 목표물 암살을 지속하고, 사우디가 주도하는 동맹을 지원함으로써 예멘의 비극에 관해 미국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미국의 정책전문가들이 보기에 미국이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에 거대한 무기 패키지를 제공하더라도 예멘에서의 전쟁은 비관적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비극의 규모가 더 커지게 했다. 한편 다수의 워싱턴 싱크탱크 커뮤니티, 정책 지향적 매스컴은 무기산업체와 함께 지속해서 사우디와 에미리트의 이익을 옹호했다. 미국이 예멘에서 사우디-에미리트의 전쟁을 조장한 것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해 미국이 청신호를 준 것과 유사하다. 양자의 경우에서, 미국의 동맹국[이스라엘과 사우디]은 미국의 지역적 이익에 반하면서도, 분명히 예상되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야기하는 상황에 미국을 끌어들였다.
 
트럼프의 당선은 사우디의 시도, 즉 자신의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스라엘과 긴밀한 전략적 협력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가속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우디의 움직임은 반생산적이었다. 2018년 레바논 총리 사드 하리리의 사임을 강제하고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를 방문하던 중, 이란과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근거로 전격 사임했다] 예멘에서 전쟁을 추진했지만, 이는 [결국] 사우디의 정책 실패에 대비하여 이란의 지역적 지렛대를 증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우디와 에미리트는 2013년 이후 GCC의 정책 합의를 재건하려는 카타르의 노력을 포용하는 대신에 카타르가 순응적인 역할을 수용하도록 강압하고자 했다. 그 결과, 지역 조직으로 GCC의 파편화, 한때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이었던 GCC의 분열 심화가 나타났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스라엘은 트럼프 행정부에 지역 질서에 관한 (환상적인)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약화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영토적 현상 유지를 수용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한다는 무용한 생각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간 합의조차 그러한 계획을 성공시킬 수 없다. (그들 간 합의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러한 계획에 대한 지역적, 사회적 반대가 클 것인데, 이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대중적, 사회적 기초를 발전시키려는 사우디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과 헤즈볼라[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정당조직]의 군사적 적극성이 점증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공격적 행동을 야기했고, 여기에는 헤즈볼라의 시리아 내 군사자산과 레바논 내 드론 활동에 대한 공격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동은 분쟁의 고조라는 위험을 동반한다. 한편, 미국은 급박한 안보위협과 장기적인 전략적 도전을 다루기 위해 경쟁 관계에 있는 지역 강국과 협상을 모색하기보다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철수했다. 국무부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경제제재를 가하고, 정권교체라는 언사를 위험스럽게도 고조시키면서 이란을 압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우디가 주도하는 반혁명을 미국이 지원함으로써 사우디-이란의 상쟁 관계는 더 강화되었을 따름이다. 또한 미국의 지원은 지역 분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지역적 불안정성이 증대되도록 촉진했고, 분쟁이 더 고조되는 위험을 동반했다.
 
 

출구는 없는가?

 
현재의 지정학적 전망에서 볼 때, 중동지역에서 분쟁을 관리하고 이 지역이 위기의 단계적 확대에서 벗어나도록 촉진하는 노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상이한 국가들의 요구와 이익, 수십 년간의 전쟁과 사회 붕괴로부터 고통을 받은 이 지역의 폭넓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요구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평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한때 미국은 아랍의 봉기에서 개혁주의적이고 초기 민주주의적인(proto-democratic) 세력을 지원한다고 선언했지만, 걸프 국가가 주도한 반혁명을 수행하는 반동 세력과 제휴하여 왔다. 미국은 ISIS와 싸우려 하면서 9·11 이후 시기를 지배했던 ‘테러와의 전쟁’ 패러다임으로 복귀했다.
 
오바마는 이란과의 핵합의에도 불구하고, 지역 안보 이슈에 대한 토론을 열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고, 이러한 실패는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역전시키는 게 가능한 결과를 낳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팔레스타인, 예멘, 리비아, 시리아와 여타 국가에서 벌어지는 폭력 분쟁에 대한 해결책이 수립되도록 의미 있게 지원하기를 거부했다. 더 나쁘게도, 미국과 다른 외부 강대국은 이 지역에서 영향력과 지렛대를 행사하기 위해 국내적·지역적 분할을 활용했는데, 이때 경제제재(이란), 직접적인 군사적 간섭(리비아, 시리아, 이란), 지역국가의 간섭에 대한 군사적 지원(예멘, 바레인), 지역 전반에 걸친 대규모 무기 판매와 같은 도구를 활용했다.
 
불안전과 지역적 경쟁은 지속해서 생산되면서 끝날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단계적으로 고조될 가능성은 풍부하다. 하지만, 지역의 사회 세력들이 집결하고, 대중적 의지를 억압하면서 지역 주민이 품는 인도주의적 재앙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는 정치 엘리트에 다시금 도전한다면, 또 다른 질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2013년의 반혁명과 같은 반동적 억압, 정권 엘리트에 의한 권력집중, 외부 강대국이 우선하여 관심을 두는 사안의 변화는 여러 사회운동을 약화시켰고, 그 운동의 사기를 꺾었다. 게다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다양한 정치 세력과 민병대는 누구라도 지원을 제공한다면 종종 그 지원을 수용하곤 한다. 이러한 지원은 이면에 숨겨진 과제와 함께 확대된다.
 
중동지역과 미국, 그리고 여타 지역의 사회가 무모한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을 동원할 수 있을 때까지, 인도주의 조직과 평화활동가,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의지가 있는 정치 관료는 예멘에서 벌어지는 파괴적인 사우디-에미리트 전쟁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와 전술적 지원에 제한을 가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반전 좌파는 이른바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비판하는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우파와 중도파와 함께,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한편 국제연합과 다른 행위자는 [무력분쟁과 간섭을] 제약하는 규칙을 재건하고, 분쟁 해결책을 장려하고, 포괄적인 지역적 협상을 촉진하도록 활동해야 한다. 일단 우선권은 인도주의적 요구에 맞추어야 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가 부재하다는 사실 하에서) 다원적인 지역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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