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1.13

집권세력과 검찰의 갈등, 노동자운동은 정권부터 비판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집권세력과 검찰의 갑론을박이 점입가경이다. 최근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로 갈등이 폭발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좌천시킨 것이 발단이다. 작년의 조국 찬반 진영이 이번에는 검찰 인사에 대한 찬반으로 나뉘었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은 현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한겨레나 시사인 같은 노동조합에서 많이 보는 개혁진영 언론들은 대체로 정권보다는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있다. 검찰이 과도하게 정부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다. 첫째, 현 정부의 검찰수사 방해와 검찰개혁정책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 권력의 확대는 민주주의의 퇴행임과 동시에 노동자운동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의 강화는 노동자운동에게 불리하다

 
먼저, 현 정부의 검찰개혁과 검찰수사에 대한 태도가 대통령 권력의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사회운동포커스>에서 수차례 밝힌 바 있다. 3년 전 권력 농단만 봐도 박근혜가 검찰을 부린 것이지, 검찰이 박근혜를 조종한 것이 아니었다. 검찰개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대통령 권력의 조정을 전제로만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계간 사회진보연대> 겨울호 "검찰개혁인가, 수사기관의 과대팽창인가?" 참조)
 
다음으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결정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은 검찰 이전에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민주 노총 총파업이나, 사업장에서 파업을 할 때, 공권력을 동원해 지도자들을 구속했던 것은 검찰이었나, 아니면 청와대였나? 형식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이었지만, 파업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한 것은 청와대였다. 검찰과 경찰, 심지어 국정원(안기부)까지 모아 공안기관 대책회의를 주재했던 것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청와대 명을 받은 고위 각료들이었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경제 사정 때문에, 사회안정을 해치기 때문에, 정치적 요구이기 때문에 거부했던 것도, 그리하여 노동조합이 파업하고 거리로 나오게 만든 원인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을 자신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제한하고, 노동조합에 정치적으로 재해석된 법률을 적용하는 것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권한이 강해질수록 대통령이 초법적 행동으로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시행령 정치가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관련법에서 시행령으로 노동자들을 골탕 먹인 사례들, 노조법 시행령으로 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만든 사례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용자의 편법 꼼수를 부추긴 사례들 등등 대통령 멋대로 시행령을 만들고 개정해 노동운동을 곤란하게 만든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행령 정치’는 노동법 영역에서 가장 활발했었다.
 
정치학자들이 대통령 권력이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시행령의 남발 여부다. 대통령 권력이 확장될 때 나타나는 지표가 바로 헌법과 법률을 우회하는 시행령이 많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시행령 개정이 이전 정부보다도 많았다. 대통령이 권력기관들에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그만큼 이런 시행령 정치도 힘을 더 갖는다. 현재의 검찰수사 방해와 검찰개혁은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로남불 정치, 노동존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검찰수사 방해 사태에서도 조국사태와 비슷하게 내로남불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이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는 한 시간만에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 때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수년간 불법적이고 조직적인 선거에 개입한 것, 헌정 질서 민주주의 파탄내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총리님, 열심히 하는 검찰총장(채동욱)을 내쫓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수사와 기소를 주장했던 수사책임자(윤석열)도 내쳤지 않습니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의혹이 생겨 진상 조사를 하는 문제지, 누구를 찍어낸다는 측면은 전혀 없”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었다. 그런데 2020년의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 반대로 이렇게 말했다. “인권을 뒷전으로 한 채 마구 찔러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힐책했다.
 
집권세력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다르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대통령의 인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이 같아도 결과는 다를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오히려 한국사회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은 이미 그런 곤경에 처해있다. 스스로 노동존중을 실현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대통령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가 힘을 실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1호 안건은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상쇄하는 탄력적근로시간 확대였다. 자칭 노동존중 대통령은 노동보다 재벌과 더 자주 만난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노무현 정권 시기 ‘좌파 신자유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은 노동자 운동을 시대에 뒤쳐진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난했었다. 자신이 개혁이니,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수구 기득권이란 말이었다. 지금 문 정권의 행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로남불 정치의 결론이 항상 이렇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은 역사적으로 내로남불의 최대 피해자였다.
 

검찰개혁도 중요하나, 제왕적 대통령부터 개혁하는 것이 순리다

 
물론 정권의 작태를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검찰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지금껏 보인 반민주적 수사와 기소들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노동자운동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도 검찰의 팽창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비판의 최우선은 문재인 정권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검찰의 권력은 항상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탓에 폭주했고, 노동자운동은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 탓에 고초를 겪었다. 검찰제도가 깃털이라면 현재의 대통령제도가 몸통이다.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제 입맛에 맞는 검찰개혁을 관철하려는 집권세력이 노동자운동에게 장기적으로 더 큰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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