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1.15

패트법 통과, 개혁으로 포장된 민주주의 퇴보일 뿐이다

사회진보연대
 
지난 1월 13일 검경수사권조정법과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국회에서 통과됐다. 법안처리 이후 민주당은 ‘총선압승’을 건배사로 자축파티를 벌였고, 정의당은 “개혁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했다며 환영했다. 참여연대 역시 비로소 “형사사법절차 정상화 과정”이 시작됐다며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잠시 진영논리를 벗어나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집권여당이 국회 운영의 꼼수를 이용해 힘으로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이 의회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부패와 비민주적 관행이 그대로인 경찰이 독립적 수사권을 가지는 것이 과연 다수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인가?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국회의 비례성만 높이는 것이 오히려 전능한 대통령과 무능한 국회라는 역설적 상황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서구에 “눈먼 길잡이”라는 말이 있다. 눈먼 길잡이는 자신과 따르는 사람 모두를 구덩이에 빠뜨린다. 우리는 현 개혁진영의 패스트트랙(패트) 법안 통과가 딱 그 꼴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여야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한 패트 제도의 문제점부터 보자. 


2012년 국회선진화법에 패트가 명시된 이유는 국회의장의 무분별한 직권상정을 막는 대신, 법안 통과의 우회로를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번 패트는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이 합심을 해서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번에 패트를 이용해 다수당이 소수당을 어떻게 무력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국회 운영의 새로운 ‘헬 게이트’를 열어젖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패스트트랙 제도는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패트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다. 오랜 의회정치 역사가 있는 영국의 경우, 국가 미래나 국민적 이해가 첨예한 사안만 패트를 이용한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다. 한국처럼 권력다툼, 당리당략에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회 전문가들은 국가안보에 관련된 법안이나 위헌 판정 이후 시급한 개정에 필요한 법률에 한해서만 패트가 시행되어야한다고 제언한다. 

 

통과된 법안들 또한 심각하게 문제다. 

 

우선, 검경수사권조정법은 검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에만 몰두하다보니, 경찰의 권력을 도리어 키웠다. 경찰은 치안유지와 시위진압, 정보수집이라는 기존 역할에 더해, 이제 일차적인 수사 종결권까지 가진다. 자치경찰 도입이나 정보경찰 폐지와 같은 경찰개혁 방안은 다 빠졌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경찰의 위험성은 검찰보다 더 크면 컸지 절대 작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권이 제한된 최초의 이유가 이승만 시절의 정치경찰, 깡패경찰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80년대 민주주의 압살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검찰청 소관이 아니라 경찰청 소관이었다. 2009년 용산 철거민을 상대로, 또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도 검찰 이전에 경찰이었다.

경찰조직은 10만이 넘는 거대한 인원이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에 따라 움직인다. 여기에 수천 명의 정보경찰도 있다. 경찰은 고삐가 풀리면 항상 독재시대 그 경찰로 돌아갈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 조직이다. 최근 청와대의 하명수사,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만 봐도 경찰조직이 얼마나 쉽게 청와대 권력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국회의 비례성을 높인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고 국회 권한을 약화할 수 있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점한 제왕적 대통령은 그대로인데, 국회는 소수정당이 난립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형태와 선거제도의 유형을 분류하는 연구들에 따르면, 비례주의 선거는 의원내각제와 주로 결합된다. 비례 대표로 여러 정당이 국회에 진입해도 정당 간 연합으로 내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들의 정치제도와 선거가 이런 형태로 발전해왔다. 대통령제는 다수주의 양당제와 결합되는 것이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의 조합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만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대통령의 부패와 독재가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다수 정당의 난립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놀랍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제도 개혁은 세계 정치에서 가장 후진적 형태로 평가받는 라틴아메리카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검찰개혁 특별 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출처: 뉴스1]

 
 
 

정리해보자. 개혁이란 허상을 걷어내면 패트 통과는 시민들이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현 상황은 해방 직후 아수라장이었던 한국 정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무력화하며 국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법안만 통과시켰다. 당시 경찰은 검사도 잡아 가둘 정도로 그 힘이 막강했고,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는 사병 같은 역할을 했다. 무소속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1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하면서 국회는 대통령을 전혀 견제할 수도 없었다. 현재 정권과 집권여당이 통과시킨 패트법은 1950년대 초 이승만 시절의 한국정치를 재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총선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주당은 반대 세력을 모두 반개혁, 보수로 딱지 붙이며 총선 압승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패트법 통과 역시 이런 진영론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패트법을 환영하며 또다시 ‘보수 대 개혁’이라는 낡은 전선에 갇히고 있다.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보수세력의 반개혁보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 방향 그 자체가 더 문제다. 진보진영은 이제 저 ‘눈먼 길잡이’들과 결별해야 한다.(집권 세력의 반보수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계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린 <개혁의 몰락: 21대 총선 전후 정치 전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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