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2.05

청년세대의 노조 인식, 의미와 시사점

사회진보연대
세계적으로 ‘청년세대’는 뜨거운 감자다. 세대 간 갈등이, 노조로 조직된 고령 노동자와 미조직된 청년 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표현되는 것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선진국 대부분에서도 청년세대 노조 조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노조의 고령화 속도가 인구 고령화보다도 빠르다. 얼마 전 발표된 공공운수노조 <청년조합원에 대한 이해와 노동조합의 과제> 보고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공공운수노조 보고서를 논평하며, 노조의 청년세대 정책에 관한 몇 가지 쟁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2000년대 노동운동의 결과로써 청년세대 노조 인식

 
위 보고서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노동조합의 의미에 대한 인식 차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조합원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대의식에서도 세대별 차이가 컸다. 청년과 기성세대의 노조 인식 차이는 노조 역할에 대한 의견 차이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와 언론 보도들은 청년들의 연대의식이 낮은 이유를 정치적 성향, 경쟁에 대한 수용도 등과 연결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한 세대의 특질을 문화적 요인으로 찾는 것은 현상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왜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러 세대 연구를 보면, 세대적 특질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대체로 중고등학교 시절이다. 성인이 된 이후의 인식 변화는 커다란 사회변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시절보다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청년세대의 노조 인식도 청소년기 뉴스나 주위 여론을 통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노조 가입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그들의 상태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35세 미만 청년 노동자들이 청소년기에 본 노조는 2000년대의 노조 운동이었다. 이때의 노조 운동이 그들의 노조 인식에 깊게 각인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2000년대 노동운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2000년대 노동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처절했지만, 개별적인 투쟁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점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를 내건 정리해고 반대 투쟁, 수백일 넘는 농성을 감당해야 했던 비정규직 투쟁 등은 대부분 기업 내 쟁점을 둘러싸고 진행된 것들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은 안타깝게도 자본의 총공세를 총노동의 투쟁으로 방어해내지 못했다. 노동조합들은 개별 기업 내에서의 임금과 고용에 대한 방어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예로 <민주노총 20년 백서>를 봐도 민주노총이나 주요 산별노조(연맹)를 상징하는 투쟁들은 대부분이 개별 기업 노조가 벌인 고강도 투쟁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2000년대 대표적 투쟁들에도 쟁점보다도 사업장 이름이 붙는 경우가 더 많다.
 
2000년대의 투쟁들은 1980~90년대와 비교해 봐도 차이가 있다. 당시 노동운동을 상징했던 것은 구로동맹파업, 노동자대투쟁, 1988~90년 노동악법 철폐/독재정권 타도를 내건 가두투쟁, 전노협 건설, 민주노총 건설,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 같은 연대투쟁과 정치투쟁들이었다. 물론 그때도 조직형태는 개별 기업 노조였고, 기업별 임단협이 대다수이긴 했다. 그런데도 이 모든 투쟁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상징하는 전국적 투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식됐다. “노조하면 빨갱이”란 당시의 비난은 노조탄압의 구실이었지만, 동시에 노조 운동이 가진 정치적, 사회적 성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노조하면 귀족”이란 오늘날의 비난과 뉘앙스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다. 처절함은 1980~90년대와 2000년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처절한 요구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이렇게 달랐다.
 
1980~90년대 노동운동을 경험한 중장년 조합원과 2000년대 노동운동을 보고 최근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사이의 인식 차이 역시 이런 역사적 노동운동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노조가 기업 내 임‧단협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민주노총, 산별노조를 통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거시적 제도적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의식은 최근으로 올수록 약화했다.
 

의식 차이의 배경인 임금 격차와 일자리 경쟁

 
한편 청년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가지는 의식은 그들의 일자리 조건과도 관계가 깊다. 공공운수노조 보고서는 공공기관 정규직 청년조합원을 심층 조사했는데, 충격적인 결과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35세 미만 청년조합원의 절반은 이 정책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응답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오래된 대의가 부정된 셈이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는 우리나라의 상위 20%에 속한다. 안정된 고용과 퇴직 때까지 계속 인상되는 연공급은 어떤 점에서 재벌 대기업보다도 낫다. 중위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며, 평균 근속이 5년도 되지 않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일자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앞길이 구만리인 청년들이 죽기 살기로 공공부문 취업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고서는 이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청년세대의 의식을 보여줬다.
 
 
 
공공부문 정규직 청년세대의 태도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집단적 힘으로 막지 못한 한국 노동운동의 상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선진국 사이에서도 최고 수준인 임금 격차, 그리고 그런 격차의 최상위인 공공부문 임금은 자본과 노동의 투쟁이 역사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총노동 전선은 무너졌었다. 그리고 정리해고제와 다양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무분별하게 확대됐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업주 지불능력이 충분한 사업장에서는 노조의 투쟁 강도에 따라 고용과 임금을 어느 정도 지켜낼 수 있었다. 공공영역은 방어에 가장 성공한 부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재난 뒤의 트라우마처럼 외환위기 이후 기업별 노동조합들은 이전보다 더 개별적 고용과 임금에 집착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가 2000년대 내내 외주화와 비정규직을 고용조정의 방파제처럼 이용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확대를 묵인한 것이나, 청년세대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거부한 것에 어마어마한 차이는 없다. 엄청난 임금 격차에서 제한된 좋은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적 차이 정도라 하겠다. 사람들은 집단적 해결책이 불가능해졌을 때 각자도생의 방법을 찾는다. 각자도생의 범위도 사정이 나빠질수록 기업별로, 고용형태별로, 개인별로 점점 더 파편화된다.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 사정은 나날이 악화했다. 공공 정규직 청년조합원의 태도는 오늘날의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각자도생의 투쟁을 지양하고,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 전력투구하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조직되어 한국 노동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대부분은 2020년대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세대의 의식과 태도가 노동조합 방향에도 더욱더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년세대의 변화가 시급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현 노동운동의 지배적 양상인 기업별 임금 극대화와 고용 안정 투쟁으로는 청년세대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실 이런 투쟁은 각자도생이나 경쟁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 약간의 문화적 거부감을 제외하면, 공공부문 청년 정규직에게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평생 받아야 하는 다수의 청년 노동자들은 이런 투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임금 고용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사태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이 아니라 청년세대 내의 엄청난 격차와 갈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역사적 경험이나 임금 격차 수준으로 봐도, 청년세대는 점점 더 집단적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은 기업별 임금, 고용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집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노조의 가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임금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전국, 산별교섭에 다시 도전해야 하고, 좋은 일자리는 늘리고, 나쁜 일자리는 줄이기 위한 산업구조, 임금체계, 교육체계 등에도 진취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이번에 충격적인 조사를 접한 공공운수노조는 더더욱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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