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2.10

플랫폼노동의 실태와 노동자운동의 대응 방향

수열(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시간당 3만원 이상도 가능’

 
쿠팡이 플렉서 모집 초기에 내건 문구다. 플렉서는 쿠팡이 시행하고 있는 일반인 배송서비스 ‘쿠팡플렉스’의 배송 인력을 일컫는다. 2018년 8월에 시작한 쿠팡플렉스는 쿠팡에 고용된 배달원인 쿠팡맨이 배송하는 물품 중 일부를 일일 단위로 계약한 일반인이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배달하는 서비스다. 음식배달 서비스와 함께 대표적인 플랫폼노동이다.
 
플랫폼노동이 무엇인지 표준적인 정의는 아직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9)에서는 플랫폼노동을 ‘웹 사이트나 모바일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일감을 얻어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의 수행에 대해서 보수를 지급받는 것’으로 정의한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중개를 통해 일자리(job)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task) 단위의 계약을 맺어 수입을 얻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음식배달을 생각해보자. 요새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음식점에 배달원으로 고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위탁사업자로서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같은 주문·배달중개 앱을 통해 일감을 받아 배달일을 수행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쿠팡플렉스 실태

 
 
쿠팡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초 기준으로 플렉서 누적 등록자는 30만 명에 달하며, 하루 평균 4천 명 정도가 실제 배송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쿠팡에 고용된 쿠팡맨의 수가 4천을 조금 넘는다.
 
쿠팡에 플렉서로 등록했다고 바로 일거리를 받는 것은 아니다. 플렉서들은 쿠팡의 캠프(물류센터)별 단체채팅방에서 배송일 2일 전에 공지되는 모집 공고에 지원하고, 물량을 배정받아야 일을 할 수 있다. 캠프별로 수백에서 수천 명이 일거리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2019년 8월 기준으로 쿠팡의 47개 캠프 단체채팅방 참여 인원은 9만 명을 넘는다.
 
물량을 배정받은 플렉서들의 배달 업무는 쿠팡맨과 거의 동일하다. 자기 차량을 캠프에 가져오고(입차), 배정된 물량을 앱에 등록하고(스캔), 자신의 차량에 싣고(상차), 앱에 표시된 위치를 보고 배달(배송)한다. 자신의 차량을 캠프에 가져와야 하고, 배달 완료 후에는 바로 귀가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플렉서들은 쿠팡맨과는 달리 배송업무를 위탁받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며,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이 수수료는 배송지역·시간·물량·플렉서 수에 따라 변한다. 같은 지역과 시간대라고 하더라도 물량이 늘고, 플렉서가 많아지면 건당 수수료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플렉스 서비스 초기 2천~3천 원을 호가하던 건당 수수료는 최근 주간배송 평균 700원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더구나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 외에 캠프 입차 대기나 상차 등 기타 시간을 더하면 노동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기름값이나 주차비, 지역에 따라 간혹 발생하는 통행료까지 제하고 나면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경제학과 제럴드 프리드먼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사용자는 전통적인 고용을 긱(gig) 근로로 대체함으로써 생산과 고용은 물론 임금까지 수요의 변화에 따라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쿠팡플렉스 노동을 직접 체험 취재한 제정남 매일노동뉴스 기자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556) [출처: 매일노동뉴스]

 

플랫폼노동의 확산

 
 
플랫폼노동은 배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ILO(2018)는 업무의 수행방식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을 지역 기반(local-based) 플랫폼과 웹 기반(web-based) 플랫폼으로 구분한다.
 
지역 기반 플랫폼은 모바일·온라인 주문으로 업무가 할당되면 해당 플랫폼이 운영되는 지역(오프라인)에서 서비스가 이뤄지는 경우다. 배달(쿠팡플렉스, 배달의민족), 운송(타다, 풀러스), 심부름(띵동), 가사서비스(대리주부, 미소) 등이 대표적이다.
 
웹 기반 플랫폼은 일거리 배당에서부터 업무 수행이 모두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다. 프리랜서·전문가 매칭(크몽, 위시캣), 데이터 입력 등의 마이크로 업무 수행(크라우드웍스, 플리토) 등이 해당된다. 간단한 설문조사나 이미지에 태그를 다는 것과 같은 매우 단순한 업무에서부터 디자인이나 번역, IT 개발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까지 매우 다양하게 걸쳐 있다.
 
현재 한국의 플랫폼노동자는 50만 명 내외로 추정하는데,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플랫폼노동에 대한 대부분의 조사가 지역 기반 플랫폼노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웹 기반 플랫폼노동자 상당수가 포함되지 못한다. 또, 초단기 일거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플랫폼노동의 특성 상 종사자 분류 기준이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평소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부가 수입을 위해 주말에 한두 번 쿠팡플렉스 일을 하는 사람을 플랫폼노동자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는 없다

 
 
대부분 고용계약이 아닌 업무 위탁계약을 맺는 플랫폼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최근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플랫폼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음식배달 라이더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판단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대법원은 △업무 시간·장소 지정, △고정급여의 지급,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 신고 유무 등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며 음식배달 라이더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여전히 표준적인 고용관계의 특징에 근거해 근로자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법파견 논란이 일었던 ‘타다’의 경우 해당 플랫폼이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청은 타다 드라이버를 프리랜서로 규정했다.)
 
더불어 최근 논란이 일자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지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계약 내용을 수시로 바꾸고, 직접적인 출퇴근 관리를 생략하는 등의 꼼수를 동원해 지휘·감독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타다는 드라이버 교육자료를 파견업체에서 제작한 것처럼 속이고, ‘교육 수행이 직접적인 업무 지시·교육이 되지 않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파견업체와 맺기도 했다.
 
노동자가 없으니 사용자도 없다. 플랫폼은 ‘중개’를 하고 있을 뿐이라 주장한다. 업체에 고용되건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건 승객을 운송하고, 물건을 배달하는 노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는 사라지고, 이윤활동에서 사용자가 마땅히 져야 할 모든 책임은 플랫폼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배달 플랫폼노동자들의 커뮤니티를 보면 앱 차단과 관련한 질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어느 날 갑자기 앱 접속이 차단되어 일감을 받을 수 없다, 회사에 물어봐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 차단이 풀릴지도 알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배달뿐 아니라 대부분의 플랫폼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객과 마찰이 생기거나, 고객평점이 낮거나, 플랫폼의 업무지시를 잘 따르지 않으면 그저 해당 노동자의 앱 접속을 차단하면 그만이다. 클릭 한 번으로 계약해지(해고)가 이뤄진다. 위탁계약을 해지하는 별도의 절차 따위는 필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2019)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다른 일을 겸업하지 않고 플랫폼노동을 유일한 직업으로 갖고 있는 비율이 64.2%, 플랫폼노동이 소득의 전부인 비율이 62.7%, 개인총소득에서 플랫폼노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74.0%로 나타났다. 다수의 사람들이 플랫폼노동으로 생계를 일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플랫폼노동은 대개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은 각 건당 일감을 두고 노동자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건당 수수료는 성과급의 극단적인 형태로 경쟁을 강제하는 임금체계다.) 결국 쿠팡플렉서의 건당 배송 단가가 하락한 것처럼 플랫폼노동의 보수는 밑바닥 수준으로 수렴하고, 노동자는 고객평점이나 플랫폼의 지시에 더욱 취약해진다.
 
ILO(2016)에 따르면 아마존 메커니컬터크에서 일하는 이들의 시간당 소득 중위수는 미국 거주자가 4.65달러, 인도는 1.65달러다. 지역 기반 플랫폼과 달리 웹 기반 플랫폼은 장소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 결국 자국의 노동규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제1세계 기업이 싼 값에 제3세계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업무 일부를 인건비가 낮은 해외로 이전시키는 것)이 이뤄진다.
 

 

시급한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출처: 네이버 영화]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의 아내 ‘애비’는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애비가 돌보는 노인 중에는 광산노조 파업의 주역이었던 이가 있는데, 어느 날 그녀가 애비에게 묻는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아니야?” 애비는 건당으로 돈을 받기 때문에 시간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며칠 뒤 늦은 밤, 그녀의 집에서 긴급호출이 왔다. 애비가 달려가 보니 그녀는 방에 불도 켜지 못하고, 오줌을 지린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혼자서는 걸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늙은 노동운동가의 모습은 오랜 세월,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한 최소한의 노동기준이 남아는 있으되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플랫폼 산업의 성장에 따라 점차 기존 노동법 적용이 어려운 사례가 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근로계약 관계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사회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자기 노동력을 매우 헐값에 처분할 자유만을 누리고 있다. 이는 배달이나 저숙련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체 노동의 문제로 고민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플랫폼노동의 노동권 보장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플랫폼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다. ILO와 더불어 OECD조차 플랫폼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상의 수단으로 노조 가입과 단체교섭을 제시하고 있다. 초단기 계약과 개별화된 자영업자로 조직화가 쉽지 않지만 이미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그리고 국내 몇몇 사례를 통해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최근 근로자성 인정을 받은 음식배달 라이더 사례처럼 전속성이 높은 단위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퇴직금 소송이나 산재보험 적용 신청 등을 조직화 매개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법·제도적 정비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올해부터 우버나 리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AB5 법령(Assembly Bill NO.5)이 시행됐다. 이 법에 따르면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무제공자는 우선 근로자로 추정되고, 특정한 기준을 충족할 때에만 독립계약자로 분류되며, 이 기준에 대한 입증 책임은 기업이 지게 된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인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 또,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성 인정을 위해 그간 특수고용 단위를 중심으로 제기해 온 노조법 2조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연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미 플랫폼노동의 다양한 조직화 경험을 축적한 해외 노동조합의 사례를 공유하는 한편, 다양한 법·제도를 통해 플랫폼 산업을 규율하고 있는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규제 철폐 담론에 사로잡힌 국내 논의 지형을 바꾸는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다. 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플랫폼노동이 새로운 형태의 오프쇼어링이 되고 있다면 이는 일국적 차원에서는 결코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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