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3.13

코로나 패닉에 이은 경제 패닉, 원인과 전망

사회진보연대
코로나19 사태가 보건‧방역 문제에서 경제 문제로 확대됐다. 국경폐쇄로 공급사슬이 끊긴 공장들이 가동과 휴업을 반복하고 있고, 방역을 위한 주민 이동 제한으로 민간소비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세계경제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2007-09년 세계금융위기 상황을 뛰어넘는 세계적 주가 폭락이다. 다우존스 지수는 2월 20일 이후 20여일 만에 20%가 하락했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지난 한 달 동안 20%가 추락해 현재 3월 13일 현재 1800선이 무너졌고, 1700선 마저 뚫릴 지경이다. 생산, 소비, 금융 모든 영역에서 말 그대로 패닉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세계경제가 극도로 위태로운 이유가 무엇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위협적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경제 상태는 보건‧방역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2천 년대 발생한 다른 전염병과 비교해 봐도 현재 상태가 분명히 유별나 보인다. 코로나 사태가 세계경제 시스템의 어떤 ‘기저질환’을 증폭시켰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경제위기는 보건위기만큼이나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바이러스가 건강이 나쁜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면, 경제위기는 소득과 자산이 낮은 계층에게 더 치명적이다. 여기저기서 “병으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탄식이 나온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사회운동포커스>에서 보건 측면에서 코로나 사태를 분석했다. 이번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코로나 사태를 분석해 본다.
 

○ 세계경제의 기저질환

 

세계경제는 이미 침체가 예상됐었다. 세계경제가 앓고 있었던 기저질환 탓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경제침체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증폭시켰다. 세계의 경제적 기저질환은 크게 보면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이윤율 하락으로 나타나는 생산성 둔화였다. 여러 경제학자가 지적했듯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생산성(노동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상승은 2010년대 심각하게 둔화한 상태였다. 경제성장의 펀더멘탈이 취약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적자재정과 수량완화(양적완화)로 인한 착시효과였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쏟아부은 돈으로 미국에서는 소수 ICT기업이 주식시장 붐을 일으켰고,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의 엄청난 손실을 국영은행의 대출과 무역흑자로 덮었으며, 일본에서는 200%가 넘는 국가채무와 4배 넘게 증가한 중앙은행 자산으로 민간 소비와 저축을 촉진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덮치자 이런 성장의 신기루가 바로 걷혔다. 미국에서는 주식시장이 바로 폭락했고, 중국의 거품 성장률이 사라졌으며, 일본의 민간소비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갔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 재정 여력이 취약해지자, 정부에 의존하던 경제주체들의 불안이 폭발한 것이다.
 
둘째, 무역전쟁으로 표현되는 반세계화 포퓰리즘이었다. 2007~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자국 위기의 원인을 세계화나 외국인에게서 찾는 정치인들이 급증했다. 미국의 트럼프, 영국의 보리스 존슨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이 집권과 동시에 추진한 정책은 당연히 기존의 국제적 협력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무력화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그런데 이런 반세계화 흐름은 자본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2천 년대 성장의 주역이었던 세계화는 시장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금융의 세계화와 정치의 반세계화는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는 반세계화 포퓰리즘 정치가 얼마나 세계경제에 위협이 되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트럼프가 유럽발 입국금지를 선포하자, 미국과 유럽 경제가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유럽에서의 아시아인 혐오는 중국 침체가 유럽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바이러스의 세계전 확산에 대응하지 못한 각국은 국경부터 폐쇄하는 데 주력했지만, 방역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그 탓에 더 심각해졌다.
 

○ 예상되는 위기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적 패닉은 향후 다음 지점들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기업부채 위기다. 비은행 금융기관과 비금융 기업들의 부채 부실은 이미 역사적 고점에 와있다. 역사적 저금리를 바탕으로 기업들은 고위험 부채를 마구 끌어다 썼다. 이런 고위험 기업부채의 부도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을 통해 비은행금융기관, 심지어 은행까지 위기를 전염시킬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기업 재무구조 악화가 부실 채권의 파산과 연이은 CLO연쇄 부도를 일으킬 수도 있다.
 
심지어 최근의 유가 폭락은 이런 우려를 키웠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갈등하는 가운데 미국 셰일업체가 불똥을 맞았다. 1,500여 미국 셰일오일 업체는 지난 2년여간 이어진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와중에도, 저금리 덕에 이자 비용을 낮추며 외형 확장에 치중했다. 투기 등급 수준의 부채비율이다. 셰일업체의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뉴욕 증시도 급락했다. 유가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기업부채는 새로운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세계경제위기의 또 다른 뇌관은 중국이다. 현재 중국의 총생산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에서 16%로 증가했고, 해외여행을 하는 중국인도 한 해 2천만 명에서 1억5천만 명으로 늘었다.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의 중간재 공급의 핵심이다. 전 세계 제조업이 중국의 부품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일본, 싱가포르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경제위기는 이미 일국의 위기를 넘어선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중국에는 거대한 파급력이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위험으로 3대 ‘회색 코뿔소’가 거론됐었다. 기업부채, 부동산 거품, 그림자 금융이 그것이다. 이런 위험요인이 격화되어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조적 개혁들을 최근 몇 년간 시행했다. 그러나 경제성장 둔화에 미중 무역갈등이라는 외부적 요인까지 겹쳐 정체된 상황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치게 됐다. 코로나로 민간소비가 급감하고, 기업부채는 증가했으며, 부동산 거품과 그림자 금융의 파산 가능성은 더 커졌다.
 
G7국가 중 국가채무 비중이 가장 높은 두 나라인 일본과 이탈리아도 세계경제의 위협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채무가 200%가 넘는 나라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양적완화도 가장 공격적이었다. 일본은 금융기관들이 CLO를 대량 보유하고 있고, 일본 중앙은행이 일본 기업 주식을 28조엔 넘게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 증시가 빠른 속도로 폭락하고 있다. 더불어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입을 피해 역시 막대하다. 일본 국가채무의 상당수를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간이 정부 채무를 떠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탈리아는 유럽 주요국 중 유일하게 2007~09년 금융위기 이전 GDP 수준으로 못 돌아가고 있는 나라다. 심지어 국가부채가 약 140%에 이른다. 관광산업이 전체 GDP의 13%가 넘을 정도로 중요한데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치 풍토는 코로나 및 경제위기 대응에 EU와 갈등이 발생할 경우 곧바로 이탈렉시트 여론이 조성될 위험도 크다. 이탈리아발 유럽연합 위기가 있을 수 있다.
 

○ 더 위험해진 세계, 노동자운동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에게 더욱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아마 세계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 속에서 허덕거린 세계 자본주의를 다시 위기로 빠트리는 방아쇠가 될지도 모른다. 어디서 문제가 크게 터질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지만,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파괴되며 세계경제 전반이 침체국면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운동은 하반기 경제위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태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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