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3.23

후안무치한 민주주의의 파괴자들

더불어시민당 창당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코로나 사태로 한국사회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도 집권세력의 관심은 오로지 총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18일 비례선거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시민을 위하여’) 합류를 결정했고, 곧바로 일부 의원들의 당적 이동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시민당은 조국 수호 단체 <개싸움국민운동본부>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민주당은 위성정당 논란을 희석하기 위해 <가자평화인권당>, <가자환경당> 같은 황당무계한 정당들과 공동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평화인권당 대표는 환단고기 부류의 사이비 역사학을 주창하는 사람이고, 환경당은 한 달 전 급조된 정당으로 환경운동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보건 위기와 외환위기 이상의 경제위기와 밀어닥치는 와중에 정치판에서는 코미디만도 못한 저질 정치공작이 이렇게 진행 중이다.
 

이승만 시대가 생각나는 민주당의 작태

 
오늘날 민주당 정치는 역설적이지만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와 닮아있다. 이승만은 현대정치의 요체인 의회를 혐오하며 하야하는 그날까지 선출된 군주로 남길 바랐는데, 그는 처음부터 정당 대신 대통령 추대 조직으로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만들었고, 민족청년단(족청), 대한청년단 같은 극우 단체들을 조정해 여러 차례 의회를 기만했으며, 심지어 자유당을 만들 때조차 관제 정당으로써 출발해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 개헌에 정당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 현대화가 의회와 정당의 과소 발전 속에서 이뤄진 것은 그의 이런 정치 행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승만 이후 6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정치가 그때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자, 한번 보자. 조국 지지 서초동 집회를 주도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는 이름부터 활동까지 이승만 시기의 반공 친정부 단체로 활동하던 족청과 흡사하다. 개국본은 무조건적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만들었고, 이름도 적폐와 흙탕물 싸움(개싸움)은 자신들이 할 테니 대통령은 “꽃길”만 가라는 의미였다. 족청은 미군정의 전폭적 지원으로 만들어져 좌익 소탕과 이승만에 대한 충성을 표방한 조직이었다. 심지어 족청과 개국본은 정당에 참여하는 과정도 비슷한데, 족청은 이승만 요구로 조직을 해산하면서 원외 자유당으로 탈바꿈한 뒤 후에 원내 자유당과 합당했고, 개국본은 집권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변칙으로 이용하기로 하자 비례용 위성정당을 창당해 선거 후 민주당과 합당하려 하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2017년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고 자처하는 세력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치를 퇴보시키는 데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일까?
 

뻔뻔한 변명과 거짓말

 
미래한국당 창당 후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 합의된 룰을 어기는 반칙으로 선거제도 개편 취지를 무력화한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반칙으로 반칙을 응징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더불어시민당 창당이 “본래 선거법 취지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는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정당이 정당명부 투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으로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는 선거제도 개편 이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원칙을 지키려 했으나 미래통합당이 먼저 꼼수를 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편 취지를 무엇이라 생각했는가. 비례위성정당 창당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 2월 26일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대표 특보단장, 김종민, 홍영표 의원이 참여한 회동에서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 그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대화가 오갔다. 애초 민주당에게는 공수처법 통과가 선거제도 개편 취지였던 것이다.
 
미래한국당 창당이 “꼼수”라면 그 책임 역시 근본적으로 민주당에 있다. 선거법을 여야합의가 아닌 다수결로, 그것도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킴으로써 미래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명분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실제 야당은 특정 정당에게 유리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며, 선거법이 개정되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계속 경고했다.
 

반보수전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비극적 결말

 
이 과정에서 소위 “진보정당”들과 시민운동진영은 낯부끄러운 행태를 보였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내부 논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정치개혁연합>을 추진했는데, 녹색당은 이후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했으나 민주당에 거절당했다. 민중당은 민주당이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힌 후에도 열어두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처음부터 비례위성정당 불참 의사를 밝혔으므로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으로 의석이 대폭 줄어드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는데,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의 표를 뺏을 수 있다는 식으로 민주당을 압박했으나 결국 민주당은 정의당을 무시하고 강행했다. 그 후 심상정 대표는 민주당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과 촛불개혁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본다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도 정의당에 전략투표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민주당에 종속된 상황을 실토했다. “민주당이 1당을 내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라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정의당에 적극적으로 투표해달라고 읍소했는데,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독자적 정체성을 보여주기보다 민주당 세력에 의탁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추진했던 녹색당, 민중당과 동일하다. 지난시기와 같이 자신들이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거간꾼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민운동진영이 <정치개혁연합>의 실패로 체면을 구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골적 친문 세력인 <시민을 위하여>를 매개로 민주당 단독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민주당, 그 과정에서 민주당 혹은 민주당 지지자에게 읍소하는 행태를 보인 “진보정당”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로 민주당은 자당의 권력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명분도 내팽개칠 정도로까지 타락했으며, 두 번째로 10여 년 동안 노동자사회운동을 왜곡했던 반보수전선은 시민운동진영과 소위 “진보정당”들이 민주당에 완전히 종속/배제되는 결말을 낳았다.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라는 전망을 가지고 출발했던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이 자유주의에도 미달하는 민주당에 종속된 것은, 노동자사회운동이 처한 위기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정치의 위기, 총체적으로 반성하고 재출발해야

 
이번 총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책·비전에 대한 논쟁이 실종되었다. 민주당과 친문세력이 설정한 민주당-개혁세력과 미래통합당-반개혁세력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모든 쟁점을 압도하고 있다.
 
현시기 정치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있다. 경제정책, 대외정책, 정치개혁에서 실패할 때마다 다른 쟁점을 끌고 와서 덮고, 극단적 편 가르기 전략으로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거제도 개편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창당까지의 과정에서 자신의 모순과 위선이 드러나자 “탄핵 위기” 이슈로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정당화하고 있다.
 
두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당은 개혁, 진보와 같은 가치와 하등 관계없는 저급한 포퓰리즘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이 첫 번째이고, 진보정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유한국당 세력의 존재나 선거제도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대안적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민주당 중심의 반보수전선에 의탁해 의회 내 영향력을 키우는 데에만 몰두한 “진보정당”들 스스로라는 것이 두 번째다. 진보정당 운동에도 전면적 반성과 재출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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