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4.14

민주노총은 한국의 '대표노조'답게 행동해야 한다!

4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 대한 제언

사회진보연대
 
 
코로나19 사태 속에 민주노총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가 코로나19 전후로 나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재난이 진행 중인데도 말이다. 재난의 최고 난제는 실업 대책과 저소득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이다. 작년 말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겠다고 밝힌 민주노총 현 집행부 앞에 말 그대로 “모든 노동자의” 과제가 제출됐다. 모든 노동자의 조직, 즉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대표노조’로서 민주노총이란 노동자 모두를 포괄하는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자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두 달이 넘도록 요구안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상황 인식과 대응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위기는 임기응변식 사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시간을 허비할수록 더 많은 노동자가 벼랑으로 떨어질 것이다. 4월 16일 개최되는 총연맹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코로나19 대응을 결의해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민주노총의 코로나19 대응 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몇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대표노총답지 않은 요구와 행동들

 
민주노총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3월 10일 코로나19 특별요구안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 자리에서 전국민 재난생계소득 100만원 지급이 제안됐다. 자그마치 50조 원의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는 요구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요구는 타당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된 적도 없었다. 김경수지사가 3월 8일에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제안한 이틀 뒤 시류에 편승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시국에 대한민국의 제1노총, 노동자계급의 대표노총이 해프닝처럼 요구를 만들어 발표한 것이다.
 
재난생계소득은 요구를 만드는 방법도 틀렸고, 요구의 합리성도 없다. 노총이 새로운 요구를 만드는 시작은 노동자가 처한 상태를 신속하고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또한 요구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지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3월 10일 요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당장 민주노총 조합원만 봐도 오랜 기간 생존위기에 처할 조합원에게는 100만 원이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민주노총이 2018년에 제시한 1인 가구 표준생계비가 월 300만 원이었다. 과연 이들에게 한 번 100만 원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이겠는가? 반대로 민주노총 조합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대기업, 공공부문 조합원의 가계(상위 20%)는 월 저축액이 200만 원 이상이다. 이들에게 100만 원은 또 어떤 의미이겠는가? 민주노총은 재난생계소득이 모든 노동자는 아니더라도 조합원에게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사해봤어야 한다.
 
이는 책임감 있는 다른 나라 노총이 이 시국에 대처하는 방법과도 비교가 된다. 예로 이탈리아노총은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자 곧바로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요구를 수합해 사업장 감염 확산 대책과 긴급 고용생계대책을 마련했고,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코로나19가 이탈리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후에 경제위기 장기화를 예비한 거시경제정책 개입 방안을 제안했다. 이탈리아노총은 이런 기민한 대응과 거시적 대응을 통해 현재까지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표노총’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급박한 시기에 기민하게 대응할 줄 알고, 또 자신의 요구에 실린 사회적 무게를 알고, 그만큼 신중하고 과학적 분석으로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 말이다. 단지 숫자로 제1노총이란 타이틀만 다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대표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 준비되는 정책인가?

 
민주노총 요구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총연맹 집행부가 조합원의 단결로부터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코로나19 대응 특별위원회를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주호 정책실장은 한겨레 기고문을 통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정작 민주노총은 어떤 사회적 대책을 목표로 조합원들이 어떻게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지 토론하고 있지 못하다. 조합원을 대표해 책임 있는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대화 자리에 집행부가 단지 참여하겠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3월 13일 고용노동부 장관 협의, 3월 18일 청와대 주최 경제주체회의 참석, 3월 26일 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도 민주노총 위원장의 이야기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짧은 뉴스 몇 줄과 민주노총 보도자료만 남았을 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한 이유다. 위원장의 말에 조합원의 의지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 누구도 민주노총 주장이 백만 조합원의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민주노총이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위기에 대응하려면 당연히 여러 수준의 사회적 교섭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수많은 노정, 노사정 교섭에서 배웠듯 중요한 것은 교섭이나 대화 그 자체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어떤 요구를, 조합원의 어떤 의지로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교섭과 대화에만 매달리면 결국 남는 것은 ‘들러리’였다는 좌절감뿐일 것이다.
 
 

적합한 요구를, 제때에, 그리고 조합원의 의지를 실어 제시해야 한다

 
제1노총으로서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사태 앞에 책임이 막중하다.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진지하게 요구안을 마련해야 하며,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4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다음 세 가지를 고민해봤으면 한다.
 
첫째, 제대로 된 요구를 만들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여러 논의 끝에 최근 그나마 합리성을 갖춘 요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고금지 및 총고용보장, 전국민 고용보험, 공공의료 확대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요구들은 단지 정부가 결단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측의 책임도 동반되는 것들이다.
 
예로 총고용의 대상이 조합원이 아니라 2,800만 취업자 모두라고 한다면, 아무리 해고를 금지하더라도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 동반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최대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노조들이 연대고용 정책으로 고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기존 같은 임금 극대화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전국민 고용보험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정부가 비용을 책임진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대기업, 공공부분의 사측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투쟁으로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의 지속성을 고려할 때 노동자의 보험료 인상도 필요할 수 있다.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금융지원을 하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이 요구는 미국의 <코로나19 지원, 구제, 경제안전법(CARES)>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미국에서 이런 요구가 가능했던 것은 재정지원이 의회를 통과한 법률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조원+α 금융지원 대책은 기존 금융 관계법의 제약 속에 있어 이런 조건부 금융지원에 한계가 있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백만 조합원과 함께 국회를 상대로 한국판 코로나 특별법을 만들라는 정치적 투쟁으로 쟁취될 수 있는 것이란 의미다.
 
둘째, 코로나19사태 이후를 전망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자본주의가 가진 기저질환이 드러났다. 생산성 상승 둔화, 경제적 불평등 확대, 세계 강국들의 패권 갈등, 세계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정부부채와 기업부채 등등 이 모든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악화됐다. 정부와 기업 모두 빚더미에 깔려 코로나19가 진정되어도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경제학자들도 답을 찾고 있지 못하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이전과 다를 것이다. 민주노총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총연맹이 산별노조와 지역본부들의 합의를 끌어내고, 간부와 조합원의 토론을 조직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민주노총 요구는 조합원의 합의 수준으로 그 진정성이 결정된다. 그리고 조합원의 합의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간부들 간의 토론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도부가 아무리 멋진 슬로건을 내건다고 하더라도, 조합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힘이 되지 않는다. 노정이든, 사회적대화이든 기층 조합원까지 모두 토론과 논쟁을 거쳐 만든 안이 있어야 교섭이 되는 것이다. 특히나 코로나19 사태는 이전의 방법으로 관성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심각한 사태이다. 민주노총의 혁신이 전제되지 않는 대응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더 넓은 토론을 통해 혁신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 이런 계기를 정책 대의원대회 같은 대규모 토론을 통해 시작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중앙집행위원회 동지들에게도 당부한다. 민주노총은 요구의 주체이자, 동시에 이 사회를 책임지는 주체이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단지 거리의 시위나 파업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권리를 가지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도 포함한다. 노동조합은 거시 경제의 핵심 요소인 임금과 고용에 영향을 미치고, 각종 사회보험의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하며, 학교와 언론이 가르쳐주지 않는 계급적 지식을 교육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다. 따라서 그만큼 책임이 있으며, 코로나19 사태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민주노총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상시적 의결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가 당연히 그 최전선에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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