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11.09

누가 동학개미를 찬양하는가

2030세대에게 주식 투자를 권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사회진보연대
 
 
[출처: 경인일보]
 
 
‘동학개미’들이 다시 한 번 국내 주식시장을 뒷받침했다. 지난 3월 코로나19의 여파로 급격하게 하락한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에 힘입어 V자로 반등했다.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하던 국내 주식은 10월 들어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하락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돈을 풀어 주식을 사들였다.
 
올해처럼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들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도,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은 순매수로 특징지어졌던 국내 주식시장은 2020년 올해 완전히 반전되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순매도하고,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올해 국내 주식시장을 든든하게 뒷받침한 개인투자자들은 처음 주식계좌를 만든 2030세대가 대부분이라 한다. 이들의 투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돌아오리라는 낙관적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게다가 투자원금이 증권사에서 빌린 돈, 카드 대출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를 심화시키는 요소다.
 
 

주식 투자는 기회를 빼앗긴 2030세대에게 마지막 남은 생존전략인가?

 
올해 주식 투자를 시작한 2030세대는 주식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현명한 투자법이라고 말한다. 장기간 이어질 저금리 기조 하에서 월급과 저축으로는 자산축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수도권에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30세대에게 주식투자는 ‘마지막 생존전략’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그러나 “2030세대가 기회를 빼앗긴 세대”라는 주장은 2030세대에게 경제적 성취를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게끔 종용하는 효과만 낳을 뿐이다. 2030세대가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세대로 보는 주장들은 그 기준을 현재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1960년대생 86세대에게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 생 이전과 이후의 모든 세대는 한국경제에서 10년에 한 번씩 발생한 경제위기의 피해를 입었기에, 2030세대만 아주 특별히 기회를 빼앗긴 세대라고 할 수 없다.
 
이철승은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2019)에서 1960년대생이 시대의 ‘운’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 1960년대생은 1990년대 월 평균 소득 145만원에서 시작하여 2010년대가 되면(50대) 315만원의 월평균 소득을 기록한다(물가상승률 보정). 다른 세대와의 비교를 위해 60년대생이 40대가 된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해보면, 1960년대생은 취업시점 대비 소득이 50~70% 상승했다. 이에 반해 1970년대생은 취업 시점 대비 40대 시점에 소득이 20~25% 상승한 데 그친다. 그 이후 세대들은 소득상승률이 한자리 수로 제한된다.
 
이렇게 세대별 소득상승률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60년대생은 한국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태어나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60년대생과 다른 세대의 소득상승률 차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금융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로 직접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이전 세대와 달리, 60년대생은 기업의 최하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여파를 피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세대인 70년대생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취업시기가 늦추어졌으며,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도 노동시장의 변화로 일부는 정규직으로 취직했지만 다른 일부는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 60년대생은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피한 동시에,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기근속을 누릴 수 있었다.
 
1980년대생 이후 출생한 현 2030세대의 소득상승률이 한자리수로 제한된 것은 2007~0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에서 허리역할을 하던 70년대생은 소득 상승이 지연됐고, 80년대생 이후는 취업이 늦어지는 동시에 취업 초기부터 소득상승이 제한되었다. 반면 1960년대생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소득이 상승했다.
 
최근 불평등에서의 주요한 이슈는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이다. 1960년대생은 자산에서도 시대적 ‘운’을 타고날 수 있었다. 60년대생은 1997~98년 외환위기 이후의 자산가치가 대폭락한 상황에서 부동산을 획득할 수 있었고,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붐과 2000년대 중반의 부동산 시장 폭발의 수혜를 입었다. 부동산 가격은 이미 오를대로 올랐기 때문에, 이후 세대들은 60년대생만큼의 자산에서의 성공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2020년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0년마다 1%씩 하락해서, 2020년대의 잠재성장률은 연 0~1%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한국경제의 성장기에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불공정의 결과라기보다는, 태어난 시기와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의 한국경제의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성 언론과 정치권은 2030세대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위험 선택을 강요한다. 객관적 상황의 변화를 무시한 채 급격한 경제적 성공을 바란다면, 2030세대는 위험성이 높은 투기적 행위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2030의 위험한 주식투자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금융화 과정과 민주당 정권

 
2030세대 초보 주식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2030세대의 대다수는 주식시장에 투자하게 된 이유로 ‘경제적 자유’를 지목한다. 주식투자를 통해 노동하지 않고도 인간답게 살겠다, 남에게 갑질 당하지 않고 살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2030세대가 불로소득으로 인식되던 주식 투자를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게 인식하게 된 것은 민주당이 주도한 한국 경제의 금융화를 배경으로 한다.
 
2030세대는 한국 경제가 급격하게 금융화한 시기에 성장했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 시기다.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벤처열풍을 조장했고, 벤처산업과 이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을 시행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식투자는 위기 극복과 새로운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뒤이은 노무현 정권은 2003년부터 ‘동북아 금융허브’를 내세우며, 금융화와 금융산업이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발전적 지향임을 제시했다.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주식 투자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계속되었는데, 간접투자자산운용법 시행(2004년), 운용사 직판 허용, MMF 미래가격제 실시(2006~2007년), 해외펀드 비과세혜택 도입(2007~2009년)이 그것이다.
 
이러한 금융화 기조는 이명박 정권 시기에 잠시 주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거대 금융기업과 투기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었고, 금융소비자 보호 등 금융과 관련한 각종 규제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때도 금융기업의 대형화와 국제적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는 자본시장법이 도입되는 등 한국경제의 금융화 기조가 완전히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서서히 금융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하며, 사모펀드를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문재인 정권은 다시 한 번 주식 투자와 사모펀드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2030세대의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주식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다 취소했고, 공매도 금지도 수용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뉴딜 성공을 위해서는 금융의 적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본인이 ‘뉴딜 펀드’의 브로커로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금융화는 민주당 정권 집권기 특히 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민주당 정권은 금융산업과 주식투자의 활성화야말로 한국 경제의 발전이며 한국의 미래상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금융자본과 금융의 이익은 곧 국민의 이익인 것처럼 여겨진다. 한국 경제의 금융화는 2030세대가 주식 투자가 생존 전략이며, 주식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이다.
 
 

한국의 금융적 종속과 그 계급적 효과

 
그런데 2030세대들이 주장하는, 주식투자를 통한 ‘경제적 자유’는 정말 2030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우선 대중적인 투자문화가 확산된 배경으로서 한국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과 그것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앞서,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금융세계화에 편입되었음을 짚었다. 외환위기는 국내 기업을 외국에 헐값에 팔아넘김으로써 극복 가능했다. 물론 한국의 기업을 사들인 미국계 초민족 법인기업은 생산기술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로부터 벗어나고, 동시에 해외투자의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해외 금융자본의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 되면서 실물경제에서는 노동자들이 위기비용을 분담해야 했다. 대량해고가 진행되었고, 유연화된 노동체계가 도입되었다. 기업의 체질도 변화했다. 국내 기업은 이후의 급격한 자본유출에 대비하여 현금보유를 늘리는 대신, 실물부문에서 설비투자를 줄였다. 신규 고용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현상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자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임금, 고용 등 실물경제의 성장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자본이 급격하게 유입되자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수도권에 부동산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박탈감을 심화시켰다.
 
무엇보다도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한국경제의 ‘금융적 종속’을 의미했다(윤종희, 「금융세계화의 비대칭적 구조와 ‘금융적 종속’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2019).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는데, 그 핵심은 증권시장의 개혁과 함께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것이었다. 미국계 초민족 법인기업과 비금융기업은 파산 위기에 처한 한국의 대기업을 헐값에 사들였다. 주요 기업과 은행의 지분도 해외로 넘어갔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생산된 부가 미국을 위시한 중심부 국가로 유출되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국가들은 탈산업화되었지만, 중심부 국가의 기업은 한국의 생산자본을 소유함으로써 한국에서 생산된 부의 일부를 영유했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는 2000년대부터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한국의 투자소득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금융적 경로를 통해 잉여가치의 상당부분이 해외투자가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GDP가 증가해도 그것이 국민들의 소득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금융의 자유화는 결코 한국인의 금융적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주요한 기업과 은행 지분의 많은 부분을 외국인이 소유하면서 한국경제는 갑작스런 자본유출에 대비해 준비자산을 축적해야 했고, 또 생산한 부의 일부를 금융수익의 형태로 해외투자자들에게 배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인의 일부는 해외투자자들을 흉내 내며 ‘주식투자의 자유’를 얻었지만 한국 증시에서는 늘 소수에 불과했다. 한국 증시의 다수를 차지한 해외투자자들이 금융수익을 영유함으로써 한국의 ‘금융적 종속’이 지속되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금융화에 대한 인식이 반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증시와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일컫는 ‘동학개미’, ‘서학개미’라는 말도 등장했다. 동학개미 또는 서학개미라는 이름은 동학의 농민군과 같은 ‘서민’들이 주식투자로 나라를 구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주식투자야말로 서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애국이라는 말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 개인직접투자로 대체되고, 이를 넘어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직접투자에까지 나서는 2020년 현재의 상황은 한국의 금융적 종속이 완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의 금융적 종속이 완화되기 위해서는 대외부채의 수익성보다 대외자산의 수익성이 상승해야 한다. 우선 한국에서 대외부채의 수익성이 대외자산의 수익성보다 높았던 이유는, 한국의 대외부채에서 외국인의 직접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 증시에서 내국인의 직접투자가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체하고, 또 그 대체한 영역에서의 수익성이 장기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면 ‘동학개미’의 투자는 한국의 금융적 종속을 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내국인의 투자가 단순히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것이어서,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 복귀했을 때 증시로부터 이탈한다거나, 내국인이 투자한 주식이 폭락하여 수익성이 전혀 없다면 ‘동학개미’의 투자는 금융적 종속을 완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싸게 사서 장기적으로 보유하겠다는 ‘동학개미’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투자자들의 전반적인 주식매수의 특징은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 순매수가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투자가 급증했는데, 그 규모는 주식 순매수 금액의 약 35%에 이른다. 신용융자투자는 결국 주식을 팔아 갚아야한다는 점에서 장기투자라고 볼 수 없다. 또한 개인 투자자들은 재무상태가 양호한 기업보다는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한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외국인이 판매한 주식을 정반대로 구입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안정적인 대기업도 포함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항공업, 에너지 업종, 여행・레저업 등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동학개미들의 투자가 수익성이 있으리라고 확답하기 어렵다.
 
한편 애플, 테슬라 등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는 ‘서학개미’는 한국 경제의 대외자산 수익성을 상승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외자산의 수익성이 낮은 것은 대외자산 구성에서 준비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준비자산은 급격한 해외자본의 유출에 대비해 미국 장, 단기 국채 등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증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규모는 국내 총통화의 20%에 달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아무리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외자산의 구성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바로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의 금융기관은 수익성이 높은 신흥시장에 끝없이, 계속해서 투자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를 가지고 있다. 바로 신흥경제가 쌓아둔 준비자산이다. 한국, 중국과 같은 신흥경제가 준비자산의 상당 부분을 안전한 미국의 증권에 투자한다. 신흥경제는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유휴자금을 미국의 금융시장에 예치하고, 미국의 금융기관은 이를 수익성 높은 신흥경제의 주식시장에 투자한다.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경제는 금융적 종속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학개미의 투자가 한국경제의 금융적 종속을 뒤집을 여지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금융적 종속의 상황이라도 지속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금융세계화에 편입되어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한국이 무역에서는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흑자마저 중단된다면 세계 시장에서의 한국 경제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완전히 극복하기도, 중국의 추격을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코로나19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동학개미’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개미들의 현대판 ‘동학운동’은 빚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경제생활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동학개미’라며 개인투자자들을 상찬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는 이유는, 주가폭락을 피함으로써 존속할 수 있는 국내의 금융가와 금융자본가 덕분일 것이다. 장기적 시야에서 투자한다면 언젠가는 이익을 보지 않겠냐며 주식투자를 권하는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은 금융자본의 스피커를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동학개미운동'은 도덕적 타락의 한 단면

 
실물경제와 금융, 특히 주식시장의 괴리가 큰 상황이 영원히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유럽이 2차 봉쇄에 들어갔고, 미중 무역갈등이 지속되면서 수출에 의존적인 한국의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올해는 한국 경제 사상 최초로 한계기업의 비중이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주가가 하락한다면 2030세대 전반이 큰 피해를 입게 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식투자는 2030세대 중에서도 소득 중상위층에 집중되어 있기에, 현재의 투자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개인적 배경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실패 이후 개인들은 빚을 갚는 동안 심각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될 수 있다.)
 
진짜 우려스러운 것은 ‘동학개미운동’의 후과다. 주가하락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이상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2030세대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식투자자처럼 생각하고, 금융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집단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은 주식투자자에게 불리한 정책을 집단적으로 바꾸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금융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금융을 통한 수익에 조세를 강화하려는 제도개혁을 시도해왔다. 그런데 홍남기 장관을 필두로 한 기재부가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을 물리는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내리려고 하자, 국내의 개인투자자들은 이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홍남기 장관의 사임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조직했다. 민주당은 동학개미들의 반발에 조응하며 대주주 요건을 가족 합산에서 개인보유분으로 완화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당정청협의에서 대주주 기준을 현행으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금융자본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보다 유리할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스스로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회세력화, 그 박탈감으로 정당화되는 무소불위의 자기 이익 추구, 이익추구 집단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 표심을 우려한 정치세력의 선택적 수용까지. 이 모든 것이 마르크스가 150여 년전에 간파했던 자본의 ‘금융화’에 조응하는 노동과 사회의 ‘도덕적 타락’의 한 단면이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진보정치와 언론은 더이상 2030세대를 기회를 빼앗긴 세대라고 호명해서는 안 된다. ‘빼앗겼다’는 인식은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채우겠다는 생각은 사회운동의 건전한 동력이 되기 어렵다.
 
다음으로, 진보정치와 노동자・사회운동은 주식투자에 대한 찬양을 비판해야 한다. 해외자본이 다시 국내 증시로 복귀한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의 증가는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해외자본 유출을 막는 현대판 금모으기 운동과 다를 바 없다. 나아가 개인투자자들이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연대임금, 연대고용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 2030세대에게 노동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30세대에게는 노동자운동이라는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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