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11.28

사회적 대화냐, 총파업이냐? 우문현답이 필요할 때

10기 민주노총 임원선거 분석 (2)

사회진보연대
 
 
노사정위, 경사노위 등으로 불린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 내에서 오랫동안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쟁점이었다. 네 선본 사이에서도 이를 두고 입장이 분명하게 갈린다.
 
기호 1번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적 참여’ 입장이다. 기호 2번은 사회적 교섭을 “일방적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원칙적 반대’ 의견이다. 기호 3번은 현재와 같이 기울어진 교섭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정부 태도에 따른 ‘조건부 반대’의 의견이다. 기호 4번은 다자간 대화에도 공세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쟁과 교섭의 병행이라는 ‘전술적 참여’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사회적 대화’는 김명환 전 집행부가 임기를 마치지 못한 원인이었다. 10기 임원선거 시기 분명하게 토론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사실 민주노총 25년의 역사에서 줄곧 논란이었다. 사회적 대화냐, 총파업이냐라는 쟁점 자체가 총연맹의 역할이 무엇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총연맹’이란 조직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대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견해가 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도 불린 민주노총 창립 시기의 노선(국민파)은 총연맹의 역할을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개혁에 두었다. 반면 현장파로 불린 경향은 총연맹의 역할을 정부와 총자본을 상대로 한 총파업 조직화에 두었다. 전자에게 사회적 대화 기구는 제도개혁을 향한 전략적 수단이다. 반면 후자에게 국민파의 입장은 총파업 투쟁전선을 교란하는 타협주의 노선이나 정권과 자본에 대한 투항으로 간주 된다. 이 두 경향은 매번 충돌해왔다. 특히 이 갈등은 민주당 집권 시기마다 첨예해지는데,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 기구에 무게를 싣기 때문이다. 경사노위와 코로나 사회적 대화 이슈가 지나간 상황이지만,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절반을 보내야 하는 10기 집행부에서도 이 쟁점은 계속될 것이다.
 
 

사회적 의제가 없는 사회적 대화, 총노동이 없는 총궐기‧총파업

 
기호 1번과 기호 2번은 전통적인 국민파와 현장파 노선의 연장선에서 공약을 제시한다. 두 후보조의 슬로건은 “과감한 변화, 사회적 교섭, 이기는 투쟁”과 “2021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민중총궐기”이다. 기호 3번과 4번은 이 두 후보조 사이 어디쯤 위치한다. 이 두 입장은 민주노총 역사에서 매번 그러했듯, 사회적 교섭과 총파업의 내용이 매우 모호하다.
 
먼저, 기호 1번은 사회적 대화의 경로와 방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도 불분명 하지만, 사회적 교섭으로 풀어보겠다는 사회대개혁이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재난소득, 전국민주거권, 전국민고용보험, 상병수당, 산업정책, 산별교섭 제도화, 비정규직 문제부터 심지어 불평등, 기후위기, 디지털 경제, 저성장 고령화, 교육불평등까지 세상에 알려진 모든 문제가 망라되어 있다. 이 정도면 사회적 교섭이 거의 청와대와 국회가 수십 년간 할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과대망상처럼 보인다.
 
국민파 노선이 추구해온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당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전략적으로 선정해, 노사정이 현실 가능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다. 고도성장 시기에는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하며 동시에 임금과 복지를 노동자 다수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타협의 골자였다. 20세기 후반 경제침체 시기에는 고용, 임금의 유연화와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 타협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호 1번은 사회적 대화(교섭)를 강조하지만, 이 시대의 전략 과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앙꼬 없는 붕어빵”이라 하겠다.
 
기호 2번 역시 총파업, 총궐기로 무엇을 어떻게 이뤄내겠다는 것인지가 없다. 공약집은 “한국사회 구조변혁 전략 특위”를 만들어서, 노동, 경제, 부동산, 의료, 복지, 기후 등의 요구를 수립한 후, 2022년 5월 대선을 앞두고 2021년 11월에 제2의 민중총궐기를 추진하겠다 밝혔다. 단어 그대로 이해하면 변혁을 위해 ‘봉기’하겠다는 건데, 몇만을 조직하는 데도 허덕이는 현재 민주노총 조직 상태야 차치하고서라도, 그 구조변혁이란 것이 한국사회 변화의 올바른 방향인지조차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에 합의가 없다.
 
단적인 예로 2번 선본에 참여하는 의견그룹들은 오랫동안 재벌의 ‘사내유보금 환수’를 중요한 구조변혁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 환수는 “몰수에 의한 국유화”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소련 사회주의의 국유화-계획경제는 결함이 큰 것으로 이미 역사에서 증명된 바다. ‘몰수 후 국유화’라는 역사적인 개념이 있음에도 사내유보금 환수라는 모호한 말로 조합원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옳지 않은 태도이다.
 
심지어 코로나 시기 요구도 문제가 많다. 이들은 항공산업 등에서 “재정투입을 통한 국유화”를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어떤 기업에 재정을 투입할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런 기준이 없다.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 또는 극한의 투쟁이 발발하는 사업장에 가서 재정투입과 국유화를 주장할 뿐이다. 이들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하면, 민주노총의 역할이란 투쟁을 통해 재정을 먼저 포획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행태는 집단 이기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회 전체의 위기를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은 기업별 노조의 요구를 ‘급진적 구조개혁’으로 포장하는 것은 다수 노동자를 희생시킬 수 있는 위험한 전략이다
 
기호 2번과 3번은 총연맹의 역할이 총파업 같은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기업별로 존재하는 단위 노조에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면 민주노총은 이 투쟁을 최대한 지원하는 “투쟁본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본부는 전체 노동자의 단 10%만 포괄할 뿐이다.
 
현재 정세에서 사회적 대화냐, 총파업이냐는 질문은 허무하다. 사회적 대화에서 다룰 민주노총의 전략적 의제가 없고, 총파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총노동의 요구도 모호하다. 사회적 대화든, 총파업이든, 껍데기만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나오는 꼴이다. 교섭참여에만 집착하는 ‘비현실적 희망’과 급진적 전투성에만 집착하는 ‘퇴행적 현실’ 모두 민주노총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노동시장의 제도이자, 계급적 투쟁의 구심인 총연맹

 
조합원에게 “사회적 대화와 총파업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부당하다. 어리석은 질문으로 어리석은 답을 끌어내는 꼴이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조직인가? 우리는 이것이 10기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토론해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총연맹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제도이자 계급적 투쟁을 조직하는 구심이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총연맹의 능력이 필요하다. 전체 노동자에게 필요한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총노동의 조직된 힘을 통해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도화된 교섭권이 없는 총연맹이 노사정 교섭을 이용하는 건 전략적 선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 또는 계급적 타협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계급적 타협은 고사하고, 같은 계급 내에서도 각자도생이 만연해 있는 것이 한국 사회 현실이다. 소수 재벌과 다수의 종속적 하청기업, 그리고 600만 명 넘는 자영업자가 뒤섞여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자본가 세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기대할 수 없는 재벌에게 사회적 합의의 리더십을 바랄 수는 없다.
 
노동자 계급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제1노총인 민주노총의 교섭과 투쟁은 개별 기업과 산업별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고 총파업 투쟁의 의제는 법안에 대한 반대가 전부였다. 총연맹이라는 제도가 정부와 자본을 상대하기 위해 어떤 수준의 조직적 힘을 갖춰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협상하는 투쟁과 교섭을 시도할 수 있는지 경험한 적도, 조직 내부에서 충분히 합의된 바도 없다.
 
투쟁과 사회적 교섭에 대한 취사 선택이 아니라, 2020년대 한국사회에서 총연맹의 역할을 토론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의 두 쟁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총연맹의 사회적 의제

현재 민주노총이 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한국적 궁핍화라 할 노동시장의 극단적 격차를 완화하는 일이다. 1987년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저임금 정상화와 전국적 조직 결성 등 한국경제에서 노조운동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던 최초의 계기였지만 이후 기업별 노조 중심의 임금 극대화 전략은 노동시장 격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재벌의 원하청 구조는 한국의 기업별 노조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공공부문의 고임금은 민주화 이후 포퓰리즘 선거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으로 제기할 의제는 이러한 노동운동의 역사적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상층 조직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전체 노동자 평균 이상의 혜택은 우연히 얻게 된 결과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적극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총연맹을 책임지는 집행부는 “임금과 고용의 평균”을 만드는 제도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양극화 된 노동시장은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평균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총노동이란 이름으로 노동자가 묶을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양극화된 노동조건을 더욱 심화시키는 임금극대화전략을 지양하고, 국민경제 전체의 지속성을 전제로 한 평균적인 제도를 노동조합의 최우선 요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연대임금-연대고용 전략으로 제출한 바 있다.(참고 자료 링크)
 
 

둘째, 기업별 노조를 규합할 수 있는 총연맹의 권한과 역할.

 

구래의 정파적 논쟁이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합원 내부의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와 총자본을 상대로 한 교섭과 투쟁전략은 어떤 내용과 방식을 가지는지, 이것이 기업별 단위사업장의 노사관계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조합원들과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 밝혀야 한다.
 
그런데 총연맹의 권한과 역할의 강화는 현재 기업별 노조 체계 중심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단위사업장 현장의 교섭과 투쟁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총연맹 고유의 교섭 등 권한에 대한 내부의 조직적 합의가 필요하다. 물론 산별노조의 권한마저 약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총연맹 교섭권이 현실에서 어떻게 강제될 수 있는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기업별 노사관계에 갇혀있는 민주노총의 현 교섭체계로는 조합원의 주체 형성 등 노조 운동의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민주노조 운동에서 절대적 기준이 된 기업별 교섭체계가 계급투쟁의 단지 하나의 단계와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업별 노조의 실리적 이해추구를 규율할 수 있는 총연맹, 산별노조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만들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기업별 노조의 현장투쟁과 교섭을 상층조직에서 어떻게 규율하고 보편적 교섭과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지 총연맹 내외부의 제도적 대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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