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12.02

‘낙태죄’ 없는 2021년을!

졸속·기만적인 문재인 정부 개정안 철회하고, ‘낙태죄’없는 2021년을 맞이하자!

사회진보연대
[출처: ⓒ김희지(사진제공 모낙폐)]
 
문재인 정부의 형법 일부개정 입법예고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의결되었다. ‘낙태죄’를 존치하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후퇴라고 비판하는 거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국회로 넘어갔다. 이에 앞서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 역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이라든지 상담 의무화 절차를 통한 허용 등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각계각층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법 개정은 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여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이 걸린,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권리와 연결된 이 법안이, 2020년 12월 31일을 목전에 두고서 밀린 숙제를 하듯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개정되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경고를 엄중히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낙태죄’ 개정 정부안의 문제점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다. 우선 형법상의 ‘낙태죄’를 존치시키고 모자보건법상에 존재했던 허용한계를 형법으로 옮겨(‘제27장 270조의2 낙태의 허용요건’ 신설), 사문화되어있던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2020년 12월 31일까지를 기한으로 입법부의 재량에 법 개정을 맡기고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4월 11일 헌재 결정 이후 관련 논의가 전무한 채 개정 시한에 임박하여 제출된 졸속적인 개정안이라는 문제가 크다. 세부적으로는 임신 주수에 따른 처벌 및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허용 등이 있다.
 

[세부쟁점1]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금지의 문제점

정부는 임신14주까지는 여성의 자기요청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그 이후에는 강간,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 사회경제적 어려움 등의 사유와 상담 등의 절차 기준을 새롭게 두어서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것으로 헌재 결정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음. 그러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되어야 하나, 다만 임신14주를 지나서 이루어지는 임신중지는 태아나 임신여성 모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적절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라고 한 헌재 의견은 임신 14주 이후의 임신중지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임신 주수에 적합한 의료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가장 쟁점이 되는 ‘후기 낙태’의 경우 무리한 임신중지가 아니라 분만의 영역, 입양제도와 연결된 문제로 봐야 함. 한편 최종 월경 시점에 대한 여성의 진술을 기준으로 임신 주수를 가늠하여 안전한 출산의 참고사항으로 삼는 것이 법적 처벌 기준이 될 수 없음, 대단히 엄격한 기준으로 처벌 요건을 정해야하는 법의 원칙에 비추었을 때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처벌을 차등 규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
 

[세부쟁점2] 사회경제적 사유, 상담 절차에 따른 허용/금지의 문제점

정부는 ‘위기임신예방(낙태예방)’ 취지에서 임신중지 문제를 접근. 임신(유지/중지)·출산 등이 권리가 아닌 ‘모성의 의무’로 법적 규정된 상황에서(모자보건법 제4조), 의무이행이 어려운 일부 비정상적인 갈등상황을 참작하겠다는 것. 이처럼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지 허용은 ‘좋은 엄마’의 기준을 국가와 사회가 시혜적인 방식으로 정한다는 점에서 문제. 비정규직, 비혼, 청소년, 장애여성에 대해서는 국가가 임신중지를 허락하겠다는 것은 모성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에 대한 위계적 규정이나 마찬가지. 또한 정부는 상담 절차를 두고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여성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회이며 자기결정권의 보장이라고 취지를 설명하나, 지정 상담기관에 방문하여 서면으로 허락을 구해야 하는 절차가 여성의 자기 결정에 대한 존중이라고 보기 어려움. 상담은 여성이 스스로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로 존재해야 함. 상담이 의무가 되면 또 다른 처벌 기준의 추가에 다름 아님.
 

[세부쟁점3] 유산유도제(미프진) 도입 관련

미프진(Mifegyne)으로 알려진 유산유도제(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는 수술이나 마취, 항생제가 필요 없고 인공임신중절수술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의료진의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임신 전 기간에 사용될 수 있음. 유산유도제는 2005년 WHO에 의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세계 67개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약물 도입의 직무를 유기해 왔음. 정부는 헌법재판소 결정 및 법 개정 이후로 도입을 미뤄옴. 문재인 정부는 이번 입법예고안으로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가 가능할 것으로 알리고 있으나, 미프진의 국내 시판과 관련하여 제약회사나 수입업체의 허가신청은 단 1건도 없으며 국내 임상시험 계획 역시 전무함. 즉 유산유도제 도입과 관련한 실질적 조치가 전혀 없고, 관련 계획 역시 법 개정 이후 수립될 것으로 여겨져, 약물적 임신중지는 실제로 수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이 되는 상황임.
 

처벌대신 권리를! ‘낙태죄’ 없는 2021년을!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관련 법 개정안을 규탄하며 ‘낙태죄 완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 정당, 종교계,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의 행동이 이어지는 중이며, 임신중지 비범죄화뿐만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권리에 대한 요구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 출산’ 사실을 알리며 뜻밖에 ‘낙태죄’를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임신·출산 등에 대한 여성의 고유한 역량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결정(임신중지)을 금지하고 한편으로는 자율적 모성 역시 선택할 수 없게 하면서, 오로지 결혼제도 하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것만을 허락하는 우리 사회의 여성 억압적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 사례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여성들은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졸속적이고도 기만적인 법안 철회 및 대안입법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낙태죄’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바로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지난 10월 ‘낙태죄’ 관련 문재인 정부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이후 두 달여 동안 이를 대체할만한 대안적인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이제 남은 국회 회기 동안 임신중지 여성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임신중지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낙태죄를 전면 폐지했는지? 임신중지를 권리로 명시했는지? 여성에 대한 의무 및 책임전가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임신·출산 등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는 조건을 책임지는지?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장벽은 없는지? 실질적인 제도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는지 등이 ‘낙태죄’ 폐지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질문들이 될 것이다.
 
여성이 노동의 현장과 삶의 전 과정에서 임신·출산 등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요구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절박한 목소리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역할이다. 처벌 대신 권리를! ‘낙태죄’없는 2021년을 함께 만들어가자.
 
[출처: ⓒ김희지(모낙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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