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3.08

3.8 여성의 날에 울려 퍼진 두 가지 요구

코로나19 위기와 여성, 그리고 낙태죄 폐지 이후 과제

사회진보연대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수많은 여성들이 광장에 모여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함께 투쟁을 결의하는 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3월 8일은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세계 각국이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온라인, 오프라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여성에게 더 가혹했던 코로나19 위기

 
2020년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남성이 8만2천 명 줄어들었는데, 여성은 13만7천 명으로 약 1.5배 더 줄었다.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교육서비스업, 기타 개인 서비스업에서 여성의 고용이 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중소영세사업장·간접고용·기간제·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경기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다른 어떤 경제위기보다도 여성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한 위협이었다.
 
이번 위기의 특수성은 감염병 방역에 따른 위기라는 점이다.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즉각적으로 위축된 것은 여성 집중 직종인 대면서비스업이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서비스 및 판매업종 여성노동자들은 휴업과 해고 압력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았으며, 대면 노동에 따라 감염병에 노출되어 자신이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밖에도 여성들은 어린이집·유치원의 휴원, 초·중·고등학교의 개학 연기와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확산 등에 따른 돌봄 공백으로 고통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연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여성의 자녀 돌봄 시간(하루 평균)은 코로나19 이전 5시간 3분에서 코로나19 이후 6시간 47분으로, 전업주부 여성의 경우 9시간 6분에서 12시간 38분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맞벌이 가구의 남성의 자녀 돌봄 시간이 3시간 8분에서 3시간 54분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돌봄 공백이 가정 내 돌봄의 일차적 담당자로 간주되는 여성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방역을 이유로 유독 아이들에 대한 공적 돌봄이 축소 및 중단된 것은 ‘아이들은 어머니가 돌보면 된다’는 인식 때문일 수 있다. 이는 아이와 그 가족이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여성의 가족 돌봄을 당연하고 쉬운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다. 돌봄 공백은 많은 여성에게 ‘패닉’ 수준의 혼란을 안겨주었다. 늘어난 자녀 돌봄 부담은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휴직뿐만 아니라 퇴직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늘어난 여성 비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육아·가사’를 했다는 통계가 이를 반영한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이러한 상황이 견딜만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같은 연구에서 전업주부의 76.4%가 “자녀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응답했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기치로 출범한 연대체 ‘3시스탑공동행동’은 올해 활동 5년 차를 맞았다. 3시스탑은 3월 5일에 ‘성평등 노동 없이 포스트코로나는 없다’는 제목의 온라인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기간산업과 소상공인 중심으로 피해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비필수·고대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고통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또한 코로나19 위기를 평가하며 유급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고, 공적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한 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3월 8일 오후 3시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시기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대책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저임금’, ‘고용불안’, ‘돌봄노동 저평가’, ‘가정 내 독박 돌봄’, ‘사회적 고립’, ‘취업절벽’ 등 코로나19 위기에 여성을 괴롭게 한 것들이 적힌 피켓을 부수며, ‘여성노동자의 가난과 불안을 멈춰라!’라고 요구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과제

 
한국에서 이번 3월 8일은 형법상의 ‘낙태죄’가 사라진 후 처음 맞는 여성의 날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를 행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2020년 12월 31일 자로 그 효력이 상실되었다. 형법 제정 68년 만에 ‘낙태죄’가 폐지된 것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고 용감하게 외치며 변화를 이끌어온 여성들의 투쟁의 성과였다.
 
그러나 한국의 ‘낙태죄’의 폐지에는 아쉬운 면도 여전히 있다. 기존 법안이 시효 만료되는 날까지도 대안적 입법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정부와 부처의 책임 방기이다.
 
여성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전한 임신중지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체계적인 정보 제공과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아 적정 시기에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찾기 어려우며, 고가의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사정에 맞는 의료기관을 찾기도 어렵다. 많은 여성이 여전히 인터넷상의 유통업체를 통해 성분이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유산유도제를 찾아 복용하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지만, 여성 문제에 무원칙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고유한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고 민감한 문제를 사법부의 결정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기 이전부터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적 목소리는 높았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본다는 핑계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태도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으며, ‘낙태죄’가 소멸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마련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보건복지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직후부터 임신중지 관련 의료인 인식 제고와 관련 교육 및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했다. 최소한의 지침과 가이드라인 없이 변화된 현실을 마주한 여성과 의료인들에게 부담과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전달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체계 마련,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 사회적 소수자의 접근성 제고를 위한 노력 역시 시급하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3월 8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임신중지를 공적의료서비스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모든 여성이 자기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임신중지 비범죄화는 최소한의 시작일 뿐이다. 성·재생산에 대한 권리는 부재한 채 임신·출산의 책임과 의무만을 여성과 개별 가족에게 전가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모두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법제도와 문화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던 ‘낙태’를 ‘임신중지 비범죄화’로 문제제기하며 변화를 만든 담대한 여성들의 힘으로 ‘낙태죄’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주제어
여성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