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5.11

'이대남' 논란: 어떤 페미니즘이 필요한가?

여성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페미니즘 전략의 실패를 동시에 성찰해야

사회진보연대
보궐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페미니즘 논쟁이 부상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서 패배했다고 주장해서다. 이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비판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고,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를, 김용민 의원이 군가산점제 부활을 주장하면서 확대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이준석의 선동은 젠더 갈등의 골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할당제와 반성폭력운동으로 표상되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민주당의 보궐선거 패배 요인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은 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반감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현실에 대한 몰인식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성주류화 전략 및 급진주의 페미니즘 전략의 실패에 반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악의적 선동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현 시기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대안적 흐름을 모색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페미니즘이 20대 남성의 정부·여당 지지율이 낮은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보궐선거 패배요인이 되기는 어렵다.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을 심판하기 위해 지지를 철회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이준석은 문재인정부의 무능을 할당제로 등용된 여성장관들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할당제는 문재인 정부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외교부, 국토교통부, 법무부 장관 등의 무능과 실책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인은 성별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기조에 있다. 즉, 정부의 한반도정책, 검찰개혁, 부동산정책 기조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남성 장관이라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선거와 정부여당의 국정실패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부 20대 남성들의 불만을 활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부적절한 선동이다. 서구 사회에서 이주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다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의 불만을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선동한 정치세력은 결국 사회갈등의 심화를 초래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청년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이 있더라도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젠더갈등만 부추긴다.
 

공정성과 페미니즘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세대 중에서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여성우월주의다(59.9%) △남성혐오다(65.5%) △공격적이다(70.1%))에 가장 높은 비율로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체 세대 중에서 전통적 성역할에 대해 가장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성역할 변화는 수용하면서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것은 얼핏 보면 모순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공정성'이라는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둘을 이어준다. 즉, 청년 자신도 성역할 변화를 수용하고 있고 이제는 성차별이 종식되었음에도, 페미니즘이 여성을 약자 취급하면서 남성을 차별하기에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시사인의 기획기사를 책으로 엮은 『20대 남자』도 20대 남성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분석했다. 그리고 20대 남성들의 핵심적인 정서는 ‘남자와 여자가 직접 마주쳤을 때 여자들에게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권력이 여자 편을 든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에서 성별임금격차는 남녀간 실력차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이를 시정하려고 할당제나 적극적 조치를 도입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 집행이 여성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처럼 여성의 증언을 근거로 성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불공정한 권력의 개입이라고 여긴다.
 

20대 남성들의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

 
『20대 남자』는 페미니즘에 강한 반감을 가진 집단일수록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다는 흥미로운 설문 결과를 제시한다. 특이한 점은 20대 남성들이 민주당의 여성정책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어보이지는 않음에도, 페미니즘을 이유로 민주당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원인을 자세하게 분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주류는 기득권 86세력으로 표상되고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도덕적 집단이라고 자임하면서 페미니즘도 그러한 덕목 중 하나로 삼았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86세대 남성들은 성차별의 수혜를 입은 세대인데, 이제는 기득권을 가진 안전한 위치에 올라 청년들에게는 페미니즘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훈계하는 태도가 위선적이라고 여기는 것일 수 있다. 청년들에게 가르치려고 드는 것들을 정작 본인들은 지키지 않는 태도 때문에 더욱 환멸감이 더해진다.
 
물론 이러한 추정이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스윙 보터고,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집단은 그 중 일부일 것이다. 한편 20대 남성들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므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대 남성이 보수화되었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을 진보로, 국민의힘을 보수로 규정하는 세대들이 오히려 진영논리에 갇혀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20대 남성들은 탈진영의 성향을 보인다.
 

페미니즘이 불공정? 좌절감을 여성에 대한 원망으로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불공정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부모 세대보다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청년세대의 좌절감이 깔려있다. 청년 남성들은 자신이 아버지 세대처럼 가족을 부양할만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한편으로는 가족부양이 남성만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여성에 대한 원망으로 표출하는 측면이 있다.
 
『20대 남자』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거부감이 큰 20대 남성들이 연애와 결혼이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설문을 긍정하는 응답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점이 확인된다. 남성 가장이 가족을 부양할 물질적 토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경제력 있는 남성이 경쟁력 있는 현실이 남성에게 불리하고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데이트비용 더치페이가 논쟁된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김치녀’ 논란도 유사한데, 돈 밝히는 여자에 대한 혐오는 경제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여성들에 대한 원망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대안적 사회운동의 부재와 각자도생

 
둘째로,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따진다는 점은 청년세대의 좌절감을 사회 비판과 집단적 대안모색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경쟁을 통한 각자도생을 가장 현실적 선택지로 여겨서다. 따라서 경쟁의 룰을 여성에게 다르게 적용하자는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것이다. 이는 대안적 사회전망을 제시할만한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이 부재하고, 심지어 문재인정권에 들어서는 사회운동 상당수가 정부와 결탁하여 타락하거나 잘못된 정부정책을 지지하면서 대중적 신뢰를 상실한 것에서 기인한다.
 

여성현실에 대한 몰인식.

 
셋째로, 여성현실에 대한 몰인식에서 기인한다.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종식됐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모든 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가 제약되는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여성의 공적영역으로의 진출은 상당부분 달성되었다. 여성 대통령도 배출할 정도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의 현실이 일부 지배층 여성들 같지는 않다. 노동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이 발생하고 재취업 일자리는 대다수가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게다가 소위 여성업종들은 임금이 낮은데 이는 가사와 돌봄을 낮게 평가하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성별임금격차는 남녀 실력차이의 결과가 아니라 경력단절과 여성노동 저평가가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처럼 여성에게 정조와 혼전순결을 강요받는 시대는 아니지만, 여성의 성적인 권리도 제약되는 현실이다. 단적으로 헤어진 연인과의 성적인 영상이나 사진은 여성에게 더 위협적이다. 헤어진 연인이 영상을 무기로 여자친구를 협박하는 일도 있다. 유명 여성 연예인의 섹스영상이 유출되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사회적으로 성경험은 남성에게는 무용담일 수 있으나 여성에게는 수치로 인식되어서다. 여전히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성적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2020년까지 한국에서 낙태는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였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결정을 여성에게 자율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법으로 규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성의 권리가 제약되는 현실임에도 20대 남성들이 성차별이 종식되었다고 여긴 이유는 아직 노동시장 진출을 앞둔 세대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경험한 교육과정에서는 여성과 경쟁하면서 차별을 시정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고 현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착시를 일으키는 할당제, 반성폭력운동

 
여성의 현실에 대한 몰인식이 발생한 것은 페미니즘 전략이 착시를 일으켰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할당제가 바로 그러하다. 일부 상층 엘리트 여성들의 기득권화에 도움이 되었지만 대다수 여성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이다. 노동하는 여성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력단절과 여성노동의 저평가를 해결해야하는데, 이는 할당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층 엘리트 여성의 고위직 진출로 소위 ‘여성상위시대’가 되었다는 소란만 요란하고, 별반 달라지지 않은 여성들의 현실은 감춰지면서 착시가 발생하고 있다.
 
성폭력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방식도 착시를 일으킨다. 반성폭력운동은 성폭력을 남성의 폭력성에서 기인한다고 전제하고 처벌의 공포를 키워 남성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전략이다. 하지만 처벌에 대한 공포는 마치 여성들이 위력을 떨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각을 유발할 수 있을지라도, 성폭력의 감축에 성공적이지 못하다.
 
즉,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성폭력 가해자로 찍히면 범죄 처벌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장되기 때문에 끝장난다는 공포심을 가지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폭력을 처벌 목록만 피하면 되는 문제로 여기게 된다. 결국 반성폭력 운동으로는 남성들이 여성의 성적인 권리를 이해하고 성찰하게 만들기보다, 처벌의 공포에 대한 반발심과 처벌당할 행동만 자제하자는 인식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여성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데, 처벌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여성이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게 되어서다.
 

대안적 흐름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공격받는 지금, 논쟁에서는 일단 방어하는 것이 우선이고, 성찰과 방향전환은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살펴본 것처럼 20대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성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페미니즘 전략의 실패에 반응하는 측면도 있다. 무작정 페미니즘을 옹호한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필요한 페미니즘은 어떤 페미니즘인지를 물어야 한다. 여성현실의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할당제나 반성폭력운동과 같은 전략은 성찰되어야 하고, 대안적 흐름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안티페미니즘에 맞서는 대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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