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8.23

언론중재법 개정안, 민주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위협

민주당이야말로 거짓을 유포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진보연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언론을 제약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보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민주당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다. 야당과 언론계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악의적 언론 보도로 피해를 본 일반인을 구제한다는 취지를 강변하며 법안의 강행 처리를 불사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 내용과 처리 과정 모두에서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문재인 씨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 여러 차례에 걸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내용적 문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자 쟁점이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열람차단청구권,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신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고의·중과실 추정에 대한 내용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제30조의2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을 신설해 ‘언론의 명백한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제2조 17의3에서 허위·조작보도를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로 정의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사실성 인식을 얼마나 초래해야 허위·조작보도인지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의 내용이 추가되며 잘못된 보도에 따른 피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한 것인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남발하고 그 결과 비판적 여론이 위축될 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내용은 반헌법적이며,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다른 쟁점들 역시 문제의 소지가 많다. 열람차단청구권은 △제목·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은 경우,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다.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기사가 노출되지 않도록 차단되는데, 이의 실제 효과는 기사 삭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기존의 기사 삭제 요건보다 느슨하다. 열람차단청구권이 신설될 경우 개인은 물론 정치·경제 인사에 대한 비판 보도의 위축을 목표로 하는 열람차단 청구가 남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고의·중과실이 추정되는 경우 민사소송에서 피해자가 아닌 언론사에 입증책임을 지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이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를 조합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를 고의·중과실 추정의 요건으로 하는데, 이 역시 기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또한 민사소송법의 대원칙(피해자 입증)을 완전히 뒤집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나 선출직 공무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허위·조작 여부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강화하고, 열람차단청구권을 유지하되 해당 기사에 청구가 이뤄졌음을 명시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호한 기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제한 대상 관련 허점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국민의힘·정의당을 비롯한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절차적 문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내용뿐만 아니라 그 처리 절차에서 또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처리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현재 문체위 전체회의까지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에 야당과 언론계의 반발이 거세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은 정권 입맛대로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독소 조항들이 포함돼 있고, 되레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무엇이 급해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또 “진정으로 민주당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이 본연의 역할로 회귀하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전면 재논의 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 매체 자유를 위한 범 세계적인 조직인 국제 신문 편집자 협회(IPI)의 스콧 그리펜 부국장은 “특히 이번 법안에서 예견된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언론인과 언론사의 업무를 표적으로 하고, 경제적 파탄이라는 위협을 초래할 것을 극도로 우려한다. 게다가 '가짜뉴스'라는 개념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은 언론에서 명백한 자기검열의 위험을 야기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국제기자연맹(IFJ) 역시 “잘못된 보도에 대해 부당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이 법안은 한국 기자들 사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 주관법은 허술한 규제 형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민주당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7월 27일 문체위 소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강행 처리됐다. 8월 19일 전체회의에서는 전체 위원 16명 중 민주당 의원들과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등 9명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지며 처리됐다. 24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25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게 민주당의 방침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하고 있는 민주당에서는 최소한의 협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법안의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야당과 언론계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점, 원구성 재협상을 통해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에 넘기기로 한 상황에서 속도전을 통해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점 등에서 민주주의를 위배하는 극단적인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이야말로 거짓을 유포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가짜뉴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피해자는 누구인가? 지난 4년 민주당의 행보를 되돌아보자. 그들은 한국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나 조국 사태 등 정권과 연관된 비판적 기사들을 싸잡아 가짜뉴스로 규정했고, 오히려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들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정경심 교수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에 불복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민주당이 말하는 가짜뉴스의 피해자란 바로 그들 자신이다.
 
정부와 민주당의 지난 행보를 돌이켜봤을 때,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우려는 타당하다. 당파적 이해에 따라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세력이 있는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이야말로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진실을 거부하고 거짓을 유포해온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는 민주주의의 후퇴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운동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의 퇴보를 초래해온 일련의 흐름 중 하나로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이 흐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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