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2.02.11

사면초가에 몰린 이재명 후보의 포퓰리즘

왜 이재명 후보의 기득권 공격은 힘을 잃었나

사회진보연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1차 대선후보 TV 토론. 심상정 후보는 작심한 듯 이재명 후보에게 물었다. ‘5년 전만 해도 이재명 후보는 재벌 해체와 최저임금 100만 원을 외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5만 불 시대, 5대 강국, 코스피 5천 공약을 내다니,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낙수효과 기대하면서 개, 돼지 취급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심상정 후보의 다그침에 이재명 후보는 말을 얼버무리고 만다. 그때 제가 주장했던 것은 재벌 해체가 아니라, 재벌 체제 해체였습니다, 라고. 그는 분명 2016년 촛불 집회에서 재벌 해체를 주장했었다. 그는 ‘친일자본’에서 출발해 ‘독재세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삼성과 SK 등 재벌’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뿌리’이기 때문에 ‘재벌을 해체함으로써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지지자들은 이날 재벌을 해체하라고 외친 정치인은 이재명 씨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이제 이재명 후보는 반기득권 전선에서 후퇴한 것인가? 그는 ‘기득권’과 ‘서민’을 구분하고, ‘서민’의 편에서 ‘기득권’을 공격하며 지지율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포기했나?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재명, '재벌 황제 경영' 해체에 정치생명 걸다!> (2017. 1. 17 업로드)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재명, '재벌 황제 경영' 해체에 정치생명 걸다!> (2017. 1. 17 업로드)
 
이재명 후보의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재명, '재벌 황제 경영' 해체에 정치생명 걸다!> (2017. 1. 17 업로드)
 

전략의 수정?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정적을 기득권이라고 공격하며 지지율을 확보하는 기존의 인민주의 전략에서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선거 슬로건의 변화가 가장 상징적이다.
 
지난 7월 1일 출마선언에서 그는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누군가의 부당이익은 누군가의 손실’이며, ‘강자가 규칙을 어겨 얻는 이익은 규칙을 어길 힘조차 없는 약자들의 피해’고 ‘투기이익 같은 불공정한 소득’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키우기 때문에 ‘억강부약 정치’로 ‘대동세상’을 열겠다는 의지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구호였다. 이 관점은 부동산으로 불로수익을 얻는 사람에게 ‘기본소득토지세(국토보유세)’를 부과하여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그의 대표 공약으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12월 29일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으로 교체되었다. (2월 8일에는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대통령’으로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변경된 슬로건에는 기득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미가 옅어졌고, 변경 직후 발표한 신년사에서도 ‘모든 국민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오직 국민, 오직 민생’만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히면서 무게중심의 이동을 시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에 대한 입장도 변화했는데, 국민이 반대한다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는 자신의 정적을 ‘기득권’이라고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보다는, 이재명 후보가 기득권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재명 후보가 공격한 ‘기득권’의 핵심에 이재명 후보 본인이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난국에 빠진 이재명 후보의 기득권 공격

 
이재명 후보의 출마 선언에도 드러난 것처럼, 그의 가장 주요한 공격 대상은 ‘부동산으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투기세력’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이재명 후보는 부동산 공약을 발표하며 ‘(문재인)대통령의 지시와 방향은 맞는데, 관료나 부처 장관들이 이행을 안 해서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라며, ‘투기의사를 가진 국민 입장에서는 과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재명 후보 본인이 부동산 비리 의혹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 공적 권한을 남용하여 대장동(과 백현동) 개발 이익을 본인의 측근에게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심지어 그 대가로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냈으며, 선거자금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만 해도, 이재명 후보는 이런 치부가 별문제 아니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본인의 문제로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입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2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처음으로 인정했고, 지난 TV 토론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점수를 숫자로 매기긴 어렵지만 매우 잘못된, 부족한 정책’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대장동 의혹에 관해서는 여전히 민간에게 돌아갈 이익을 조금이라도 환수한 것이 자신의 공적이라는 입장이다.)
 
이재명 후보는 검찰을 기득권이라 공격하는 민주당의 기조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법 위의 권력’을 강화하고 ‘수사할 수 없는 성역’을 확정한 것에 불과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권력형 비리가 짠 사라진 나라가 되었냐'는 비판처럼, 청와대를 향한 수사는 중단됐다. 권력의 말을 잘 듣는 검사만 남은 검찰 덕택에, 이재명 후보만 대장동 의혹에 대한 수사를 피해 가는 혜택을 입었다.
 
이재명 후보는 여전히 검찰 출신의 대선 출마가 막강한 검찰 권력의 방증이라며 상대 후보를 공격하지만, 민주당 정부하에서는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더 막강한 권력이 검찰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지켜봤다. 이제 이재명 후보는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내부적으로는 지지자를 의식하여 그 사과를 번복하기를 되풀이한다. 결국 이재명 후보는 ‘법조 카르텔’에 대한 공격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포기할 수 없는 '기재부 해체' 요구

 
이재명 후보의 인민주의 전략은 자기 자신이 그 기득권자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기존의 전략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또 다른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관료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기본소득 공약과 지역화폐를 비판하는 기재부를 때때로 공격해 왔는데, 지난 가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작심 비판’을 했다. 9월 10일에는 지역화폐 예산을 감축하겠는 기재부가 ‘너무 오만하고 강압적이고 지나치다’고 했다. 지역화폐는 사용자에게 10%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그 비용은 60~80%를 국비에서, 10~20%는 도비에서, 10~20%는 시비에서 지급한다. 선착순으로 지급되어 일부 시민만 사용할 수 있고,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에서는 이런 혜택을 제공할 수 없으니, 국비가 절반 이상 투입되는 지역화폐 정책은 불공평함을 내포한다. 홍남기 부총리의 결정은 타당성이 높지만, 이재명 후보는 그를 악마화하며 공격한 것이다.
 
10월부터는 이재명 후보가 다시 한 번 전국민지원금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10월 8일에는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며 홍남기 부총리를 공격했고, 11월 16일에는 ‘책상머리를 떠나 현장에서 직접 체감해보라’고 비난했고, 12월 6일에는 국가부채는 낮아서 가계부채가 높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전국민지원금은 비용대비 효과성이 떨어지지만, 이재명 후보는 기재부가 반서민적이라며 공격하면서, 기재부 권한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을 멈추지는 않는데, 1월 4일에는 ‘기재부가 정치적 판단까지 하’여 ‘국민 주권주의’에 반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고, 2월 4일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예산의 규모와 용처에까지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게 그의 역할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이재명 후보가 기재부를 공격하는 일관된 패턴이 발견된다. (1) 이재명 후보는 뚜렷한 목표가 없거나 비효율적인 재정 사용을 주장한다. (2) 기재부는 이를 비판하거나, 반대 의사를 표한다. (3) 이재명 후보는 기재부 장관이 기득권이며, 서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1)~(3)의 패턴은 늘 있었던 일이지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 자주 반복된다. 여기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그다음 단계가 추가된다. (4)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의 손을 들어준다. (5) 기재부 장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를 수용한다.
 
그의 기재부 공격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위한 것이지만, 역시 효과가 없어 보인다. 지지율 약세를 보이던 그는 11월 보편적 재난지원금 카드를 내밀었지만,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러면서 12월부터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추경편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전국민 지원이야말로 보편지원이라며 보편지원을 반대하는 홍남기 부총리를 악마화하던 이전의 태도에서 180도 돌변한 것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반복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기재부를 공격하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청의 갈등이 선거전략으로서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기재부에 대한 공격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출발점이 이재명 후보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재정정책이기 때문이다. 용처를 명확하게 따지지 않고, 재원 마련 방법도 구체화하지 않은 채 재정정책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기재부에 대한 공격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상대 후보가 기득권자라고 공격하기

 
기재부에 대한 공격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다른 전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대권 경쟁자인 윤석열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은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 남은 마지막 인민주의 전략이다.
대선 TV 토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는 네거티브 선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 당내 경선을 앞두고도 더 이상의 네거티브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이런 그의 선언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그가 네거티브 전략에 의존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왜 이재명 캠프의 네거티브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가>를 참고하라.) 그는 'RE 100', '블루수소'가 무엇인지 아냐고 물으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대중에게도 생소한 전문용어를 아냐는 식으로 질문을 함으로써 장학퀴즈에 나왔냐는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다른 전략도 효과가 없자,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더욱더 극단적인 네거티브 공격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은 윤석열 후보와 관련된 부친, 처가, 병역면제 등 모든 의혹을 제기하며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을 가진 공수처도 윤석열에 대한 혐의를 하나도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의혹이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상승 또는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기득권'을 공격하며, 그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확보해왔다. ‘적폐청산’의 정치다. 그러나 기득권을 공격하는 반기득권의 단일한 전선을 해체한 것은 바로 민주당 자신의 '기득권'이다. 이재명 후보 역시 자신의 정적이 기득권이라고 공격했지만, 밝혀진 것은 이재명 후보 본인과 민주당이야말로 진정으로 후안무치한 내로남불 기득권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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