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2.11.01

러시아 시민,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말하다

재한 러시아 평화활동가 초청강연

사회진보연대
 
지난 10월 27일 재한 러시아 평화활동가 강연 <러시아 시민,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말하다>가 광주광역시 NGO센터에서 개최되었다. 강사인 알렉산드라 활동가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 단체 Voices in Korea와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한국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시민들의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주제로 한 강연은 러시아 내 반전운동 활동 현황, 러시아 정부의 억압적 행태 및 왜곡 선전 동향, 국내외의 러시아인 반전시위 소개로 구성되었다. 강연은 광주지역 24개 단체로 이루어진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광주모임>이 주최하였으며, 20여 명의 광주시민이 참석했다. (** 관련해서 지난 사회운동포커스에 실린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푸틴의 '전쟁 동원'에 맞서는 러시아 반전운동> <재한 벨라루스인 커뮤니티 인터뷰> <재한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리트비노프 인터뷰>)
 
 
강연에 앞서 알렉산드라는 강연의 맥락을 주의해서 받아들여 달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받는 피해와 괴로움은 러시아인들이 겪는 것보다 훨씬 크다”며, “이 강연은 러시아인들의 고통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겠다는 취지였다. 알렉산드라는 “러시아 사람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전쟁이 참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낸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연은 전쟁 반대 주장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러시아 내 현실을 다양한 자료와 함께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두 단어’만 말해도 체포된다”며 소개한 영상에서는 한 여성이 노트 크기의 종이를 들어 올리자 경찰에게 곧바로 연행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 종이에는 러시아어로 “두 단어”라고만 적혀 있었다. 실제로 “전쟁 반대”라고 쓰지 않아도, 이를 연상시키는 말만으로도 연행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른 영상에서는 한 시민이 눈 위에 러시아어로 “전쟁 반대”라고 적자, 경찰이 등장해 곧바로 글자를 지운다. 이 시민은 이후 “러시아군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목적으로 기념비 바닥에서 눈 덮개를 제거하였다”는 혐의를 받았다. 러시아 시민들은 길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무료 배포하거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책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파란색-노란색(우크라이나 국기 색)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모자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또 상표명이 “평화”인 신용카드나 통조림 햄을 들어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알렉산드라는 푸틴 정권과 경찰이 시민들의 의사 표현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에서는 시민이 둘 이상 모이면 불법이 된다”라며 “경찰은 평화롭거나 작은 시위에도 폭력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한다. 때로는 시민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라고 말했다. 강사는 경찰이 러시아 시민을 겁주기 위한 목적으로 “협박, 체포과정에서 폭력 사용, 압수 수색, 경찰서에서 고문 행위”를 벌인다며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반전시위의 체포 및 해산 과정에서 심각한 폭력이 사용되는 영상과 함께 평화활동가의 주거지에 사진과 비방 메시지가 부착되고, 자물쇠가 훼손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동원령에 반대하며 시 낭송회를 진행한 시인이 폭행당한 모습으로 러시아군에 사죄하는 영상이 배포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라 활동가는 “러시아에서 반전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지금까지 19,350여 명”이라고 하면서 “반전시위는 기본적으로 평화시위다. 사람들은 작은 피켓을 들거나 옷에 배지를 달 뿐이다. 이것이 경찰에게 폭력과 고문을 당할 정도의 죄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알렉산드라는 또한 러시아의 전쟁 선전 전략을 고발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무엇이든 조작되고 왜곡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부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시신이 가짜라거나, 러시아가 퇴각한 이후 생긴 시신이라는 등 사실을 조작했다. 러시아 군대가 부차 범죄행위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이 밖에 러시아 정부에 유리한 결과를 얻기 쉽도록 여론조사 문항을 설계하는 사례도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유치원과 학교를 통해서도 학생들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교사는 학교에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수업을 해야 하며, 수업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우크라이나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러시아 교사들의 경험을 전했다. 또한, 러시아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현재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식인 “Z”를 그린 피켓을 들고 있거나, 총을 든 러시아군의 강연을 듣는 장면, 러시아 어린이들이 “크림반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알렉산드라는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시민들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시위하고 있다며 전쟁 반대 활동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철도 저항: <열차칸을 멈춰라>’ 캠페인은 전쟁 물자를 운송하는 러시아 열차의 운행을 방해하는 활동이다. 반전운동 활동가들이 SNS에 열차칸을 멈추기 위한 가이드를 배포하면, 시민들은 가이드를 참고해 열차의 조명을 훼손하거나, 선로에 기름을 칠해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결성된 러시아 반전운동단체인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전쟁 근황이나 반전활동에 대한 안내를 시민들에게 전파한다. 이 밖에도 지하철 피켓시위, 군 동원령을 방해하기 위한 입영소 방화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강연은 재한 러시아인들의 한국 내 반전 활동도 다루었다. 강사는 “올해 한국의 러시아인들은 주한 러시아 대사관, 보신각, 동대문, 서울시청 인근에서 반전시위를 진행하고 있다”며, “많은 러시아인이 본국에서 정치활동을 한 경험이 없고 시위에 대한 인식도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황을 알리고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및 토론에서는 전쟁에 대한 우려, 전쟁 반대 목소리와 함께 반전운동과 국제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광주기독교연합 NCC의 장헌권 인권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전쟁은 종식되지 않고 갈수록 여성, 어린이가 처한 처참한 현실을 언론 지상으로 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장 위원장은 “인권을 소중히 하는 광주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나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서단비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과 군사 행위가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함은 물론, 평화를 주장하는 러시아 시민에 대한 폭력적 진압도 중단되어야 한다”라며,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푸틴에 맞서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노력에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라고 밝혔다.
 
질의응답에서는 최근 동향과 관련해서 한 시민이 러시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알렉산드라는 “러시아 정부가 핵무기 사용을 전략으로 사고하는 것은 맞지만, 그 가능성을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답하면서도, “전문가들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확률이 높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기존에 서방과 친하지 않고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가입국인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처럼, 앞으로 반서방 국가 간의 분열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실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일례로, 카자흐스탄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병합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설령 주민투표 결과가 병합 찬성이라고 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에 '선 긋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9월, 마찬가지로 CSTO 가입국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국경에서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전망을 묻는 말에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무엇보다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알렉산드라 활동가는 한국과 러시아 시민사회의 전쟁 반대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다양한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전쟁 반대 행동을 이어가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러시아인들도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를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한국에서 열심히 전쟁 반대를 외치겠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지속해서 가져달라”라고 당부했다.
 
이번 강연을 개최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광주모임>에는 5.18 기념재단 등 광주지역 소재 24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광주시민평화촛불을 비롯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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