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6호 | 2012.07.18

안전한 도로, 안전한 운임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불건강을 낳는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보건의료팀
6월 25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은 29일 컨테이너운송위원회와 9.9%의 운송료 인상에 합의하며 종료되었다. 이번 총파업의 주요 요구이며 화물연대가 10년 넘게 추진해왔던 표준운임제 법제화를 비롯한 화물운송시장의 제도 개선은 정부의 무성의한 교섭으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화물노동자의 경제적 요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화물연대의 요구는 사실 건강의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빈발하는 화물차 사고로 인해 화물노동자의 생명 뿐 아니라 시민의 생명까지도 위협받기 때문이다. 사망은 가장 극단적인 건강에 대한 침해이므로 화물차 사고 문제는 사회적 건강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화물차 사고에는 구조적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화물노동자들만의 몫이 될 수 없다. 졸음운전, 난폭운전, 과속, 과적 등으로 ‘도로 위의 무법자’로 불리는 화물차의 현실 이면에는 ‘바퀴달린 노예’로 표현되는 화물노동자의 비참한 노동조건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화물차 사고의 실태

대형차라는 특성상 화물차 사고는 대형사고의 위험이 크다. 따라서 화물노동자의 안전한 운행이 매우 중요함에도 화물차는 졸음운전, 난폭운전, 과속, 과적 등 위험한 운행을 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사고 소식이 아니더라도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화물차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빈발하는 화물차 사고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되어 왔다. 2012년 1분기에만 화물차 사고로 인해 272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증가한 것이다.

화물차로 인한 사고위험은 특히 고속도로에서 매우 심각하다. 화물차의 고속도로 차량이용량은 9.1%에 불과한데 비해 교통사고건수 비율은 24%에 달하고 있으며, 사망자수 비율은 무려 40.6%에 이른다. 고속도로 차량이용량 대비 교통사고건수와 사망자수를 계산해보면 승용차 대비 각각 3.6배, 8.4배에 달한다. 특히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가 2007년 420명에서 2010년 389명으로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22명에서 148명으로 늘었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화물차 사고 문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된 바가 없다. 화물차가 왜 위험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지, 화물차로 인한 사고가 왜 빈발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화물차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고 화물노동자의 의식이 변화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왔던 것이다.

화물차 사고의 원인은 장시간노동, 심야노동이다

화물노동자는 평균적으로 1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컨테이너 화물노동자는 월 315시간 일하고 있는데, 산업과 고용형태를 막론하고 월 평균 노동시간이 250시간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당 노동시간 48시간 이하, 하루 노동시간 13시간 이하(심야노동이 포함될 경우 10시간 이하)로 제한된 유럽 기준에 비추어볼 때 한국 화물노동자는 초장시간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한국에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시간과 관련한 어떤 기준도 없다.

장시간노동에는 필연적으로 심야노동이 따라온다. 화물노동자는 이틀에 하루 꼴로 심야운행을 하고 있으며, 이런 경우 밤새워 운전하거나 차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심야운행이 갈수록 증가하는 등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장시간운전은 졸음을 유발하고 집중력을 저하시켜 교통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심야운행 역시 그 자체로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높일 뿐 아니라 다음날 주간운행의 피로도를 높이고 졸음운전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화물차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다. 2010년도 고속도로 화물차 사망사고 원인조사에서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한 것은 졸음운전이었음을 감안할 때, 화물차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죽음을 부르는 화물노동자의 장시간노동, 심야노동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통연구원 통계를 따르면 2011년 4/4분기 컨테이너 운송 차주의 경우 월 315시간 노동하여 191만 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일반 공장의 임금체계로 계산하면 시급 4,544원으로 최저임금 미만이다. 다단계 하청을 거쳐 물량을 확보하는 화물노동자의 경우 훨씬 심각한데, 화물연대 조사에 따르면 4단계 하청을 통해 물량을 받는 차주의 월 순수입은 69만 원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2,197원이다.

이러한 저임금 상태에서 화물노동자에게 안전한 운행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가능한 만큼 장시간 운전해서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의 수입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물노동자의 극단적인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임금 → 장시간․심야노동 →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화물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표준운임제다.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의 조건 때문에 화물운송료 인상은 잘 안되지만, 기름값과 감가상각비 등 화물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꾸준히 상승한다. 결국 화물노동자의 수입은 가만히 놔두면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물노동자가 받는 적정운송료를 운송거리와 화물의 양에 따라 정하여 운송업체들이 지키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표준운임제다. 화물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와 비슷한 제도인 셈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화물노동자들의 극단적 저임금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화물노동자의 노동시간 감소와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를 도모할 수 있다.

정부는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정부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끝나자마자 화물연대 조합원에 대한 탄압과 악의적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화물차 화재사건의 책임을 화물연대에 뒤집어씌우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증거도 없이 조합원을 구속했다. 뿐만 아니라 욕설과 협박을 통해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경찰에 정보를 제공해주면 천만 원을 주겠다며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총파업 기간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 문제,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파업이 끝나자마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정부는 화물연대 투쟁이 벌어지면 법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투쟁이 끝나면 어기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표준운임제 역시 2008년 화물연대 총파업 때 시행을 약속했지만 이제껏 지키지 않고 있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외면하고 그때그때 닥친 문제만 넘기면 된다는 식의 행태를 중단하고,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시민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화물노동자의 저임금이 화물차 사고를 유발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화물운송시장 문제를 해결한 해외 사례가 있다. 호주의 <‘안전한 운임’을 위한 개혁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보고서를 참고)


주제어
노동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