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19호 | 2013.04.24

위험작업의 외주화에 의한 하청노동자들의 연쇄사망

계속되는 가스 폭발, 유독물질 누출사고의 원인과 대책

보건의료팀
최근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대형 공장들에서 폭발과 유해물질 누출 등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13년에는 4월 현재까지 언론에 크게 보도된 유해물질 누출사고만 14건에 달한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위험작업의 외주화,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늑장 대응,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과 솜방망이 처벌 등이 지목되고 있다.

화성 삼성, 여수 대림... 끝없이 이어지는 사고 소식들, 원인은?

지난 1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불산 용액이 누출되며 경보기가 울렸지만, 삼성전자 측은 누출 부위를 비닐봉지로 막고 바로 옆 라인에서 조업을 계속했다. 삼성전자에 불산을 공급하는 협력사인 STI서비스 노동자 5명이 밸브 개스킷의 누수를 확인하고 교체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라인은 당시까지 1729시간 연속 가동중이었으며 누출 문제가 발생하여 수리작업이 진행되는 중에도 정지되지 않았다. 그 결과 2차 누출사고가 발생하면서 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4명이 부상당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 삼성전자가 화성공장에서 저지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만 무려 1934건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경기도청이 사고 사실을 확인한 시점이 1차 누출 27시간, 하청노동자의 사망 2시간이 지나서라는 점이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의 시민들까지 27시간 넘게 불산 가스에 노출되었음에도 그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이다.

3월에는 전남 여수 대림산업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했고 11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고는 하청노동자가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중간제품을 저장하는 사일로의 내부검사를 위해 보강판 용접작업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잔류 분진으로 인해 가연성 가스가 형성돼 폭발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 측이 사일로 내부의 폴리에틸렌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노동자들을 투입하여 작업을 강행한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상 노동자 17명 가운데 15명이 재하청업체가 모집한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들은 대립산업의 2차 하청업체가 모집한 노동자인 까닭에 현장 상황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위험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대림산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수가 1002건에 달했고, 고용노동부는 8억4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형사처벌 대상에는 대림산업 임직원 9명과 하청업체 대표 및 직원이 포함되었지만 최종 책임자인 대림산업 대표이사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업체에 대한 위험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발사고의 주요 원인중 하나는 위험을 전가하는 산업현장의 다단계 하청 구조이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 제공, 보호구 지급, 안전교육 실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등 작업장 안전을 위한 사측의 책임을 원청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16개의 산업재해 발생 위험장소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 원·하청이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취급하는 유해물질 농도에 따라 원청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청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의무를 하청업체에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불산 사고의 경우에도 삼성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퇴사한 노동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공정과 관계가 있는 모든 일은 무조건 삼성전자에 보고해야 하며, 위험 작업의 경우에도 모두 삼성에 보고하고 승인받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원청은 하청업체에 위험을 전가하며, 그 위험은 고스란히 하청노동자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회피로 일관하고 있으며, 노동자 개인의 과실 및 하청업체의 안전관리 부실이 원인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데는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 즉 하청사업주만 지도록 하고 있는 허술한 법체계도 한 몫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 재하청의 구조 속에서 실제 작업을 책임지는 업체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동자에게 무리한 작업, 장시간 노동을 강요한다. 실제 산업단지에서 연장근무는 일종의 ‘관행’인데, 사측은 공사기간을 단축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연장근무를 요구하고, 한달에 보름이라도 일하면 다행일 정도인 노동자들은 일감이 있을 때 야간근무를 마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수 대림산업 폭발사고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계약 첫날부터 밤 10시까지 야간노동을 해야 했으며, 유해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음에도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빈발하는 사업재해는 대부분 은폐되는데, 다음 계약을 위해서는 무사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업들 사이에 뿌리깊은 안전불감증과 늑장 대응

기업들의 안전불감증과 늑장 대응도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다.
지난 3월 SK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에서 배관 교체 작업을 하던 중 염소가 1리터 가량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체 작업에 들어가기 전 밸브를 잠그는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사고 사실을 경찰이나 소방당국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사내에 있던 노동자 100명이 긴급 대피하는 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소방서에 신고함으로써 비로소 사고가 파악되었다.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난 후였다. 게다가 불과 6일 후에는 같은 공장에서 인화성 액체인 피아르(PR·감광액)를 담은 유리병(3.8ℓ)이 깨지면서 피아르액 1ℓ가 창고 밖으로 새 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2번째 사고에서도 SK하이닉스가 소방당국에 신고하기까지 40여 분이 걸렸다.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LG실트론에서도 3월 2일 불산이 혼합된 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정확히 20일이 지난 후 똑같은 사고가 재발했다. LG실트론은 불산에 직접 노출된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검진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삼성의 경우 지난 1월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음에도 3일 후에 용인공장에서 이소프로필알콜이 누출되었다. 4월에는 삼성정밀화학 전해공장에서 다이메틸아민 유출이 있었고, 5일 뒤 같은 공장에서 염소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전해공장에서 발생한 2건의 누출 사고는 삼성전자가 불산 누출 사고로 5명의 사상자를 낸 후 ‘종합 안전 대책’을 내놓은 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최근 발생한 사고 중 상당수는 시민의 신고에 의해 뒤늦게 알려졌다. 사측은 안전사고 은폐를 당연시하고 있으며, 사고가 난 이후에도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개선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심각하게 유해하지 않다’, ‘누출되기는 했지만 극소량이다’는 등 본질을 흐리려고만 한다.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과 솜방망이 처벌

삼성 불산사고와 대림 폭발사고의 특별감독 결과 수 천건의 위법 사례가 적발되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만연한 안전불감증의 뒤에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의 산업안전관리·감독이 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완화되었으며, 산업안전에 있어서도 기업의 자율적 관리가 강조되었다. 게다가 정부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안전을 외면한다. 사고가 나면 몇 푼의 벌금으로 떼우는 것이 안전관리를 하는 것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중대 재해 2,290건에 대한 사업주 처분은 벌금형 57.2%, 혐의 없음 13.8%, 기소유예 11.1%, 공소권 없음 2.6%, 각하·선고유예 1.8%였다. 징역형은 2.7%에 그쳤고 그나마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의 경우 사망사고가 나면 회사 책임자를 살인에 준하는 범죄로 엄벌하는 것과 대조된다.
실제 관리·감독이 이루어지는 실태를 보면 정부가 정말 노동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지가 의심될 정도이다. 2011년 전국의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 사업장은 173만 여곳에 달하지만 산업안전감독관은 270명에 불과했다. 사실상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최근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유해물질 누출사고와 관련한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수 대기업이 불산 등 위험·유해물질 관리를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관련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물질이 포함된 유해·위험 작업에 대해서는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지만 2003년 하도급 금지 유해물질 13종이 선정된 이후 유해물질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회의를 단 한 번도 열지 않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불산 등도 여전히 유해물질 대상에 빠져있다.

원하청 구조 문제 해결을 통해 실제 사용자가 책임지도록 해야

지난해 정부는 건설업·제조업 위주로 되어 있던 원청의 안전교육 및 안전관리 의무를 전 업종으로 확대하여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의미가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원청의 하청노동자 교육 책임에 제한된 것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사내하청, 특수고용 등 법망을 피하기 위한 자본의 고용구조 다각화가 일반화된 현재 상황에서는 안전보건 및 산업재해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원청이 지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강력히 처벌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기업들의 전략에 있다.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자본은 안전보건 의무 및 산업재해 책임을 방기하고, 위험을 전가하는 원하청 관계를 강요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고착화되고 사용자의 책임이 은폐된다면 대형사고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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