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27호 | 2013.08.30

보건의료서비스의 사유화로 인한 의료의 비용/효과 및 효율성의 변화에 대한 분석

보건의료팀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제주도에 설립될 예정이었던 한국 최초의 영리병원(통칭 싼얼병원)의 승인을 잠정 보류했다. 이미 영리병원의 문제점이 널리 알려진 지금 이 시점에서 보건복지부의 조치는 당연한 것이며 한편으론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결정은 영리병원의 설립을 중단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영리병원의 설립 및 운영과 관련된 제도적·현실적 미비점을 보완해서 보다 확실히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영리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영리병원 외에도 최근 정부는 재벌기업과 연계된 원격의료허용, 메디텔 허용 등 의료관광산업 육성 등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굵직한 정책들을 '의료의 효율성 강화 및 국가적인 의료경쟁력의 향상'이라는 구호아래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이번 민중건강과 사회에서는 영국 그리니치 대학의 공공서비스국제연구소(PSIRU) 소장인 제인 레스브리지(Jane Lethbridge)가 펴낸 보고서 <보건의료서비스의 사유화로 인한 의료의 비용/효과 및 효율성의 변화에 대한 분석>을 소개한다. 저자는 보고서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사유화가 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에게는 더 나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통념을 여러 나라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반박하고 있으며 의료의 사유화가 진행됨에 따라 한 국가의 보건의료체계가 어떤 단계를 밟으면서 약화되고 악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본 글에서는 논문이 설명하는 변화의 양상이 한국의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덧붙여 설명할 것이다.

보건의료서비스가 사유화되면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탈중심화는 의료서비스가 사유화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보건의료분야를 ‘개혁’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보건의료분야에 관한 행정 및 재정적인 부분의 책임을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많은 경우 지방정부는 의료분야에 투자할 만한 인적, 물적 자원이 중앙정부에 비해 충분치 못하며, 결국 보건의료 분야에 편성되는 지방정부 차원의 예산은 실제 필요한 양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을 감독, 관리하는데 투입할 수 있는 자원도 줄어든다. 현재 이익을 추구하는 병원들의 경영방식은 이렇게 부족해진 재정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시작된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경영방식이 취하는 첫 번째 수단은 병원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결국 병원노동자들은 부족해진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환자들로부터 비공식적인 치료비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병원은 의료서비스를 민중의 요구에 의해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닌 이익을 남기고 팔아야 하는 상품으로 취급하게 되고 노동자들은 이러한 병원의 요구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는 환자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했던 병원노동자들의 업무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각 지역의 지방정부가 편성할 수 있는 예산의 크기는 지역의 인구규모와 소득정도에 따라 다르며 이는 결국 지역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가의 전 지역에 걸쳐서 최소한의 표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익이 많이 나지 않고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산부인과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지원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먼저 전국적으로 산재한 분만취약지(1시간 이내에 분만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난 몇 달간 의료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진주의료원 폐업 역시 중앙정부의 통제 없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폐업·해산 등을 전담할 경우 지방의 공공의료체계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의료서비스의 사유화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새롭게 등장한 비공식적인 치료비

보건의료체계의 탈중심화가 진행된 국가의 병원노동자들은 줄어든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환자들에게 기존에는 없던 비공식적인 치료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공식적인 치료비는 조지아(Georgia)의 사례처럼 정부가 의료정책의 일환으로 공식적으로 제도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료기관 및 의료노동자들의 요구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지불되는 경우다. 비공식적인 치료비에는 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 사전에 지불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치료가 끝난 뒤에 일종의 선물과 같은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 비공식적인 치료비는 문화적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치료비는 환자들의 가계에 큰 부담으로 새롭게 작용하며, 특히 치료 전에 요구되는 경우 환자가 생존권의 일부로서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에 크나큰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타지키스탄(Tajikistan)과 같이 비공식적인 치료비가 생기면서 소득이 낮은 계층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큰 폭으로 줄어든 사례가 있다. 비공식적인 치료비는 기존의 의사-환자 관계를 바꾸어 놓았으며 그것을 받는 노동자와 받지 않는 노동자 사이의 관계도 뒤흔들어 놓았다.
한국의 경우 비공식적인 치료비와 같은 관행은 상당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보건의료제도 전반을 비추어 본다면 비급여 진료를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의료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던 해외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환자가 정해진 진료비외의 본인부담금을 따로 지불하는 것을 의료사유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사유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추락해버린 보건의료부문 노동자의 위상

보건의료분야는 노동집약적인 성격이 큰 분야이며 환자들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의욕적으로 일하는 노동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의 사유화가 진행됨으로써 보건의료분야의 노동자들은 낮고 불규칙하게 지급되는 임금에 시달렸다. 노동자들은 감소한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의료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다른 지역 혹은 국가로 이주하기도 했으며, 수입을 늘리기 위해 부업에 집중하느라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본연의 의료노동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유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사적부문은 공공부문이 담당하던 보건의료체계의 관리·감독업무도 잠식해 들어갔다. 두 부문이 서로 상충된 목표를 갖고 충돌하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병원노동자들은 과거 그들이 공공부문의 관리 하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녀왔던 직업적 기풍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병원노동자들은 사적부문이 선출한 새로운 관리자들을 예전처럼 신뢰하지 못했고 새로운 관리자들은 계속해서 이익을 창출하도록 의료노동자들을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의료노동자들은 환자를 ‘신뢰속에서 병을 치료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병원의 돈벌이를 위하여 의료서비스라는 ‘상품'의 구매하는 존재’로만 여기게 되었으며 이는 환자가 느끼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큰 폭으로 떨어뜨렸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되면서 나타나는 임금 저하나 고용 불안정 문제는보건의료부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지적해야 할 것은, 보건의료서비스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공공의료기관에서도 수익을 위한 비용 절감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국립대병원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급속히 증가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진주의료원 사태를 경과하면서 지방의료원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 토요일 무급 근무 문제 등이 알려지기도 했다. 국립대학교병원인 경북대병원에서는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기도 하다.

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의료분야의 효율성은 증가하는가?

보건의료분야를 비롯한 공공부문이 제공하던 서비스에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해당 분야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통념이 있으며, 이는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실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이러한 통념은 논쟁적이다. 영국의 경우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시장화가 이뤄진 보건의료체계의 의료비는 초기에 약간 감소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향평준화 되었다. 환자에게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수록 특정 질환(예를 들어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률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환자가 느끼는 의료서비스의 만족도에는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평균입원기간을 지표로 한 경우에는 불필요하게 오래 입원시킴으로써 효율성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병원을 운영하는 주체가 공공이 아닌 사적인 기업일 때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관념 또한 허상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호주의 사례를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병원의 운영주체가 공공부문일 경우가 사적인 기업에서 운영하는 병원(그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든 아니든 간에)에 비해서 입원기간, 환자퇴원율,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환자사망율 등 효율성을 측정하는 여러 지표들이 비교적 일관되게 좋았다. 아직 병원의 효율성을 완벽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결과가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보건의료체계의 사유화로 인해 의료분야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말에는 근거가 없다.
영리병원이 공공병원이나 다른 형태의 비영리병원과 비교해 볼 때 의료서비스의 비용은 높고 질은 떨어진다는 것이 미국에서의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가 있다. 보고서는 미국 뿐 아니라 여타 국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데, 영리병원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돌봄서비스는 사유화됨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회적 돌봄서비스는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하여 생활의 전반에 걸친 도움(물리적인 활동의 보조, 정신적인 지지활동, 방문간호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오래전부터 돌봄서비스가 사유화되어 사적부문에서 공급이 이뤄졌던 미국의 경우, 서비스 공급자의 형태와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서비스 공급자가 영리를 추구하는 경우에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은 비영리단체나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거나 더 낮았다. 이는 영리를 추구하는 서비스제공자가 (이익을 위해) 인력충원을 제대로 하지 않고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노동인력을 제공함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의 경우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적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면서 공급자들은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노인들의 요구에 맞춰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만 나아갔다. 2008년 시작된 경제위기 속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던 가장 큰 4개의 회사 중 1개 회사가 파산을 선언했으며 다른 회사들도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다. 영국에서 공공부문이 제공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이며, 서비스를 제공했던 회사들이 계속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경우 돌봄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갖는 서비스가 완전히 사유화되어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떠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해외사례로부터 알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의 사유화가 초래할 문제점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했던 동부 및 중앙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보건의료체계가 사유화됨으로써 겪게 되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탈중심화로 인해 지역간 건강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공공병원이 사기업에 매각됨에 따라 의료비는 폭등했다. 또한 비공식적인 치료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환자의 가계부담은 더 크게 증가했으며 숙련된 의료 인력의 해외이주가 늘어나면서 의료서비스의 질은 떨어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보건의료체계 역시 앞서 언급한 사유화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왔으며 그 결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완전히 이원화(부유층이 이용하는 사립병원과 대부분의 극빈층이 이용하는 공공병원)되어 환자의 사회·경제적 수준 및 거주 지역에 따라 접근성이 제한되었으며 이는 심각한 건강불평등을 초래하였다. 민중들의 의료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남아프리카에서는 국가의료보험체계의 설립을 골자로 하는 보건의료체계의 ‘재개혁’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적부문이 의료체계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재개혁된 보건의료체계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사적부문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사적부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사적부문을 포함하는 '새로운' 보건의료체계가 남아프리카의 전 민중을 아우를 수 있을지에 대해 국제사회는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