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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호 | 2014.12.24

국립대병원, 경영평가가 아닌 운영평가로

보건의료팀
교육부가 국립대병원에 대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2014년 2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기타공공기관에 대해서도 경영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는데, 교육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를 추진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2014년도 기타공공기관 평가편람안」을 심의·의결하는 한편 ‘교육부 소관 기타공공기관의 경영성과 평가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산하 기타공공기관 18개(국립대병원 13개, 기타 5개)에 대한 경영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12월 1일에는 2014년도 사업에 대한 경영평가 편람을 확정했다.

기획재정부는 기타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해 ‘타 법령 등에 의한 평가·감사 등을 받고 있는 기관은 동법에 의한 평가결과를 활용’할 수 있으며, ‘평가대상 기관에 대하여 별도의 평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기존 평가체계를 활용하여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립대병원의 경우 의료기관 인증평가 및 공공보건의료계획에 따른 공공보건의료기관 평가 등을 통해 이미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역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국립대병원의 경우 별도의 평가체계가 있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한 바 있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영평가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높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기재부의 지침에 따라 실시하는 것이며, 국립대병원의 운영을 효율성·공공성 양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의 공공성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것인가?

기재부 지침 이행만을 위한 총체적 부실 평가

교육부는 기재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만을 목표로, 실질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수준의 졸속적인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2014년 경영평가의 기준이 되는 평가편람이 12월에서야 확정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사업 평가를 위해서 평가 기준이 사전에 확정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4년 평가편람은 2013년 말까지, 유예기간을 포함하여 늦어도 2014년 3월까지 확정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부의 평가편람 확정은 9개월이나 늦었다.

교육부는 2015년 초부터 2014년 사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해서 3월 20일까지 각 국립대병원들의 경영실적보고서를 제출받고, 이후 실사를 거쳐 상반기 중으로 평가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평가편람이 2014년 사업의 대부분이 진행된 12월에 확정되었기 때문에, 피평가기관인 국립대병원은 평가편람의 기준을 반영하여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결국, 이대로 경영평가가 강행된다면 국립대병원들은 뒤늦게 작성된 평가편람에 실적을 짜맞추기할 수밖에 없고, 자의적인 ‘보고서 평가’, ‘서류 평가’가 될 것이 뻔하다.

게다가 교육부는 경영평가를 이해당사자와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병원 평가에 참여해왔고 국립대병원의 역할과 올바른 운영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보건의료분야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 국립대병원 운영의 핵심 당사자인 국립대병원 노동조합 등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교육부 독단으로 경영평가를 추진해왔다. 평가편람 작성 역시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 연구용역이 행해졌다. 11월 초 국회토론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용역을 준 회계법인이 이 연구를 주도했음이 밝혀졌다. 국립대병원의 운영을 효율성·공공성 양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던 교육부가 수익성 평가만 가능한 회계법인에게 평가편람 작성을 맡긴 것이다.

[출처: 메디칼업저버]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을 평가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교육부가 회계법인에 국립대병원 평가편람 작성을 맡긴 것은, 스스로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국회토론회 자리에서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는 새로운 업무라 부담이 많이 되고 준비에 힘이 드는 상황”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교육부에서 국립대병원을 담당하는 부서는 의료에 대한 이해가 있는 별도의 부서가 아닌 ‘대학정책과’이며, 병원 운영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 나아가서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국립대병원이 수행하는 주요사업 중 상당 부분은 교육부 소관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국립대병원은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이 설립한 의료기관’으로 「의료법」에 의거하여 보건복지부의 포괄적인 관리·감독을 받으며, 그에 따라 국립대병원의 진료 부문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그간 국립대병원의 진료 기능은 의료보험제도 실시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 국립대병원의 특수법인화 이후 진료기능의 중시 등으로 꾸준히 확대되었다. 특히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 이후 국립대병원이 공공보건의료체계에 포함되어 광역자치단체와 연계한 지역 내 공공보건의료의 중심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부여됨에 따라 국립대병원의 진료기능은 더욱 강조되었다.

교육 및 연구의 상당 부분도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의 교육 기능 중 의학계 학생의 교육을 제외한 전공의 등 진료인력의 교육·훈련이 보건복지부 소관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연구 기능 중 연구기획·관리 부문도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특히 의료 인력의 양성에서 학사과정 못지않게 의료기관에서의 수련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점, 학사과정의 상당부분이 의료기관에서 진료와 결합한 임상 실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육 기능에서도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역할이 크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공공병원 운영평가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평가’를 8년째 수행하면서 공공병원 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인증평가 및 공공보건의료계획에 따른 공공보건의료기관 평가 등을 통해 국립대병원을 평가해 왔다. 보건복지부의 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평가는 공공성, 의사결정구조의 적합성, 경영 효율성 등 운영 전반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립대병원 경영평가와는 차이가 크다. 반면 교육부는 관할 부처로서 형식적인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지금까지 국립대병원 운영평가를 진행해온 보건복지부를 배제한 채 무리하게 경영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경영평가가 국립대병원의 합리적 운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효율성에 중점을 둔 기재부 지침을 이행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의 무분별한 시설투자 등을 묵인·방조함으로써 국립대병원의 방만 경영을 야기한 책임이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국립대병원이 시설 확장을 위해 투입한 비용만 1조 4천억 원에 달하며, 이 중 공사비와 건물구입 등에만 9천 3백억 원을 투입했다. 이는 국립대병원들이 규모 경쟁에 과도하게 몰두한 결과로, 그 자체로 방만 경영의 한 양상이다. 과도한 시설 확장은 국립대병원의 경영 악화를 초래했으며, 국립대병원들은 경영 악화에 대응하고 시설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서 더욱 상업화된 운영 행태를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시설투자에 대한 책임은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교육부에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부는 진료부문을 포함한 국립대병원 상당부분을 관장하고 있지 않고, 국립대병원에 대한 평가 경험도 없으며,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미 국립대병원을 평가하는 제도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를 하는 것은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이며, 나아가 전문성이 부족한 교육부의 평가는 오히려 국립대병원 운영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명분 없는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는 중단하고, 국립대병원 공공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사례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경영평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보훈병원은 국가보훈처 산하의 준정부기관으로 유일하게 경영평가를 받고 있는 공공병원이다. 6년에 걸쳐 수익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보훈병원은 의사성과연봉제 전면 도입, 과잉진료 심화 등 민간병원과 다를 바 없는 영리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 2013년 3월 보훈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과장이었던 L씨는 목표한 진료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퇴를 압박받았고, ‘진료활성화계획’을 반강제적으로 병원에 제출해야만 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은 매년 진료실적 30%씩 향상시키고 자궁경부암, 난소암 및 자궁근종과 같은 부인과 진료 클리닉을 개설해 수익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대병원 경영평가편람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평가 지표의 대부분이 부채비율, 관리업무비 비율, 총인건비인상률, 노동생산성, 의료수익 증가율, 환자 증가율, 비용대비 의료수익 비율 등 철저하게 수익성을 평가하는 지표들로 구성된 것이다. 사실상 경영평가는 국립대병원 운영의 적절성을 평가한다는 명목 하에 수익을 최대화하라고 공공병원에 강요하는 제도인 것이다. 경영평가가 이대로 강행된다면, 진료·교육·연구·공공의료라는 국립대병원 고유의 역할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국립대병원은 오로지 환자를 상대로 최대한의 돈벌이를 하는 것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메디칼업저버]

당장 교육부가 강행 추진하고 있는 2014년 경영평가는 중단되어야 한다. 졸속 추진으로 인해 ‘보고서 평가’가 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평가편람이 늦게 나온 것을 넘어선다. 애초에 교육부는 국립대병원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데다, 기재부 주도의 수익성 중심 경영평가라는 틀은 국립대병원의 운영을 평가하는데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어 공공의 복리를 위해 운영되는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평가가 ‘경영’ 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립대병원 본연의 역할인 진료와 교육, 연구, 그리고 공공의료를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운영’ 평가가 되어야 한다. 운영평가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은 보건의료분야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 국립대병원 노동조합 등을 포괄하여 사회적인 논의를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관할 부처로서 형식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부가 국립대병원을 관할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따라서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 전반에 대한 평가 및 관리·감독의 주체를 보건복지부로 일원화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제어
보건의료
태그
공공성 공공기관 국립대병원 경영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