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63호 | 2015.08.25

포괄간호서비스 전면 도입, 환자와 간호인력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보건의료팀
메르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6월 13일,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여러 친구나 가족들이 환자를 병원에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문화로 인해 2차 감염이 더 확산”되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메르스 확산의 주요 경로가 환자 가족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절반만 타당하다. 가족이나 친구가 병원에 동행하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입원하면 가족이나 친척이 간병하거나 사비를 들여서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의 후속대책으로 ‘포괄간호서비스’의 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병원의 간호인력을 대폭 확충해서 입원환자가 간병인 없이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포괄간호서비스로 인한 본인부담금은 2만원 안팎으로, 간병인 고용에 드는 비용의 1/4 수준이다. 정부는 2018년 포괄간호서비스의 전국 시행을 목표로 제시했으며, 현재 지방병원 일부에서 시행 중인 포괄간호서비스를 2016년부터 서울·상급종합병원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환자와 가족에게 좋은 제도를 앞당겨 추진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포괄간호서비스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 등을 볼 때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사람, 시설, 돈, 제대로 준비되고 있나?

포괄간호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고려되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즉 간호인력이다. 환자 가족이나 고용된 간병인을 없애고 간호인력으로 통합 운영하려면 간호인력을 얼마나,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시설이다. 현재의 병동 시설에서는 간호인력이 대폭 늘어나도 원활한 환자 치료가 힘들다. 늘어난 간호인력이 근무할 공간이 필요하고, 보호자 상주가 금지됨에 따라 환자 면회실 및 보호자 대기실이 확충되어야 하며, 보호자/간병인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모니터할 수 있도록 병동구조가 변경되어야 하고, 낙상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돈이다.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얼마인지, 어떤 방법으로 누가 부담할지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정부 안을 검토해보자.


[출처: 청년의사]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 때문에 의료서비스 질 저하는 필연적

정부가 2015년 6월 개정한 ‘건강보험 포괄간호서비스 사업지침’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7~14명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보호자/간병인 없이 환자를 원활히 치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 포괄간호서비스를 도입한 해외에서는 훨씬 높은 인력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간호사 1인당 환자수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주 4~5명, 호주 빅토리아주는 4~6명, 영국 최대 8명)
2013년부터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의료원에서는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 8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의료원에서는 부족한 인력으로 개인위생 등 간병업무를 처리하다보니 간호업무 자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높은 노동강도과 직무스트레스 때문에 간호사들의 사직·이직이 줄을 잇는 통에, 현재 포괄간호서비스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60% 이상이 근속 3년 미만이다. 의료서비스 질 저하와 환자안전 문제가 우려된다. 2차병원인 서울의료원에는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감안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제도가 본격 시행될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간호사 5만 명, 수급 방안은 노동조건 악화?

포괄간호서비스가 전국 시행에 필요한 약 5만 명의 간호사를 어떻게 충원할 것인지는 또 다른 핵심 쟁점이다. 지금도 많은 의료기관들이 간호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포괄간호서비스가 본격화되면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간호사 수급 방안은 간호대학 정원 확대였다. 그 결과 2000년대 연간 1만 명 정도 배출되던 간호사가 2015년에는 약 2만 명 배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간호사 면허자를 초과 공급하는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간호사가 많이 배출되더라도 실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1년 말 현재 간호사 면허등록자 28만여 명 중 실제 일하는 간호사는 4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간호사에 대한 보상은 열악한데 비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2010년 말 기준 국민 천 명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이 6.7명인데 한국은 2.4명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국민 천 명당 병상 수는 9.0병상으로 OECD 평균인 5.3병상보다 훨씬 많다. 한국의 간호사가 OECD 평균의 4배가 넘는 병상을 맡고 있는 것이다. 많은 간호사들이 식사시간·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수인계·잔업 등으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또 다시 간호인력 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포괄간호서비스 시행 방안을 내놓았다. 간호사의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간호사 수급 문제의 해법은 간호인력개편과 야간전담간호사 확대다. 간호인력 개편방안은 간호조무사를 1급·2급 간호지원사로 전환하고 1급 간호지원사를 병원에서 간호사를 대체하는 인력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급을 늘림으로써 수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본 방향이 간호대 정원 확대와 같으며, 병원 간호인력의 교육·훈련 수준 저하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 저하 및 노동조건 악화의 위험도 존재한다. 야간전담간호사 확대는 포괄간호서비스와 관련하여 야간전담간호사를 많이 쓸수록 병원에 더 많은 수가 보상을 해주는 방안이다. 야간전담간호사는 의료서비스의 질과 무관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더 많은 수가를 보상해줄 이유도 없을 뿐 아니라, 간호인력 전반의 노동유연화를 부추길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시설과 재원 문제, 책임 회피로 일관하다

시설 문제를 살펴보자. 정부는 ‘포괄간호 수가에 시설개선 비용을 포함’시킴으로써 병원이 시설을 구축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건강보험 수가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의료행위가 이루어질 때마다 보상이 이루어지는데, 일회성으로 들어가는 시설개선 비용을 수가에 포함시키면 중복 보상이 발생한다. 두 번째로, 포괄간호서비스 관련 비용을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통해 전부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건강보험은 의료행위에 대해 보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공공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는 병원 시설에 대해서는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편 이번에 개정된 ‘건강보험 포괄간호서비스 사업지침’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시설 관련 규제가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에 포괄간호서비스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간호인력 채용 및 병동 환경 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는데, 바뀐 지침에 따르면 ‘간호인력의 채용 계획 및 병동 환경 개선 계획의 수립’만 있으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구축해야 하는 시설 항목을 ‘선 필수’, ‘후 구비’, ‘권장사항’으로 나누고, ‘선 필수’ 항목만 구축하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병원 중심의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병원들은 강제되지 않는 한 의료적 필요보다 수익 논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 메르스 사태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서비스 질과 직결되는 시설 문제를 병원 자율에 맡기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원 부분을 살펴보자.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포괄간호서비스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 지급되는 포괄간호입원료를 30~40% 인상했다. 정부 계획대로 전국 모든 병원에서 포괄간호서비스가 적용될 경우 매년 3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정부는 재원 마련에 대한 특별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모든 재원을 건강보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대신 정부 지원을 줄이려 하고 있는데, 국민 건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 같은 경향이 포괄간호서비스 도입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포괄간호서비스제도, 보건의료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

한국에서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주변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 환자 치료에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간병 인력을 마련해야 하는 고통까지 더해진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노동자에게도 하루하루는 고통의 시간이다. OECD 평균의 4배 이상 환자를 혼자 담당해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병원은 ‘의료인으로서 전인간호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최대한 빨리 그만두고 떠나야 하는 직장’일 뿐이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이러한 약점이 메르스 사태에서 ‘감염에 취약한 병원 환경’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그러나 환자, 보호자, 병원노동자에게 매일매일 지속되는 고통은 어쩌면 메르스 사태와 같은 재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끝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의미에서 포괄간호서비스는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다. 부족한 인력 기준은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하고 환자-병원간 불신을 조장할 것이며, 병원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조건을 하락시킬 것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적 책임 회피는 향후 보험료 인상이라는 형태로 다시금 환자 부담 증대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으며, 안일한 관리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 저하도 우려된다.
애초 포괄간호서비스는 2007년 보호자없는병원 시범사업, 2010년 간병서비스 제도화 시범사업, 2013년 환자안심병동, 2013년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 등 각종 시범사업을 통해 현실 적합한 형태를 시험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시범사업을 통해 인력, 시설, 재정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그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해결해나갈 것인지가 중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포괄간호서비스 조기 전면 도입을 추진하면서 이를 고용창출 전략으로 포장하고 하고 있다. 2015년 7월 27일 발표한 ‘청년 고용절별 해소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포괄간호서비스 확대를 통해 1만 명의 간호인력 채용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포괄간호서비스가 벌써부터 보건의료정책이 아니라 노동 정책에 종속되고 있다.

환자와 노동자 입장에서 살펴본 포괄간호서비스 구축의 원칙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성급하게 제도를 시행하면서, 예상되는 문제들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하는 전개다. 포괄간호서비스 제도가 환자와 노동자 모두를 위해 올바르게 정착되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원칙 하에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 포괄간호서비스는 고용정책이 아니라 보건의료정책으로 사고되어야 하며,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고질적인 문제인 간병 문제 해결, 그리고 의료서비스 질 개선을 위한 핵심 과제인 간호인력 확충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제도 설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포괄간호서비스 병동의 간호인력은 현재 설정된 수준보다 더욱 많아야 한다. 그 기준 또한 단순히 병원 규모 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중증도와 질병 종류 등을 고려한 환자 집단 별로 세분화되어야 한다. 인력 기준 마련에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셋째, 잘못된 간호인력 수급 방안을 수정해야 한다. 간호인력 수급 문제는 간호사 면허 공급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간호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간호인력 개편방안 및 야간전담간호사제도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포괄간호서비스 시행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적 책임성 및 관리감독 책임을 더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제반 비용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만 의존해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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