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86호 | 2017.04.26

민중 건강권 관점에서 평가한 한미 FTA 5년

보건의료팀
4월 18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 중 연설에서 한미 FTA를 개혁(reform)하겠다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보고서(2017 Trade Policy Agenda and 2016 Annual Report)에서 한미 FTA 후 적자폭이 급증했다는 객관적 수치를 제시했을 뿐 한미 FTA 전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던 바 있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방한하여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확인시켜주는 대가로 한미 FTA 개정을 통한 실익을 챙기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미 FTA 이후 늘어난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한국에 유리한 협정인 것일까?

1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환영행사에서 연설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출처: 연합뉴스]

한미 FTA 평가,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는 3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FTA 5주년 평가에서 양국 모두 상대국 수입시장 점유율과 투자액이 상승하여 윈-윈(win-win)효과를 달성하였으며, 특히 한국은 자동차를 비롯하여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증가세에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3월 10일 발간한 연구보고서 ‘한미 FTA 5주년 평가와 시사점’에서 양국 모두 한미 FTA를 통해 호혜적 성과를 달성했으며, 대미 수출입업체들의 한미 FTA에 대한 만족도와 활용도가 높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들을 통해 한미 FTA가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양국의 무역수지를 따지는 이러한 평가기준은 한미 FTA의 본질을 가린다. 사회진보연대는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한다는 측면에서 비판한 바 있다.(자세한 내용은 [참고자료1]을 보라) 실제로 한국에서는 2010년 당시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 ‘유통산업발전법’과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이 한-EU FTA에 위반한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해당 법안들은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관료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이 연출되었으며, 행정부 관리가 국회 입법권을 사실상 제한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자본의 자유와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무역협정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메탈클래드사(社)는 자연보존지역으로 설정된 멕시코의 산루이포토시주에 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기 위해 NAFTA에 의거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했고, 이에 중재판정부는 멕시코 정부에 1.6억 달러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중재판정부는 해당 환경규제의 입안 동기가 공공의 복리였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멕시코 정부의 조치가 투자에 미친 영향만을 고려했음을 명시했다. 또한 미국의 초국적 기업 렌코는 페루에서 제련공장을 운영하면서 납, 카드뮴, 비소 등 독성 중금속을 다량 포함한 분진을 배출했다. 이들 물질은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강을 오염시켰다. 결국 이 지역 아이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수준의 납중독에, 어른들은 폐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환경오염도 크게 악화되어 해당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지역민들은 렌코사를 상대로 미국 미주리주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렌코는 이에 반발하면서 미-페루 FTA를 이용해 페루 정부를 상대로 손해를 대신 물어달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렇게 민중의 삶을 다방면으로 파괴하는 FTA를 무역량 증가나 무역수지 따위로 평가할 수 없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평가는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어떤 것도 기업의 이익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윈-윈 효과’는 한국과 미국이 아닌,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사이의 이야기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결과

한미 FTA가 발효된 지 겨우 5년이 지난 상황에서 다방면으로 그 영향을 평가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보건의료분야에서의 영향을 가능한 수준에서 검토해보자. 의약품 분야에서는 먼저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전에는 제네릭 의약품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으면 먼저 허가를 받고, 이후 소송에서 특허권 침해가 인정되면 허가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특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제도의 핵심인 ‘판매금지’와 ‘우선판매품목허가’는 FTA 발효일로부터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5년 3월 13일부터 시행되었다. '판매금지'는 오리지널 제약사가 제네릭 의약품의 품목허가 신청 사실을 통보받고 판매를 금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최대 9개월 지연되어 약품비 지출이 증가하게 되었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특허에 먼저 도전하여 판매권을 획득한 제네릭 의약품에 독점권을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9개월 지연(요양급여 신청 약제인 경우 최대 2개월까지 연장)되어 역시 약품비 지출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약품비 지출 증가분은 모두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재정과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약품비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악화는 건강보험 보장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민간의료보험 확대로 이어져 의료민영화를 앞당길 것이다.
식약처가 2016년 발간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영향평가’를 살펴보면, 2015년 3월 13일부터 2016년 5월31일까지 오리지널 2개 약품에 대해 판매금지 된 19개의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금지 기간은 1.4개월로 약품비 지출이 최소 1억7,700만원에서 최대 3억4,200만원 증가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해가 이 정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규모는 커질 것이다. 캐나다는 부당한 판매금지로 제네릭 제약사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오리지널 제약사가 배상하도록, 호주는 제네릭 제약사, 정부, 주, 지역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오리지널 제약사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근거 없는 판매금지로 인한 손해가 국민에게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어떠한 규정도 없다.
또한 영향평가 보고서는 우선판매품목허가의 결과로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빨라지면서 약품비 감소의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특허에 먼저 도전한 제네릭 의약품에 독점권을 줌으로써 증가한 약품비는 분석하지 않는다. 게다가 ‘판매금지’와 관련된 심판 및 소송 13건 중에서는 10건에서 제네릭 제약사가 승소했고, ‘우선판매품목허가’와 관련된 심판 및 소송 101건은 모두 제네릭 제약사가 승소했다. '판매금지'가 특허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지만, 실상은 그 특허권의 대부분이 근거가 없다는 증거이다. FTA가 얼마나 특허권의 과도한 확대와 보장을 요구하는지 잘 보여준다.
국민들의 약품비 지출은 늘어난 반면 미국과 한국의 제약기업들은 ‘윈-윈’하고 있다.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입은 한미 FTA 발효 전 2011년 6.1억 달러에서 2016년 11.2억 달러로 2배가량 늘었다.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신청한 제약사 중 매출액 상위 5개 제약사의 신청건수가 전체의 28.4%로, 대형 제약사일수록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이용해 제네릭 독점권을 더 많이 얻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한미 FTA가 민중건강권에 미칠 영향

허가-특허 연계 제도 외에도 한미 FTA는 자료독점권을 확대하고,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민중의 의료 접근권을 침해한다. 민간의료보험을 포함한 금융상품을 규제하기 어렵게 만들어서 보험회사가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의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 대비 지급률을 낮게 유지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수 없어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에게 돌아간다. 금융기관의 정보를 국내외로 이전하는 것 또한 허용하고 있어서 국민의 개인질병정보가 민간보험회사를 통해 어디로든 유출될 수 있다.
또 한미 FTA는 보건의료를 유보항목으로 두었지만,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서의 영리병원과 원격의료는 예외로 하고 있어서 규제 완화를 되돌릴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은 현재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동해안권, 충북 8곳으로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다. 주주들에게 이윤을 배분하기 위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어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의료양극화를 심화시키더라도, 원격의료가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다.
폴란드 정부는 1999년에 PZU라는 가장 큰 공공의료보험의 지분 30%를 네덜란드 회사인 Eureko에게 팔았다. 2001년에는 아예 PZU를 상장회사로 만드는 민영화 계획을 추진했고, 그럴 경우 Eureko는 21%의 지분을 추가로 얻어 최대주주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러자 Eureko는 네덜란드-폴란드 투자협정에 의거해 소송을 걸었고, 폴란드 정부는 2009년에 18억 5천만 유로의 특별 배당금을 Eureko에게 지급해야만 했다.
2008년 미국 의료경영법인인 CHC(Centurion Health Corporation)는 캐나다에서 민영헬스케어 시스템을 개설하고자 하는 계획이 캐나다 정부의 규제 때문에 좌절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중재로 종결되었지만, 캐나다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 민간보험회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캐나다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례는 자유무역협정이 공공의료를 위협한 주요 사례로 평가받는다. 나아가 캐나다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은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유보조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완전 경쟁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자리 잡았다.

민중의 관점에서 한미 FTA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미 FTA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혁이 의미하는 바는, 양국간의 협정으로서 한미 FTA가 ‘이익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을 바로잡아서 미국의 이익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한미 FTA가 양국 모두에 ‘호혜적인 성과’를 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의 결과 어느 한 쪽이 ‘이익’을 보았다거나, 양국이 ‘호혜적으로 윈-윈’했다거나 하는 평가는 한미 FTA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한미 FTA의 핵심은 기업의 소유권에 방해되는 모든 정부 규제의 철폐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민중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한미 FTA가 어떻게 ‘개혁’되든지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자본의 소유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은 일관되게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미 FTA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완화, 민간의료보험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정책, 개인의 질병정보를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도입 등 민중 건강권을 훼손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보건의료분야에서의 이러한 정책 흐름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를 강화하는 한미 FTA의 본질적 측면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한국 자본에게, 혹은 미국 자본에게 더 유리한 협정이라는 식의 왜곡된 계산법이 아니라,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협정, 그리고 그 국내적 재현으로서 규제완화 흐름을 막아내고 역전시키는 운동적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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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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