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91호 | 2018.01.17

[건강보험①]
건강보험 적자위기론,
진실은 무엇인가?

보건의료팀
2018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자로 돌아선다. 작년 3월 열린 25차 재정전략협의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국민연금·군인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장기요양보험) 중기 재정추계’에 따르면 그렇다. 당장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016년 3조원 수준의 흑자를 포함해 현재 건강보험의 누적흑자는 20조 원에 가깝다. 그러나 지출이 점차 더 많아져서 수입을 앞지르는 당기적자가 매해 지속되면 누적흑자는 줄어들 것이다.

2018년은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계산하는 해다. 이를 통해 2018년부터 2087년까지 70년간의 8대 사회보험의 재정추계를 계산한다. 당장 적자인 장기요양보험, 2018년 적자가 될 건강보험, 2020년 적자가 될 고용보험은 제도변경요인을 고려한 보완추계를 실시하기로 했다. 제도변경요인을 고려한 보완추계란 보장성 규모·의료수가 인상수준·보험료율 조정 같은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재정을 재추계하는 것이다.

이른바 ‘문재인케어’를 둘러싼 쟁점에서 이미 건강보험은 전쟁터다. 앞으로 사회보험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복잡해 보이는 건강보험 문제, 어떻게 봐야 할까?

건강보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단순한 산수 문제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노인 1인당 의료비를 알면, 향후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비가 얼마나 증가할지 추정할 수 있다. 재정 추계에 따른 해법도 마찬가지다. 적자가 2조 원 발생할 것 같으면, 지출을 1조 원 줄이고 수입을 1조 원 늘리면 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첨예한 경제적·사회적 쟁점이 숨겨져 있다. 지출을 1조 원 줄인다고 했을 때, 그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 환자의 개인 부담을 높일 수도 있고, 병원 수가를 줄일 수도 있고, 약제비를 줄일 수도 있다. 환자의 개인 부담이 높아지면 가격이 오르는 효과가 발생해 병원 이용이 줄지만, 그만큼 병원 이용에서 불평등 문제가 생긴다. 아픈 걸 참다가 건강 상태가 나빠져 더 큰 비용의 치료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병원 의료수가 인상을 억제할 경우 의료자본의 이윤은 줄어들 수 있지만, 병원이 이윤보전을 위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수입을 늘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고지원을 늘릴 수도 있고, 건강보험료의 사용자 부담을 늘릴 수도 있고, 보험요율 전체를 높일 수도 있다. 더 넓게 보면 한국경제의 성장 전망, 직장가입자의 임금 추이, 출산율과 사망률에 따른 고령화 속도, 만성질환 관리에 따른 의료비 절감 등 다양한 변수가 개입된다.

이렇게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한국의 경제사회구조 전반의 전망을 둘러싼 문제인 동시에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다. 단순히 보험료를 얼마나 더 높이고, 누구에게 보험료를 더 걷을지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둘러싼 쟁점은 한국의 경제사회구조와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와 함께 다뤄야 한다.

문재인 케어와 건강보험 재정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월 ‘의학적 비급여 완전 해소’라는 방향을 강조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문재인케어’다. 보수 언론은 재정이 파탄 난다고 호들갑 떨며 비판한다. 건강보험 적자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케어에서 제일 큰 문제는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다. 의료기기 기업과 제약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다. 적절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비용 효과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신의료기술과 신약에 예비급여라는 명목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의료산업에 대한 보조금 정책이나 마찬가지이고, 세금과 건강보험료로 제약기업의 임상시험을 지원해주는 꼴이다. (자세한 내용은 《민중 건강과 사회》 89호, “문재인케어 최대 수혜주는 줄기세포주?”를 참조)

한편 문재인 정부는 의료수가도 인상하고 건강보험료도 인상했다. 그간 사회운동에서는 건강보험 누적흑자를 보장성 강화에 사용하라고 요구했는데, 실제로 정부는 흑자 일부만 사용하면서 동시에 보험료를 인상했다. 비급여 급여화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와 갈등이 생기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 재정이 정말 필요한 곳에 잘 쓰이고,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높이는 것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앞으로도 첨예한 쟁점이 될 것이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병원을 이용하는 대다수 노동자의 가계에도 중요하지만, 매출과 이윤은 양보할 수 없는 민간보험·의료기기·제약회사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산업 활성화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더욱 복합적인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보험의 진실

적자 위기 담론은 장기적인 경제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건강보험을 둘러싼 계급적 이해관계를 은폐한다. 객관적인 재정 문제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수입과 지출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자 간 이해관계도 빼놓아선 안 된다.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은 앞으로 5회에 걸쳐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한 총체적 문제에 대해 《민중 건강과 사회》를 통해 연재 기고할 예정이다.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보험은 정말 적자가 될 것인가? 왜 적자가 발생하는가?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주는 한국 사회경제구조와 의료비 전망을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둘째, 건강보험 정책 결정을 둘러싼 각 행위자의 이해관계와 요구를 살펴본다. 특히 자본주의적 의료체계 재생산에도 계급역관계가 작동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병원자본과 제약·의료기기 자본이 건강보험 정책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노동자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살펴본다. 셋째, 의료계의 주장대로 건강보험 수가는 정말 낮은가? 건강보험의 건강보험 보장성과 보험료,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 정책 결정 구조와 그 결과물인 정책을 평가해본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 전망과 사회운동의 대응 원칙이 무엇일지 점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 연재가 모두가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한 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건강보험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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