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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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관지를 발간하며 선배들의 기관지를 열어 본다

임필수 | 계간 사회진보연대 편집장
새로운 기관지를 발간하면서, 과거 운동가들은 어떤 기관지를 내었나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발간된 기관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에는 조선공산당이 발간한 『불꽃』이 있다. 발행지는 경성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 상해에서 발간되었다. 1926년 7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조선공산당 선언」은 조선의 정세에 대한 분석, 조선의 운동에 대한 평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평가를 보자. 
 
강절도가 처음 조선을 점령하려 할 즈음부터 약간의 혁명단체와 용감한 개인들이 일본 약탈가들에게 대하여 결사의 투쟁을 개시하였다. 이 개인들은 단독적이 아니요 점차 장성하여 나가는 군중의 불평만을 용감하게 표현한 자들이다. 그러나 조선 피압박민족의 의용아들의 차등 부등적의 개인적 결투가 전신을 무장한 일본제국주의와 투쟁하여 승리의 종결을 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노력군중은 자력으로써 일어나지 아니하고는 약탈자의 총검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며 개인 의협가의 용감적 습격이 조선군중에게 하등의 자유를 주지 못할 것이다.
 
또한 선언은 3·1 운동에 대한 평가도 제시한다.
 
1919년 3월 1일 세계제국주의 약탈전쟁 후 조선민족은 미국자본가들이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조선문제를 정당히 해결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제국주의의 배척을 평화적 시위로써 하여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에서 퇴거하라고 소리만 쳤다. 이 운동은 약탈과 강도에 대한 자연배척으로 되었고 하등의 조직적이 아니었으며 또 외인의 원조를 믿는 턱없는 망상을 가지어 미리부터 실패의 길로 나선 것이요, 조선민중은 이 망상에 대하여 무상의 대가를 지불하였다. (…) 3·1운동은 실패되었으나 조선민족의 해방투쟁은 일보 앞으로 나섰다. 그것은 조선군중을 정치적 생활로 환기하였고 또 일본 군벌들이 칠천 오백여 군중과 함께 외원의 환상까지 학살한 까닭이었다. 이로부터 조선혁명운동은 신경로를 얻게 되어 군중 자력으로써 투쟁하였으며 또 투쟁상 조선민족의 기본적 군중되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민족운동을 자립적으로 진행하였다.  
 
3·1운동이 민족운동의 큰 걸음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운 이념과 정세인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운동가들이 보기에 내적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다. 어쩌면 새로운 세대가 바로 3·1운동에 참가한 가장 젊은 세대에 속했기 때문에, 평가가 더 날카롭고 비판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926년에 출발한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는 조선 운동의 역사에 대한 냉철한 평가로부터 자신의 과제를 더 분명히 도출하고자 했다. 

기관지 사례를 또 하나 살펴보자. 1936년, 이재유는 이관술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결성하면서 『적기』를 발행했다. 국내, 그것도 경성에서 합법적으로 출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석유상자로 등사판을 만들고, 축음기 침을 철필로 썼다. 그 발행부수도 매우 적었다. 1호가 20부, 2호가 15부, 3호가 10부였다. 열악한 조건에서 대량발행을 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보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적기』의 맨 끝에는 “읽은 후에는 반드시 소각하자”, “한 부를 잃는 것은 반동”이라고 명시했다. 그래서인지 안타깝게도 『적기』의 실제 발행본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재유는 『적기』가 장차 ‘조직자이고 선동자이고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처음에는 발행부수가 매우 적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확한 분석과 방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관지는 아니지만 마지막 사례를 보면, 박헌영은 1946~47년 기간 동안 ‘운동사 3부작’이라고도 불리는 세 편의 팸플릿을 발간했다. 『동학농민란과 그 교훈』, 『삼일운동의 의의와 그 교훈』, 『시월인민항쟁』이다. 이 중에서 『삼일운동의 의의와 그 교훈』은 1947년 2월에 쓰인 것으로, 3·1운동이 벌어진 지 벌써 28년 가까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운동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당시의 문제, 즉 해방 이후 남한운동의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정치세력의 양분화에 주목했다. 한편으로는 33인으로 대표되는 민족부르주아에서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 친일지도자, 나아가 해방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반대하고 3·1운동을 과대평가하는 우익 정치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설정했다. 또 한편으로는, 동학농민항쟁에서 3·1운동, 1946년 10월 인민항쟁으로 이어지는 반대 계보를 제시하며, 당면 운동과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운동사의 흐름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비판적 평가, 적확한 정세인식과 운동방침,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기관지가 추구해야 할 과제다. 이번 기관지는 그 출발점으로 지난 10년간의 사회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특집을 기획했다.

김동근은 「반보수전선이라는 막다른 길」을 통해, 지난 10년간 박근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반신자유주의 전선이 소실되고, ‘반보수전선’이 이를 대체했다고 진단한다. 2008년 광우병 촛불,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2010년 지방선거를 거쳐,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을 꼼꼼히 짚어보면서, 어떻게 민주당 포퓰리즘이 다시 정치적 복권에 성공했나를 설명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민중운동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박준형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 평가」에서 지난 10년의 노동조합 운동을 다른 각도로 평가한다.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는 중화학공업의 위기와 실업증가로 나타나고, 노동조합 운동의 현 상황은 심각한 임금격차로 표현된다. 노동조합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 임금격차와 고용불안을 보수정부의 정책 탓으로 돌리는 손쉬운 길을 선택했을 뿐, 주체적 대응을 위한 집단적 노력을 모아내지 못했다. 보수정부에서 ‘촛불’ 정부로 바뀌었다고 이런 문제가 기적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진 지금 상황에서, 저자는 지난 10년간 노동조합이 무엇을 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재 과제를 추출하고자 한다.

김유미의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는 2016년부터 새롭게 부상한 여성의 담론과 행동 중에서 가장 가시적이고 강력한 흐름을 ‘전투적 여성주의’라고 명명한다. 18~19세기 프랑스 혁명기나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페미니즘부터 20세기 말의 ‘글로벌 페미니즘’까지 역사를 고찰하며, 한국에서 나타난 전투적 여성주의의 특징과 그 배경을 분석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투적 여성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여성 범주를 배타적으로 강조하면서 여성 문제 외에 모든 정치성을 제거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성의 분노, 저항의 정당성이 운동의 방식과 결과를 모두 정당화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적 교훈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을 위한 기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쟁점분석’은 최근 사회운동의 관심을 모으는 주제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기획했다. 한지원의 「저임금·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은 부제가 밝히듯이 최저임금 정책과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고용과 임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저임금과 임금격차의 원인을 분석한다. 김진현의 「포퓰리즘의 무기, 현대화폐이론」 역시 마르크스 화폐이론에 근거해서 최근 유행하는 현대화폐이론(MMT)을 비판한다. 어찌 보면 현대화폐이론이 제시하는 허상 그 자체보다, 이를 믿고자 하는 정신적 분위기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즉 국가가 무한정 돈을 풀어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적 해결책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는 분위기는 곧 포퓰리즘 정치가 배양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사’는 한국 사회운동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기획했다. 첫 번째로 나가는 글은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역사와 평가①」로 다음 호까지 두 번에 나눠 실을 예정이다. ‘서평’은 독자들의 독서에 도움을 주고자 기획했다. 김태훈의 『세계경제사』, 김정래의 『균열일터』 서평 각각은 현재 세계 경제성장의 양극화와 정체, 일터의 균열을 다룬다. 기실 두 현상이 분리된 현실일 수 없을 것이며, 종합적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간하는 기관지는 통권 167호다. 사회진보연대 출범 직후인 1999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모든 기관지를 통틀어서 다시 통권의 번호를 매긴 것이다. 구성과 형식을 달리 하여 새롭게 내는 기관지인 만큼 많은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독자의 매서운 비판이 모두 고마운 약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세상에 내보낸다. 편집진 모두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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