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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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어떻게 노동의 사회성을 파괴하는가

김정래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하청, 도급, 위탁, 파견근로, 외주화 등 일자리가 잘게 쪼개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게 벌어지는 바위 틈에 빗대어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이 쪼개진 일터를 ‘균열일터’(The fissured workplace)라 한다. 대기업이 핵심역량 집중을 통해 수익을 얻는 동시에 상품과 서비스의 외부이전이나 고용 털어버리기를 통해 비용을 절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꿩먹고 알먹기식의 일거양득 행태다. 연구·개발, 기획·마케팅, 디자인, 제품혁신, 브랜드 가치 제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비핵심적인 업무는 잘라내는 것이 기업 비즈니스 방식의 본질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 거대기업의 진화에 대한 저자의 기본관점은 신제도주의 주요 개념인 거래비용이다. 거래비용이란 부품·원자재 조달, 생산과 유통과정에 드는 모든 비용을 말한다. 거래비용 경제학에 따르면 거래비용의 최소화가 조직구조 효율성의 관건이 된다. 특정 상황 하에서 시장을 통한 거래비용이 더 큰 경우 기업이라는 조직이 효율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직통합을 통해 거래비용을 내부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갖춘 20세기 초 미국 거대 법인기업이다. 이와 달리 최근 아웃소싱으로 대표되는 균열일터는 거래비용의 외부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직통합의 대표적 사례는 20세기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제너럴모터스다. 제너럴모터스는 수십개의 부품·조립회사를 인수·합병하여 부품업체-완성차-판매망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했다. 균열일터의 대표적 사례는 글로벌 공급사슬 전략에 의존하고 있는 애플이다. 설계와 디자인, 품질관리는 애플이 맡지만, 100개가 넘는 협력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중국내 폭스콘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한다. 세계 최고의 IT 제조기업이 공장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 모든 제품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구조다.
 

거대 법인기업의 탄생


와일은 균열일터 이전에 형성된 미국 현대기업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기업들은 철도, 증기선, 전신의 보급과 혁신적인 생산기술로 거래비용을 낮추었고, 이는 생산비 절감을 가져옴으로써 사업규모 확장으로 이어진다. 제조업체들은 높은 시장점유율,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절감이라는 선순환의 이점까지 누렸다. 비교우위를 점한 기업체들은 ①규모와 범위의 경제운용에 충분한 생산시설, ②국내외적 마케팅 및 유통 네트워크, ③생산과 유통을 조율할 경영시스템에 투자하는 한편, 이 세 가지 요소의 통합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1900년대 초반 독과점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대기업과 근대적 경영의 부상은 사업소유권 측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가족이나 내부 투자자들에 의존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대규모 주식발행과 융자를 통해 자본 한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주식과 자본시장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기업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데 공헌했다. 

근대적 경영방식으로 성장한 대기업은 내부 노동시장에 힘입어 기술 습득, 안정적 승진체계, 직원 충성도를 강화시켜나갈 수 있었다. 내부 노동시장으로 진입한 노동자는 누구나 고용안정성과 체계적 임금 인상, 명확한 승진요건을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대기업 노동자는(노조 유무와 상관없이) 다른 중소기업 근무자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았으며, 월등한 복지혜택과 근무조건을 누렸다. 노동자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1935년 전국노동관계법(NLRA) 통과를 필두로 노동자 수와 노조가입 노동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해, 법안 통과 당시 총고용의 7%에 머물던 수치가 1954년에는 35%까지 올라갔다.

이러한 제반 요인을 배경으로 대기업은 20세기 전반부터 제조, 통신, 식품 생산, 소매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생산 및 유통 규모와 정교한 조직체계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특정 생산라인과 브랜드, 경쟁력 있는 주력 분야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노사관계 시스템과 정교한 내부 노동시장은 상대적 안정성을 특징으로 한 상품 및 자본시장이라는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라는 압력 하에서 1970년대부터 드러난 새로운 변화 조짐은 미 경제 핵심 부문이 전 세계적 경쟁과 맞닥뜨리면서 기존 체계의 근간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환경적 요소가 극적으로 변모하자 근무조건을 포함한 회사의 기본 전략 일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균열일터가 발생하게 된 원인 


와일은 일터가 균열하는 것을 자본시장의 요구, 기술혁신의 효과라는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한다. 자본시장의 요구란 주주이익의 극대화다. 1970년대 중반 이래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의 핵심 제조업 수익성 악화와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강화되면서 대기업들이 경영전략을 대대적으로 변경하게 된다. 기술혁신의 효과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수집·처리·공유)비용과 물류비용이 하락하고 공통 통신, 표준기준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웃소싱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20년간 진행된 조율비용의 근본적인 변화(산술속도와 기억장치의 획기적 발전, 바코드·GPS·전자센서 같은 신기술 도입, 그리고 다량의 정보 공유기준 마련)는 기업이 회사 테두리 안과 밖에서 각각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핵심역량 추구와 그 영향


균열일터라는 현상은 회사들이 핵심역량에 집중하는 동시에 고용문제를 털어버리게 만든, 두 가지 상호 연관된 변화를 설명한다. 회사들은 경쟁시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가 있는 핵심역량에 관심과 자원을 집중해야 하며, 그 외 모든 것은 재평가해야 한다. 균열일터의 영향은 3단계로 나타난다. 첫째, 핵심역량 추구는 공룡기업의 해체로 이어지면서 보다 집중화된 회사로 전환을 의미한다. 둘째, 인사, 회계, 재무, IT 같이 필수적이지만 지엽적이라 판단되는 활동도 점차 외부로 이전되었다. 셋째, 집중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핵심역량 자체에 속하던 활동들까지 더 이상 안전할 수 없게 되었다.

성공적인 균열은 하위업체가 기업의 핵심역량(예를 들어 브랜드 이미지, 제품 품질, 조율 효율성) 토대를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균열 과정에서는 일을 맡기는 쪽(주인)이 다른 한 쪽(대리인)을 이용하면서 직면하는 어려움, 즉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외부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은 외부업체에 기준을 명확히 전달하고 그 준수 여부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대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외부업체가 따라야 할 기준과 정책은 다음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①기대하는 바를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알린다. ②기준 이행 여부를 확인할 점검 및 감사체계를 갖춘다. ③기준 위반 시 치러야 할 불이익을 제시한다. 

균열 요인들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하청계약, 아웃소싱, 임시직 활용 증가)은 기업의 인건비 절감이라는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 노조 결성을 막으려는 기업의 장기적 노력이다. 둘째, 실업보험, 산재보험 등 필수 보험료와 퇴직금 각종 민간 보험료를 외부로 이전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 목표는 기업의 책임 최소화이다. 고용에는 재해와 질병, 사망뿐만 아니라 차별, 성희롱, 부당해고 등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균열일터가 어째서 지속적으로 확산·심화 되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균열 현상에는 본질적으로 그보다 더 미묘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균열일터의 임금결정 


대기업이 과거 내부노동시장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대기업이 균열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금에 적용하는 두 가지 공정성 개념(수평적 평등과 수직적 평등)을 다시 한 번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생산성이 상이한 개인들에게 일관성 있는 인사정책 및 단순화한 보상구조를 적용하는 건, 20세기 대기업에서 직원들 사이의 마찰을 줄이는 핵심 요소이다. 대기업은 비슷한 위치의 사내 직원들에게 일관된 보수를 지급함으로써 수평적 보상 문제를 그럭저럭 넘겨왔다. 임금에 대한 만족 여부는 유사한 직무/위치뿐만 아니라 위아래와의 비교도 중요하다. 대규모 조직에서 이 같은 수직적 형평성 문제는 까다롭고 복잡하다. 제조업계 노조와 회사는 이 문제를 단체교섭(대개 상대적 임금은 그대로 놔둔 채 전체 임금체계의 점진적 상향조정)을 통해 해결한다. 수직적, 수평적 형평성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은 조직 내 모든 직급에 대한 임금 수준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경향을 보였다. 즉 대기업 임금 프리미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회사 자체의 경계선을 변화시킴으로써 임금을 차별화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 고용주는 서로 다른 공급업체 간 일거리 경쟁을 유도하고, 수행능력 평가/성과를 바탕으로 대금을 지급하게 된다. 다시 말해 대기업에 직접 고용된 경우에 비해 직원별 ‘한계생산성’을 보다 확실히 반영해주는 효율적 해결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기업은 고용에 따른 임금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에 따른 가격을 책정하게 되는 셈이다.

균열일터는 비즈니스 구조의 근본적 혁신 전략을 반영한다. 일을 다른 업체에 넘김으로써 비용과 책임을 줄이는 한편, 품질과 기술적 요건, 브랜드 신망은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특정 활동을 털어버리는 결정이 초래한 결과가 임금, 보호, 혜택, 안정성의 기회를 낮추는 것이라면, 그 사회적 비용은 다른 누군가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균열일터의 여러 모습 : 하청, 프랜차이징, 공급체인


이제 균열일터의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알아보자. 균열 전략의 일환인 하청의 이점이 명확해지면서 균열일터가 전 사업 부문에 확산되고 있다. 

먼저 하청조직 균열구조는 단계가 낮을수록 경쟁적이다. 신규 업체들의 진입장벽이 낮고, 성과가 비교적 쉽게 측정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2차 단계(그리고 그 이하 단계)의 조건은 대단히 가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하청업체로 분산될수록 조율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안전과 건강 위험 증가, 사망사고 발생 등 사회적 문제와 비용을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및 무선통신의 성장 과정에서 대규모의 인프라 확충이 요구되면서 기지국 철탑 건설과 유지관리 업무가 다단계 하청으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미국의 대형 통신사는 터퍼라 불리는 대형업체(프로젝트 관리업체)에 하청을 주고, 터퍼는 일정기간에 걸쳐 건설 및 유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철탑에 올라가 부품을 교체하는 등 현장업무는 터퍼 아래 다른 하청업체가 맡고, 또 다른 하청의 하청업체가 현장업무를 나누어 맡는 시스템이다. 통신회사의 다단계 하청은 기지국 철탑 현장 전반의 통제 부실, 안전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 통신회사인 AT&T의 2006년 기지국 철탑 노동자 사망 사고는  다단계 하청 관계로 인한 업무조율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으로 프랜차이징은 기업으로 하여금 강력한 브랜드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건비를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는 특유의 이점 때문에 패스트푸드, 호텔, 홈헬스케어, 청소용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브랜드 이름과 이미지 보호가 경쟁전략 핵심이자 운영방식의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가맹점들은 영업이익과 달리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지불하기 때문에, 본사가 매출증가분(수입)에 따른 재정적 이익을 얻는 동안 가맹점들은 이윤(비용을 제외한 수입) 극대화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이러한 복잡성은 임금과 복지혜택에 대한 하향 압력, 최저임금/초과근무 등 광법위한 근로기준 위반으로 이어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규정과 이에 대한 법적 해석은 대개 프랜차이즈 본사를 노동자에 대한 가맹점의 행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판단한다. 심지어 프랜차이즈법 및 상법은 다른 모든 측면에 기준을 부과하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역점으로 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기업이 일거양득을 꾀할 수 있게 만드는 균열일터의 근본적인 딜레마다. 

또한 새로운 정보기술, 컴퓨터 가격 하락, 공통 통신기준 채택, 국제 로지스틱스 개선, 글로벌 제조기지의 부상 등으로 오프쇼어링(국제하청)이 발 빠르게 확대되었다. 특히 최근 의류와 전자업계에서 하나의 룰처럼 자리잡은 사례는 사실상 전 생산과정을 해외 외부업체에 이전시킴으로써 회사는 생산개발, 연구, 마케팅, 소매 유통의 중심추 기능만 맡는 것이다. 글로벌 전자업계 선두기업들은 소수의 주요 공급업체들을 네트워크의 척추로 삼아 활용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체인 또한 제품이 표준화될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대기업과 먼 층위로 내려갈수록 손에 쥐는 이익은 점점 더 줄어든다. 글로벌 공급업체 사업장들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글로벌 공급업체인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여러 건의 노동자 자살사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2년 방글라데시 대형 의류회사인 타즈린 패션에서 일어난 공장 화재 사건으로 11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종이신문 산업이 소위 존재론적 위기에 처했다. 신문사는 비용절감을 위하여 인쇄 부문을 하청업체에 아웃소싱하거나, 전면 디지털 출판사로 탈바꿈하고, 타신문사와 공동편집본을 발간하기도 한다. 소위 “콘텐츠 팜(콘텐츠 농장)”을 활용하는 모델은 웹이나 하청업체가 수집한 정보로 기사를 쓰는 프리랜스 리포터를 동원하는데, 저너틱이 그러한 아웃소싱의 대표적인 예다. 저너틱 모델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일터 문제를 넘어 보도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모아지고 있다. 기사가 해당지역에 정통한 기자들의 수작업이 아니라 웹을 통해 조각조각 꿰어맞춘 데이터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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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의 분석은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의 전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다분히 묘사적이다. 왜 미국기업들은 규모와 범위의 경제에서 비용절감의 경제로 변화해야만 했는지, 또 그런 변화가 실제로 국민경제와 기업에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됐는지를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일의 분석은 기업조직 변화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적 관점에 따르면 기업조직의 변화는 자본축적의 변화에 조응하는 하나의 제도다. 거래비용의 내부화나 외부화는 개별기업 차원의 혁신 이전에, 총자본이 수익성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균열일터의 주요내용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반작용하는 제도라는 관점에서 간단하게 살펴 보겠다.
 

거래비용의 외부화 : 자본생산성 하락의 외부화


규모와 범위의 경제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었던 기업들이 변해야만 했던 원인은 자본생산성의 하락과 관계있다. 투자 자본 대비 순부가가치 생산액인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면, 임금으로 분배되는 몫을 줄이지 않는 이상 이윤율은 하락한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기업들은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 생산을 증가시킬 수 없었다. 기술진보의 곤란함 탓이다. 자본주의적 기술진보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그래서 자본투자만큼 충분하게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지 못하면, 반대로 말하면, 노동생산성 상승에 필요한 자본투자의 양을 줄이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게 된다. 기업들은 필사적으로 노동과 자본을 동시에 절약하는 기술진보에 매달리지만, 기술진보에는 한계가 있다. 산업혁명 같은 급진적 기술진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일상적인 기술진보 시기에는 노동을 절약하기 위한 자본투자가 충분한 노동생산성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1960년대 미국 기업들이 부딪힌 한계는 바로 이것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산업혁명이 효과를 다하면서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수직계열화로 생산범위를 넓히는 20세기 미국 기업의 조직형태는 자본생산성이 상승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유효하다. 만약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면 자본투자를 필요로 하는 생산증설이나, 자본집약도를 높이는 수직계열화 모두 수익률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거래비용의 내부화로 인한 이득보다 자본생산성 하락의 손실이 더 커진다. 

이런 점에서 와일이 거래비용의 외부화라고 분석했던 것은 실은 자본생산성 하락을 외부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웃소싱은 대부분이 자본투자로 노동생산성을 올리기 어려운 부분에서 이뤄진다. 앞에서 아웃소싱의 예로 본 통신철탑 관리는 전형적으로 자본투자로 노동생산성을 올리기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체가 작업공수가 많은 부분을 중소기업에 하청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원청 또는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분업을 나누어 상대적으로 자본생산성을 높이기 쉬운 부분을 자신이 담당하고, 반대로 자본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부분을 하청과 중소기업에 떠넘긴다. 이런 조건에서 이윤의 더 많은 부분을 원청에, 손실의 더 많은 부분을 하청에 남긴다.
 

균열일터의 임금결정:
사회적 생산성의 개별화와 다수 노동자의 배제


국민경제의 생산은 복잡한 분업을 통해 이뤄진다. 국민경제의 생산성 역시 이 복잡한 분업이 얼마나 잘 돌아가느냐, 각각의 직무들이 제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노동생산성에 비례하는 임금은 사실 노동자 개별적으로 크게 차이가 날 수 없다. 조금 더 힘들거나, 조금 더 기술과 노하우를 갖춰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 일정 정도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그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중반 선진국 경제가 성장할 때 임금이 상당하게 평준화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의 중요한 특징은 노동생산성의 이런 사회적 성격을 해체한 것이다. 자본생산성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운 기업 내 분업을 기업 외부로 내보냈고, 하청 기업은 저생산성에서 이윤을 내기 위해 임금을 하락시켰다. 외주화로 인한 분업의 분절화가 원청〮하청 간의 고생산성-고임금, 저생산성-저임금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외주화를 통해 총자본은 결과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를 봤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발생한 임금분배율 하락도 이런 결과 중 하나일 것이다.

와일은 이런 변화를 자본이 회사의 경계를 바꿔 대기업의 임금 프리미엄을 없애는 과정이었다고 분석한다. 와일은 한계생산성과 한계비용이 개별 노동자에게 각각 존재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옳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집합적 과정일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생산성은 특정 산업분야에서 평균적으로 산출할 수밖에 없다. 물론 노동자 개인 간 숙련도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진화경향이 그 숙련도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임금격차의 점증은 대체로 부적절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균열일터는 정확히 말해 일터의 균열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균열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유연화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약화시켜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평준화된 임금을 추구하는 것을 막았고, 비정규직 같은 반실업자를 양산해 노동자가 서로 일자리를 두고 이전보다 더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사회의 균열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노동자의 균열을 제도화한 것이다. 
 

해법


저자는 균열일터 개선방안으로 고용의 기본 정의 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제고, 공공정책의 중요성 강조, 법/제도 개선, 일터의 노동 환경 개선을 제안한다. 하청업계 복수 고용주 책임확대나, 공동 고용관계로서 본사의 포괄적인 책임도 필요하다. 기업이 보건안전 분야의 위험 감소를 위해 하청업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공정책을 통해 기업이 이런 능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대기업의 사업경계선 변경과 고용 변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공공 및 민간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자 스스로가 일터 권리에 대해 알고 위법한 문제에 대하여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일터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개선방안은 사실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균열일터는 단지 기업의 “악의적 동기”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균열일터를 “시장과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전략”이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그 시장과 기술변화를 추동하는 근본적 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균열일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기업조직을 변화시키는 한 가지 모습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이윤율 하락을 반등시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이 발전한 결과다. 자본은 외주화, 더 나아가 사회를 균열시켜 위기를 벗어나보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듯이 자본의 시도는 점점 더 실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주제어
경제 노동
태그
균열일터,하청, 프랜차이징, 공급체인, 거래비용, 자본생산성 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