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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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성장과 쇠퇴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

김태훈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세 가지 질문


경제성장의 동력은 무엇인가?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은가? 경제사의 주요한 질문들은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문화이론 등 사회과학 전반을 관통한다. 또한 당대 정치·사회운동의 쟁점이 된다. 단적으로 『자본』이 대표하는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경제학 비판이 바로 그러한 이론적·운동적 쟁점을 만들었다. 

마르크스주의 내의 정치적 쟁점도 어떤 면에서는 경제사가 쟁점이었다. 20세기 초 자본주의 붕괴논쟁이나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 논쟁 역시 역사와 정세에 대한 판단과 그에 따른 혁명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로버트 C. 앨런의 『세계경제사』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책은 작고 얇다. 영국 옥스포드 출판사에서 “아주 짧은 입문” 시리즈 중 하나로 기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가의 책답게, 작은 분량에도 현재 경제사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들에 대한 저자의 연구와 입장이 잘 담겨있다. 또한 입문서답게 기존의 연구에 대해 본문에서 알려주고, 추천도서 목록도 소개하면서 다음 독서로 안내해준다. 

우선 『세계경제사』의 주요 내용을 세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정리해보자. 첫째, 왜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는가? 둘째, 왜 1820년대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국민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는가? 셋째, 국민소득 격차의 확대에서 왜 동아시아는 예외가 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세계경제사 서술의 방법론으로 앨런이 채택하는 기술진보에 대한 거시경제적 설명을 살펴보면서 한국경제 현실에 대한 함의를 정리한다.


영국의 산업혁명 


앨런은 경제성장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지리, 제도, 문화 각각을 경제성장의 근본적 요인으로 제시하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리는 중요하지만 지리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 문화 역시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경제적·법적 제도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데 영국의 제도가 우월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절대왕정과 동양의 제도 역시 실제로 성공적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앨런은 불균등 발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기술변화, 세계화, 경제 정책에 주목한다. 

산업혁명 자체가 15세기 말 첫 번째 세계화의 결과다. 전장범선의 발명과 대양 항로의 개척은 제국을 향한 쟁탈전을 촉발했다. 초기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 뒤 네덜란드와 영국이 이러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은 네덜란드를 제압하고 제국을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식민지 사이의 무역은 도시와 수출 주도 제조업을 성장시켰다. 영국은 가장 급속하게 도시화되었다. 농촌의 비농업 인구 비중은 32%였는데, 대부분 제조업에 종사했고 생산물은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영국,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도시화와 농촌 제조업의 성장은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임금을 끌어올렸다. 또한 도시와 고임금 경제의 발전은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농업혁명을 촉발한다. 나무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탄이 이를 대체했고, 식자율(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수 있는 성인 인구 비율)이 높아졌다. 상업과 제조업의 확대가 교육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고임금 경제가 이를 위한 돈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은 전 유럽적 현상이었고, 상류층들의 관심은 보편적이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이 왜 영국에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면 독특한 임금과 가격구조를 검토해야 한다. 고임금과 값싼 에너지에 기초한 영국 경제에서는 기업들이 혁신적 기술을 발명하고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앨런은 여기서 각국의 ‘실질 임금’을 비교하기 위해 특정 시점의 각국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최저생계 수준의 몇 배인지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1500년대 후반까지 자본서비스의 가격과 비교한 임금 수준은 유럽 전역에서 비슷했으나 18세기 중반에는 영국이 대륙 국가들에 비해 60% 더 비쌌다. 또한 영국 북부와 중부의 탄광 지역은 에너지가 세계에서 가장 쌌다. 이러한 결과 영국 기업들은 값싼 에너지와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해 값비싼 노동을 절약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자본과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자 영국 노동자는 더욱 생산적이게 되었다.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노동이 쌌기 때문에 생산을 기계화할 인센티브가 적었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같이 포용적 제도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영국의 민주주의와 과세제한(국왕은 의회 동의 없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사유재산권의 안정성이 기술혁신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앨런은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당시 영국의 선거에는 영국인의 3~5%와 그보다 더 적은 스코틀랜드인만 참여할 수 있었다. 영국 의회의 권력은 오히려 프랑스 왕보다 더 권한이 강했고, 프랑스 정부에 비해 일인당 거의 2배의 세금을 거뒀다. 대부분의 자금은 군대로 들어갔는데 이러한 지출이 경제 성장을 촉진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주의가 고임금 경제를 만들고, 고임금은 앞서 살펴본 노동절약적 기술변화를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  
 

표준모델: 미국과 서유럽의 모방전략 


1815년부터 1870년 사이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대륙으로 성공적으로 확산된다. 영국은 ‘산업화’를 위한 정책을 펴진 않았지만,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영국의 성공을 모방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19세기 경제 발전을 위한 여러 경제정책이 등장했다. 당시 표준적 발전 전략은 네 가지였다. 첫째, 역내 관세를 철폐하고 교통을 개선하여 전국 시장을 대규모로 창출한다. 둘째, 영국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도입한다. 셋째, 통화를 안정시키고 기업에 자본을 제공하는 은행을 설립한다. 넷째, 대중 교육을 확립한다. 

이러한 전략은 미국에서 성공적이었고, 서유럽에도 도입된다. 1870년대가 되면서 북미와 서유럽은 영국과의 기술 격차를 없앴고, 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영국의 생산수준을 넘어선다. 1880년 영국은 전 세계 제조업의 23%를 생산했지만, 프랑스, 독일, 벨기에는 모두 합해서 18%, 북아메리카는 15%였다. 1913년에는 유럽 3개국의 비중이 23%로 높아졌고, 같은 시기 북아메리카 비중이 33%로 높아진 반면, 영국은 14%로 하락했다. 미국은 기술수준도 명백히 영국을 추월해 기술 선도국이 되었다. 자동차, 석유, 전기, 화학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산업들이 발전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하던 19세기에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중국, 오토만, 러시아 제국은 몰락한다. 산업혁명 이전 중국의 법제도는 유럽에 필적했고, 재산권은 안정적이었으며 시장도 유럽만큼 발전했다.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일어난 것은 제도나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기술변화, 세계화, 국가정책 때문이다. 서구의 산업혁명은 아시아의 제조업자들을 경쟁에서 패하도록 만들었다. 임금이 낮은 인도에서는 방적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차이는 유럽의 생산성을 높였다. 여기에 증기선과 철도의 영향으로 운송비용이 하락하면서 세계 경제는 더 긴밀히 통합되었다. 아시아와 중동에서 제조업이 사라지면서 노동력은 농업에 재배치되었다. 식민지 국가들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시행한 표준발전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도 못했다. 20세기 중반 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전통사회를 ‘현대화’하는 문제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 국가들의 환경은 19세기 세계화와 서구 산업 발전과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것으로, 결코 전통적이지 않았다. 세계화와 결합된 편향적 기술 변화는 유럽국가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아시아 경제를 탈산업화한다. 

그 결과 1820년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국민소득 격차는 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계속 벌어졌다. 1820년에 가장 부자였던 국가들이 그 이후에도 가장 많이 성장했다. 유럽과 북미, 호주는 1820년부터 2008년까지 국민소득이 17~25배 증가했다. 동유럽과 대부분 아시아 지역은 같은 기간 국민소득이 10배 증가했다. 남아시아, 중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1820년에도 가장 가난했고 같은 기간 국민소득 증가도 3~6배에 불과하다. 이러한 소득격차에도 예외가 존재하는데 일본과 이를 따라간 한국, 대만의 사례다. 소련도 불완전하지만 성공 사례에 속하며, 중국도 이러한 사례를 따라가고 있다.  
 

표준모델의 실패: 라틴아메리카 수입대체 산업화의 실패 


19세기 미국과 서유럽에 성공을 가져다 준 표준모델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효성을 상실했다.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 일본, 라틴아메리카에서 변형된 표준모델은 얼마간 성공을 거두었지만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기에는 모자랐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 수요는 인구를 완전히 고용할 만큼 충분히 증가하지 않았다. 노동자 임금은 최하수준에 머물고 심각한 불평등과 정치적 불안정이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의 수입 대체 산업화는 표준모델의 가장 최근 사례다. 19세기 말부터 시도했고 1980년대까지 유지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었으나 동시에 대외부채도 늘어났고, 1980년대 이자율 상승과 함께 외채위기, 심각한 불황에 빠지며 표준모델은 한계에 직면한다. 이러한 실패는 기술 변화 같은 근본요인을 반영한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 임금격차가 확대되면서 고도 자본집약적 기술은 가난한 국가들에겐 점점 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동차와 같은 20세기의 신기술은 공장의 규모가 개도국 시장에는 너무 큰 규모였다. 아르헨티나의 자동차 생산비용은 미국보다 2.5배 더 높았다. 19세기 북미는 관세를 통해 자국 면직물 산업을 보호하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19세기 면방적 공장은 시장 규모가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자국 자동차 산업을 성장시키려 했던 수입대체공업화 전략은 실패했다. 
 

빅푸시 산업화의 성공: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 몇몇 국가는 빠른 경제성장률을 통해 서구 선진국과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한다. 그 방법은 선진국 경제의 모든 요소, 예를 들면 제철소, 발전소, 자동차 공장, 도시 등을 한꺼번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빅푸시‘(Big push) 산업화가 성공하려면 계획기구가 경제 활동들을 조정하고 그 활동들이 반드시 실행된다고 보장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계획적 산업화는 통상산업성(MITI)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생산규모의 문제를 해결한다. 1950년대 MITI는 은행 통제 권한과 외환 분배 결정권을 바탕으로 모든 철강이 효율적 규모의 제철소에서 생산되도록 철강산업을 구조조정했다. 동시에 이 철강 수요를 보장하기 위해 조선, 자동차, 기계, 건설 산업에서도 대규모 자본집약적 기술을 도입한다. 고용확대에 따른 소득 증가를 통해 자국 내 소비를 보장했고, 냉전시기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미국 시장에 철강, 자동차, 소비내구재를 수출할 수 있었다. 1990년 경 일본은 자본집약도, 생산성 등에서 서구와 격차가 사라졌고 선진국의 성장 속도에 수렴하게 된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의 빅푸시 산업화를 그대로 따랐다. 

중국은 더 흥미로운 경우다. 중국은 계획시기(1950~1978년)에 소련 노선을 따랐고, 1978년 점진적 개혁을 도입했다.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성공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자극하는 제도 개혁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기의 기술 발전 때문이기도 하다. 농업 산출 증대에 개혁이 꼭 필요했는지, 개혁 없이도 가능했을지 알기는 어렵다. 

중국에서 기술 변화의 특징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생산요소 구성에 적합한 기술의 발전을 반영한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향진기업’은 값싼 노동을 소비하는 기술을 채택해 고용을 창출한다. 중국의 제도개혁은 다른 가난한 국가의 제도보다 더욱 우월하지는 않다. ‘썩 좋지 않은 시장제도’에도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 계획시기의 유산이나 중국 사회의 다른 특징, 정책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발전을 가져오는 최선의 정책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의 특징: 노동생산성의 양극화


지금까지 정리한 역사를 다시 이론적으로 요약해보자. 앨런은 쿠마르와 러셀의 연구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그들은 1965년과 1990년, 57개국의 노동자당 자본과 노동자당 산출, 즉 노동생산성의 분포 변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의 양극화가 정형화된 사실임을 보여준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 바로 그림1이다. 

이 그림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노동자 일인당 자본이 많아지면 노동자 일인당 생산도 더 많아지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런데 노동자 일인당 자본이 더 많아질수록 곡선은 더 평탄해진다. 마치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처럼 일인당 자본이 더 많이 사용되면 될수록 추가적인 일인당 생산이 더 어려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1965년 곡선은 1990년 곡선의 부분집합이다. 1990년의 국가별 노동자당 자본은 233달러에서 73,459달러 사이이며, 16개국이 30,000달러를 초과한다. 1965년에는 오직 2개국이 30,000달러를 초과했다. 30,000달러 이하로는 1965년과 1990년의 좌표점이 겹친다, 즉 이 구간에서는 그래프상의 상향이동이 없었다. 1990년대 국민소득 3만 달러 이하 국가들은 1965년대 같은 소득 구간 국가들과 노동생산성이 동일한 기술 수준을 갖게 되었다. 즉, 추격성장을 했던 국가들은 25년 전 성장하던 국가들보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기술을 발명하여 활용하지 못했다.

그림 2를 보면 1965년에서 1990년까지, 25년의 기간 동안 노동생산성의 분포는 평균수준이 낮은 단봉형에서 평균수준이 더 높은 쌍봉형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1965년에는 중간소득 집단에 속한 국가들이 많았지만, 1990년에는 두 개의 범주 즉 부국과 빈국으로 양분되었으며, 이것이 정형화된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기술진보가 자본집약도를 상승시킴으로써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는 경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기술은 오직 고임금경제에서만 발명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은 궁극적으로 고임금을 야기한다. 그 결과는 부국에서 나타나는 진보의 상승나선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승나선은 빈국에서 따라가기에 수익성이 없는데, 왜냐하면 빈국의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양극화다.  

기술진보에 대한 앨런의 설명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하락 경향의 법칙과 친화적이다. 편향적 기술진보를 통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이윤율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이윤율 하락은 경향적으로 관철된다. 이윤율 하락을 지연 혹은 반등시키는 반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마르크스가 법칙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술진보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기 때문이고, 역설적으로 그 기술진보의 결과로 이윤율이 하락한다.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향한 세 가지 경로: 효율성 개선, 자본축적, 기술진보


앨런은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서 쿠마르와 러셀의 생산 프런티어 개념을 도입하여, 노동자당 산출 향상을 낳은 세 가지 요인을 설명하고, 그에 성공한 국가들이 각각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를 살펴본다.

그림 3을 보자. 가로축은 자본집약도(노동자당 자본), 세로축은 노동생산성(노동자당 산출)이다. 1965년 당시 미국의 자본집약도는 약 18,000 (달러/노동자)이고 노동생산성은 약 28,000 (달러/노동자)이다. 이를 표시한 점이 미국-65다. 1965년에 각 자본집약도 수준에서 가장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이는 점을 연결하면 1965년의 세계 생산프런티어(점선)를 구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1990년에 각 자본집약도 수준에서 가장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이는 점을 연결하면 1990년의 세계 생산프런티어(실선)를 그릴 수 있다.

한 국가가 노동자당 산출을 증가시키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효율성 개선. 프런티어선 밑에 있는 국가는 프런티어를 향해 상승함으로써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 둘째, 자본축적. 어떤 국가는 프런티어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노동자당 산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셋째, 기술진보. 어떤 국가는 수직으로 도약하여 프런티어 선을 넘어 새로운 프런티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향진행에 성공한 국가의 경우도 고공비행자와 축적자를 구분할 수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 고공비행자라면 독일은 축적자다. 미국은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자당 자본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자당 산출에 도달했다. 미국처럼 기술변화가 크게 기여하는 경우, 발전궤적은 수직선에 가깝다. 한편 독일은 기술발전의 근본적인 동학은 비슷하지만, 자본심화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기여했고, 발전궤적이 수평선에 더 가깝다. 즉, 미국은 세계 생산프런티어의 가파른 상승선을 대표한다면, 독일은 상대적으로 평평한 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처럼 상향이동에 성공한 사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급속한 성장이 없는 느림보 국가가 존재한다. 인도는 1860년과 1990년 사이 자본을 거의 축적하지 않았고 성장도 별로 없었다. 인도의 1990년 자본집약도는 1,946달러고 노동생산성은 3,235달러인데 이는 1820년의 영국과 유사하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인도보다는 더 성장했지만, 선도자 경제를 추격하지 못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부국으로 분류될 수도 있었지만, 1965년 이후로 일인당 자본, 일인당 산출이 다시 후퇴하는 현상을 드러냈다. 
 

한국 경제의 추격실패와 구조적 위기


그렇다면 동아시아와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동아시아는 자본축적과 기술추격에 의해 급격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 과정도 차이가 있다. 윤소영은 쿠마르와 러셀, 앨런의 연구에서 빠진 한국에 대한 분석을 추가해, 한국이 일본과 독일, 대만의 기술추격에 미달한다고 분석한다. 그림6에서 일본-90, 대만-90, 한국-90을 살펴보면, 1965년의 미국에 비해서도 자본집약도는 높은 반면 노동생산성은 낮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의 한국의 고도성장은 ‘빅푸시 산업화’, 즉 자본축적의 기여가 중요했다. 이러한 결론은 경제성장을 요소투입과 총요소생산성으로 분해하는 성장회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지난 1971년부터 2005년까지 농업과 광업을 제외한 전 기간 누적 GDP 성장률은 매년 7.10%였고, 각각의 기여분을 분해하면 자본 3.15%, 고용 2.97%인데 반해 효율성, 기술을 반영하는 총요소생산성은 0.94%다. 

2005년까지의 성장회계를 분석해보면, 한국의 성장둔화는 외환위기가 아니라, 1989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생산성을 촉진하기 위한 손쉬운 접근법(외국 기술 도입, 농촌 인구 유입)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이미 성장이 둔화되었으나 1990년대 높은 투자율의 상승과 이를 통한  자본집약도 상승으로 성장률의 감소세가 지연되었다. 그러나 높은 투자율은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 특성은 향후의 전망으로 이어진다. 기술의 변화에 의해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더욱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자본축적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고 축적속도도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구론적 전환으로 노동투입은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다. 현재 수준의 총요소생산성을 가정하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에는 1-2% 수준, 2030년대에는 1%이하로 하락할 것이다. 3% 성장을 지속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사람중심 경제론이 2년 만에 파산한 배경이 바로 이러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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