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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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7-8.27호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의 현황과 전망

이세연 | 노동자의 힘
대우조선 노동조합에서 올 상반기 전개되었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은 이제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러 노동조합에서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산안부서의 직업병 인정 투쟁이 아니라 현장 투쟁의 하나로 사고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전, 충북 지역의 금속노조들과 마산, 창원 지역의 금속노조들이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에서는 7월말 일제히 집단 요양 투쟁 선포식을 진행하고 8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편 금속연맹 조선분과에서는 앞으로는 산재 처리를 개별적으로 하지 않고, 집단 요양 투쟁을 하기로 결의하였으며, 다른 여러 노동조합과 연맹에서도 집단 요양 투쟁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따라서 올 하반기는 대우조선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으로 시작된 투쟁이 하나의 단사 문제가 아닌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투쟁이란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근골격계 직업병을 가진 조합원을 찾아내어 집단적으로 요양 신청을 하고 실제 요양에도 들어가는 투쟁을 말한다. 조합원은 통원치료나 입원치료를 질환의 경중에 따라 조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당 사업장의 집단적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극명하게 폭로할 수 있다. 근골격계 직업병을 가진 개별 노동자가 요양을 신청할 경우 노동자 개인은 단지 스스로의 병에 관하여 진단하고 치료받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단적인 요양이 전개된다면, 개별 노동자가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직업병을 초래하고 계속해서 재발하게 만드는 인력 변동, 작업량 변동, 작업시간 및 휴식시간 변동, 임금체계 개편, 하청 등 고용 변동, 팀제나 직반체계의 변동과 같은 작업조직 변동, 신기술이나 신공정 도입 등의 집단적 작업 환경이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그 해결도 노동자 개인의 치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직업병을 초래하는 집단적 작업환경에 문제점과 개선책을 사회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 요양 투쟁은 현장의 노동강도 저지 투쟁의 실제적인 내용과 대응이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집단적 직업병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동강도 강화 요인에 대한 근절을 요구하는 투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근골격계 직업병은 개인의 요양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라도 집단요양 투쟁이 필요하다. 근골격계 직업병은 병의 특징상 일상적 신체활동과 작업환경 모두가 병의 발생 및 경과 만성화에 기여할 수가 있다. 즉, 자신의 취미로 등산을 하는 과정에서도 요추염좌와 같은 대표적인 근골격계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장시간 부동자세로 기계의 오작동을 감시하고 있기만 해도 같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발생한 질환은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 할 경우 만성적인 질환이 되고 치료는 점점 어려워진다. 물론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 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 노동자의 노동 조건이다. 휴식할 수 없는 노동 조건과 노동자를 둘러 싼 사회적 조건은 점점 노동자를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모든 근골격계 직업병의 발생과 악화가 작업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나 근로복지 공단은 절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가나 근로복지공단은 대부분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퇴행성 질환(나이가 들어서 걸리게 된 질환)이라거나 개인적인 활동의 결과라는 주장을 펴고, 이 때문에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질환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의학적 진단 과정에서도 직업병이라는 사회적 진단이 내려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개별적 작업환경(작업 자세, 반복 작업, 중량물 작업)의 문제로 인한 일부 질환들의 경우에는 직업병 진단이 용이하지만, 집단적 작업환경의 문제로 인한 질환의 경우에는 자본과 근로복지공단은 직업병 인정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따라서 노동자 개인이 산재요양 신청을 하고 이를 통하여 집단적 작업환경의 악화로 인한 직업병 발생을 증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즉 직업병 인정이 부결될 뿐 아니라 노동력이 상실하여 해고된다고 하여도 사회적으로 전혀 보상받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대우조선 집단요양 투쟁이었다. 집단적 작업환경의 악화인 노동강도 강화 요인에 대해 노조가 전체적인 조사를 수행하고, 한편으로 증상을 가진 개별 노동자를 검진하여 의학적 진단을 붙인 후, 이를 동시에 노동조합이 요양신청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근로복지 공단은 적극적인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즉 개별적 요양으로는 전혀 불가능했던 76명 전원의 직업병 인정을 쟁취하였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이 집단요양 투쟁에 돌입하기까지 대부분의 사업장은 이러한 방향을 공유하지 못 하였다. 이는 근골격계 직업병을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직업병이라는 사실보다는 개별 작업환경(작업자세/반복작업/중량물 작업)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사업장은 직업병 인정 자체를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과정으로까지 이해하고 오히려 공상처리 및 물리치료실 설치 등과 같은 비본질적인 합의 및 요구에 집착하기도 하였다. 가장 많은 경우는 검진 결과 이상이 발견된 노동자에게 개별적으로 산재요양을 유도하여 치료받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 노동자 개인에게 치료의 기회는 제공할지는 모르지만 실제 집단적 작업환경의 개선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었다. 특히 공상처리나 개별 산재처리를 해오던 사업장들은 최근 같은 증상이 재발되는 노동자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로부터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치료에만 급급했던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회사와의 합의과정과 조합원에 대한 교육이 집단 요양 투쟁이 아니었던 탓에 현재 그 방향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집단 요양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교육과 투쟁력 복원이 필수적이다. 조합원 모두가 자기가 어디가 아픈 지, 왜 아프게 됐는지,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와 개별 작업환경 실태 분석 및 근골격계 직업병의 유병율을 확인하는 조사와 설문 작업등을 거쳐야 하고, 직업병 발생자가 실제 요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의료진의 검진과 소견서 발부가 가능하도록 검진기관을 선정하고 실제로 집단 검진을 실행해야 한다. 대우조선에서 보듯 이 과정에서 회사측의 방해와 협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조합원이 집단 검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직반장을 동원한 협박과 탄압이 계속되고, 가족들에게도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회사의 협박과 탄압은 현장의 투쟁력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집단 요양에 돌입한 후에도 거부할 것이 뻔한 근로복지 공단을 압박하여 최대한 승인이 빨리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집단 요양 투쟁은 투쟁의 시작일 뿐인 것이다. 요양 승인이 쟁취되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 정부와 노동부를 압박하여 직업병 집단 발병 사업장에 대한 사회적 조치를 요구해야 하고, 집단 발병의 원인이 되었던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한 노동자 결정권(현장 통제권)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고 쟁취하여야 하며, 한편으로는 현장 내에서 노동조합이 사측에 요구하여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구체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요구를 제시하고 쟁취하여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올 하반기는 그 투쟁이 특정 작업장과 일부 업종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업종에 걸친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는 것을 노동계급이 공유하고, 그 해결은 노동자의 집단적 작업환경 개선과 현장 통제권 확대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공고히 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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