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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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

최저임금 인상·소득주도성장의 한계와 대안

한지원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1. 문제제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지난 2년간 반복적으로 논란이 됐었다. 정부와 노동운동 진영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개선, 임금격차의 완화, 심지어 경제성장(개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득(임금)분배 개선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이 그 이론적 근거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서는 경제학적 타당성과 실제 효과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다.

 

사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의 캠페인을 수용한 것이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개혁진영은 수년 전부터 ‘최저임금1만원’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최저임금 인상의 이론적 배경이었던 소득주도성장론 역시 국제노동기구가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캠페인으로 만든 임금주도성장론이다. 이것을 문재인 정부가 한국의 상황에 따라 변형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문 정부와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임금)주도성장론을 매개로 일종의 동맹을 결성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1930년대 미국 민주당과 노동계가 전국노동관계법과 케인스주의 수요이론으로 ‘뉴딜 동맹’을 맺은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저임금, 임금격차의 원인을 따져볼 때, 과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최저임금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 최저임금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저임금, 임금격차가 어떻게 이 정도로 심각해졌는지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일이다. 법적으로 임금의 하한선을 정하는 최저임금제도는 증상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지만 원인에 대한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저임금, 임금격차의 원인을 이론적, 실증적,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마르크스 경제이론을 분석틀로 삼아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 저임금 임금격차가 심각해진 원인을 이론적, 실증적, 역사적으로 분석해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이 저임금개선, 임금격차완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소득주도성장 동맹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2.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를 미쳤는가?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19년 최저임금을 각각 16.4%, 10.9% 인상했다.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에 이른다. 2년 이상 두 자릿수로 최저임금이 인상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기는 했다. 2001~02년에 31%가 인상됐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재만큼 논란이 크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의 수준이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5% 남짓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5%에 이를 정도로 많다. 숫자로 보면 약 500만 명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쟁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급격한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하면, 실업의 고통이 임금상승 효과를 반감시키고, 실업률 상승으로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 충분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도는 미만율이 높다. 최저임금이 높아져도 실제 임금인상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1) 고용에 미친 효과

 

(1) 실증분석의 방법론적 한계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의 상관관계 분석은 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은 집단(통제집단)을 통계적으로 만든 후, 그 통제집단과 최저임금이 인상된 집단(처치집단)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분석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최저임금 인상률이 다르다보니 근접한 상권에서도 행정구역을 사이에 두고 최저임금 인상률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경기영향, 업종특성, 노동시장상황 등 “다른 조건이 모두 같고” 최저임금 인상률만 다른 사업장들에서 고용변화의 차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법은 한국처럼 전국, 전산업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같은 경우 사용이 까다로워진다. 최저임금 인상을 제외한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상황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실증연구들은 나이, 성, 학력같은 인구사회학적 집단이나 산업같은 경제적 집단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다르게 받는다는 점을 이용한다. 예로 최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은 청년 노동자 집단과 그렇지 않은 중년 노동자 집단을 비교하는 것이다. 청년 노동자 집단의 고용감소가 더 컸다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이런 분석법은 다른 조건이 모든 같은 상황을 만드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청년 노동자 집단과 중년 노동자 집단은 최저임금 외에도 경기침체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전혀 다르다. 경기침체 시기에는 신규채용 축소로 기업들이 대응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없더라도 청년 노동자 집단이 중년 집단에 비해 고용감소를 더 크게 겪게 된다. 수출과 내수가 각기 얼마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지에 따라서도 수출제조업과 내수서비스업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내수서비스에서도 요식업과 사회복지업은 둘 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지만, 인구고령화의 영향이 전혀 다르다. 비교되는 집단들에서 “다른 조건이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실증연구들은 최저임금 인상 외의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통계학 방법을 이용한다. 집단별로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변화, 최저임금 인상과 관계없이 모든 집단에 영향을 주는 공통요인 등을 조사 집단에서 여러 방법으로 통제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통제할 변수가 많고 복잡할수록 통계적 결과와 실제 상황 사이에 차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호황과 침체의 차이, 수출과 내수의 차이, 업종별 직종별 차이, 내·외부노동시장 차이, 고용형태 차이, 연령·성별 차이, 임금수준 차이 등등 임금과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상당히 복잡하고, 변수들끼리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 

 

(2) 2018년 최저임금에 관한 실증연구들

이런 통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영향을 분석한 실증분석들이 여럿 나온다. 대표적인 연구 몇 가지를 살펴보자.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는 산업 집단 간에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 비율(최저임금 영향률)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량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했다. 데이터는 2018년 3월까지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를 이용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상관관계는 찾을 수 없었고, 다만 노동시간은 약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부경대학교 황선웅은 성, 연령, 학력별로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집단 간 고용률(임금노동자수/인구) 변화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2018년 6월까지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이용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전산업은 물론이거니와 개별 산업에서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서울대학교 김대일·이정민은 25~64세의 취업자를 성·연령별로 집단을 만들어 최저임금 적용률과 전일제(주 44시간)로 환산한 고용량 변화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2018년 12월까지의 경제활동인구조사와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이용했다. 이들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적용률 1%p 상승 시 고용이 0.15%p 하락했으며, 25~64세 근로자의 고용감소 효과 중 27%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 오상봉은 성〮연령〮학력〮지역별 집단을 나누어, 임금과 최저임금 격차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력을 추정한 후 취업자 수와 최저임금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2018년 상반기까지의 통계청 지역고용조사를 이용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전산업에 걸쳐서는 최저임금과 취업자 수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제조업, 도소매업, 운수업 등에서는 최저임금과 취업자 수 간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3) 실증연구 결과는 양쪽 모두 과장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에 관한 실증연구들은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결과와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결과로 나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최저임금 인상을 독립변수로 삼아 고용과 상관관계를 찾는다는 것이 한국의 조건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연구들이 사용한 표본조사들은 취업자를 소집단별로 잘게 나누어 분석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데이터이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만 존재하는 통제집단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무리수라는 것이다. 

 

예로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홍민기, 황선웅의 연구는 고용에 부정적 영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알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김대일·이정민의 연구는 특별한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을 분석에서 제외했는데, 이 집단을 분석에 포함할 경우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 결론에 적합한 통제집단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거시지표로 보면 고용사정은 2018년 들어 악화되었다. 2018년 실업률은 3.8%로 전년보다 0.1%p 증가했고, 고용률은 60.7%로 전년보다 0.1%p 감소했다. 2019년 1/4분기를 보면 실업률은 4.5%로 전년 동기보다 0.2%p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옹호하는 연구자들은 이런 고용부진을 최저임금 탓이 아니라 경기침체 탓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왜냐면 경기침체로 고용이 감소할 때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이 고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로지 최저임금 때문에 실업률이 상승했다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실업률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실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과장이기는 마찬가지다. 

 

2) 임금상승에 미친 영향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 얼마나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까지도 모호하다. 만약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할 경우 저임금 계층의 임금총액은 역으로 감소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위법 또는 편법(임금체계의 꼼수)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많아서,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에게 제대로 효과를 미치지 않을 수 있다.

 

(1) 임금격차가 줄었다는 분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은 2018년 상반기 지역고용조사와 2018년 8월까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자료로 임금격차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시간당 임금은 1~2분위 인상률이 12.5~13.5%로 3~10분위 인상률 5.6~8.7%보다 높았다. 다만, 임금인상액은 1~2분위가 648~ 829원으로 전체 평균 1004원보다 낮았다. 시간 당 임금기준으로 임금불평등(P90/10)은 4.10배에서 3.72배로 감소했고, 지니계수 역시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0.3169에서 0.3092로 감소했다.

 

(2)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표들 

그런데 위 연구는 고용감소(또는 노동시간 감소)가 있을 경우 발생하는 임금총액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인상에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봤듯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여 임금을 받는 노동자 자체가 줄어드는 경우다.

 

예로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를 이용해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대표 업종인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임금총액을 살펴보자. 명목임금총액증가율은 2017년 8%, 2018년 7%로 오히려 2018년에 증가율이 낮았다. 2013~17년 5년을 살펴봐도 임금총액의 연평균 증가율은 8%로 2018년보다 높았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3~17년 연평균 7%, 2017년은 8%였고, 2018년은 16.4%였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노동시간의 감소, 임시일용직의 증가, 상용직 증가세 둔화 등으로 고용의 양과 질이 나빠져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상쇄됐기 때문이다. 

 

임금격차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지표들도 여럿 있다. 예로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양 극단의 집단을 비교해보면, 5인 미만 상용직과 300인 이상 상용직의 임금 인상률 차이(5인 미만 상용직 임금 인상률 - 300인 미만 상용직 임금 인상률)는 2017년 2.9%p였으나 2018년 –0.9%p였고, 통계청 근로형태별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 차이 역시 2017년 2.9%p였으나 2018년 –0.8%p가 됐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집단과 고임금 집단 간 임금격차가 오히려 커졌다.

 

(3) 일자리 경쟁과 최저임금 미만율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이후 최저임금 미만율이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2018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살펴보면, 전년 동월보다 최저임금 미만율이 2.2%p 상승해 15.5%를 기록했다. 숫자로는 45만 명이 증가해서 311만 명이 됐다. 특히 최저임금 미만율이 급증한 부분은 도소매업(42만 명→49만 명), 숙박음식업(50만 명→59만 명), 보건사회복지(31만 명→35만 명) 등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편의점, 식당 알바로 상징되는 숙박음식업은 최저임금 미만율이 43%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당국의 처벌 의지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함의한다.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미만율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수용하는 것일까? 당연히 일자리가 부족해서다. 일자리 경쟁이 격해질수록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실업보단 낮은 임금을 수용하게 된다. 일자리 경쟁이 이전보다 치열해졌다는 것은 최저임금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집단에서 실업률이 증가한 것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실업률은 15~24세, 60세 이상, 여성에서 모두 각각 0.2%p 전년보다 증가했다.

 

3) 최저임금 인상의 해외사례와 시사점

 

(1) OECD 국가들의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생산성 증가

최저임금 인상의 해외사례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국민경제의 노동생산성 증가와 최저임금 인상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01~17년 기간 OECD 국가들의 명목 최저임금 인상률에서 1인당 명목GDP 증가율을 빼준 결과를 한 번 보자. (자료: OECD 및 World Bank에서 필자가 재구성) 참고로 1인당 GDP는 국민경제의 노동생산성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된다.

 

2001~17년 34개 국가의 최저임금·1인당 GDP 상승률 차이의 평균은 0.7%p였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생산성 상승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 해 차이가 커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몇 년에 걸쳐 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분포를 보면 이 기간 최저임금·1인당 GDP 상승률 차이가 ±1%p인 국가가 17개국이었고, ±3%p인 국가는 31개국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기간 차이는 2.3%p였다.  

 

이 범위에서 벗어나는 국가는 2000년대 고도성장, 고물가를 경험한 일부 동유럽 국가들뿐이었다.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의 경우 최저임금이 3년간 96%, 240%, 303%로 급격하게 인상됐었는데, 이들 나라의 경우 당시 최저임금 수준이 워낙 낮았던 상태였고, 1인당 명목GDP 증가율도 매우 높았었다. 예외적인 경제 상태에서 예외적인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진 사례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이 대체로 생산성 상승 수준에서 인상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고용에도 엄청난 부작용이 있었다는 연구는 세계적으로 특별하게 보고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저임금은 국민경제가 충분히 포용할만한 수준에서 인상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8년의 경우 1인당 명목GDP 증가율은 2.6%,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로, 그 차이가 13.8%p에 달했다. 2019년 역시 1인당 명목GDP 증가율 3% 이하를 예상하면, 최저임금 인상률 10.9%와 차이가 7%p 이상 될 것이다. 저성장, 저물가 상황에서 최저임금만 급격하게 상승한 것인데, 앞서 본 것처럼 이런 사례는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2) 시애틀의 사례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

미국 시애틀시(市)는 최저임금을 2015년에 16.2%(9.47달러→11달러), 2016년에 18.2%(13달러) 인상했다. 이는 고소득 국가에서 발생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란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참조할 사례로 많이 인용됐다.

 

시애틀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실증분석 연구는 대표적으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워싱턴주립대의 연구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 감소가 임금 상승보다 컸다. 그래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총액이 감소했다. 다른 하나는 버클리대학 연구팀의 연구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다른 인근 지역을 통제집단으로 만들어 비교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시애틀시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였고 고용은 감소시키지 않았다.

 

두 연구는 상반되는 결과를 내놓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을 관찰한 것이다. 영세하거나 파트타임 고용이 많은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또는 노동시간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이런 고용(노동시간) 감소를 다른 사업장의 고용, 노동시간 증가가 상쇄했다. 저임금-저생산성 일자리의 노동자가 중임금-중생산성 일자리로 이동한 셈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미친 영향은 이런 일자리 이동을 더 빠르게 만든 것이다. 워싱턴주립대 연구는 저임금-저생산성 부분의 임금총액에 초점을 뒀고, 버클리대 연구는 노동자의 일자리 이동을 포함해 노동시장 전체 변화에 초점을 뒀다.

 

시애틀시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최저임금 인상은 2015년 4월부터 최대 2021년 1월까지 5년 넘는 기간 동안 기업규모와 임금지급방식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졌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을 사전에 고려했다는 것이다. 둘째, 시애틀시 경제는 최저임금 인상을 충분하게 감당할 만큼 뜨거운 상태였다. 시애틀은 2010년대 미국 50대 도시 중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2015년 시애틀시 임금인상률은 3%로 전국평균보다 1%p 높았고, 고용증가율도 3.5%로 전국평균보다 1.5%p 높았다. 2018년 3분기 평균주급은 1544달러로 미국평균 1055달러보다 46%나 높다.

 

그런데 2018년 한국의 상황은 어떠했나? 시애틀시와는 정반대였다. 한국에서는 경기침체로 인해 고용증가가 둔화되는 조건에서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됐고, 충격을 완화할만한 사전 조치도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시애틀시 사례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을 정당화하는 사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4) 소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시장의 반격을 이겨낼 수 없었다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 이뤄진 우리나라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이나 임금격차 완화에 생각만큼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왜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간단하게 말해 최저임금이 시장을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1) 주류경제학 노동시장 이론의 평가

주류경제학의 노동시장 이론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사용자가 이윤 감소를 감당할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거나, 이윤이 감소하지 않는 조건이 만들어질 때만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신규채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해고로 인한 비용절감보다 신규채용 비용이 더 클 때, 저숙련 노동자라 하더라도 생산성이 증가할 때,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자동화가 어려울 때, 매출이 충분히 증가해 인건비 증가가 이윤을 감소시키지 않을 때 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 경제 상황은 위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최저임금 일자리 특성이 노동생산성은 좀처럼 상승되기 어려운 조건인데다, 키오스크 급증 현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서비스업 자동화 장비들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경기침체 때문에 매출증가로 인한 인건비 상쇄를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실업자가 늘고 있어 사업주가 신규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렇다보니 사용자가 최저임금 인상에 반작용해 고용을 줄이고,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덤핑하는 일이 발생했다.

 

(2)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평가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판하며,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 투쟁을 지지한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이론으로 볼 때 소득주도성장론을 근거로 한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이윤율 변화를 중심에 두고 경제현상을 분석한다. 이윤율은 투자자본 대비 이윤, 즉 투자자본의 수익성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주목하는 이윤율은 특히 생산과정에서 곧바로 회수되지 않는 설비, 장비, 건물 같은 고정자본의 수익성이다. 재료비, 인건비 같은 지출(유동자본)은 생산물의 판매를 통해 곧바로 회수되지만, 고정자본은 곧바로 회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이 비용의 회수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현대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고정자본으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그렇게 향상된 생산성에 기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고정자본을 투자하고, 또한 노동생산성 상승에 필요한 고정자본의 양을 줄이기 위해 기술진보에 매진한다.

 

이때 임금은 이윤율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윤율은 정의상 이윤분배율과 고정자본생산성(이하 자본생산성이라고 부른다.)의 곱이다. 만약 자본생산성이 그대로인데 임금만 상승하면 이윤분배율이 하락해 이윤율이 하락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임금 상승은 곧바로 자본에게 반격을 당한다. 이윤율이 낮아지면 자본의 투자도 감소할 수밖에 없어서다. 자본투자 감소로 실업자(산업예비군)가 증가하면, 실업자와 취업자가 일자리를 두고 이전보다 더 경쟁하게 되고, 경쟁으로 인해 임금이 하락한다. 즉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임금 상승은 실업이라는 피드백으로 인해 재조정된다.  

 

임금이 노동생산성과 함께 상승할 경우 이윤율은 하락하지 않는다. 자본생산성은 정의상 자본집약도당 노동생산성이다. 기업이 자본을 집적해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적 성장의 기본 경로다. 자본집적에 비례해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자본생산성은 하락하지 않고, 생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임금이 증가해도 이윤분배율이 하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법칙은 노동생산성의 범위 안으로 임금상승을 가두는 노동자 간 일자리 경쟁을 근간으로 한다. 

 

물론 마르크스가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은 항시 존재하는 실업(또는 불완전 취업자로서 비정규직)과 경쟁 탓에 노동생산성 증가보다 지체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고 기업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인상해주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성은 오로지 자본의 능력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노동생산성 증가만큼의 임금 상승은 노동자의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한다. 취업자와 실업자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경쟁을 완화하며 자본을 상대로 힘껏 싸워야 노동생산성 증가를 추격하는 임금인상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임금인상 투쟁은 결국에는 그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자본의 능력부족으로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면, 또는 노동생산성 이상의 임금인상으로 이윤분배율이 하락하면,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바로 자본의 반격에 부딪힌다. 마르크스는 이런 이유로 노동자는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지양하는 혁명적 실천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을 도식화하면 그림2와 같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론에 근거한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실업자 증가를 막지 못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최저임금 인상은 이윤분배율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는 자본생산성이 상승할 때만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한국 경제는 이미 오랫동안 자본생산성이 정체·하락하고 있다

 

(다음 장의 그래프 참조). 수년간의 경제성장률 둔화와 자본투자 감소는 한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이윤율 하락과 투자축소로 이어져 자본의 즉각적 반격, 즉 고용 감소와 실업자 증가를 야기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간 수익성 격차가 매우 큰 편이라, 이윤율 위기가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영역에서 더 심각해진다.

 

둘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취약 계층의 노동자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킨다. 노동조합이 취업자와 실업자 간의 경쟁을 완화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과 나머지 사이 노동조합 조직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일자리는 고용안정 제도와 노조의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런데 임금인상 투쟁은, 노조를 통해서든 아니면 호황으로 실업자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든, 결국은 일자리 경쟁을 완화해 자본의 해고 위협을 막아내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완전 반대다.

 

요컨대, 2018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시장을 규제할 수단이 부재한 가운데, 또는 시장의 법칙을 뛰어넘을 만한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힘이 부재한 가운데, 결국 시장의 반격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저임금 인상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3. 저임금·임금격차의 원인 

 

우리나라의 저임금, 임금격차 쟁점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성장과 분배에 관한 이론 쟁점이다. 분배 없는 성장으로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가 악화되었다는 분석과 성장이 없어 분배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분석, 이른바 선분배·후성장, 선성장·후분배 이론이 오랫동안 격돌하고 있다. 둘째, 한국의 저임금, 임금격차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유난히 심각한 이유가 쟁점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성이나 원·하청 관계가 지적되기도 하고, 한국 노동자의 저생산성과 생산성 격차가 지적되기도 한다.

 

1) 투자, 성장, 분배에 관한 이론들

 

(1) 소득주도성장론과 주류경제학 성장이론

소득주도성장론은 경제체제를 두 가지로 나눈다. 이윤주도성장체제와 소득(임금)주도성장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둘은 임금분배율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구분된다. 경험적으로 임금분배율이 증가할 때 경제성장률이 더 높아지면 소득주도성장체제이고, 반대면 이윤주도성장체제가 된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은 임금이 노동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상승할 때, 즉 임금분배율이 상승할 때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 소득주도성장체제다.

 

소득주도성장체제에서는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성장과 분배의 구분이 아예 필요 없다. 자본보다 노동자의 소득이, 고소득 계층보다 저소득 계층의 소득이 더 많이 증가하면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하니 말이다. 소비성향이 큰 계층의 소득 증가로 소비가 증가하면, 기업 매출(또는 가동률)이 증가해 인건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 이윤은 감소하지 않는다. 더불어 기업은 인건비 증가만큼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기 위해 기술혁신과 자본투자에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따라서 임금상승은 투자 증가와 노동생산성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임금인상과 소득격차 완화는 기업 이윤을 감소시키지 않으며 고용도 축소시키지 않는다. 임금분배율을 올리고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경제정책이다.

 

하지만 주류경제학 성장이론에 따르면 분배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인과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소득이 낮은 것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인데, 저소득 부분에 강제로 소득을 분배하면 생산성이 높은 부분에 오히려 자원이 덜 배분되어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 기업 투자로 노동생산성이 평준화되는 것이 소득분배 개선의 시작이다. 

 

저소득 문제를 개선하려면 노동생산성을 올릴 수 있도록 기업의 자본투자를 독려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소득을 강제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저소득 경제영역에서 자본투자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정부가 저자본-저생산성-저소득 영역에서 기업 투자를 독려하면, 자본이 부족한 영역에서는 적은 자본투자로도 생산성을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어 그만큼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

 

두 이론의 경제정책 차이를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도소매음식숙박업을 예로 설명해보자. 소득주도성장론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려 도소매음식숙박업의 노동자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 정책의 시작점이다. 소득 증가로 소비가 증가하면 도소매음식숙박업 같은 내수서비스 매출도 증가한다. 사업주들이 인건비 증가에 대응해 키오스크 같은 자동화 설비를 늘려도 매출 증가로 인한 신규인력 채용과 자동화 설비를 생산하는 신산업의 고용이 증가해 거시 경제 차원에서는 일자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주류경제학 성장론은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산적해 있는 기업 규제를 없애 자본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 진출을 확대하는 것이 정책의 시작점이다.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이 밀집해 있는 도소매음식숙박업에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같은 대기업 규제가 상당히 많다. 규제를 없애 대기업이 자본을 투자하게 되면, 이 부분의 생산성이 증가해 노동자 소득이 증가한다. 단기에는 자영업자 실업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후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증가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도 노동시장에서 다시 포용할 수 있다.

 

(2)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비판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성장과 분배에 앞서 투자와 성장의 관계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기술진보의 특징은 자본을 소모해 노동을 절약(노동생산성 향상)하는 편향성인데, 이때 자본 소모가 증가해도 노동이 충분히 절약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노동당 자본의 양(자본집약도)이 증가할 때, 노동당 생산의 양(노동생산성)이 그만큼 증가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자본당 생산의 양(자본생산성)이 하락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같은 전면적 기술진보가 있을 경우 자본투자 증가가 자본생산성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혁명이 매번 있을 수는 없으니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은 자본생산성의 하락이며, 산업혁명 같은 예외적 시기에만 이 경향이 뒤집힌다.

 

자본생산성이 정체·하락할 경우, 자본은 투자에 소극적이게 된다. 생산 중 이윤으로 분배되는 비율이 일정할 경우 이윤율도 하락한다. 그리고 이윤율 하락으로 투자가 감소하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실업자가 늘어 노동자의 일자리 경쟁이 격화되고, 임금 상승이 정체되며 경쟁이 심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간의 격차가 커진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론과 주류경제학 성장론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두 이론은 자본투자가 증가하면 노동생산성이 항상 충분히 상승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이 자본투자를 이끌어내 이윤율을 복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러한 전제가 더 강하다. 하지만 자본투자와 노동생산성의 선순환, 다시 말해, 자본투자가 자본생산성의 상승으로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은 예외적인 기술진보 시기에만 가능하다. 편향적 기술진보가 이뤄지는 일반적 시기에는 자본투자가 자본생산성을 하락시키고, 하락한 자본생산성이 자본투자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구조적 위기라고 불렀다.

 

한국의 자본스톡, 자본생산성, 경제성장, 그리고 분배율의 추이를 살펴보자. 경제성장률은 정의상 자본생산성증가율과 자본스톡증가율의 합이다. 참고로 여기서 다루는 경제는 민간경제만을 대상으로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정부부문은 시장 내에서 생산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재생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시장에서 생산된 부의 일부를 세금 형태로 이전받는다. 정부의 일은 시장의 생산으로 평가된다.

 

그림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대부분은 자본투자로 이뤄진 것이다. 정부 지원으로 기업들은 1990년대까지 자본생산성이 하락해도 자본투자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도 기술진보 또는 자본생산성이 성장을 주도하는 국면은 딱히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기술진보 없는 성장은 미국과 비교해 봐도 특이하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고도성장은 50년간의 자본생산성 상승이 배경이었다. 

그런데 기술진보 없는 자본투자는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1989~96년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우리나라는 3저 호황이 끝난 후 자본생산성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역으로 자본투자를 이전보다 더 늘렸다. 하지만 수익성 없는 자본이 증가한 탓에 외채 없이는 국민경제가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IMF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따라 혹독한 구조조정을 시행해야만 했다. 당시 구조조정은 금융시장 규제를 없애 금융의 원리에 따라 시장을 개혁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금융의 원리는 순수한 수익성의 원리다. 금융은 과잉자본을 과감하게 처리했고, 그 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시켰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미국에서 1970~90년대 한국과 비슷한 자본생산성 하락, 과잉축적 상황을 개혁하려고 만들어진 정책개혁 프로그램이다. 미국 경제는 1960~70년대 자본생산성이 정체·하락하는 가운데 자본투자가 오히려 급격하게 증가해 이윤율 위기가 심화됐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고자 1980년대부터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금융자본은 철저한 수익성 원리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유연화를 대대적으로 실시했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자본투자는 급감했고, 분배율은 자본에게 유리하게 변했다. 2000년대 자본스톡증가율은 1980~90년대의 1/3 수준으로 줄었다. 1980년대 이래 꾸준하게 증가하던 임금분배율 역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변했다. 자본생산성은 이전만큼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자본투자 감소의 영향으로 경제성장률은 4% 이하로 크게 하락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나라의 황금기는 과잉자본 위기가 심화되던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1987년에 노동자대투쟁으로 저임금 상황이 일부 개선된 조건에서, 1990년대 자본투자 증가로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이 만들어져 노동자 전체 임금이 꾸준하게 상승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이 부분을 오인하는 것인데, 임금이 증가해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했다는 식으로 인관관계를 뒤집었다. 

 

하지만 자본투자가 급감한 2000년대 들어, 임금분배율은 낮아지고, 임금 격차도 급속도로 커졌다. 자본투자 감소와 함께 실업자와 비정규직 같은 불완전취업자가 증가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정리해고제, 파견제 같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유연화 제도가 단기간에 임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었다. 만약 1990년대 초중반 같은 저실업 상황이 이어졌다면, 2000년대식 유연화는 지금처럼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토대는 충분한 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다.

 

참고로 임금분배율이 하락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임금분배율이 경제변화의 결정적 변수는 아니란 점에 유의하자. 임금분배율(또는 이윤분배율)과 자본생산성에서 후자의 변화가 이윤율 결정에 더 중요하다. 그림 4에서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임금분배율(또는 이윤분배율)로 경제변화를 설명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은 자본생산성을 상수처럼 취급하지만, 그림 4에서 1983~2016년 자본생산성의 분산이 1.5%인데 반해, 이윤분배율의 분산은 0.1%에 불과하다.

요컨대,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의 근본에는 자본생산성과 자본축적에 따라 변화하는 자본주의 동역학이 존재한다. 2000년대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자본생산성이 정체·하락하는 가운데 자본투자까지 급감하면서 취업자와 실업자 간 경쟁이 격화된 것이 핵심 원인이었다. 이 상황을 최저임금 인상 또는 기업규제 개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설사 가능하다 해도 1990년대 초중반처럼 이윤율 급락과 그에 이은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에 따르면, 구조적 위기 시기에는 시장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극도로 적어진다.

 

2)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에 관한 논의들

 

(1) 분절적 노동시장과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과 임금격차는 선진국 사이에서도 최고수준이다. 격차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남다르다. 이렇다보니 여러 연구자들은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에 주목해왔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분절적 노동시장과 불공정한 원·하청구조다. 두 분석은 모두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과 나머지의 임금격차에 주목하는데, 다만 전자는 노동시장 제도의 특성이 만드는 임금격차를 강조하고, 후자는 기업 간 거래의 불공정성이 만드는 기업의 지불능력 격차를 강조한다.

 

먼저 분절적 노동시장론은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기업 내부와 외부 또는 1차와 2차 노동시장 간에 격차가 유별나게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내부 노동시장에서는 기업의 규칙과 관행에 따라, 외부 노동시장에서는 기업과 노동자가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경쟁하며 고용과 임금을 결정한다. 물론 이런 내〮외부 노동시장이 우리나라만의 특성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노동시장에는 기업 내·외부 간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제는 둘 사이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예로 우리나라에서 내부시장의 대표적 사례라 할 대기업 남성은 평균근속이 10년 가까이 되는데 반해, 외부시장의 대표적 사례라 할 소기업 여성은 평균근속이 2년이 되지 않는다. 이런 고용 안정성의 격차는 당연히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 남성과 소기업 여성의 평균근속이 모두 약 7년 정도다. 당연히 임금격차도 한국보다 작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기업 내·외부 노동시장 격차가 커진 원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정도가 지적된다. 첫째, 강한 연공급 관행이다. 근속에 따른 임금커브가 가파를수록 기업 내 고용안정 수준이 임금격차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연공급 관행과 근속 격차가 결합돼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격차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의 결합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유연화는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하고 빠르게 이뤄졌는데, 기업별 노동조합은 자신의 기업 내에서만 신자유주의 개혁을 막을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유노조, 무노조의 경계를 따라 기업 내·외부 노동시장과 유연화 수준이 크게 분절됐다.

 

다음으로, 불공정 원·하청구조론은 대기업 원청과 중소기업 하청 사이에 기업 지불능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는 세 번의 계기를 통해 확대됐다. 첫 번째 계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노동조합 임금투쟁이 상대적으로 지불여력이 컸던 수출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 두 번째 계기는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노동집약적 공정을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에 외주화하고,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하청 쥐어짜기에 나섰다. 하청 중소기업에서는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고,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대기업은 소수의 정규직에게 하청에서 얻어낸 수익 일부를 배분하며 충성도를 높였다. 세 번째 계기는 세계 금융위기다. 세계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앞의 과정을 더욱 심화시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지불능력 격차가 이렇게 커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노동조합 운동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기업 간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임금격차를 줄이는 노동시장의 제도로서 역할하기 때문에 이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이 임금격차가 커지는 것을 견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임금격차가 벌어질수록 대기업은 저임금을 이용하는 외주화를 더 확대할 수 있었고, 이는 임금격차의 악순환을 키웠다.

 

(2) 마르크스 경제이론의 임금격차

마르크스 경제이론에서 국민경제의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동생산성에 비례하여 상승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생산성은 자본투자를 동반하는 기술진보로 상승한다. 경제학은 노동생산성을 노동자 개인의 속성으로 간주해 노동자 개개인의 임금격차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생산성을 자본의 속성으로 규정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자본의 지휘를 받아야만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이 자본을 지휘한다면 그 체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거나 노동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임금격차는 결국 자본의 격차를 반영한다. 노동자는 어떤 자본의 지휘를 받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되고, 사회적 위치와 소득의 수준도 정해진다.

 

한편, 계급적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자본의 격차가 노동자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동자를 조직하고 단결시킨다. 노동조합이 계급적 단결로 임금격차를 최소화하면, 자본 역시 그에 적응해 자신들의 격차를 줄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노동조합이 임금격차 축소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투쟁을 했는데, 기업이 자신들의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상황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발전할 것이다. 첫째, 임금격차 완화의 기준이 저생산성 기업이 되는 경우다. 임금이 하향평준화될 것이다. 둘째, 임금격차 완화의 기준이 고생산성 기업이 되는 경우다. 저생산성 기업이 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 노동조합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고, 후자의 경우 실업이 증가해 임금이 다시 하락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평등주의적 임금투쟁은 자본이 자신들의 격차를 완화할 수 있을 때야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 임금격차의 축소는 계급투쟁을 계기로 자본의 격차가 축소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본 분절적 노동시장은 자본의 격차가 노동시장 관행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높은 고용안정과 지속적 임금 상승을 보장하는 기업 내부노동시장은 당연히 높은 수준의 자본투자와 노동생산성이 보장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반대로 낮은 자본투자로 낮은 노동생산성이 재생산되는 기업에서는 지휘하는 자본도, 지휘 받는 노동도 장기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외부노동시장이라 불리는 경쟁적이며 유동적인 노동시장이 발달한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도 자본 간 격차를 표현하는 하나의 형태다. 원청이란 법적 특권을 갖춘 기업이 아니라 시장에서 우위에 있는 자본이다. 자본이 시장경쟁에서 우위에 서려면 생산성이 다른 기업보다 높아야 한다. 원·하청 구조는 높은 자본집약도로 생산성 우위를 달성한 기업이 하청이라 불리는 생산성 낮은 기업을 지휘하는 관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지휘 관계를 불공정이라 부르지만, 자본 간 격차가 시장의 우열 관계로 나타나는 것은 시장 원리에서 볼 때 그리 불공정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불공정은 원칙적으로는 경쟁 자체를 없애는 인위적 독점이나 시장 외부(국가)의 개입을 의미한다.
실제 사례를 한 번 보자. 자본의 격차로 인한 임금격차는 자본집약도와 임금격차의 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 노동자(또는 취업자) 당 고정자본의 양을 나타내는 자본집약도가 증가하면, 노동생산성도 그에 따라 상승한다. 자본집약도 격차가 벌어지면 임금격차 역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림 5는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도소매음식숙박업을 제조업과 비교한 것이다.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취업자 평균소득은 2016년 기준으로 연 1800만원에 불과하다. 제조업 취업자의 평균 임금 3900만원의 46%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임금, 중소기업의 대기업 대비 임금, 여성의 남성 대비 임금이 60~70%인 것과 비교해 봐도 한 참 낮다. 더군다나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취업자 수는 605만 명으로 제조업 취업자 452만 명보다 34%나 많다. 이런 점에서 사실 우리나라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내수서비스업의 저임금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림 5에서 볼 수 있듯 제조업과 도소매음식숙박업 간의 임금격차는 정확하게 자본집약도 격차에 비례해 증가했다. 1986년 제조업의 자본집약도(2010년 가격 기준)는 2천9백만원/인이었고, 도소매음식숙박업은 6백만원/인이었다. 둘 사이 격차는 2천3백만원/인이었다. 이 시기 연평균임금(2010년 임금가격 기준)은 제조업 9백만원, 도소매음식숙박업(자영업소득포함) 1천1백만원으로 제조업이 2백만원 적었다. 수출제조업 국제경쟁력을 위해 정부가 강하게 임금을 억제한 결과 제조업 임금이 당시에는 상당히 낮았다. 하지만 이런 임금억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완화되었고, 이후 자본집약도 격차가 커짐에 따라 양 산업의 임금격차 역시 벌어졌다. 2016년 제조업의 자본집약도는 2억1천3백만원/인, 도소매음식숙박업은 2천7백만원이었다. 격차가 1억8천6백만원에 이른다. 이 시기 임금격차 역시 제조업 3천9백만원, 도소매음식숙박업 1천8백만원으로 벌어졌다.

자본 격차에 의한 임금격차는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림 6은 대기업, 중소기업 간 노동장비율 격차와 임금격차를 보여준다. 노동장비율은 유형자산을 종사자 수로 나눠준 것인데 자본집약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래프를 보면 위 산업 간 비교와 마찬가지로 자본 간 격차가 임금격차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런 자본 격차는 임금격차가 작은 나라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한국과 비슷한 수출제조업 주도 경제인 스웨덴의 경우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자본집약도는 제조업 대비 77%(2016년)로,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출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과 비교해봐도 한국의 경우 이 격차가 심각하고, 그만큼 임금 격차도 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자본 간 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진 것일까?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우리나라의 저임금 문제는 수출주도 추격성장 과정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중화학공업 수출을 시도한 한국 제조업의 중요한 특징은 앞서 본 것처럼 자본의 생산성을 좀처럼 상승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막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한 중화학공업에서 자본생산성이 정체·하락하면, 자본은 이윤율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분배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정부는 제조업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강하게 통제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까지도 제조업 임금은 서비스업보다도 낮게 유지됐다.

 

노동시장이 변한 계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노동조합 결성과 치열한 임금인상 투쟁이 수년 간 계속된 이후 수출제조업에서는 노동생산성 증가만큼 임금인상을 달성할 수 있었다. 3저 호황으로 수출제조업의 가동률이 극대화되어 자본생산성도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았던 내수서비스업에서는 이런 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중반의 저실업 노동시장 덕분에 임금이 상승하긴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제조업과 내수서비스업의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노동조합 격차에 자본집약도 격차가 결합하면서부터였다.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압박이 덜했던 서비스업 사업주들은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좀 더 수월하게 자본투자보다 저임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림 5에서 나타나듯 1990~97년 자본집약도 격차는 1986~90년보다 비약적으로 커졌다. 더군다나 이런 격차는 외환위기 이후 더 커지는데, 실직한 노동자들이 자영업자가 되어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물론 1990년대의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을 감안하면, 도소매음식숙박업에서 자본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했을 경우 경제위기가 더 심각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임금격차라는 부분에만 한정해 보자면, 서비스업의 자본투자 과소가 제조업과의 자본집약도 격차를 키우면서 노동생산성 격차와 임금격차를 가속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격차는 동일 산업 내의 대·중소기업 간에도 발생했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는 동일산업의 대·중소기업 간에도 노동조합 조직률에 차이가 있다. 당연히 임금 인상에도 차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임금격차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은 외환위기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자본투자 자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했고, 반대로 실업률은 급증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노동집약적 공정을 외주화할 수 있었고, 자본집약적 공정을 담당하는 대기업은 고생산성-고임금을, 외주 하청 생산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저생산성-저임금을 받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일종의 자본생산성의 정체·하락을 중소기업의 저임금으로 메꾸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 운동은 조직률에서나, 이념적 평등주의 지향에서나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3) 소결: 자본축적과 계급투쟁의 동시적 위기가 만들어 낸 임금격차

 

한국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자본축적과 계급투쟁 양자 모두가 원인이었다. 먼저, 자본생산성 하락과 자본투자 감소는 실업자 또는 비정규직 같은 불완전취업자를 확대해 노동자 전체의 임금 상승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실업자와 직접 경쟁하는 부분에서는 임금의 정체·하락이 더 심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자본주의 위기에서 노동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의 한 형태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인상으로 자본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자본투자로 자본생산성이 당연히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전제한다. 주류경제학의 규제개혁론 역시 기업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자본투자가 증가하고 자본생산성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이런 낙관적 관점을 비판한다. 한국 경제는 장기간에 걸쳐 자본의 수익성이 정체·하락 중이다. 대규모 사업 확장 뒤 심각한 재무위기에 빠진 조선업,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 등으로 수익률이 급감한 자동차산업, 중국과의 가격경쟁으로 적자까지 기록하고 있는 디스플레이산업, 호황 뒤에 과잉설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반도체 산업 등 투자가 문제가 아니라 투자로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실물경제의 투자수익률 하락 문제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수년 전부터 ‘생산성 패러독스’란 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기술혁신과 투자에도 노동생산성 상승이 세계적으로 둔화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 현상에 더해 선진국 추격성장 한계까지 함께 겪고 있는 중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임금격차 문제는 자본 격차에 따른 임금격차라는 자본축적의 일반법칙을 벗어나지는 않는데, 자본 격차가 확대된 것은 수출제조업 주도의 추격성장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노동조합 계급투쟁의 역사적 특수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우리나라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대기업을 제외한 영역에서는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이 발전하지 못했다. 지역 노동자를 조직했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는 1990년대 초반 제조업 대기업 노동조합들과 함께 전국적, 전산업적 노동조합 운동을 조직하려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여전히 대기업과 공공부문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2018년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은 가까스로 10%를 넘긴 정도며, 조직 노동자의 70~80%는 여전히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자본의 격차를 축소하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간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자본집약도 격차에 비례해 커졌다. 저임금을 이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자본투자 대신 저임금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이 사업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적 위기가 계속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서비스업, 중소기업에서 자본투자를 늘리더라도 임금격차가 완화될 것이라고 쉽게 답할 수는 없다. 현재는 격차가 벌어진 역사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으로 대안을 만들 수는 없다.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를 감안해야 한다.

 

참고로 본고에서는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격차를 다루지는 않았다. 보통 비정규직에 포함되는 간접고용의 경우 노동집약적 공정을 담당하는 중소기업과 다르지 않고, 같은 사업장 또는 같은 공정의 비정규직은 취업자와 경쟁하는 불완전 취업자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극단적으로 보면 한국의 넓은 의미의 실업률은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까지 합해 30~40%에 이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결론 및 제언 

 

우리나라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소득주도성장 동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자본축적의 위기, 계급투쟁의 위기로 심화된 것이다. 시장의 임금 법칙을 이길 수 없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실제 임금 상승에는 기대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 고용에는 다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단’으로 한국경제 40~50년의 저임금, 임금격차 역사를 뒤집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미망(迷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장의 법칙, 자본의 법칙은 그만큼 견고하다.

 

현재의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는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과제다. 저임금, 임금격차는 한국에서 시장 법칙이 관철된 결과며, 노동자운동이 이에 반작용하지 못한 결과다. 시장에게, 또는 그 시장을 재생산하는 국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세 방향의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

 

1) 취업자와 실업자의 연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최저임금 경우도 그랬지만 일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면 그 어떤 임금 정책도 시장의 반격을 견뎌낼 수 없다. 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를 최대한 줄여야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도 비로소 접근이 가능하다. 노동자운동은 어떤 방법으로든 취업자와 실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일자리 경쟁을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2) 임금극대화에 전력투구하는 전투적 경제주의의 지양

 

실업을 줄이는 고용연대는 제조업, 대기업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자본집약도가 높아 고용증가에도 노동생산성 하락속도가 빠르지 않은 대기업이 고용증가에 앞장서야 한다. 도소매음식숙박업 같은 곳에서 일자리를 늘려봐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날 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대상으로 한 경쟁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집약도 우위에 있는 영역은 제조업 대기업 부분이다.

 

그런데 제조업과 대기업에서 고용이 증가하려면, 이 부분의 임금이 조정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업 대기업은 자본투자를 절약할 수 있는 저임금 영역을 활용하면서 고생산성-고임금 프리미엄을 누렸다. 제조업 대기업이 저임금 영역을 포괄하려면 이 프리미엄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고용 증대를 위해 상위 계층의 임금 수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극단적 임금 평균 상태를 상상해 봐도 알 수 있다. 2017년 국민총소득을 취업자 전체에게 똑같이 분배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 이윤은 없다.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고정자본형성에 지출된 소득)을 제외하고 계산해보면 전일제 취업자 기준 1인당 소득은 약 5천200만원이다. 임금노동자 소득을 이렇게 평준화하면 전체 노동자 연평균 임금은 1천600만원(46%) 인상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통계청의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으로 보면 임금소득 상위 10% 노동자의 경우 평균 4천700만원이 삭감된다. 상위 20% 노동자는 평균 700만원 삭감된다. 기업이윤이 없어도 이 정도다. 임금격차 완화로 가는 길은 상위 계층 노동자의 임금 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3)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대범한 운동

 

고용과 임금에 관한 노동자계급의 연대는 노동자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고용과 임금에 대한 연대가 당장의 밥그릇에 관한 문제로 인식되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각자도생의 투쟁이 지배적이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접근은 정책적 접근 이전에 이념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바라는 사회상은 무엇인가, 당장의 이해관계를 포기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내 동료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원대한 사회개혁의 포부, 당장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담대한 구상이 연대의 전제조건이다.

 

마르크스는 임금투쟁이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첫째, 노동자의 임금투쟁은 기본적으로 노동생산성에 뒤처지는 임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노동자의 임금투쟁이 없다면 임금분배율이 낮아지게 될 것이다. 둘째, 노동자의 임금투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장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만약 노동자들이 노동생산성 증가 이상의 임금인상을 쟁취할 경우 이윤율이 하락하며 임금하락의 압력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저성장이란 조건은 이런 제약을 더욱 크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임금과 관련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를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부분적으로 노동조합은 자기 힘을 분별없이 사용한다면 실패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현존 제도가 빚어 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존 제도가 변화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 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 말하자면 임금 제도의 궁극적 철폐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한다.” 

주제어
정치 경제 노동
태그
최저임금 임금격차 소득주도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