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2.42호

동물들의 경고

원종현 | 노동차장
0. 미친 닭

쇠고기, 돼지고기에 이어 최근 닭고기가 국민적, 아니 세계적 기피/위험 식품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닭이 지금까지 비교적 ‘안전’한 먹거리로 분류되었던 것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양계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닭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매우 비위생적인 우리에 끼워 넣고 성장촉진제, 항생제, 배란촉진제를 투여한다. 닭장 안은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 공기가 매우 탁하다. 닭장 안에는 항상 불이 켜져 있는데, 밤에도 닭이 자지 않고 알을 낳게 하기 위해서다. 닭장 안의 위생 상태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닭들은 짧은 기간 안에 엄청난 수의 알을 낳고 일찍 늙어 죽는다. 닭들로서는 한마디로 ‘미쳐버리는’ 상황 아닌가? 실제로 닭들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자해(自害)를 하거나 알을 깨버리거나 다른 닭들을 이유 없이 공격한다. 꼭 조류독감이 아니더라도 이런 환경 속에서 키워진 닭과 계란이 과연 우리에게 이로울까?


1. ‘환경의 역습’

사무실 식구들이랑 점심을 먹다가 반찬거리로 얼마 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모 방송사의 [환경의 역습]이라는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왔다. 식품과 각종 소비재와 같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건강에 매우 위험하며 일부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이다. 제시된 것 중 몇 가지 자극적인 예를 들면, 신축된 집의 건축마감재에서 방출되는 독성화학물질(포름알데히드)은 온몸에 원인불명의 염증(아토피성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한 경우 ‘화학물질과민증’이라는 질병에 걸려 신문(역시 화학물질로 인쇄된)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다.
또 도시에 오래 살면 자동차 배기가스에 노출되어 심각한 천식이 생기고, 기형아를 낳을 수도 있다. 농산품을 통해 섭취한 농약과 살충제가 체내에 축적되어 지능이 감퇴하고 영구치가 나지 않는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치과에서 새로 해 넣은 이에서 수은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고 그 때문에 불임이 되고 지능이 감퇴하고 뇌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아말감(수은과 은, 구리, 아연 등의 합금. 치과용 충전재로 쓰인다)의 위험성이 알려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아말감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치과에서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고 하수구로 흘려보낸 수은이 바다로 가서 물고기가 먹고 그걸 다시 사람이 먹어서 수은 중독이 된다는 데 이르면 경각심 정도가 아니라 거의 공포가 엄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들 그랬다. “그거 괜히 오바(OVER)하는 것 같던데...” “XX, 그럼 어쩌라는 거야? 그 말대로 하면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언론의 부풀리기와 소시민의 몸 사리기 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프로그램의 결론이 맘에 안 들기는 하나 분명 이유 있는 오바(OVER)임이 확실하다. 150여년에 걸친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결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2. 동물들의 경고

최근 몇 년간 발생한 가축들의 질병과 그에 따른 전 세계적 혼란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그리고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을까? 현대 자본주의의 산업적 축산 - 동물농장은 질병 발생의 원인 그 자체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 낸 수천의 똑같은 동물들은 비위생적이고 햇빛도 들지 않는 창고에 빽빽하게 몰아넣어진다. 그리고 동물들의 배설물과 도살장의 쓰레기는 사료로 재활용된다. 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감염으로 죽지 않도록, 그리고 살을 찌우기 위해서(항생제에 성장촉진 효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동물들에게 투여한다. 이렇게 온갖 감염인자들에 그대로 노출되어 키워진 동물들은 역시 오염된 환경에서 도살되고 가공되어 판매된다.
자본의 세계화는 물자 교환의 세계화를 수반한다. 항공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신속한 대륙사이, 국가 사이의 가축이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6년, 영국에서 광우병과 그것이 인간에게 전염될 때의 증상이 발견된 이후에도 영국산 육류는 전 세계에 수출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질환의 은신처이며 근본원인인 영국산 사료도 전 세계에 수출되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어떤 국가도 기존의 또는 새로 출현하는 질병들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바이러스를 가진 미국산 소 또는 미국인은 채 하루가 안 되어 남한에 도착할 수 있다. 자본주의 하의 기술발달에 아니었다면 어떠한 생명체가 이토록 빨리 이동할 수 있었을까?
산업적 축산이 발생시키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은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붕괴시킨다. 사람들이 쓰는 양의 약 10배에 달하는 항생제의 과다사용은 이에 저항하는 세균들의 돌연변이를 가져왔다. 이런 균들은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고단위의 항생제로도 죽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 세균에 감염되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 이밖에 광우병, 돼지콜레라,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가져오는 피해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럼 이런 질병에 걸려 죽은 가축들의 시체는 어떻게 되는가? 감염된 가축과 사료는 ‘엄격하게’ 유통이 금지되었다. 이것들은 소각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광우병(BSE)은 프리온이라는 파괴 불능의 단백질 때문에 발병하는데 이 단백질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섭씨 1천도까지 열을 가할 수 있는 용광로가 필요하지만 이런 용광로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을 땅에 묻는다. 감염물질이 방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밀폐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기나 지하수로 감염물질은 전파될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유통이 금지되었다던 사료가 수출되는 일도 있었다는 데 뭐 이정도야.
자본의 세계화는 또한 식생활의 세계화도 수반한다. 위와 같은 끔찍한 결과들에도 육류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 지난 25년 동안 남한의 육류 소비량은 4배로 늘었다. - 여전히 산업적 축산은 늘어나고 있다. 가축을 생산하는 데 있어 가장 신속하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던 산업식 가축 사육장은 육류와 동물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상승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중심도시 주변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목숨을 걸고” 식품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먹을 것이 없다. 병든 양의 내장을 먹고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콜레라에 걸린 돼지고기, 유전자 조작으로 키워낸 후 아예 농약으로 세탁을 한 농산물을 피해서 어떤 먹거리를 구할 것인가.
동물들이, 환경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매우 분명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3. “그냥 살”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한 프로그램으로 돌아가자.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는 듯 이야기하다가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생활 - 시골로 이사를 가거나 친환경소재로 집을 짓거나 유기농식품을 먹는 - 을 선택한 몇몇 사람들과 ‘선진국’의 바람직한 환경정책을 소개하고 ‘소비자’의 인식제고가 절실함을 역설하면서 두리뭉실 끝났다. 결국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나는 개인이 친환경적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방식에는 ‘주적(主敵)’이 없다. 국가가, 특히 미국과 같은 1세계 국가가 없고, 기업이, 카길 사(社)같은 초국적 기업이 없다. 기껏해야 ‘현대문명’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정도의 언급뿐.
그래서 사무실 식구들로 대표되는 사회 내 특정집단은 환경과 건강에 대한 세간의 논의와 부르주아적 대안들에 대해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다. 최근의 ‘건강의 상품화’ 추세 때문에 더욱 그렇다. 건강 때문에 벌벌 떠는 것은 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물론 나에게도 이런 난리는 분명한 ‘오바’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 무섭다. 이건 내가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남보다 특별히 민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닥쳐오는 파국 앞에서 느끼는 말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그런데 사무실 식구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다들 “그냥 살아야” 한단다. 지금 나는 건강식을 챙겨먹고 시골로 이주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알은 체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운동의 영역이라는 생각일 뿐이며 사회진보연대가 계속 붙잡아야 할 의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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