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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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6.46호

여성에게 독립이란

전소희 |
원고 청탁까지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내가 어지간히 호들갑을 떨긴 했나보다. 하지만, 요즘 나름대로 성취감에 취해 있으니 이를 만끽하면서 나의 독립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그렇다. 드디어 독립을 했다. '독립통장' 만든 지 10년 만에,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면서 본격적인 '독립투쟁'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집에서 나왔다.
사실,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몇 년 동안 고민하다가 한 2년 전에 술 마시고 들어가서 말을 꺼냈다. 물론, 부모님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렇게 따로 살고 싶으면 직장을 다른 도시로 옮기라고 하실 정도였다. 할 수 없이 자취를 할 수는 있어도 부모님 서울에 두고 독립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옥탑방 하나 계약하고 집에 가서 최종 통보하려는 날, 아버지가 병원에서 심장 상태가 심각하다는 통보를 받으셨다. 결국 계약금(다행히 5만원만 냈다) 날리고 아버지가 완전히 회복되시는 2년 동안 독립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2달 전 출장 다녀온 바로 직후, 어머니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침묵 속에서 열심히 냉면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정 그렇다면 나가서 한 번 살아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물론, 단서를 하나 달긴 하셨다. 선보고 결혼 준비하라는 것이다. 선이고 결혼이고 그것은 나중 문제이고, 내가 꿈꿔왔던 그 독립! 냉면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당장 집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화려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때야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에 다니면서 '모던'하게 꾸민 아파트에 사는 그러한 삶을 막연하게 동경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하에 통장 하나 만들고 본격적인 아르바이트 선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은 운동을 시작하면서였다. 학생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부모님과 같은 집에 살면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세미나나 뒤풀이를 하다가 10시만 되면 뛰쳐나가야만 했던 숨막히는 통금, 하필이면 기무사로 발령이 나 군대를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오빠, 활동가 캠프나 지방에서의 집회, 밤샘 회의를 마음놓고 참여할 수 없게 만든 외박 금지령, 난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때 내가 원했던 '해방'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립'과 그 의미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내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된 것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때부터 독립은 단지 공간적 의미도 아니고, 정치적 탄압에 대한 자유(물론, 가족 내에서 사상의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만도 아니라 여성으로서 나의 삶과 미래에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이 사회에서 과연 여성이 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겠냐만은, 나에게 독립은 이에 조금이나마 근접해있는 삶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독립 그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독립이 이 사회에서 상징하는 바다. 물론 결혼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이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력관계에 의해 지배당하는 이상,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소유 구조가 독립으로 완전히 파괴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그 관계에 작은 파열구를 내고 일침을 가하긴 한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독립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여자가 어딜..."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독립이란 여성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작은 정치적 실천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이사를 한 이후 며칠 동안 몹시 화를 내셨다. 중재로 나서면서 방어벽 역할을 하셨던 어머니를 심하게 야단치시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한 지 3주 째 되니, 오히려 지난 30년보다 부모님과 가까워졌다. 물론, 아직 아버지 눈치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시집보낸 딸 대하듯 매일 전화해 '살림 요령' 하나씩 알려주신다. 심지어 텔레비전에서 젊은이들의 '독립'에 대한 얘기(요즘 텔레비전에서 간혹 나온다고 한다)가 나오면 열심히 챙겨보신다고 한다.
전세값 내면서 얻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가 암담하지만, 밤에 골목길 올라갈 때 공포에 떨지만, 집 뒤에 있는 산을 즐길 시간도 없지만, 밤낮으로 걱정하시는 부모님 생각하면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산들이 많겠지만 일단 하나의 산은 넘었다는 생각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청소하고 밥하고 밀린 원고를 쓴다.PSSP
주제어
여성
태그
세계사회포럼 여성운동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