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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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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제대로 달리게 하라!

박흥수 | 전국철도노조 정책실장
슬픈 역사 한국철도

철도가 근대사회 건설의 동력으로 힘차게 뻗어나갔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과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한탄위로 철도가 건설되었다. 철도의 역사는 한국 민중과 철도노동자들의 고난의 역사다. 국토의 선로마다 침목 하나하나마다 노동자 민중의 피가 배어 있는 고통의 역사다. 부설권을 놓고 열강의 쟁탈전으로 첫 장을 연 철도는 청일전쟁이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일제국주의에 의해 기적을 울리게 되었다. 민중들은 철도건설부지라는 명목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조선민중은 힘없는 왕조에 대한 자포자기와 주권 잃은 백성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분을 억누른 채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철로에 피와 눈물을 뿌릴 뿐이었다.
식민지 수탈의 도구로 시작된 철도는 조선의 농산물과 지하자원을 일본으로 강탈하는 주요 수단이었으며 대동아전쟁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병참노선이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객화차 지붕까지 가득 채운 피난민들은 철도와 함께 시작한 고난의 우리 근대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 철도

철도는 도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60, 70년대 민중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었으며 산업발전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도로망이 발전하고 자동차 운송이 확대되면서 철도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도로교통위주로 투자가 집중되었고 자동차는 한국산업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투자가 줄고 이에 따라 시설이 낙후되었으며 이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은 철도를 상시적 적자상태의 애물단지로 만들었다. 해방당시의 철도 총노선의 길이나 오늘날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철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도로교통위주의 정책이 한계를 보임에 따라 대안은 다시 철도로 모아지고 있다. 아무리 도로를 새로 뚫어도 정체는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국토 파괴는 물론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까지 새로운 국가적 문제가 수두룩하게 쌓이고 있다. 이런 사정 속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철도 수송력을 증대시켜야한다는 문제 제기로 신설건설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고속전철건설로 논의가 모아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고속철도

나라의 기간 교통망을 건설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난데없이 공사비 5조8462억원을 들여 1998년 완공을 목표로 경부고속철도를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92년 4월 오색연막이 하늘로 퍼지는 가운데 천안-대전 구간의 기공식이 열렸다. 땅 한 평 매입도 없이 12월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단지 배치된 행사였다. 이후 대구-밀양-부산을 잇는 노선이 착공되고 몇 달만에 대구-경주-부산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가 철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에서 나온 게 아니라 선거대책본부의 득표력 계산에 따라 경주, 포항, 울산 지역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결정되었다. 대전과 대구 역사에 대한 지하와 관련된 논란 역시 선거를 전후로 해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예산낭비는 물론이고 설계가 변경되는 등 많은 문제가 노출되었다. 일본, 독일 , 프랑스 업체의 선정과정과 차량 및 기술 도입과정에서 엄청난 액수의 리베이트가 요구되었고 실제로 정치권의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돈의 실체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정책실패에 따른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떠오른 광명역사 문제만 해도 철도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이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1200억의 공사비를 들여 만든 광명역사는 애초에는 남서울역이 정식 명칭이고 도심 집중화를 방지하고 수도권의 균형발전이란 대의 속에 고속철도의 시발역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역과 용산역이 고속철도의 출발역을 맡게 됨으로써 광명역의 역할이 모호해졌으며 뾰족한 대책도 없는 현 시점에서 수천억원의 건설비가 그저 낭비되었을 뿐이다. 단지 건설에만 신경 쓴 나머지 설계단계에서부터 막가파식 조급성을 그대로 나타냈다. 변변한 지질조사도 없이 폐탄광에 노선을 설계하는 바람에 터널공사를 중단하고 노선을 변경하거나 당장 쓸 일도 없는 차량을 도입해와 몇 년씩 먼지만 뒤집어쓰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고속철도개통에 따른 남겨진 문제

세계에서 다섯 번째라는 환호 속에 고속철도는 개통되었다. 꿈의 철도, 교통혁명이라는 찬사 속에 고속철도가 달리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정말 철도가 달라지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들의 바램을 무참히 깨뜨렸다. 고속철도 개통이 되면 철도이용이 더욱 쉬워지고 편리해지리라는 것은 일반국민들의 평범하고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통근열차타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고속철도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는 지역의 철도이용은 더욱 어려워졌다. 청량리-춘천 간 열차 수가 왜 줄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익산에서 4,50분씩 짐보따리를 들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왜 꿈의 철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고속철도가 달리기 시작했을 뿐, 완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속철도의 영남구간인 대구-부산노선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선을 이용하는 한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일반노선의 열차 증편 효과를 제대로 얻을 수 없다. 원래 프랑스에서 도입된 테제베열차의 장점은 고속신선과 기존선을 연계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계에 다다른 기존선의 선로용량을 고속신선으로 대체하여 수송능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열차 빈도수가 적은 노선에서는 기존선을 이용하여 신선건설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고속철도이용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경부축의 선로용량이 이미 수 년 전부터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에 고속철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일반철도의 감축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의 숨겨진 문제는 인력 문제다. 고속철도가 개통되기 전에도 철도의 근로조건은 휴일하루 없는 전근대적인 체제였다. 김영삼 정부시절 추진된 국유철도체제의 경영합리화 방안은 "국유철도특례법"의 이름으로 철도현장에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몰아치게 하였다. 철도청의 경영합리화는 계획이상으로 실행되었다. 철도청은 1996-2001년까지 감축인원 목표인 7,307명보다 432명이 늘어난 7,739명을 확대감축 하였다. 전체 철도 인력의 1/3해당하는 8천명에 가까운 인력이 감축되었고 안산선, 분당선, 경인복선의 연장개통 등으로 철도 현장의 업무는 급증하였다. 철도현장의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한해에도 수 십 명씩 목숨을 잃어가며 현장을 지켰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인력충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일반철도의 인력으로 고속철도 운영까지 하게 되었다. 고속철도의 특성상 일반철도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노동자들이 훈련을 거쳐 선발되었고 이렇게 선발된 인원은 일반철도의 인력부족을 가중시켰으며 고속철도부분의 인력부족 현상도 심화시켰다. 철도현장의 인력부족현상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반열차의 운행을 늘리고 싶어도 현장에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안전한 철도를 위해서도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철도인력충원을 요구해야 한다.

원칙도 없고 대안도 없는 친 자본 언론의 무책임한 공세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언론은 고속철도의 장미 빛 미래를 찬양하며 다가올 교통혁명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언론의 기본 사명인 감시와 비판의 정신은 내팽개친 채 온통 장미 빛 미래를 예찬하다 고속철도 개통이후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자 목소리 높여 철도를 비난하고 있다. 고속철도 도입과 건설과정에서 언론이 제 역할 을 충분히 했다면 수많은 과오들을 바로잡았을 수 있었음에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권에 결탁해 변죽만 올린 언론의 폐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총선 때 고속철도에 대한 공격이 일부언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여권의 정책에 대한 흠집 내기로 이용되었던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론은 시간 있을 때마다 철도의 경영적자 운운하며 철도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철도가 국유체제이기 때문에 돈 되는 사업은 외면하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속철도 개통이후 지방의 지역 간 열차들이 줄자 서민들의 교통권을 외면하는 철도당국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고속철도 운행으로 줄어든 열차의 상당수는 기존 수구적 친자본 언론들의 논리대로라면 진작에 없어져야 했을 열차들이다. 실제로 이들 열차를 운행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확대되어 철도의 경영수지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철도에서 흑자를 내는 노선은 수도권 전철과 경부선뿐이다. 그럼에도 전 지역에 열차를 운행하는 것은 필수 서비스로서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언론이 불같이 들고일어났던 서민들의 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익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철도노조는 끊임없이 철도의 공익적 기능 수행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해왔다. 단순한 적자 논리로 철도를 바라보지 말고 철도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얻는 유형, 무형의 이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혼잡비용, 환경오염비용,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 국토이용의 효율성 등 철도를 이용해서 얻는 사회적 이득은 단순한 수치상의 적자를 상쇄하고도 남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철도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는 건교부

과거 수년간 정부는 철도정책의 주무부서인 건교부를 앞세워 철도민영화를 추진해왔다.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영과 경쟁의 마인드가 있는 민영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산업이 낙후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무원칙과 무대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민영화의 폐해로 철도산업이 파탄지경에 까지 이르렀던 영국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정부의 철도정책은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고속철도 건설부채의 철도에로의 전가이다. 정부는 구조개혁과정에서 시설투자의 국가책임을 강조해왔지만 고속철도 건설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이에 대한 채무를 철도 운영수입으로 충당시키려 하고 있다. 내년에 새로 출범하게될 철도공사는 엄청난 고속철도 건설부채를 떠 안고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채의 실상이 앞서 밝혔듯이 온갖 정책의 난맥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몇 배씩 늘어난 상황이고 이는 정부의 책임임에도 철도공사에 떠 넘겨졌다. 이로써 철도공사는 끊임없는 적자경영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 민영화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세계화와 그 불만'이라는 책을 쓴 전 세계은행 부총재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만약 어떤 정부가 썩어 있다면 민영화로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을 근거는 거의 없다. 결국 그 기업을 잘못 경영한 바로 그 부패 정부가 민영화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 - 철도사업법

철도노동자의 두 번에 걸친 파업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철도민영화는 철회되었지만 건교부의 정책적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민영화 정책을 그대로 반영한 철도사업법을 정부발의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철도사업법의 내용은 단순히 철도산업을 재편하는 수준을 넘어 철도를 해외자본에 팔아먹을 수 있는 기초까지 만들고 있다. 한국경제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일FTA협상체결에 있어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철도산업진출에 대해 법적으로 그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사업법에 따르면 고속철도, 일반철도, 도시철도, 국제철도 노선, 이렇게 4종류로 지정·고시하여 향후 분할 민영화의 기본 조건을 만들고 특히 국제철도 부분에 대한 진입장벽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국내철도는 국제철도 여객운송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해외자본 진출을 가능케 하고 있다. (부칙 4조에서 한국철도공사는 국제철도여객운송사업과 국제화물철도 운송사업에 대한 면허를 제한하고 있다) 2003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시장개방 양허안 자료에 따르면 여객 및 화물운송업, 철도운송장비 유지·보수분야 등에서 외국이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교부가 앞장서 한국철도에 일본으로 대표되는 국제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나라의 혈맥인 철도를 팔아먹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꼴인 것이다.
한국철도가 유라시아 철도의 시점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시점에서 구한말 열강들이 조선의 철도 부설권을 놓고 경쟁했듯이 외국자본의 철도개방요구는 날로 커질 것이다.
철도 사업법은 이 밖에도 여객과 화물을 사업별로 분할하고 차량의 정비 및 관리, 임대 등 산업 내 분할을 통해 민영화를 전제로 한 철도산업의 재편을 기도하고 있으며 노동자 파견 및 비정규직 확대를 촉진하는 광범위한 외주업체의 양산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노동의 유연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 7월 입법예정으로 법제처에 계류되어 있는 철도사업법의 위험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사회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교육, 의료개방의 물결에 이어 국가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화란 미명 하에 국제자본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시장개방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란 말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서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투쟁으로 자리 매김 될 때이다. 마음을 열고 사회적 연대의 횃불을 올려야 할 것이다. PSSP


<참고자료>
영국철도 민영화가 준 교훈

편집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 '비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자본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하곤 했다. 현재 공기업이 적자에 시달리고 국민들에 대한 낙후된 서비스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경쟁 없는 시장 때문이고 그 안에 안주하는 노동자들의 나태함, 경영의 관료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기막힌 것은 이 모습과 논리가 지난 영국의 민영화 논쟁과 참으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국인 영국은 이미 많은 공기업을 비롯한 기간산업을 민영화했다. 하지만 민영화가 해법이 아님을 영국 철도의 민영화 폐지를 통해 영국은 보여주고 있다. 영국철도는 2002년 10월3일 다시 공공소유로 전환되었다. 민영화가 대안이라고 줄곧 주장하던 영국마저 왜 다시 민영화를 철회하였는가.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영국철도에 대한 자료로 '탈선-영국 철도 대란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앤드루 머리(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 공보 담당관)지음, 오건호(민주노총 정책부장) 옮김, 이소출판사, 2003)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영국철도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공공소유가 되었는지 상세히 증언하고 있다.
철도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영국에서였다. 처음 철도는 민간기업들이 운영하였는데, 그 수는 1881년 무려 351개에 달했고 이후 회사간 통합으로 20세기 초에는 100여 개로 줄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철도의 통합적 운영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경험을 통해 철도의 국유화 주장이 일어났다. 결국, 민간철도 회사조차도 철도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해져 경영이 어려워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조합과 노동당의 제기, 그리고 노동당의 수권으로 결국 철도산업은 국유화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영국에서 도로교통은 급속히 성장한 반면, 철도산업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결국 적자 철도 노선들이 도로교통에 밀려 사라지거나 비용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폐쇄되면서 전체 화물과 여객 수송에서 철도산업이 차지하는 비율도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이 적자의 해결책으로 민영화방안이 제출되었다. 민영화를 당론으로 확정한 보수당이 수권하게 되고 1993년 철도 민영화 법안이 입법 완료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1994년 민영화 예비조직으로 전환, 1995년 민간기업으로 팔리기 시작하면서 1997년 4월에 철도 민영화가 완료되었다. 철도 공사의 주요사업들은 50여 개의 민간 기업으로 나누어져 매각되었고, 소규모 철도 수리 회사, 주변 회사들을 합치면 기존 철도 공사의 기능은 100여 개의 민간 기업으로 분할되었다. 물론 1993년 철도 민영화 법에 의해 철도 산업을 규제하는 철도 규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도 이후 터져 나오는 철도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민영화를 진행하면서 정부의 최대고민은 과연 어떤 기업이 적자상태에 놓인 철도를 살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증액하여 민간기업의 이윤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실제 많은 나라에서 철도는 적자로 운영되고 50%이상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데 영국의 경우 20%정도를 보조금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금으로 요금이 비쌌던 영국 철도가 민영화 된 이후, 거의 2배에 이르는 보조금을 철도산업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영화 입장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더 많은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혈세와 민영화를 통해 이득을 본 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철도를 사들인 레일트랙이었다. 레일트랙은 민간주식회사로서 단기 이윤에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레일트랙으로서는 주식 시장에서 레일트랙의 기업 가치를 제고시키고 주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는 철도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인 철도 투자가 방기되는 것을 의미했고 최소한의 시설 유지 보수 작업에 소홀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 기업의 극단적인 이윤추구는 노동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제어할 수 없었는데, 결국 이는 영국철도의 대형참사를 몰고 왔다.
1997년 런던 서부의 사우스 올에서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레이트 웨스턴 급행 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자동 보호 장치의 미설치였다. 하지만 레일 트랙은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10월 런던 패딩턴 역 근방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가 충돌하여 31명이 생명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역시 신호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도, 국민들도 자동 보호장치의 설치를 적극 요구했다. 하지만 민간기업 레일트랙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세번 째 사고가 발생하는데 2000년 10월 햇필드 근방에서 달리던 열차가 전복되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레일트랙과 하청계약을 맺은 유지보수 회사가 균열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방치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국적인 선로보수작업과 시설 개선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영국 철도 대란으로 이어졌다. 민영화 이후 철도는 예전보다 정시성이 떨어졌고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북이 걸음이었다. 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요금이었는데, 예를 들어 약 세 시간이 안 걸리는 런던/맨체스터 자유왕복표는 무려 44퍼센트가 인상되어 141파운드(28만원)이나 되었다. 어차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승객이 있다고 했을 때, 승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영국사회가 철도 민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요금 인상, 서비스 후퇴, 시설 황폐화였다.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의 고통을 안아야 했다. 물론 이를 통해 이득을 얻은 계층은 철도산업을 인수한 자본과 이들에 빌붙어 사는 정치세력이다. 신자유주의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것이다. 현재 영국철도는 공공소유가 되어 '비(非)이윤 기구'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공단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공공 철도 총회를 두고 있다. 사기업의 주주 총회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 이 총회는 승객, 시민, 노조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익 회원60명 그리고 철도 산업 관련 업계 회원40명 등 총 100명으로 구성된다.
영국 철도가 민영화를 폐지하고 공공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민영화의 폐해도 있었지만, 분노한 국민들과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철도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역에서, 철로에서,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시 간선 노선 차장, 교외 철도 노선 계약 업무 관리자, 화물 열차 회사 기관사, 도시 간선 노선 기관사, 지역노선기관사, 노스 웨스트 노선 신호수, 사우스 웨스트 선로 보수 노동자, 런던 교외 노선 기관사, 안전 감독관, 런던 역사 플랫폼 역무원, 매표원, 도시 간선 열차 운행사 재무 관리자, 선로 유지 보수 회사 신호 제어사, 이스트 미들랜드 노선 신호수 등. 그 노동자들은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민영화로 인해 잃은 목숨과 주주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빠져나간 국민들의 세금, 그리고 노동유연화를 통해 직장을 잃거나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삶과 엄청난 요금과 안전에 대한 불안함으로 철도에 올랐을 승객들의 손해는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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