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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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선전국장 이종규 회원을 만났습니다.

편집실 |

Q
코너가 다양한 공간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을 만나보는 코너인데요
간단하게 회원 여러분께 소개를 부탁드릴께요.

A
뭐 나이는 64년생이구요 안양에 살고 대학은 3년 중퇴했어요.
학생운동 하다가 군대 갔다오면서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쭉 노조 있는 직장생활을 해왔습니다. 울산, 안산에서 지내다가 94년에 철도 들어왔습니다. 결혼해서 초등학교 2학년 딸 아이가 하나 있고... 뭐 차차 이야기를 풀어가 보죠.

Q. 해고를 두 번 당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해고를 어떻게 당하셨는지 관련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A
울산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했고, 안산에서는 노조 설립 일주일만에 당하고 철도에서는 노조민주화 과정에서 해고를 당했지요. 권고사직까지 포함하면 3번이 되겠네요.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현대자동차나 중공업 같은 대공장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고 복학하라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할 겸 울산에 갔는데 막상 현대계열 대공장은 취직이 안돼서 주시회사 진양이라고 장판 만드는 회사에 갔어요. 1000명정도 규모의 사업장인데 어용노조가 있었어요. 다닌 지 10개월쯤 후에 위원장 선거가 있었는데 후배들에게 존경받던 선배를 후보로 냈지만 3등밖에 못했어요. 당시 생각에는 선거운동을 가장 체계적으로 성의있게 하니까 조합원들이 우리 마음을 알아주고 이길 거라고 확신했었지만 더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까 조합원 정서에 안 맞게 학생운동 정서로 활동한 게 실패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선거운동으로 눈에 띤 사람들을 회사가 경찰에 신원조회를 의뢰했고, 대학중퇴 학력이 드러나 조사받고 여러 협박에 못 이겨 사직했죠. 박종철이 죽고, 박노해가 잡힐 때의 공안정국이라 버티기가 힘들었죠.

Q 그러면 안산에는 어떻게 가신 건지?

A
그러고 나니까 블랙리스트에 오르잖아요. 울산에서 취직은 더욱 어려워졌으니 다시 고향으로 올라왔죠. 그리고 1년정도 마찌꼬바에서 선반, 밀링을 열심히 배운 후에 안산에 있는 삼부정공이라는 자동차부품 회사에 금형공으로 취직을 했어요. 1년쯤 다닌 후에 노동조합을 설립했지요.

Q 그런데 정말 가시는데 마다 바로 바로 노조 선거하고 설립하고 초스피드시네요?

A
1년이 빠른 건가요? 그리고 저 혼자하는 일도 아닌데요 뭐. 일부러 주도적인 역할을 안 한 것처럼 하고 선전부장을 맡았는데도 또 신원조회에 걸려 노조설립 후 1주일만에 학력 사칭으로 해고가 되었습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지노위에서 이기고 중노위에서 졌지요. 김영삼 정부 초기 이인제가 노동부장관이었을 땐데 지노위 공익위원들이 회사 사람들을 막 야단치는 걸 보니까 문민정부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그런데 김영삼 정부도 노동계와 대립하기 시작하니까 중노위에서는 태도돌변이더군요.
해고무효확인소송도 했는데 학력을 낮추어 속인 것도 해고사유가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더라도 노조설립 후 1주일만에 지부간부를 해고한 정황을 감안하면 승산있는 소송이었지만 93년 철도공채시험에 합격하는 바람에 소송을 포기하고 94년에 철도에 들어온 겁니다.

Q 그러면 철도에 들어가셔서는 해고되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던 건지?

A
용산에 있는 사무소에서 차량경정비 업무를 했습니다. 기관사와 차량정비원이 함게 일하던 사무소가 1999년에 둘로 나뉘면서 용산차량지부가 신설되었는데 그 때 지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88년과 94년에 파업을 하는 등 선배들의 노력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어용노조가 투쟁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노조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대의원이 대의원을 뽑는 소위 삼중간선제 때문에 50년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 일은 너무 어렵고 먼 일로만 여겨졌어요.
그런데 96년에 민주파 간부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2000년 1월 대법원이 대의원 간선제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했어요. 민주파 지부장들과 활동가들은 그 판결이 노조민주화의 최대 호기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투쟁을 벌여나갔지요. 법원이 판결한 대의원 직선제를 넘어서 위원장까지 직선하자는 투쟁이 시작되었고 이를 주도한 지부장들은 투쟁본부 구심을 지키기 위해 철도노조 본부사무실을 40일 이상 점거할 수밖에 없었는데 철도청은 이 때 신청한 연가와 병가를 결근처리하고 해고를 했습니다.

Q 철도 얘기로 조금 넘어가서 내일 충북에서 특별단체협약과 관련해서 대의원 대회도 있는데 내년에 철도가 공사화가 되는데 특히나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어야 할 점들이 있을텐데

A
어떻게 쟁점이 형성될 것 같다는 견해는 노조 안에서도 조금씩은 다르지만 최대 쟁점은 역시 인력충원이 될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로 노조는 8938명의 충원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교섭에서 818명 감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비록 약간의 인원을 충원한다고 해도 부족한 인원은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방식으로 충원하려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 차례 파업에서 피해의식을 키워온 철도노조의 많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희생을 외면하고 우리 정규직의 고용과 노동조건이라도 지키자는 쪽으로 현실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급적 운동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지도부와 간부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의 대의와 함께 눈앞의 이익을 쫓다가 결국 노동자들 모두가 각개격파 당할거라는 설명을 조합원들에게 적극 선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비정규직은 많이 들어왔나요?
A
철도에도 이미 비정규직이 야금야금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표를 대행하는 대매소 정도였는데 이제는 구내기관사도 계약직이고, 차량관리원이나 수송원, 시설관리원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서 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규사업은 아예 통째로 외주화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노동유연화 공세에 철도노조가 적극적으로 완강하게 대처하지 못한 편입니다.
이제 우리는 철도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정부에서는 오히려 철도공사화를 계기로 비정규직을 대대적으로 늘리려고 하니까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Q
철도노조는 지금 공공연대에도 있지만 현재 운수연대 쪽으로 연대 무게를 많이 잡고 있는 듯 보이는데 산별과 관련해서는 노조 내부의 분위기는 어떤지?

아직 철도는 산별노조에 대해서 토론과 교육선전이 부족해서 쟁점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제시대에 시작한 24시간 철야맞교대를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투쟁에 매달려 있다보니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도 낮을 수 밖에 없고 간부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노동계 전반의 쟁점이나 사회적 투쟁과제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산별노조를 추진한다면 철도입장에서는 궤도산별, 운수산별, 공공대산별 정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동일직종이라는 친밀감과 공동교섭의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산별의 지향점이 어디까지이건 궤도산별에 대한 조합원의 정서적 동의는 쉬울 것으로 판단합니다. 올 여름 궤도공투가 성과를 냈다면 보다 현실화되었겠지요.

철도가 이번 특별단체교섭 투쟁을 하면서 화물, 택시와 함께 운수공투를 하고 있는데 이를 산별노조에 대한 논의의 결과로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궤도공투는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공동투쟁의 연대대상으로 서로 시기와 조건이 맞는 세 조직이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참고로 지금 운수공투는 공동파업을 하자는 게 아니고 투쟁시기를 집중하자는 정도의 공투입니다.


Q 네 이제 이야기를 좀 넘어가서 사회진보연대랑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A
2001년 철도노조 대외협력국장으로 일할때까지는 ‘사회화와 노동’이랑 기관지만 보는 정도였는데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2년에 철도-가스-발전 3사 공동파업을 준비할 때 범대위 상황실로 파견되어 일하게 되었죠. 그 때 사회진보연대에서 나온 송유나, 홍석만 동지와 친해지고 나서 송유나 동지의 권유로 가입했습니다. 근데 회원으로서 의무를 다 하고 있지는 못하니 솔직히 후원회원 정도 아닌가 싶어요.
사실 노동운동을 하다보면 머릿속으로는 계급운동, 변혁운동 전체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만 실상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노동조합 일상활동으로 보내기 쉽거든요. 그렇게 살다보면 문득 문득 ‘내가 과연 머릿속 생각대로 살고 있는 건가?’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자극을 주고 시야를 넓혀 주는 게 단체와 기관지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사회진보연대에도 그런 생각으로 가입했습니다. 결국 나를 위한 이기적인 이유였네요.

Q 노동운동이 많이들 위기라고 하고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진보연대 같은 경우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랄까 이런 식으로 고민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고민을 하시는지 질문이 좀 거친데 현답을 바래봅니다.

A
넓게 보면 인간해방을 위한 운동에서 이제는 노동운동의 비중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변혁이론을 구성하고 실제로 현실화되었던 경험이 이제 같은 방식으로 재현될 수 없다고 봅니다. 시대변화의 단편적인 예로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의 비율도 줄고 있고, 지금 노동자의 낮은 조직률도 문제이지만 조직률이 높다하더라도 전체 인구 속에서 노동자의 비율도 줄고 있습니다. 이제 다양한 이슈, 계층의 운동들과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노동운동이 책임져야 할 주어진 몫에 충실해야겠죠.
인간해방과 사회변혁에 대한 현실성 있는 장기적 전망을 누가 제시해 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거칠더라도 팜플렛도 많이 나오고 토론도 활발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러 운동세력이 노동조합을 장악해서 활용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변혁의 목표와 분야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대중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지도부만 장악하면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조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다양한 입장이 일반 대중을 조직하기보다는 노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근데 다른 회원 인터뷰는 그냥 사는 얘기하고 그러던데 오늘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Q 그런가요? 아까 가족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 이렇게 연속 해고당하시고 그러면 집안에서 나 여러 가지로 문제도 있을 텐데 어떻게 문제는 없나요?

A 해고기간동안 조합에서 부족하지만 최저생계비 정도는 받고 있고,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아내가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하면 운동하는 것 자체는 이해해 주거든요. 아직 어린 딸아이와 친척들에게는 노동운동하는 건 얘기하지만 해고된 건 숨기고 있어요. 한번은 딸 애가 티비 뉴스에서 노동자집회장면을 보고 퇴근한 저에게 경찰이랑 안싸웠냐고 물어봐서 황망히 둘러대고 뒤돌아 웃기도 했지요.

Q 그래도 계속 노조 간부 일하시고 그러면 집에도 잘 못 들어가고 가사일 분배도 그렇고 생활 속의 어려움이 있을 텐데

A 맞벌이를 하니까 가사분담은 당연한 일이구요, 아내가 퇴근이 늦은 날은 제가 일찍 퇴근해서 애 저녁도 먹이고 숙제도 챙겨주어야 하니까 되도록 외박은 안 하는 편입니다. 늦게까지 또는 밤을 새워 할 일을 주변의 동지들, 특히 총각들에게 떠넘기게 되는 게 늘 미안하지요.

Q 그래도 선전부장이면 여기저기 교육도 많이 가셔야 할 텐데?
서울본부에 교육국과 선전국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전국장인 저는 주로 신문을 만들거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을 하구요, 교육은 가끔 나갑니다.


Q 네. 이제 사회진보연대에 하고 싶으신 뼈아픈 충고랄까 이런 게 있으시면 좀 해주세요.

돈이나 내고 기관지나 열심히 읽는 주제에 평가하고 바라는 게 조심스럽지만 이런 생각은 좀 있어요. 상근하는 동지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사회진보연대는 굉장히 다양한 사안에 입장을 내는 조직입니다. 입장만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실천까지 하려면 인력과 재정이 너무 부족할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세 불리기라고나 할까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조직 이름도 그렇고 사회진보연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진보적 입장을 내고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 토론의 쟁점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적으로 말하자면 꽤 상품성이 있는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어떻게 시민단체처럼 회원을 많이 확보하는 노력을 좀 더 했으면 싶어요. 활동가나 운동가는 아니더라도 사회진보연대의 독자나 후원자가 되어 준다면 그것도 반가워해야 할 일 아니겠어요. 세 불리기라고 말한 게 그러니까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들 중에 진보적인 시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많을 텐데 이런 분들에게 좀 더 폭넓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이들에게 사회진보연대가 매력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종규 회원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 지난 기관지를 보시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하면서 인터뷰에 부쩍 신경을 쓰셨습니다. 인터뷰는 취재용 녹음테이프가 다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신 이종규 회원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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