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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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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전면 폐지하라!

최예륜 |
국가보안법, 법전에서 이름만 지우면 되나.

지난 10월 17일 열린우리당은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형법조항을 수정, 개조하여 '내란목적단체' 규정을 두기로 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방침을 당론으로 결정, 이번 회기 내 처리 의지를 밝혔다.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거나 '찬양, 고무', '불고지죄' 등의 명목으로 56년 간이나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둘러온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형법보완안을 살펴보면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을 법전에서 삭제하는 것 이상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고자 폭동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 또는 "예비, 음모한 자"를 처단하는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사상, 결사 자유를 제한했던 기존 국보법의 역할을 고스란히 형법으로 이전하는 것이며, 오히려 형법의 확대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을 외국으로 규정해 적국 규정의 해소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적대적인 외국은 적국이라 규정한다는 형법조항을 그대로 남겨놓아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런 식으로 법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역사를 청산할 수 없다. 안보와 권력유지의 명분으로 국가권력이 사회구성원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여지를 제거하는 것, 온몸으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의 수호자임을 자청해왔던 국가권력이 개인에 행한 인권탄압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와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었으며 식민지배의 정당화, 독재수호와 반공발전주의 관철의 도구였을 뿐이었다는 사회적 선언을 의미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 역사적 선언에 대한 책임을 갖고 전 사회적 동의지반을 얻기 위한 노력과 조건 없는 전면폐지를 말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가보안법

여당의 국보폐지 발언이 있은 후 보수수구 세력은 위기감을 드러내며 국보법 사수의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보수수구 세력의 위기감과 그에 따른 결집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시내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적기가가 울려 퍼질 것이라는 망상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점령과 식민 지배를 일삼아온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반공발전주의를 내세워 한국사회를 휘둘러온 기존의 지배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에 따른 균열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보위협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고 군사독재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반공발전주의의 이름으로 처단해왔던 대한민국에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이란 "자유민주주의의 최후의 안전장치"이며, 자신들의 기득권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단지 이들만의 최후 안전장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면폐지에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며 국가보안법의 안보 기여도를 긍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이렇듯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수 십 년간 인권과 정치사상의 자유를 유린당해온 민중들의 끊임없는 증언과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사상, 이념을 검열,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의 확장이 있었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이 개정 내지는 폐지 입장의 근거로 작동하는 반면, 전면폐지가 선뜻 동의되기 힘든 조건은 여전히 안보위협의 최대 적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바로 이 북한을 최대 위협 존재로 간주하는 안보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국보폐지는 안보 불안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고 반공발전주의의 그늘 아래 민중들을 통제해왔던 지난 56년간 역사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것인가. 낡은 시대의 유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기 위해서는 낡은 시대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임에도, 열린우리당에게 시대의 변화는 세대와 정권 교체만을 의미하는 듯하다. 제국주의의 식민 정책은 이념, 사상 투쟁의 가능성을 인위적인 국토 분단의 맹목적 전쟁으로 비화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국토 참절의 주범은 바로 미제국주의 세력이었다. 일제 시대 치안유지법을 본 따 만든 국가보안법은 그 태생이 바로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사회 반공발전주의의 성공적 수행을 뒷받침하는 체제의 수호신이었던 셈이다. 달라진 시대라 함은 6.15 공동선언 이래 경협 등 남북 교류가 점증하고 있고, 그러한 활동에 국가보안법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일 뿐이지, 미·일 제국주의에 대한 근본적 입장의 변화 없이 한미일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안보위협의 제일 요소로 북한을 꼽는 정부의 관점이 변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북 군사력 증강에 경제 제재 등의 수단을 통해 위협을 가하고 한편으로는 북한에 자본주의 질서로의 편입을 강요하고 포섭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미일동맹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북한의 안보 위협이란 오히려 제국주의 동맹의 외압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를 의미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세력과 한국사회의 반공발전주의 성장 과정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는 지금의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는 한계적이다. 이러한 한계적인 국가보안법의 변신은 사상, 결사의 자유를 사회불안요소 제거, 안보위협의 제거라는 차원에서 무지막지하게 억눌러온 지난날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언제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날카로운 검이 되어 민중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조건 없는 전면폐지!

한편, 수도이전 위헌판결과 국무총리 파면요구 등을 계기로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해 개혁과제를 결사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의 방해공작이라고 결론짓거나, 이 방해세력들의 위협에 정부여당이 무릎 꿇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은 과거 진보/보수 관념에 기대어 현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후 형법보완이라는 입장이 버젓이 발표되고 있으며, 이라크 파병연장동의안 처리, 비정규노동법 개악안 입법추진이 이런 개혁과제의 나열 속에 은근슬쩍 끼워 넘겨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좌/우 색깔론을 펼치며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위헌소송으로 대응하겠다는 한나라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점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지금의 정치 파행은 세대교체를 위한 진통이나, 개혁에 대한 보수 세력의 발목잡기가 아니라, 한국사회 지배세력의 정쟁이자 이전투구에 불과하다. 무엇이 노동자민중을 위한 법인지, 무엇이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정책인지에 대한 하등의 쟁점이 묵살되어버린 상황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개혁을 발목 잡는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의 민주과제인 개혁에 동참하라거나, 열린우리당은 후퇴없는 개혁을 천명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여야 정당이 묵살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쟁점을 수면위로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전면폐지는 바로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56년간이나 노동자민중에 대해 부당한 탄압을 일삼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눌러온 반민중적 역사의 청산이라는 점에서 지금 민중들의 의제이다.
국가보안법의 무덤 앞에서 겉으로는 묵념을 하며 속으로는 부활을 부르는 이중성과 안보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등을 정점으로 하는 지금의 국보법 개폐 논쟁은 국보법 폐지 투쟁의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고 있다. 이 왜곡된 논쟁구도에 여전히 민중들의 정치사상은 검열당하고 있으며 '진정한 안보불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국가안보란 무엇인가'라는 전사회적인 성찰을 가로막는 조건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중의 정치적 자유의 말살이라는 반민중성에 대한 평가이자,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반공발전주의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정이다. 국가보안법은 지금 즉시 조건 없이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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