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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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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미국 복지개혁: 복지에서 노동으로

노동연계복지(Workfare)비판을 중심으로

원종현 |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와 노동연계복지국가의 등장
자본주의의 성장국면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토대로, 계급타협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 민족국가의 헤게모니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을 철회하는 대신 고임금 및 사회복지를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안정화에 일조한다.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케인즈주의적 합의를 통한 계급타협의 시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이전에 계급타협을 가능케 했던 물질적 조건을 서서히 잠식한다. 대량실업의 지속과 그에 따른 복지비용의 급증 속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성장기에 일상생활의 상대적 안정성을 보장했던 일련의 제도적 장치들-특히 사회보장-을 '시장'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구조적 위기의 직접적 원인으로 공격한다. 이러한 일련의 반(反)복지 공세는 1980년대 이후 서방 국가들로 하여금 '복지국가의 양적축소'라고 할 수 있는 끊임없는 복지체제의 재편을 강제하게 하였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실업과 노동시장의 문제는 지속되었고 복지국가의 축소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공세를 더욱 강화하여 문제의 본질은 복지국가의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였다. 그리하여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을 동시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조율하는 '질적 개혁'의 흐름이 형성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연관된 명제들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동적' 복지체제를 '능동적/적극적인 것'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완전고용이 구조적 실업으로 대체된 상황에서 국가는 과거와 같이 사회적 위험의 사후적 해결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실업의 사전 예방 또는 조기해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복지와 조세제도 전반에 스며든 노동유인(work incentive)의 저해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복지제도는 노동시장 밖에서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 왔을지 모르나, 이것 자체가 강한 탈노동유인(work disincentive)이 되어 '복지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촉진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복지수급자들의 취업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는 저임금이나 비정규 일자리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고용보장과 유연성의 적절한 조화이다. 주요한 내용은 단체협상의 탈중앙화, 해고제한 완화/철폐, 사회보험료 등의 비임금 노동비용의 면제/인하 등이다.
이들은 이렇게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을 개인의 노동윤리와 노동유인의 부족/부재로 인한 '복지에 대한 종속'에서 찾는 만큼 복지급여의 수준을 크게 낮추고 수급자격과 기한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복지수급자의 노동시장 편입을 촉진하는 정책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정책 아래에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아예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 소득보장을 위해 마련되었던 제도는 이제 이들을 강제로 일자리로 몰아내는 장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복지급여에서 일자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의 강제성은 상호성으로 포장된다. 권리와 의무의 균형회복이 복지개혁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내리는 처방은 19세기 영국 자유방임주의자들의 구빈법의 열등수급의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복지급여가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소득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때의 복지는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 아니라, 복지의 수급이 최악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보다 열등한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한 '형벌'의 성격을 갖는다.{{) 1980년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 머레이는 다음의 세 가지가 모든 사회정책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 1 : 사람은 유인과 탈유인에 반응한다. 채찍과 당근은 효과가 있다.
전제 2 : 사람은 본래 근면하거나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다. 상응하는 억지력이 없는 경우 사람은 노동을 회피하고 무도덕 상태에 빠진다.
전제 3 : 사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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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전제 아래에서 서방 각국은 노동유인의 제일 저해요소로 공공부조를 지목하고 복지급여 삭감, 수급자격 강화, 수급기간 제한 등의 전통적인 조치와 함께 복지수급을 노동의무와 연계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정책을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노동연계복지는 공공부조의 조건으로 수급자에게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노동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수급자격을 주지 않으며 복지급여의 소득대체율도 크게 낮추어(급여액 삭감) 형벌적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부조제도이다. 또한 수급대상자를 노동능력자와 무능력자로 나누어 후자에게는 노동의무를 면제하는 것도 노동연계복지의 중요한 원리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의 복지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입증된' 빈민에게만 주어지고 노동능력자가 일 대신에 복지에 유인되는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저소득 취업자에게 주는 조세혜택도 주요한 정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로소득에 조세혜택을 덧붙여 복지급여액과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확대하여 노동유인을 높인다. 이 모든 정책은 노동시장 밖에서의 소득(즉 복지급여)을 삭감하여 일이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지의 최소화를 통해 노동력 재상품화(the recommodification of labor power)에 주력하는 복지체제(이것을 복지라고 할 수 있다면)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그 역도 가능하다. 노동력 재상품화를 통해 복지의 최소화에 주력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복지개혁이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앵글로-색슨 모델(Anglo-Saxon model)이다. 이 중 미국 복지개혁은 매우 특수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미국의 복지개혁에 유럽 국가들과 같은 거시 경제적, 체제적 구조변환의 압력이 기본적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특유의 강한 노동윤리와 가족주의, 이에 부착된 인종주의는 사회복지제도 자체와 그에 '기생'하는 빈곤층에 대한 혐오를 배태하였다. 이로 인해 양적, 질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던 미국의 복지의 축소라는 다소 역설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미국 : 저복지에서 탈복지로
2-1 반복지공세의 배경과 1996년 '복지개혁' 이전의 상황
미국에서 복지(welfare)란 통념적인 의미의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붙은 특정한 공공부조를 가리키는 일종의 코드이다. 미국에는 '사회보장국가'는 있을지언정, 전통적 의미의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로 철저히 분절되어 있다. 사회보장은 연방사회보험인 공적 연금제도를 뜻하고, 사회복지는 공공부조를 가리킨다. 노동과 기여를 바탕으로 한 전자의 수급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나, 후자의 수급자는 미국사회에서 치부로 인식된다. 따라서 미국의 복지개혁은 유럽 국가들의 개혁과는 처음부터 매우 다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미국 공공부조의 대표격이며, 미국 사회에서 있어서 흔히 말하는 '복지'(welfare)를 의미하는 AFDC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는 1935년 사회보장법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부양 아동이 있는 편부모가족이 기본적인 지원대상이다. 미국의 복지개혁과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은 거의 전적으로 AFDC 프로그램을 향해 이루어졌다. "막대한 복지비용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빈곤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고 하면서 미국의 복지제도가 미국 하층계급의 빈곤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부양아동가족의 빈곤율은 1973년 11.4%에서 1995년 16%로 늘어났다. 그러나 AFDC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제도가 폐지되기 직전인 1994년의 AFDC 지출은 연방정부 예산의 1%도 되지 않았다. 미국의 복지개혁이 단순한 재정적 이유를 넘어서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그리고 "복지로 시작하면 영원히 복지 안에 갇히게 되고, 일로 시작하면 빈곤을 벗어나 사회의 주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이런 믿음의 저변에 깔려 있었다. 노동윤리와 자활/자립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게으르고, 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대며,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AFDC 수급자는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었다. 수급자의 대다수가 10~20대 흑인 편모 2인 가족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지배적 인종주의 담론과 함께, 복지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위한 논거를 단단하게 구성하였다.{{) 복지급여를 수급하는 어머니들의 72%는 단지 두 명 이하의 자녀를 두고 있고 61%는 복지급여를 받고 있는 동안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복지 수급자들은 노동시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는데, 43%는 복지수급과 임금노동을 병행하거나 이 둘을 번갈아 반복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복지급여 수급자들은 2년 이내로 수급자 명단에서 떠났으며 복지를 수급하는 어머니들의 3분의 2는 취업하기 위해서 복지수급을 중단하였다. 이 모든 것은 "수급자들의 복지의존을 없애기 위한" 개인책임법이 실시된 1996년 이전의 수치들이다.
}} 미국의 복지개혁이 탈복지와 노동강제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복지제도가 만들어진 직후인 1940년대부터 이미 주정부차원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복지개혁론자들은 복지 수급자들이 복지수급 대신에 시장노동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혹은 복지급여 수급과 시장노동 참여를 동시에 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확립되기 시작한 지방법들은 일부 복지수급자(일반적으로 유색인종 여성들)을 "취업이 가능한 어머니들"로 분류하여 그들의 복지수급 자격을 없애버렸다. 1962년에는 31개의 주가 어떠한 형태로든 의무노동조항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연방차원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노동의무 조치인 1962년 공공부조 수정법안은 복지급여 지급의 조건으로 수급자들에게 지역사회 공공근로 참여나 훈련 프로그램 참여를 요구할 수 있었다.
}} 노동의무 조항을 통해 복지수급자의 수를 통제하고 복지비용을 조절함과 동시에, "복지사기꾼"을 벌하고, "새끼만 치는 여자들"에게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하고, "여성가장들"에게 결혼할 동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노동조치야 말로 잘못된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돌보며 집에 머무는 잘못된 여성들에게 국가가 급여를 제공하는 잘못된 관행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1967년에서 1988년까지 복지정책은 복지급여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도덕적 조건들을 부과하면서 의무노동조항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여섯 번이나 수정되었다. 법안이 수정될 때마다 빈곤한 모자가정 어머니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그들의 행동을 고쳐나가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고 빈곤한 모자가정 어머니들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고조되었고 미국사회의 지배 여론은 AFDC로 대표되는 '복지'에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AFDC 수급자가 늘어날 때마다 복지개혁의 구호는 더욱 거세어졌고, 모든 복지정책의 성과는 언제나 수급자가 얼마나 줄었는가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1인당 실질 AFDC 급여액이나 여성가구주의 비율, 흑인 수급자의 비율은 지난 20여 년 간 꾸준히 하락하였으나 이런 지표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강제적인 시장노동 참여와 복지수급 자격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연방정부도 시장노동 참여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고 주정부의 조치들에 대해 제동을 걸었으며 노동 의무 완화, 노동 의무 면제 규정과 조치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복지(즉 공공부조)개혁 정책은 복지수급자를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1981년에 레이건이 집권한 이래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노동중심적인 복지개혁(work-centered welfare reform)이 시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1988년의 '가족지원법' (Family Support Act, FSA)과 1996년의 '개인책임 및 근로기회조정법'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 PRA)은 미국의 공공부조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획기적 사건이다.

2-1-1 가족 지원법(FSA)과 JOBS 프로그램
레이건 정부는 집권 첫 해인 1981년에 '종합 예산 조정법'(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 of 1981, OBRA)을 만들어 공공부조에 대한 대대적 수술에 나섰다. 이 법은 각 주로 하여금 복지와 노동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각 주에서는 '지역사회 근로경험 프로그램'(Community Work Experience Program, CWEP)을 만들어 복지수급자의 참가를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이 노동연계복지(workfare)로 불리게 된다. 1988년이 되면 빈곤한 모자가정의 어머니들 모두가 가정 밖에서 취업하도록 하는 정책이 실시된다. 같은 해인 1988년 '가족 지원법'(FSA)이 제정되고 '일자리 기회와 기초 기능 훈련 프로그램'(Job Opportunity and Basic Skills Training Program, JOBS)이 실시되었다. FSA는 사상 처음으로 각 주에 복지와 노동의 연계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요구한 점에서 미국 공공부조의 물줄기를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미국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조세수입의 하락과 각종 사회복지 지출 증가에 직면한 각 주 정부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JOBS 프로그램을 점차 기피하였고 이 프로그램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경제 침체에 따른 AFDC 수급자의 증가는 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가져왔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클린턴의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제도를 끝내겠다."(end welfare as we know it)는 공언도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2 1996년의 '복지개혁' - '개인책임 및 근로기회조정법'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 PRA)의 탄생
자립과 자활을 종교와 같이 신봉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복지개혁은 노동윤리의 회복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1996년에 제정된 PRA는 60년 이상 유지되었던 AFDC를 폐지하고 미국 공공부조의 근본 틀을 바꾸는, '혁명적'인 법이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곤층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AFDC를 폐지하고 한시적 원조제도인 TANF(Temporary Assistance to Needy Families)로 대체한다. TANF의 수급자에게는 엄격한 근로의무가 주어진다. 아울러 개인의 수급 기간은 전 생에 동안 총 60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둘째, 공공부조에 대한 연방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철폐하고 주정부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이양한다. TANF에 소요되는 예산은 연방정부가 포괄적 교부금(block grant)의 형태로 각 주에 지급하며 각 주는 이 돈을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포괄적 교부금 제도 또한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연방정부의 포괄적 교부금은 각 주의 1994년 지출 수준을 기준으로 책정되었고 이 액수는 2002년까지 변동이 없다. 과거에는 주정부의 복지지출액의 4배를 연방정부가 무제한 지급했던 데 반해, 이 방식은 주정부의 빈민지원재정을 크게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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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TANF의 도입과 함께 연방정부가 책임지는 빈민들의 복지 수급권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각 주 정부가 빈곤 가족에 대한 지원의무를 갖게 된 것도 아니다. 빈민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는 반드시 근로의무가 부과된다. 복지급여는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에는 기간 제한이 따른다. TANF의 도입은 복지가 결코 하나의 생활양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사회의 지배적인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복지수급 자격권의 철회는 이미 절망적인 경제상황이 비참한 수준으로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정부의 소득 보조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정부는 수급자들이 급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복지법에 정해진 기준을 얼마나 준수하는가에 따라 지급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책임법은 다음의 열두 가지 "노동활동"을 법에서 정한 의무노동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인정한다. (1)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취업, (2)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민간영역에서의 취업, (3)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공공기관에의 취업, (4) 민간 부문에서 취업이 여의치 않은 경우, 공공주택 등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노동을 포함한 노동경험 활동, (5) 직업훈련, (6)구직 및 직업 준비 보조, (7)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 (8) 직업교육 훈련(12개월을 넘지 않는 것), (9) 취업과 직접 관련 있는 직업 기술 훈련, (10)고등학교 졸업장이 없거나 이와 유사한 학위를 가지지 못한 수급자들에 한해서 취업과 직접 관련 있는 교육을 받는 활동, (11)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이와 유사한 학위가 없는 수급자들이, 중등학교에 출석하거나 혹은 GED(General Equivalency Degree)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 (12)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을 위해 탁아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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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F는 노동윤리의 결정판이다. 개인책임법의 의무노동 조항은 두 달 동안 연속으로 복지급여를 받은 한부모가족의 가장에게 몇 시간에 걸친 지역사회 봉사 노동을 하게 하거나 주정부가 정해놓은 일을 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인책임법은 복지급여를 24개월(연속적이거나 비연속적인 경우 모두)동안 받은 한부모가족의 가장에 대해서는 노동의무 규정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며 시장노동 참여 의무시간을 점점 연장시킨다. 의무시간은 1998년에는 주당 20시간, 2000년에는 30시간이었다. 이 법은 주정부에 강력한 의무조항을 부과하여 결국은 그것이 복지수급자 개인에게 부과되게 하고 있다. 각 주는 매해 "노동 관련 활동"에 더 많은 복지수급자들을 등록시켜야 하는데, 1998년에는 30%, 2002년에는 50%였다. 이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약 수급자가 의무시간 만큼 (임금을 받거나 받지 않는) 시장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정부가 그 가족의 복지혜택을 삭감하거나 박탈해야 한다. 만약 주가 의무노동 참여율에 미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첫해에는 TANF 정액교부금의 5%, 그 다음해에는 7%, 그 다음해에는 9%, 최대 21% 까지 교부금이 삭감된다. 개인책임법의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공격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생애복지수급 가능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한 것인데, 실제로는 주정부가 이 기간을 더 줄일 수 있다. 생애복지수급 가능 기간의 제한은 가난한 모자가정의 어머니로 하여금 강제로 취업하거나 혹은 그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남자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떠한 활동이 일로 간주되는지에 관한 지침은 '어떤 일이든 괜찮다'(any-job-will-do)이다. 예를 들면 무보수의 지역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노동활동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단지 일을 위한 일일 뿐 복지수급자의 수익력이나 잠재력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역사회 서비스 노동은 매우 단순한 일로서, 공원의 낙엽을 긁어모으는 것, 도시의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 학교 급식 센터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이 수급자들이 이미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일들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영어가 서툰 수급자들은 더욱 미래의 소득 보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한 일들을 맡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런 일들이 복지수급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무보수로 행해지기 때문에 노동을 하고 있는 빈곤계층의 소득을 증진시키기 위한 연방차원의 조치인 근로소득세액공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역사회 서비스 노동에 복지수급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복지수급자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족한 예산에 시달리는 주정부와 지방정부들이 단순노동을 무보수노동으로 대체하게 하여 노동시장을 잠식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자를 복지수급자로 직접 대체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나, 계약이 만료된 노동자들과 일부러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더 많은 수급자들을 노동에 참여하게 해야 하는 주정부의 의무조항과 함께, 값싼 혹은 무보수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유혹은 엄청난 노동의 착취와 수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볼티모어에서는 아홉 개의 공립학교들이 시간당 6달러를 받던 노동자들과 계약 갱신을 하지 않고 수급자들을 시간당 1.50달러에 고용하였다. 1997년 중반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천여 명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리가 노동참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훈련생들로 채워졌다. 뉴욕 시에서도 수천 명의 노동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이전에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했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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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책임법의 노동의무 조항이 어떻게 경제적인 자립능력을 높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수급자들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조항과 노력도 없을뿐더러 수급자의 소득기회를 향상시킬 수 있는 서비스에 투자하지도 않는다. 이 법은 직업 교육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가족지원법(FSA)에서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원 약속 조항들을 철회하였다. 구체적으로 취업과 연관되지 않는 이상,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언어교육을 제공해 주지 않고 직업훈련에 적절한 자금도 지원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동의무 조치를 시행하면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내는 노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들은 복지를 수급하는 4백만의 성인을 수용할 수가 없다. 기존의 직업들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만큼의 임금을 제공하지 않는다. 교육/기술수준이 낮고 인종적으로 차별 받는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직업-예를 들면 서기, 소매업, 음식 서비스, 청소 등-에 종사하게 된다. 이러한 직업들은 대개 최저임금(시간당 5.15 달러) 이하의 임금을 지급한다. 만약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여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다 해도 가난한 여성들이 주로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제 노동은 그들의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기에 역부족이다. 더구나 취업으로 인한 비용-교통비, 의복비, 특히 탁아비-의 증가는 이들을 수급권자였을 때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2-3 '복지개혁 이후
이렇게 노동연계복지 하에서 이 제도에 순응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의무 불이행)하여 공공부조 수급을 탈피 또는 중단한 어머니와 그 자녀들(약 300만 가구, 900여만 명에 달한다.)이 처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공공부조 수급이 중단된 사람 가운데 취업한 경우는 60~75%에 달한다. 그러나 산업별로 보면 취업자의 절반 가량이 서비스업에, 그리고 1/4 가량이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임금수준과 안정성이 높은 제조업 분야에는 불과 10% 정도만이 취업하고 있다. 직종별로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데, 약 12%가 판매직, 20%가 행정업무 보조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서비스 직종에는 약 40%가 취업하고 있다.{{) 미국의 전체 여성노동자중 서비스직종 종사자 비율은 20%이다.
}} 이렇게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낮은 서비스 및 판매부문에 주로 고용됨으로써 공공부조 수급 중단자들은 취업 이후에도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취업 이후 고용지속기간이 평균 3~9개월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1년 내에 직업을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 취업자 중 전일제 노동자(주당 40시간 이상 노동)의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취업을 통해 공공부조 수급에서 벗어난 이들의 상당수가 다시 실업상태에 빠지거나 임시직, 시간제 등의 직종에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함으로써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있다.
고용안정성 뿐만 아니라 임금 또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취업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대략 7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미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 15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임금으로 주당 40시간 씩 1년 내내(50주)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14,000달러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데 이는 편모-아동 1인 가구의 빈곤선 12,207달러보다 조금 높지만 편모-아동 2인 가구의 빈곤선 14,269달러에는 미치지 못한다. 노동으로 소득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정부로부터 받는 이전소득의 감소분은 새로운 소득보다 매우 커서 절반 이상의 수급 중단자들은 공공부조 수급 당시보다 소득이 줄어들었다. 또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의 절반 가량이 주당 40시간 미만의 노동에 종사하고 1년 내내 노동하는 경우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로 1997년 공공부조 수급중단 1년 후의 이들의 평균 소득은 6,467달러이다. 노동활동에 참여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평균소득은 7,709달러에 불과하다.
}} 공공부조 수급중단자가 노동활동만으로 빈곤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노동으로 통한 자활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복지개혁은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으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나아가며
미국은 스스로를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함으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제국의 중심부로서의 모범 역할을 해내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과거의 "수동적이고 비효율적인 복지제도를 개혁"하려는 미국의 탈복지정책은 빈곤층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실상 복지 자체의 종식을 가져왔으며, 빈곤층을 더욱 사회의 하층과 주변으로 밀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노동의 종말', '고용없는 성장'으로 표현되는 '일의 고갈' 시대에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순이 그것을 반증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일을 통한 빈곤탈출'은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부터 인민에 대한 국가 역할·책임의 최소화를 위해 만들어진 그럴듯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미국을 모범으로 삼으려 하는 한국이 이 '복지개혁'의 기본정신과 방향을 이미 모방하였거나 모방하려 하고 있다. 종속적 발전주의와 억압적 국가장치가 낳은 '복지와 권리의 부재'라는 상황과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개인노동윤리의 존재는 미국과 매우 유사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빈곤해결'이라는 한국 '복지개혁'의 전망을 점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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