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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호성희 |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호 성 희 | 여성국장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있다. 눈이 맑은 아이들은 기소장을 쓰면, ‘싸우지 않을게요’란 다짐을 한다. 무고한 죽음들과 삶의 터전의 파괴. 이것만으로도 전쟁을 반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총성을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여성'이라는 집단적 주체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이 가리고 있는, 혹은 전쟁이 그것 자체로 합리화하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려 하는 것이다.

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한다

전시강간은 고대의 전쟁부터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국지전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끔찍한 공통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쟁의 우발적 결과가 아님을 말해준다. 전시강간은 적의 남성을 무력화하는 방법이었고, 전쟁에서 여성은 전쟁의 포획물이거나 지켜야할 사유재산처럼 취급되어 왔다.
우리가 새로운 전쟁이라 부르는 냉전 이후의 국지전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상징들은 군사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이라크 전쟁에서 아부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 고문이 그러한 예이다. 남성들의 전투 참여는 적의 여성화와 강간의 상징을 통해 지배를 상징화한다.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남성성을 지배적인 위치와 연결짓고 여성성을 열등한 적과 동일화한다. 이와 같이 적을 여성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현실의 불평등한 남녀관계를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한 조직(OWFI)'의 성명서에 따르면, “팔루자에서 2004년 10월 20일에 열린 무자헤딘 회의에서 이슬람주의 범죄자 압둘라 알 자나비와 팔루자의 슈라 위원회는 무자헤딘 전사들은 열 살 정도의 소녀들이 미군들에게 강간당하기 전에 그녀들을 먼저 강간해야만 한다는 율령을 발표했다. 수십 명의 대학을 다니는 소녀들은 청바지를 입었다는 혹은 히잡(베일)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종 심하게) 맞았다. 미용실에 가는 여성들은 종종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서, 수치의 대상이 되어 공개적으로 머리카락을 잘린다. 수천 개의 유인물이 매일같이 전국에 배포되는데, 내용은 베일을 쓰지 않은 채 나온, 혹은 화장을 한, 혹은 손을 흔들거나 남성들과 함께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경고이다. 1000명 이상의 여대생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었다.”이러한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저항'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상징적 폭력들은 상품화되기도 한다. 얼마 전 부시가 바지를 벗은 채 들어올린 엉덩이가 연필꽂이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가 생생히 드러나진 않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도덕적 타격을 주었던 아브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 성 고문 사건 뒤편에는 여성포로가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명예살인은 이슬람 율법이 아니라, 악습 중에 악습이다. 전쟁에서 여성이 당한 피해는 사회적으로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명예살인과 같은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들은 다시 부활하고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재건을 돕는다는 이유로 3600여명을 파병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라크는 전쟁 중이며,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 더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전쟁은 파괴 그 자체이다. 현재 이라크 실업률은 50%를 넘고 있으며, 사회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시스템 자체도 파괴되었다.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폭력 중에 하나는 바로 빈곤의 확산이다. 이것은 민간인 학살의 다른 이름이다. 91년 걸프전부터 지금까지 좀더 천천히 오래 지속되어 왔을 뿐이다. 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 여성들은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라크 현지를 다녀온 활동가들은 지난해 5월부터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녀들은 어렵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고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지만 폭격이 멈춘 뒤에 그녀들은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쟁반대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것과 분리한다면 말이다.

“여성”이 전쟁범죄를 기소한다는 것은..

집단적 주체로서 여성이 전쟁범죄를 고발한다는 것은, 전쟁이 여성의 이름으로 새롭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이 전쟁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한국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은 50여 년이나 긴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전쟁은 남성이 당사자이고, 남성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는 것은 다시 더 심하게 곪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운동은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가지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끝내는 것이 무엇을 끝장내야하는지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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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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