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생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저주

존 벨라미 포스터, 브렛 클라크 |
생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저주

존 벨라미 포스터, 브렛 클라크
번역: 사회진보연대 정책국

2003년 봄 미국은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이라크를 침략했다. 이라크의 석유매장량은 세계 두 번째다. 이제 미국은 이라크 석유생산을 확대하고자 하면서, 미국의 더 큰 경제적,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인 이 결정적인 자원의 통제에서 점점 더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이라크를 침략한 이 정부는 그에 앞서 교토 협약을 거부했다. 이 협약은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의 배출 증가를 제한하기 위해 입안되었다 - 이 현상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생명체를 위협한다. 그 후 최근 몇 년 동안 생태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생태 제국주의는 그와 연관된 더 익숙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의 형태들만큼 중요해졌다.
1986년 알프레드 크로스비는 <생태 제국주의: 유럽의 생물학적 팽창, 900-1900>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유럽이 세계 나머지 대부분을 식민지화하여 - 매 번마다 부주의하게 - 토착 환경이 파괴되었다고 설명한다.{{) Alfred W. Corsby, Ecological Imperailism: The Biological Expansion of Europe, Cambridge: Cambridge Press, 1986.
}} 새로운 세계 환경에 도입된 옛 세계의 식물상과 동물상은 토착종에게 역효과를 주면서 통계상의 폭발을 경험했다. 크로스비 책의 부제가 암시하듯이, 그의 역사적 분석은 주로 '생물학적 팽창'을 다루었고, 그래서 정치적-경제적 현상으로서 제국주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 그 책은 어떻게 생태 환경이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의 주변부에 대한 지배와 관련되는지 또는 서로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 간 상쟁과 관련되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 책의 관점을 따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한 후 수천만 명의 토착민을 죽인 전염병처럼 생태 제국주의는 이전에 지리적으로 분리된 지구의 각 지역들 간 '마주침' 후 작용하는 순수한 생물학적 힘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사 기술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 문제를 대부분 결여하였다.
자본주의 조건에서 생태 문제는 복잡하다. 전체 지구 수준의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계 수준의 생태적 하락은 세계자본주의 체계 안의 분할과 관계가 있으며, 단일한 세계경제가 서로 직접적으로 경쟁하거나 그들의 법인기업을 통해 경쟁하는 수많은 민족국가들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또한 세계경제는 중심부와 주변부로 위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민족들은 국제적인 노동분할과 지배와 종속의 세계체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모두가 생태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을 꽤나 복잡하게 한다. 하지만 전체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 유물론적 분석의 저발전은 이를 저해하였다.{{) 다음은 생태학적 유물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John Bellamy Foster, Marx's Ecology: Materialism and Nature,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0.
}} 그렇지만 경제적 가치의 이전은 도시와 농촌, 세계도시와 주변부의 관계를 변형하는 현실의 '물질적-생태적' 유출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동반한다는 점은 오랫동안 명백했다. 그리고 이는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명기되어 있다.{{) (보통 사용가치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물질적-생태적 유출과 가치 유출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은 다음을 보라. Paul Burker, Marx and Nature, New York: St. Martin Press, 1999.
}} 이러한 유출의 통제는 상쟁하는 산업적, 금융적 중심들 간 경쟁에서 사활적인 부분이다. 그러므로 생태 제국주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
- 다른 나라의 자원 약탈과 국가와 민족이 의존하는 전체 생태계의 변형
- 자원의 채취와 이전과 연결된 인구와 노동의 대량 이동
- 제국주의적 통제를 증진하려는 사회의 생태적 취약성의 착취
- 중심부와 주변부 간 균열을 확대하는 방식의 생태 폐기물의 덤핑
- 총괄적으로, 자본주의와 환경의 관계의 특징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발전을 제한하는 세계적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의 창조

물질대사의 균열

생태 제국주의와 결합된 자본주의의 주요한 생태적 모순은 이미 마르크스 저작 속에서 상당히 명백했다. 자본 축적은 어떤 측면에서 자체추진 과정이다. 한 단계에서 축적된 잉여는 다음 단계를 위한 투자 기금이 된다. 그러므로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자본주의의 특징인 역동적인 축적을 출발시킨 최초의 자본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의, 최초의 또는 '원시적' 축적의 문제를 제기한다.
마르크스는 영국을 고전적인 사례로 받아들여, 원시적 축적이 세 측면을 지닌다고 보았다. 첫째, 토지 엔클로저[공유지를 사유지로 하기 위해 울타리를 침]를 통한 토지로부터 소농의 제거와 관습적인 공유 권리의 폐기. 따라서 소농은 물질적인 생산수단에 더 이상 접근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이를 통한 무토지 노동자 빈곤층의 창조.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임금 노동자가 되었고,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개인으로서 출현하게 된 도시에 모였다. 셋째, 부의 막대한 집적과 집중.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처음에는 토지의 통제를 통해) 점점 더 소수의 개인에게 독점되었고, 따라서 잉여가 산업의 중심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프롤레타리아가 된 노동자는 착취에 이용될 수 있었지만, 실업자인 '나사로[성경에 나오는 병든 거지] 계층'은 임금을 낮추어 생산이 더 이윤을 얻도록 하였다.
원시적 축적의 전체 과정은 -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인민에게서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는' 과정과 맬서스가 표현한 것처럼 그들을 도시로 '내모는' 과정을 포함한다 - 깊은 생태적 함의를 지닌다.{{) Karl Marx, Capital, Volume 1, New York: Vintage, 1976, p.896; Malthus to Ricardo, August 17, 1817, in David Ricardo, Works and Corresponde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4, pp. 176.
}} 이미 봉건적 소유에서 토지는 '영주의 무기체'[토질고갈로 인한 불모의 땅]로 변화되고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토지(와 자연)의 양도가 심화되었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확대되었다. 마르크스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토지'는 '판매의 대상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적었다.{{) Karl Marx, Early Writings, New York: Vintage, 1974, pp. 318-19.
}}
마르크스의 '물질대사의 균열'이라는 개념은 식량과 섬유의 도시 수출로 인한 토질 영양물의 - 예컨대 질소, 인, 칼륨의 - 손실에 대해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의 농업 화학자와 경종학자가 제기한 경고를 배경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핵심 영양물은 전통적인 농업 생산처럼 토질로 되돌아가지 않고, 수백 수천 마일 멀리로 수송되었고 도시를 오염시키는 폐기물로서 [순환이] 끝났다. 영국의 고도 농업(high farming)처럼 당시 자본주의 농업 생산의 가장 발전된 형태는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주장한 것처럼 토지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단지 '강탈 체계'일 뿐이었다.{{) 리비히의 주장과 그것이 마르크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을 보라. John Bellamy Foster, 'The Communist Manifesto and the Environment', Socialist Register 1999: London, Merlin, 1999, p. 179.
}}
리비히와 다른 토질 화학자의 주의 깊은 학생이었던 마르크스는 이러한 인간과 지구의 적대를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인간과 지구 간 '물질대사의 상호작용'에서 '회복될 수 없는 균열'을 창조했다. '사회적 생산의 조절 법칙'으로서 필수적인 물질대사의 상호작용에서 체계적인 회복이 필요했지만, 자본주의에서 대규모 산업적 농업과 장거리 교역의 성장은 물질대사의 균열을 강화하고 확대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게다가 토지 영양물의 소모는 반대로 도시에서 오염과 폐기물을 낳았다.{{)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마르크스는 (토질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 간 지속 가능한 관계 -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유지(또는 개선)한다는 원칙에 의해 지배되어야만 하는 관계 - 의 필요성에 대한 관점을 발전시켰다.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유명한 언급을 보라. '더 높은 사회경제적 구성체(formation)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한 개인이 지구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게 보인다. 한 사회 전체나 한 민족조차 또는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들을 합치더라도 그들조차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연의 가공자, 수혜자일 뿐이며, 가계의 좋은 가장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자연을 더 개선된 상태로 물려주어야만 한다.' (다음을 보라. Karl Marx, Capital, Volume 1, London,: penguin Books, 1976 pp. 636-38; Volume 3, pp. 949-50 and 911).
}}
마르크스는 원시적 축적과 물질대사의 균열이 세계 체계로서 자본주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세계적 관계들을 구체화한다고 간주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유명한 언급을 보라.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의 발견, 아메리카 대륙 토착민의 절멸, 노예화, 광산에서 매장, 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를 상업적인 흑인사냥 구역으로 전환시킨 것 등은 자본주의생산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전원적인 과정은 원시적 축적의 최고 순간이다.{{) Marx, Capital, Volume 1, p. 915.
}}

토착민에게 가한 집단학살은 새로운 세계에서 부의 획득으로 이어졌다. '공공연한 약탈, 노예화, 살인으로 유럽 외부에서 포획한 보물은 모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곳에서 자본으로 변했다.' 거대한 부가 주변부의자연적 부의 강탈과 생태 자원의 착취 위에 세워졌다. 인도에서 소금, 아편, 후추와 다른 상품들의 독점은 마르지 않는 부의 광산이었다.{{) Ibid., pp. 914-30.
}} 마르크스는 1848년 자유무역에 관한 유명한 연설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아마도 당신들은 서인도에서 커피와 설탕의 생산이 자연적 숙명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교역을 고려하지 않는 자연은 두 세기 전에 그곳에서 사탕수수나 커피나무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Karl Marx, The Poverty of Philosophy,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63, p. 223.
}}
이처럼 유럽으로 수출될 환금작물 단종재배의 창조는 - 그리고 이를 위한 노예화된 또는 준노예화된 노동인구의 창조는 - 세계경제 발전의 산물이었고, 중심부의 이익을 위한 주변부에 대한 공공연한 약탈을 동반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정맥>이란 저서의 말을 빌면,

단종재배 플랜테이션은 자연자원을 고갈시키는 체를 구성했다... 각 지역은 일단 세계시장에 통합되면 역동적인 순환을 경험한다. 그 후 대용생산물과 경쟁, 토지고갈 또는 조건이 더 나은 다른 지역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초기 생산의 추진력은 지난 시간과 함께 가난, [수입, 식량이 부족한] 생계경제, 무기력의 문화 속으로 사라진다...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생산물이 요구될수록 자신의 희생으로 생산물을 창조한 라틴 아메리카 인민들은 더 큰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Eduardo Galeano, Open Veins of Latin America,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3, pp. 72-73.
}}

그러나 열대 단종재배는 19세기 생태제국주의의 유일한 방식이 아니었다. 영국의 '고도 농업'은 - 또는 일찍 산업화된 농업은 - 영국의 토질에서 영양물을 강탈했고, 그 영양물을 대체할 수단을 다른 나라에서 강탈함으로써 보상을 얻으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리비히를 따라서 그는 영국 농업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영국으로 토질 영양물과 자연 비료를 수송하여 사실상 이들 나라들의 토질을 수입했다고 적었다. 영국 농업은 수입된 구아노[비료로 쓰이는 새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마르크스가 밝힌 자연적 물질대사의 '균열'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제이슨 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로 이행이 이루어지면서 도시와 농촌간의 새로운 노동분할이 - 세계적 규모에서 그리고 지역 내에서 -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에 따라 (특히, 그러나 주변부뿐만 아니라) 농촌의 생산물은 도시로 흘러 들어갔고, 도시에서는 폐기물을 생산의 장소로 되돌려보낼 의무가 없었다. 영양물이 주변부의 한 생태계에서 퍼 올려졌고, 중심부의 다른 지역으로 수송되었다. 본질적으로 토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갈되어 수익성을 속박할 때까지 점진적으로 채굴되었다. 이 점에서 경제적 모순은 자본이 가치법칙을 넘어서까지 영토를 착취하는 새로운 길을 찾고 발전시키도록 강요했다.{{) Jason W. Moore, 'Environmental Crisis and the Metabolic Rift in World-Historical Perspective', Organization & Environment', 13(2), 2000, p. 124.
}}

질산염의 저주로부터 석유의 저주로

갈레아노가 말한 것처럼 영국의 면화직물은 리오 데 라 플라타[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이루는 강]의 짐승가죽, 칠레의 구리, 쿠바의 설탕, 브라질의 커피와 교환되었지만 또한 페루의 구아노와 질산염과 교환되었다.{{) Galeano, Open Veins of Latin America, pp. 191-192.
}} 1840년 리비히가 토질 영양물의 손실의 문제를 처음으로 지적했던 때와 같은 해에 프랑스의 과학자 알렉산드르 코세는 페루의 풍부한 구아노와 질산염(초석)에서 금전적 가치가 있는 양의 질산염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세의 실험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1841년 구아노를 향한 국제적인 쇄도가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유럽(특히 영국)과 미국 농업은 손실된 토지 영양물을 보상할 귀중한 비료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1850년대 초반 영국 관리는 페루 해안의 한 섬에서 다음의 나라들이 동시에 구아노를 배에 싣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미국 배 44척, 영국 40척, 프랑스 5척, 독일 2척, 이탈리아 1척, 벨기에 1척, 노르웨이 1척, 스웨덴 1척, 러시아 1척, 아르메니아 1척, 페루 1척. 구아노를 배에 싣기 위해서는 암석으로 된 섬을 뒤덮은 배설물 더미를 깊게 파야 했다. 독한 먼지가 노동자의 눈, 코, 잎으로 스며들었고, 악취가 그들을 질리게 하였다. 1854년 노예제가 폐지된 후 마카오와 홍콩을 통해 온 수만 명의 중국인 쿨리[하급노동자]가 고용되었다. 1875년 약 8만 명이 페루의 사막과 섬에서 실재로는 노예제와 같은 조건에서 일을 하였다.{{) Bruce W. Farcau, The Ten Cents Wars: Chile, Peru and Bolivia in the War of the Pacific, 1879-1884, Westport. Connecticut: Prager, 2000, pp. 8-10; William Jefferson Davis, Tacna and Aric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31, pp. 27, 34-37.
}}
그 후 1853년 타라파카 사막 지방의 질산염 지대를 효과적으로 채굴하는 공정이 발견되었고, 직후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지방 부근에서 풍부한 매장량이 발견되었다. 1860년대 비료의 원천으로서 이러한 질산염 지대는 구아노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고, 구아노의 유용성은 감소했다. 질산염은 비료뿐만 아니라 당시에 개발된 TNT와 다른 폭발물 때문에 수요가 높았다. 질산염은 산업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쟁산업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Farcau, The Ten Cents War, p. 10.
}} 1875년 영국이 일차로 페루의 질산염 산업에 투자한 총액은 100만 파운드였다.
페루의 지배계급은 구아노 무역과 질산염 채굴의 결과로 막대한 부를 얻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는 철도 건설을 제외하면 경제적 발전으로 현저하게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인구의 나머지에게 질산염 자원은 저주라는 게 곧 판명되었다. 페루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주로 영국의 투자가들에게 무거운 채무를 지게 되었고, 구아노 수출은 미래의 충분한 저당이 되었다. 1875년 페루는 채무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라파카의 질산염 지대에서 국가 독점을 강제로 시행하며, 사적 투자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 중 다수는 외국인 특히 영국인이었다) 투자가에게 정부의 지불증명서를 주었다. 또한 그 후에 페루 정부는 구아노와 질산염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그 둘의 산출량을 조절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태평양전쟁(때로는 질산염 전쟁이라고도 불린다)을 낳았고, 페루가 질산염 산업을 몰수한지 4년 후에 발발했다. 이때 볼리비아는 이전 조약을 어기면서 칠레가 아타카마 지방에서 나오는 질산염을 중개할 때 매기는 세금을 높이려고 시도했다. 칠레는 영국 투자가의 지원을 받으며 볼리비아와 또한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은 페루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칠레는 더욱 근대화된 군대 즉 영국이 세운 해군과 프랑스가 훈련한 육군을 지녔고, 곧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지방과 페루의 타라파카 지방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결코 그 지방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 전에 칠레는 질산염 지대와 구아노 매장량이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난 1883년 칠레는 볼리비아와 페루의 모든 질산염 지대와 페루 해안의 구아노 매장량의 대부분을 빼앗았다.{{) 다음을 보라. Dennis, Tacna and Arica; Farcau, The Ten Cents War; John Mayo, British Merchants and Chilean Development, 1851-1886, Boulder: Westview Press, 1987, pp. 157-87; Dr. I. Alzamora (페루 전 부통령), Peru and Chile, pamphlet (출판사 알 수 없음), 일자 알 수 없음 (대략 1908년); Harold Blackmore, British Nitrates and Chilean Politics 1886-1896: Balmaceda and North, London: University of London, 1974, pp. 14-22: Michael Mont on, Chile in the Nitrate Era, Madison,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82, pp. 19-20; Henry Clay Evans, Chile and its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Durham, North Carolina: Duke University Press, 1927, pp. 97-119.
}} 전쟁 전에 영국은 페루의 타라파카 진살염 산업의 13%를 통제하였으나, 전쟁 직후 - 칠레가 그 지대를 소유하게 되자 - 영국의 지분은 34%로 상승했고, 1890년에 이르러서는 70%가 되었다.{{) John Mayo, British Merchants and Chilean Development, p. 181
}}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G. 블레인은 의회 조사위원회에게 전쟁 곧 구아노와 질산염에 대한 전쟁 동안 미국의 외교적 역할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다른 것이 없다... 그것은 페루에 대한 영국의 전쟁이며 칠레는 도구일 뿐이다. 영국 자본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칠레는 결코 전쟁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그들이 약탈과 노략질의 전리품을 나누게 된 것보다 더 뻔뻔스러운 일은 없다.'{{) US House of Representives, 47th Congress, !st Session, House Reports, Report no. 1790, Chilo-Peru, pp.217-18. 또한 다음을 보라. Perry Belmont, An American Domocra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41, pp. 255-62. 태평양전쟁을 선동한 영국의 은밀한 역할에 대한 블레인의 주장을 빅터 키어난은 부정했다. 키어난은 영국 외무성 문서를 신중하게 검토하여 영국이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다. 오히려 그의 논증은 영국 외무성이 직접 전생을 선동했다고 증명하는 어떤 결정적인 증거도 없다는 반대의 주장에 의존한다. 영국 투자가와 영국 정부가 칠레의 전쟁을 지원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전쟁 동안 그리고 전쟁 후에 강탈물을 나누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또한 키어난은 영국의 영향력을 런던의 외무성이 직접 행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발파라이소[칠레 중부 도시]와 산티아고[칠레 수도]가 더욱 직접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의심스러운 키어난의 주장의 사실적인 부분은 페루가 영국의 무기를 구매하는데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는 그의 주장이다. 칠레와 미국 정부의 의회는 다르게 주장했다. 다음을 보라. V. G. Kiernan, 'Foreign Interests in the War of the Pacific', Hispanic American History Review, 35(1), 1955, pp. 14-36.
}}
페루가 주요한 두 수출 자원을 잃게 되자 페루 경제는 전쟁 후 붕괴했다. 탁월한 페루 마르크스주의자인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말한 것처럼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영국 자본에 대한 페루의 의존은 증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곧바로 구아노와 질산염의 시대 동안 형성된 자본가 집단은 활동을 재개했고 권력을 회복했다... {자본가들이 협상한} 은혜로운 계약(Grace Contract)은 그때까지 칠레 공화국 정부와 그들의 사치에 자금을 공급한 영국 은행가들에게 국철을 넘겨줌으로써 영국의 지배를 재가하였다.'{{) Jos Carlos Mari tegui, Seven Interpretive Essays on Peruvian Reality,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071, pp. 9-13; Paul Gootenberg, Imaging Development: Economic Ideas in Peru's 'Fictitious Prosperity' of Guano, 1848-1880,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pp. 183-84.
}} 이제 페루 정부가 착취할 수 있는 자원의 부를 더 이상 동일하게 가질 수 없게 되자 페루 영토의 많은 부분과 가창 값비싼 자연 자원을 포획하기 위해 은밀하게 칠레를 지원했던 영국 투자가들에 철도를 넘겨주는 것외에는 페루가 저당을 잡힌 외채를 지불할 수단이 없게 되버렸다. 브루스 파카우가 주장한 것처럼 페루의 구아노와 질산염 매장량은 '마이다스의 손'처럼 '축복으로 가장한 저주'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채무를 잔뜩 진 경제를 창조했고, 그 후에는 전쟁이 발발했고, 나중에는 이 자원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Farcau, The Ten Cents War, p. 14
}}
태평양전쟁에서 질산염 지대를 획득하게 된 결과로 칠레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질산염의 저주를 물려받게 되었다. 유럽은 여전히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양의 구아노와 질산염이 필요했으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이 자원의 무역을 제국주의 방식으로 통제하길 원했고, 이 자원들이 산출하는 경제적 부를 대량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이 생태적 자원을 극도로 착취하였다. 대규모의 공공사업과 교육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는 근대화 개혁을 수행했던 칠레 대통령 호세 마뉴엘 발마세다는 1888년에 칠레의 질산염 지대는 칠레 기업을 만들어서 국유화되어야 한다고 발표했고 국가소유의 질산염 지대를 영국에게 매각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3년 후 내전이 발발했고, 영국과 다른 나라의 투자가들은 돈과 무기로 발마세다의 반대자를 지원했다. 런던의 언론은 발마세다를 (오늘에도 매우 잘 알아볼 수 있는 논조로) '가장 나쁜 종류의 독재자'로 묘사했다. 패배한 발마세다가 1891년 자살하자 영국 대사는 외무성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보냈다. '영국인 사회는 발마세다의 추락에 대해서 만족감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승리는 영국의 상업적 이해에 심각한 손해를 함의했을 것이다.' 칠레의 산업과 경제적 하부구조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내전 후 곧바로 철회되었고, 영국은 투자를 확대했다.
1890년대 칠레는 모든 수출의 4분의 3을 영국에게 보냈고 수입의 거의 절반을 영국으로부터 들여왔다. 이 당시 칠레는 인도보다 더 크게 영국에게 무역을 의존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일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칠레는 국민소득의 3분의 2를 주로 영국과 독일로 질산염을 수출해서 얻게 되었다. 칠레 경제의 통제를 통한 영국의 질산염 독점은 독일에게 영국과의 경쟁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겪게 하였다. 질산염은 비료만큼이나 폭발물을 위해서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처럼 독일도 발마세다를 축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칠레는 대부분 영국의 통제를 받았고, 이는 독일에게 문제를 낳았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직전에 독일의 화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인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여 질산염을 생산하는 공정을 고안했다. 몇 년 내에 그 결과는 칠레 질산염의 가치를 거의 완전하게 파괴했고, 칠레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낳았다.{{) Galeano, Open Veins of Latin America, pp. 157-58; Blackmore, British Nitrates and Chilean Politics; Andre Gunder Frank, The 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 in Latin America, New York: Mothly Review Press, 1969, pp. 73-93; Evans, Chile and its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Mont on, Chile in the Nitrate Era; J.R. McNeill, Something New Under the Sun, New York: W.W. Norton, 2000, pp 24-25. 칠레에서 내전으로 이끈 사건들이 벌어지는 동안 다시금 국무장관이 된 블레인이 앞장 선 미국의 대외 정책은 발바세다에게 동정을 보였는데, 발마세다의 민족주의가 영국의 권력을 억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질산(과 질소)의 저주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저주는 부유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 대부분으로 옮겨졌다. 질소 비료는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 증대된 규모로 사용되었고 (현재 매년 약 1억 톤에 달한다) 이제 비료가 녹아 있는 땅 위를 흐르는 빗물을 통해 세계의 지하수, 호수, 강을 점점 더 오염하고 있다. 이는 오늘 세계가 직면한 주요한 생태적 문제들 중 하나를 가져왔다.{{) 다음을 보라. John Bellamy Foster and Fred Magdoff, 'Liebig, Marx, and the Depletion of Soil Fertility: Relevance for Today's Agriculture', in Fred Magdoff, John Bellamy Foster and Frederick H. Buttel, eds., Hungry for Profit,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0, p. 54; National Public Radio, 'The Tragedy of Pritz Haber', July 11, 2003, www.npr.org/programs/morning/features/2002/jul/fritzhaber/ (2003년 6월 17일 검색).
}}
라틴 아메리카 밖에서 질산염의 저주는 이제 잊혀졌다. 그러나 석유의 저주라는 근대 역사는 그 이전 역사와 너무나도 유사하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6월 7일자 '뜻밖의 악재를 만나다: 저주인 석유'라는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10여 년 이상의 학술 연구는 자원의 저주로 알려진 것을 일관되게 경고했다. 경제가 석유, 가스, 또는 다른 채취 자원의 수출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가는 가난, 권위주의, 부패, 내전의 요동을 겪게 될 것 같다.' 주류의 주장은 이러한 영속적인 저주를 가난한 국가의 나쁜 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이러한 정부는 생산적인 방식을 통해 자원이 제공하는 거대하며 잠재적으로 부정한 이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질산염처럼 '석유의 저주'의 뿌리에 대한 설명은 생태 제국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마이클 페렐만은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말했다.

석유의 저주는 석유의 물질적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사회구조에 기원한다... 풍부한 자연 자원의 기반은 가난한 나라 특히 상대적으로 권력이 없는 나라를 지배 민족의 - 정치적, 경제적으로 - 유혹적인 목표로 만든다. 석유의 사례처럼 강력한 민족들은 이러한 값비싼 자원이 독립적인 정부, 특히 초민족 법인기업의 경제적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대한 독립성을 보여주는 정부는 곧 자신이 전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 후계자가 부패한 환경과 정치적 불안정성을 촉진하더라도.{{) Michael Perelman, 'Myths of the Market: Economics and the Environment', Organization & Environment, 16(2), 2003, pp. 199-202.
}}

오늘 석유의 저주는 지구온난화 또는 세계적 공유물(대기와 바다)과 인간 간 관계의 지구적 균열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로 부유한 국가들에도 다시금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구의 생태적 균열은 자본주의 체계와 그것의 필수적인 한 짝인 제국주의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지만, 특정한 지역마다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며, 모든 존재하는 생태계와 (인간 종을 포함하여) 모든 종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생태의 하락을 이끈다.

생태 부채

생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은 이제 점점 더 '생태 부채'라는 개념을 통해 결집하고 있다. 생태 부채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생태적 행동>(Acci n Ecol gica)이라는 에콰도르에 근거한 조직은 생태 부채를 '자원 약탈, 환경에 대한 피해, 산업화된 나라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와 같은 폐기물을 버리기 위해 환경 공간을 마음대로 점유한 것 등의 이유로 산업화된 북반구가 제3세계 나라들에서 축적한 부채''로 광범위하게 규정한다.{{) Acci n Ecol gica, 'Ecological Debt: South Tells North "Time to Pay Up"' (www.cosmovisiones.com/deudaecologica/a_timetopay.html, 1999, 2003년 3월 6일 검색)
}} 생태 부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이러한 입장에서는 생태 제국주의로 조직된 자연과 사회 간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게 근본적이다. 약탈과 인민의 초과착취의 역사는 더 큰 생태 부채의 일부로 여겨진다. 자본은 중심 초점으로 남는데, 지구의 생태적 조건을 악화시킨 데 책임이 있는 것은 중심부 자본주의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기 때문이다.{{) Aurora Lonoso, 'Who Owes Who?: Collecting the Ecological Debt!' (www.brisbane.foe.org.au/eco_debt.htm, 2003. 2003년 3월 6일 검색).
}} 제3세계의 비판이 주장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소비]활동들이 생태 부채의 원인이다. 자연자원의 채취, 무역의 불평등한 수단, 수출 곡물을 위한 토지와 토질의 하락, 채취와 생산 과정이 야기한 다른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의 피해, 전통적인 지식의 전유, 생물학적 다양성의 손실, 대기와 바다의 오염, 독성 화학물질과 위험스러운 무기의 도입, 주변부로 위험한 폐기물의 덤핑 등.{{) Acci n Ecol gica, 'No More Plunder, They Owe Us the Ecological Debt!' (www.cosmovisions.com/deudaecologica/a_averde78in.html, 1999. 2003년 3월 6일 검색).
}}
생태 부채에 대한 토론 속에는 두 주요한 차원이 있다. (1) 생태 제국주의의 영향 속에서 민족들 내에서 벌어지는 사회-생태적 파괴와 착취. (2) 세계적 공유물의 제국주의적 전유, 공유물의 흡수 능력의 불평등한 사용(착취).
1965년 출판된 <배고픈 지구>라는 책에서 조지 보그스톰은 영국의 생산, 소비, 무역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이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후배지에게 식량과 원자재를 의존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유령의 경작지'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자본의 성장은 전체 세계의 수요를 증대시켰다. 중심부 민족의 '생태적 발자국'은 계속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물질과 에너지의 역사적 저장량을 고갈시켰고, 다른 민족들의 물질과 에너지도 고갈시켰다.{{) George Borgstorm, The Hungry Planet,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65; Mathis Wackernagel and William Rees, Our Ecological Footprint, Gabriola Island, Brithsh Columbia: New Society, 1996; Richard York, Eugene A. Rosa and Thomas Dietz, 'Footprints on the Earth', American Sociology Review, 68 (April) 2003, pp. 279-300.
}} 부채의 순환과 군사적 간섭은 세계적 불평등을 유지하는데, 왜냐하면 노동, 상품, 자연자원에 관해 남반구가 북반구에게 계속 [실질적인] 보조금을 지급하게 하기 때문이다. 상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의 채취는 북반구 나라들의 수요에 맞게 조직된다. 북반부는 세계 인구의 약 25%이지만 세계 자원의 약 75%를 소비한다.{{) Donoso, 'Who Owes 쫴?'.
}} 수백 년 동안 중심부는 주변부의 싼 주요 물질과 노동에 의존했다. 남반구에서 흘러 나간 물질의 양과 경제적 가치는 증가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수출량은 1980에서 1995년 동안 245% 증가했다).{{) Aurora Donoso, 'No More Looting!: Third World Owed an Ecological Debt' (www.cosmovisiones.com/deudaecologica/a_looting.html, 2000. 2003년 3월 6일 검색).
}}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 민족들의 금융 부채는 계속 늘어났고, 제멋대로 증대된 이자율은 이를 더 악화했다. 동시에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자본은 북반구의 높은 가치의 산업상품 수출을 과대 평가할 수 있었고, 이는 국제 무역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했다.{{) Paul A. Baran and Paul Sweezy, Monopoly Capital: An Essay on the American Economic and Social Order,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6.
}}
제국주의의 힘은 세계에게 사회적-생태적 생산체제들을 강요했고, 북반구와 남반구와 마찬가지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적대적 분할을 심화했다. (노동과 자연 양자를 포함하는) 농업-생태계는 재구성되었고, '식량과 섬유의 생산뿐만 아니라 매판 부르주아와 독점자본의 개인적 부의 축적을 강화하기 위해 합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재형성되었다'.{{) Donald Worster, 'Transformations of the Earth: Toward an Agroecological Perspective in History', The Journal of American History, 76(4), 1990, pp. 1087-1106.
}} 요수에 드 키스트로가 1952년 고전적인 연구에서 말한 것처럼 식량 생산물의 생산, 분배, 소비를 사회 전체의 최고의 중요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순수한 사업의 문제로 보는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소수에 의해 통제되는 경제적 제국주의와 국제 교역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Josu de Castro, The Geography of Hunger, Boston: Little, Brown and Company, 1952, pp. 7, 212.
}}
지구 수준에서 생태 제국주의는 세계적 공유물(예컨대 대기와 바다)과 생물권의 탄소 흡수 능력을 전유했고, 이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들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공유물과 환경 공간을 자본주의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롭게 유지하려는 투쟁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보라. The Ecologist, Whose Common Future? Reclaiming the Commons, Philadelphia: New Society Publishers, 1993.
}} 북반구는 부분적으로 높은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생태적 폐기물을 대기와 내버리기 때문에 화석연료 소비는 이제 기후 위기를 절정에 이르게 한다.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의 집적이 증가했기 때문에 기후의 변화는 이미 발생하고 있고, 지난 100년 동안 지구 온도는 0.6 더워졌다.
생태 부채는 생태 제국주의의 문제에 접근하며 모든 차원의 더 큰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가장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기초로 탄소 부채에 전술적으로 초점을 맞추며, 이 문제를 다뤄야만 하는 세계의 긴급한 필요성을 활용한다. 산업, 자동차, 생활양식에 기인한 불균형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야기한 북반구의 민족들은 기후변화의 책임을 대부분 져야 한다. 왜냐하면 '화석연료 경제는 자연계가 흡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폐기물 배출 [증대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Andrew Simms, Aubrey Meyer, and Nick Robbins, Who Owes Who? Climate Change, Debt, Equity and Survival www.jubilee2000uk.org/ecological_debt/report/who_owes_who.htm, 1999. 2003년 3월 6일 검색).
}} 이제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토론단>(IPCC)은 이번 세기 동안 1.5-6.0 의 온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4 의 온도 상승은 지난 4천만년 동안 어느 때보다 높은 온도의 지구를 창조할 것이며', 생존을 위한 인간 문명의 능력을 잠재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John Bellamy Foster, Ecology Against Capital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pp. 21, 64.
}} 최근 수십 년 동안 극단적인 기상의 유형(폭풍, 홍수, 가뭄 등등)은 남반구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부분적으로는 대기에 축적된 온실 가스에 기인할 것이다. 해수면을 높이는 세계의 온난화는 많은 섬들을 위협하며, 방글라데시처럼 어느 정도 인구가 밀집한 저지대 나라들도 홍수로 침몰될 수 있는 위협을 낳는다.
누구도 대기나 바다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탄소 부채를 계산하는 것은 어떤 경제의 지속 불가능한 생산과 소비가 어떠한지를 다른 경제와 비교하여 측정하려는 시도다. 간단히 말하면 한 민족이 어떤 설정비율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그것은 탄소폐기물을 처분하여 공유물인 환경 공간을 불균형하게 사용했으므로 탄소 부채를 축적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온실가스] 배출의 설정비율을 계산할 것인가 결정할 때 몇 가지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1996년에 이미 약 70억 톤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으며 그 중 50% 이상이 미국과 유럽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대량의 불균형이다. 두 번째, 현재 탄소 배출은 환경이 흡수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한다. IPCC는 1990년 수준에서 최소한 60%가 감소되어야지 (28억 톤 이하로 줄여야지) 더 심한 기후 변화의 위험을 안정화하거나 줄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런 이유로 자신들의 산출량만으로도 세계의 총 허용량을 초과하는 부유한 산업화된 민족이 - 도덕적 관점에서 - 배출량 감소에 앞장서야 한다. 아가왈과 나라인이 1991년 제안한 것처럼 탄소 부채를 축적하지 않고 한 민족이 얼마나 세계적 공유물에 배출할 수 있는지 결정하기 위한 어떤 정당하고 도리에 맞는 접근법도 인구 숫자 당 배출량에 기초해야만 한다.{{) Acci n Ecol gica, 'Trade, Climate Change and the Ecological Debt' (www.cosmovisions.com/deudaecologica/a_averdetrade.html, 2000. 2003년 3월 6일 검색); Anil Agarwal and Sunita Narain, Global Warming in an Unequal World: A Case of Environmental Colonialism, New Delhi: Center for Science and Environment, 1991. 민족마다 효율성의 차이가 있지만 GDP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가난한 민족들이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자다. Simms, Meyer, and Roibins, Who Owes Who?와 Tom Athanasiou and Paul Baer, Dead Heat: Global Justice and Global Warming, New York: Seven Stories Press, 2002를 보라.
}} 앤드류 심스와 그의 동료들은 '기후 안정화를 위한 1990년의 목표치에 기초할 때, 세계의 모든 사람은 매년 일인당 약 0.4톤의 탄소 허용량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Simms, Meyer, and Roibins, Who Owes Who?
}}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가스의 방출과 축적이 지속되었으므로, 그 허용량은 감소한다. 머지 않아 일인당 탄소허용량은 단지 매년 일인당 0.2톤이 될 것이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더 힘든 처지를 낳을 것이다. 사실상 현재의 경향이 지속되면 지구온난화는 통제를 벗어나 소용돌이칠 것이며 지구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생태적 불연속성'은 (설사 조금 있더라도) 거의 직접적인 경고신호 없이 발생할 수 있다.{{) Marten Scheffer, Steve Carpenter, Jonathan A> Foley, Carl Folke, and Brian Walker, 'Catastrophic Shift in Ecosystem', Nature, 403, 2001, pp. 591-596과 Roldan Muradian, 'Ecological Thresholds: A Survey', Ecological Economics, 38, 2001, pp. 7-24를 보라.
}}
(전체 세계의 지속 가능한 일인당 배출량을 넘어서는) 현재 북반부의 탄소배출 과잉을 '경제 활동의 기초 기준, 국내총생산(GDP), 이산화탄소 배출 간 역사적으로 밀접한 상호관계에 근거해서 달러로 옮기면 탄소 배출만을 보더라도 북반구가 남반구에 진 생태부채는 매년 1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GDP 3천 달러가 평균 1톤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관계가 성립된다. Andrew Simms, Aubrey Meyer, and Nick Robbins, Who Owes Who?와 Acci n Ecol gica, 'Trade, Climate Change and the Ecological Debt'를 보라.
}} 매년 북반구가 남반구에 빚지는 생태 부채는 누적된 영향을 보지 않더라도 현재 남반구가 북반구에 빚지고 있는 금융 부채의 최소한 세 배라고 계산된다. 그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제3세계 민족들을 감금하고 있는 채무를 무효로 만들 것이며 또한 그들이 더욱 연료 효율이 좋은 기술을 채택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남반구의 자본주의 생산이 북반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부채의 지불과 새로운 기술은 탄소 균열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생태 부채의 제안자는 축소와 수렴의 과정을 옹호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북반구의 부유한 민족들은 IPCC 권고에 부합하는 적당한 수준으로 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만, 남반구의 가난한 민족들은 사회적, 경제적인 발전을 위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서서히 늘리는 게 허용될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민족들이 '평등하고, 적은 일인당 할당량'으로 수렴될 것이다.{{) Athanasiou and Baer, Dead Heat, p. 84. 또한 Andrew Simms, An Environmental War Economy: The Lessons of Ecological Debt and Global Warming, London: New Economics Foundation, 2001과 Acci n Ecol gica, 'Ecological Debt'를 보라.
}} 기후의 차이 때문에 할당량의 변화가 존재할 수 있지만, 세계 전체의 일인당 배출량은 허용 기준 내에 있을 것이다.
물론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생태 하락과 국제적 불평등성의 조건을 평가하는 것은 남반구에 진 생태 부채에 접근하려는 시도의 단지 출발일 뿐이다. 또 다른 세계적 공유물인 바다는 오랜 동안 독성물질과 위험한 폐기물을 버리는 곳으로 사용되었고, 탄소가 가라앉아 있는 장소로서 능력은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바다 어류 저장량의 개발은 바다 생태계 내의 물질대사 관계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생태 제국주의가 초래한 모든 범위의 피해는 실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며, 특히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팽창의 결과로 세계 주변부가 수세기 동안 당한 역사적 약탈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현재 생태 부채 운동은 세계 자연의 회복과 재생을 위해 투쟁한다. 사회적, 경제적 균형이 없다면 생태의 지속성은 불가능하므로 생태 부채 활동가들은 점점 더 자본주의 팽창력에 맞서고 있으며, 세계질서의 적법성이라는 문제에 들어서고 있다. 부의 집적은 전 세계에 걸친 인민과 자연의 빈곤화와 착취와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생태부채활동가들은]유례 없이 증대되고지속되는 대규모 축적체계를 - 그리고 한계가 없는 소비체계는 - 하나의 자살 성향으로 인정한다. 생태 제국주의가 야기한 파괴를 중단하는 것은 이러한 세계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본다. 생산의 사회적-생태적 관계의 변형이 필요하다. 세계적 공유물이 쓰레기를 흡수하는 싱크대가 된다면, 그 싱크대는 막히고 넘쳐날 것이다. <생태적 행동>은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에너지, 자연자원, 식량, 값싼 노동력, 금융 자원이 부당하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꼭지를 잠가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Acci n Ecol gica, 'No More Plunder'.
}}

생태 제국주의에 맞서는 오늘의 투쟁

분명히도 생태 부채 캠페인이 안고있는 문제는 현재 세계의 세력균형 때문에 그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교토 협약 철회, 쿄토 협약의 사실상의 붕괴에 대한 (많은 수의 주도적인 세계 독점 법인기업을 대표하는) <세계기후연합>(Global Climate Coaltion)의 승리 선언이 말해주는 것처럼 자본 편의 저항은 [불리한 세력관계를] 나타낸다. 세계기후연합은 그들의 웹페이지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세계기후연합은 해산되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산업계의 목소리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새로운 민족적 접근법[의 도입]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다했다.
부시 정부는 세계기후연합이 강력히 지지하는 개념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신뢰한다는 기후 정책을 곧 발표하리라 기대한다.
세계기후연합은 교토 협약의 상원 비준도 반대한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 성장을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으며 에너지의 소비자가격을 급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엄중한 목표치를 할당할 것이다. 또한 세계기후연합은 조약이 가장 큰 발전도상국의 배출을 줄이라고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조약을 반대한다.
이 때문에 의회와 정부는 협약이 요구하는 강제적인 배출 삭감을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고 동의한다.{{) www.globalclimate.org에서 2003년 6월 12일 검색.
}}

지구온난화가 문제더라도 부시 정부는 그것이 미국에 즉각적인 위협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다룰 때 높은 경제적 비용을 수반할 수 있는 행동들을 회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현대적인 '탄소-격리' 기술들과 이와 유사한 수단에 의존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북극 빙하의 용해 때문에 해수면의 상승을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섬과 저지대 민족 때문이 이러한 입장은 생태 제국주의의 특히 극단적인 사례다. 주변부의 가난한 민족들은 중심부 부유한 민족의 은행에게 금융 부채를 계속 갚으리라 예상되지만, 부유한 민족이 초래한 막대한 생태 부채는 인정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지구의 문제는 매년 점점 더 악화된다. 따라서 투쟁은 강화될 것이다.
부유한 나라들에 의해 불균형하게 초래된 세계적 공유물의 하락을 - 특히 대기의 온난화를 - 둘러싸고 조직되고 있는 생태 부채 투쟁은 생태 제국주의에게 분명히 새로운 실천적 의미를 주었다. 이 오랜 세월을 거친 투쟁은 가난한 나라들의 금융 부채에 대항해 부유한 나라들의 생태 부채를 제기해야할 필요성에 중심을 둔 저항의 조직 형태와 결합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즉각적인 투쟁은 자본주의의 더 큰 생태적 저주를 점점 더 분명한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발전은 항상 그것의 다른 측면처럼 -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지구(생태)의 하락은 노동의 하락을 동반한다 -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하락을 수반한다. 게다가 생태 제국주의는 자원의 약탈, 지구와의 지속 가능한 관계의 붕괴, 폐기물의 덤핑이라는 측면에서 생태 파괴의 가장 나쁜 형태를 의미했다 - 이 모든 것은 중심부보다 주변부로 들이닥친다. 19세기 구아노와 질산염 전쟁과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석유 전쟁(과 석유의 통제를 통해 획득되는 지정학적 권력)이 목격하는 것처럼 이러한 관계는 수십 세기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계속 나빠지는 게 본성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에 자본은 극복될 수 없는 지구생물권 수준의 생태적 장벽과 충돌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 자본이 지리적 팽창과 착취의 '공간적 고정[조건, 제약](spatial fix)과 충돌했던 것과 같다. 생태 제국주의 - 주변부의 더욱 철저한 생태적 하락을 통해 지속 불가능한 속도로 [자본주의] 체계의 중심이 성장하는 것 - 는 이제 생태적 모순들을 지구적 규모에서 산출하고 있으며, 전체 생물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지구 규모에서 생태적 관계의 균열과 생태가 제국주의와 불평등한 세계구조와 맺는 관계를 다루는 오직 혁명적인 사회적 해결책만이 이러한 모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어떤 진정한 희망을 제공한다. 세계는 마르크스를 포함해 초기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요청한 것 즉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이 인간의 물질대사와 자연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몰아내야 할 근본적인 저주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PSSP
출처
John Bellamy Foster and Brett Clark, 'Ecological Imperialism: The Curse of Capitalism', in Leo Panitch and Colin Leys eds, Socialist Register 2004: The New Imperial Challenge, London: The Merlin Press 2003.
주제어
생태
태그
6자회담 213공동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