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1-1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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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발자취와 고민

윤애림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1999~2000년, 비정규직 조직화의 시발과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주목

주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사회적, 실천적으로 주목을 끌게 된 시점은 1999년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통계청 통계상 최초로 임시직과 일용직의 비중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되면서 정규직과 상용직에 대비되는 범주로서 ‘비정규직’이란 용어가 사회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결성, 재능교육 교사노조 결성, 전국여성노조 결성 등 비정규직 노동조합 건설이 이어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문제가 논의 수준에서 실행 수준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1999년 초부터 ‘불안정노동 연구모임’을 조직하여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여기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전략이 노동대중에게 미치는 핵심적인 영향을 ‘노동의 불안정화’로 파악하면서, 이를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의 불안정화로 총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불안정화 경향이 관철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그룹에 대해 서로 다른 정도와 형태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불안정화 경향에 특히 심한 타격을 입는 집단을 ‘불안정노동자’로 호명하고 이들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모임의 작업 성과는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문화과학사, 2000)로 발간된 바 있다.
한편 2000년 들어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의 정세적 계기가 생겨났는데, 근로자파견법상의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000년 6월 전국적으로 파견노동자에 대한 대량해고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98년 근로자파견법 제정 이후 그 반노동자성이 최초로 대중적으로 드러나게 된 시점에, 해고되는 파견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며 비정규직 노동 철폐의 문제를 운동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사회진보연대는 ‘파견용역노동자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파견철폐공대위) 조직에 앞장섰고, 21개 노동 사회 학생운동조직이 참여한 파견철폐공대위는 2000년 6월부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파견철폐공대위는 방송사비정규노조,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 대상식품사내하청노조, 대송텍노조 등 간접고용노조의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였고, 간접고용 실태보고서 발간 등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며, ‘파견법 철폐/간접고용 금지’가 민주노총의 입법요구가 되도록 조직하였다.
파견철폐공대위의 활동성과를 바탕으로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국적인 활동가네트워크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는 2001년 11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준비모임 결성, 2002년 9월 본조직 건설로 이어졌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러한 과정에 적극 결합하였을 뿐 아니라, 활동가들을 철폐연대의 상근역량으로 배치하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주요 활동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이하 철폐연대)는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에 복무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건설되었다. 이러한 조직형태를 고민했던 이유는 우선 노동조합, 운동단체, 학술 및 법률운동단위 등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투쟁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되는 인자들이 노조의 부침에 관계없이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고민도 있었다. 그동안의 철폐연대의 주요 활동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와 투쟁을 전면적으로 지원하여왔다. 철폐연대는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대중적 주체형성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보았고, 직접적인 노조결성 상담뿐 아니라 민주노총 산별연맹, 지역본부와 함께 비정규직노조 조직화와 투쟁에 깊숙이 결합해왔다. 또한 이러한 조직화와 투쟁의 경험과 교훈을 민주노조운동 내에 소통시키기 위해 조직화와 투쟁 사례 분석 및 관련 교육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리고 단위 노조의 결성뿐 아니라 지역별, 영역별 비정규노조연대체,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결성에도 적극 결합하였다.
둘째,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중심요구로 관련 입법쟁취 투쟁에 적극 결합하였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의제화된 2000년 이후,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보호법’과 노동운동진영의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은 지속적으로 충돌해왔다. 철폐연대는 이러한 논란이 단지 법제도적 수준의 문제를 넘어서 비정규직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기에 정부 법안의 반노동자성을 지속적으로 폭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도출된 요구들이 전국적, 정치적 공동요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직하고, 노동운동진영이 ‘비정규직 철폐’를 과제로 견지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데 노력하였다. 셋째,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를 넘어선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실현을 위해, 비정규직 이외에도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빈민운동과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였고, 2002년 이후 민중복지한마당, 불안정노동철폐, 노동권?생활권 쟁취 공동투쟁,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는 노동권과 생활권이라는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불안정노동자층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시도였다.

변화된 조건과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과제

비정규직 조직화가 본격화된 지 1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둘러싼 내외적 조건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이는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자신의 과제로 하는 철폐연대에 많은 고민꺼리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로의 조직화를 둘러싼 운동 내적 지형의 변화이다. 수많은 비정규직노조가 투쟁에서 패배하여 사라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노조 결성이 일정하게 자기궤도를 잡아가면서, 규모면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의 10%를 넘어설 정도로 조직화가 진전되었다. 그러나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부위에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가 분포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 산별연맹으로의 구심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주의적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지형은 노조로의 조직화, 투쟁 지원에 일차적으로 집중하였던 철폐연대의 그동안의 활동이 변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주체들이 과거의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하여, 노조 질서에 갇히지 않는 운동 질서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둘째,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요구와 전망을 둘러싸고 운동사회 내부의 입장이 분화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조건 또한 변화하고 있다. 주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란, 2004~2007년 비정규직 권리입법투쟁의 좌절과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전후한 입장 차이,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의 비정규직 사업방향을 둘러싼 논란 등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서의 요구, 조직 방식, 투쟁, 조직적 발전전망 등 다양한 지점에서 운동사회 내부의 입장이 빠르게 분화하고 있다. 이에 ‘불안정노동 철폐’의 방향 속에서 구체적 지점들에서 구체적 입장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기존 운동질서에 갇히지 않고 활동가들을 재조직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분쇄 투쟁의 전선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조직하고자 했던 노력이 대부분 좌절을 경험하였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의 분리 구축, 노동자대중 내부의 이질적 집단 간의 단절 현상이 극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나 최근의 경제위기의 심화, 2010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및 그것과 연동된 교섭창구의 단일화 문제) 등의 계기가 노동자대중 내부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이에 파산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저항의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형성하고, 노동자대중 내부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공동의 요구를 마련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에 저항하는 주체형성을 위한 사회운동을 위하여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의 파괴적 효과로서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 비정규직, 이주, 여성노동자 투쟁 및 빈민 대중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동시에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자기과제로 하는 철폐연대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는 운동사회 내에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의제로 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철폐연대는 비정규직노조 사업단위로 부문화되고, 사회진보연대는 노동자운동의 개조 및 새로운 주체형성 시도가 현실에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한계지점 또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년의 시도들을 평가해보면, 불안정노동철폐의 전망을 구체적이고 정세적인 요구들로 구체화시켜내고 그것을 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자의 투쟁 역시 필연적으로 기존의 조합주의적 틀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운동적 노조운동’, ‘계급형성적 노동자운동’을 지향하는 사회진보연대의 문제의식 또한 현실의 노동자운동과의 결합지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운동체로서의 사회진보연대와 철폐연대의 동시적 전화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체적 실천방안의 하나로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의 파국적 효과에 저항하는 주체형성, 대안적 이념과 정세적 요구의 구체화를 목표로 하는 공동실천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불안정노동자를 향한 교육 프로그램의 공동 생산 및 운영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의 심화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게 되겠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이념 없이는 공동투쟁은 고사하고 내부의 배제와 갈등마저 완화시킬 방도가 없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운동을 조직하고자 했던 사회진보연대 10년의 모색을 현실운동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판가름하게 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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