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7-8.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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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쟁점과 대응과제

김유진 | 조직국장
한국 사회 빈곤 현황

IMF 이후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절대적 빈곤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에 가난의 문제가 특정한 소수의 문제로 머물 수 없게 되면서 빈곤 문제가 전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는 지금, 실업 증가와 임금 하락 추세와 함께 빈곤율도 증가하고 있다. 2007년에 보건사회연구원과 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절대빈곤율, 즉 한 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가구의 비율은 2003년 10.2%에서 2006년 11.36%로 증가했다. (절대빈곤율은 2006년에 발표된 통계가 가장 최근 것이다.) 또한 도시지역 상대빈곤율, 즉 OECD 기준에 따라 중위소득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은 2000년 13.51%에서 2006년 16.42% 기록했다. 도시 이외의 가구들까지 포함하는 2006년 전국가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상대빈곤율은 18.45%에 달했다. 2007년 도시가구 기준 상대빈곤율이 17.5%로 또 증가했으니 현재 전국적으로는 5명 중에 1명꼴로 상대적 빈곤상태에 처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최근 상황을 보여주는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면, 올해 5월 소득분배 불균형수치인 지니계수가 0.325로 증가했다. 이는 수치 발표 이래 최고 수준이다. 또 2009년 1분기 소득 5분위 배율(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소득 격차)이 8.68배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는 고용불안과 자산 감소로 인해 앞으로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차적으로는 임시 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영세 자영업자의 도산으로 서민층의 근로소득이 급감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것은 근로소득보다는 금융소득이다. 대출금이 많은 서민층이 작년 말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산을 내다 팔아 손실을 확정한 반면 상위층은 연초 저점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해 자산증식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실업, 영세자영업자의 실질소득 감소와 일자리 상실은 갑자기 빈곤의 상태로 내몰리는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주로 어린이, 한부모 가정, 노인, 장애인 등 소득수준이 낮거나 노동 능력이 없는 취약 계층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다. 민중을 빈곤의 벼랑으로 내모는 해고와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긴급한 어려움에 대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은 생존권적 요구다. 이명박 정부도 인정한 것처럼 경제위기로 인한 신빈곤층 증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는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는 생산 감소와 기업 도산 등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해 일자리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긴급 추경예산 편성을 통한 지원 이외의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기존 소득보장정책의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엄격한 심사 기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긴급 지원책들은 신빈곤층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빈곤층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 역시 큰 우려를 낳는다. 2008년 복지 지출의 비중이 낮아졌고 집행률도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향후 예산편성에서도 사회복지 지출 구성비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현행 소득보장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요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글은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 정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요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최근 빈곤대책으로 제기되고 있는 복지재정 확대와 기본소득 보장 등 운동진영의 요구들을 검토할 것이다.

소득보장 정책 현황과 쟁점

한국에서 빈곤문제의 부상과 소득보장 정책

한국에서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대량 실업, 노숙 급증,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500만 명 양산 등 빈곤 문제의 사회적 충격이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을 강제한 것이다. 빈곤문제가 강력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한국의 사회안전망 부실이 심각하다는 OECD의 문제제기가 맞물려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소득보장 정책의 주요 틀이 되었다.


기존의 생활보호법(1961년 12월 제정, 2000년 폐지)이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시혜적 태도를 취했던 데 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이 빈곤에 대한 권리로서 최저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수급자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이자 한국에서 ‘빈곤선’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수준과 엄격한 선정기준, 소득발생유무와 관계없는 추정소득부과 등으로 소득보장효과가 미미하고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등 문제가 매우 많다. 특히 조건부 수급 조항을 두어 최소한의 생활도 불가능한 일자리를 조건으로 수급권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단순히 이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질 낮은 일자리 창출과 각종 노동유인정책을 통해 노동의 질을 저하시키고 사회정책의 위상을 낮추려는 노동연계복지가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핵심방향이기 때문이다. 먼저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가장 기본적 틀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개선 요구와 발전방향을 검토해보자.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연령, 근로능력과 관계없이 가구소득 및 재산 환산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에 대하여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노동시장 정책이 혼합되어 있다. 급여 내용은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 7종이 있고, 급여액과 수급자의 소득인정액 총합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급여의 원칙이다. 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하며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부양의무자에 의한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법령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경우 타 법령에 의한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이 제도가 포괄하고 있는 인구 범위는 국민의 2~3%인 153만 명 수준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

①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수준과 폭넓은 사각지대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선정과 지원수준이자 의료급여, 모부자가정 선정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무료대상자 기준 등 여타 사회복지서비스에서도 기준이 되는 ‘한국의 공식적인 빈곤기준선’이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절대빈곤개념의 계측방식인 전물량방식으로 3년 주기로 계측한다. 비계측년에는 기존 최저생계비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갱신한다. 2009년 최저생계비 수준은 아래와 같다.

1988년부터 계측되고 1999년부터 실제 공적부조에 적용된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1999년 근로자가구 소득(4인 가구)의 38.2%였다가 2008년 30.2%로 하락했다. 최저생계비는 대부분의 사회복지서비스 선정기준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최저생계비가 낮은 수준으로 계측되는 것은 사회복지 대상의 축소와 폭넓은 사각지대의 존재를 의미한다. 책정 방식에 있어서도 전물량방식의 문제점, 연구자의 자의적 판단 문제, 계측을 하고 나서도 예산에 맞춰 재조정할 수 있는 문제 등 최저생계비 수준을 하락시키는 요인들이 많다. 최저생계비 수준이 낮아지면서 절대적 빈곤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수준은 2000년 시행 이후 2007년까지 2.8~3.2% 수준에 머물러, 절대빈곤층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상대적 빈곤율과 소득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고 경제위기 하에서 늘어날 빈곤층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 수준과 대상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다.

② 부양의무자 부양능력 판별기준의 문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재산기준이다. 현재 최저생계비 미만의 조건에 있지만 재산기준 및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3.7%로 수급자 2.8~3.2%보다 많다.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자의 1촌 직계혈족(부모, 자녀)과 직계혈족의 배우자(며느리, 사위)로 규정되어 있다. 수급신청 탈락자 가구 중 25.7%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탈락되지만 이들 중 56.2%는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장애인, 노인, 한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정 등 취약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③ 재산기준 및 자동차기준의 문제
재산기준 및 자동차기준도 수급권 박탈의 주요 사유다. 현행 제도에서 기본재산액 기준이 2004년 수준대로 동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수준 및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 수급자의 생활수준 파악을 위해 도입한 소득 인정책제도(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는 전세금, 통장, 자동차 등이 모두 포함되어 수급권이 박탈되는 문제가 있다. 특히 다른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자동차가 있으면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이 허다하다. 몇 달 전 화제가 되었던 ‘봉고차 모녀’가 바로 그 사례다. 보육료 지원, 장애수당, 의료보장, 사회서비스 지원, 시설지원 서비스 등에도 자동차기준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 전체 가구의 59.4%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점에서 자동차를 일반재산이 아니라 보고 과도한 소득환산율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④ 추정 소득의 문제
추정소득은 수급자들의 실제소득 발생여부와 상관없이 소득파악이 용이하지 않은 가구원(일용직, 파트타임, 노점 등)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실업상태에 있는 수급자는 물론 근로조건유예자(근로경험 있는 중증장애인, 3세 미만의 유아를 탁아소에 맡긴 경험이 있는 한부모 가정의 부모) 등에게도 자활을 강요하거나 추정소득을 부과하며, 경제 불황으로 인해 실업상태인 수급자들에게 추정소득을 부과해 이를 생계급여에서 제외하고 지급한다. 실제 수급당사자가 임금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득수준이 얼마인지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추정소득을 부과해 수급권을 박탈하거나 생계급여를 낮추는 것이다.

⑤ 노동을 강제하는 조건부과 및 노동자의 노동권 박탈 문제
조건부과 기준은 사회복지사가 연령, 외형상의 건강상태, 전직 및 자격 등을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으로, 자의적인 근로능력판단으로 노동할 수 없는 수급자에게 노동을 강제하거나 추정소득을 책정해 생계급여를 낮추는 문제가 심각하다. 만성질환이 있어도 진단서를 제출할 수 없거나, 정신장애와 같이 장애진단을 받을 수 없는 경우, 3세 이상 미취학 아동의 부모 등에게도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다. 또 사회적 일자리나 공공서비스 일자리와 같은 수준의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선정과 지급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운동세력들이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왔는데, 핵심은 애초 법의 취지대로 보장성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고 그에 동반하여 최저생계비 인상해야 하며(중위소득 50%, 평균소득 50% 등 여러 기준이 제기되고 있다), 그와 연동해 기초법 대상자를 확대하고 수급액을 인상해 절대 빈곤층조차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제도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재산기준, 추정소득 조항으로 인해 발생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독소조항을 폐지, 완화해 가야 한다.
‘근로연계복지’라는 방향 하에서 생계급여 수급 조건으로 자활사업 참여가 강제되는 문제, 즉 조건부 수급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 자립지원의 원칙에 근거한 조건부 수급 제도는 생계급여를 줄이려는 시도에 그칠 뿐 실제 자활을 통해 적정한 소득을 얻기 어렵고 자활 참여 이후 수급자의 자립을 위한 기반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그저 강제에 그칠 뿐이다. 나아가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노동시장 신축화에 부응하고 수급 대상을 줄여 재정을 절약하고자 하는 시도에 반대하며 제대로 된 일자리와 사회정책의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덧붙여 기초법은 수급대상이 되면 7가지 급여를 모두 받을 수 있고, 탈락되면 아무 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구조다. 운동진영은 그간 급여 분리, 선별적 확대를 요구해 왔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정부 차원에서 급여분리를 시도하고, 자활급여는 별도의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확대를 위한 운동진영의 취지와는 달리 정부의 급여분리는 생계급여를 긴축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에 그간의 요구를 재정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후소득보장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한국의 노인 빈곤현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기준 45%로, OECD 국가 평균인 13%에 비해 3.5배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노인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65~74세의 자살률은 64.9명으로 가장 낮은 그리스의 4.9명에 비해 13배나 많은 수치이며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은 더욱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의 정년퇴직 연령이 선진국보다 낮고 연금과 같은 복지 혜택도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이다. 또 노동을 통한 소득 이외에 생존을 위한 사회보장이 취약한 현실에서 노인 부양의 책임을 전담해왔던 가족(여성의 이중부담)이 위기에 처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경제위기가 노인 인구에게 더욱 가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후 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노후 생활의 보장과 소득재분배의 역할을 하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발전방향 논의는 ①사각지대에 대한 대안 ②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논의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 및 재구조화 논의를 위한 소위원회’를 꾸리고 기초노령연금의 발전방향과 국민연금 관계설정에 관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①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화하면서 국민연금을 소득비례로 전환하는 방안 ②기초연금 급여율을 높이고 대신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는 방안 ③기초노령연금의 보험료를 동결시키는 방안 등이라 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금개혁 흐름을 이어가는 논의라 볼 수 있다.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문제점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가입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 사각지대는 광범위하다. 전체 노동자 중 50% 가량이 고용형태(불안정노동층, 자영업자, 전업주부, 비공식부분 노동자 등) 상 제한으로 가입하지 못하거나,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꺼리고 있다. 또 가입이 가능해도 소득이 낮아 납부하지 못하는 실질적 사각지대는 전체 가입자의 42%(2007년)에 달하며, 특히 지역가입자의 절반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의 50% 급여율은 모두 40년 가입을 조건으로 하는데, 불안정한 고용기간으로 실제 보장수준은 20%에 그치며 제한된 수의 노인만이 수급자가 되면서 보편적 사회보장정책으로서의 의미가 무색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연금개혁 방향에 따라 소득에 따른 비례적 보장 형태로 연금 체계가 변화되면 국민연금이 가졌던 소득재분배 기능이 소멸하고 나아가 연금 민영화의 길이 넓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정책으로서 국민연금의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또 현재 쌓여있는 기금의 크기가 거대해 기금 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의 현황과 문제점

기초노령연금은 2003년 연금개혁 국면에서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제시되면서 등장했다. 이는 공적연금의 위상을 낮추고 노인인구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사회운동은 기초노령연금의 기초연금으로의 발전이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2007년 연금개혁 국면에서 정부는 고령화, 재정안정화 등을 근거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면서,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높이고 보장성을 낮추는 방향의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기초노령연금의 도입에 따라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70%를 대상으로 월 8만 4천 원 가량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기금의 규모는 3천억 가량이다.
기초노령연금 도입이 노인인구라는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공적연금의 효과가 조기에 발휘되어 국민연금의 안정적 지지기반 마련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2007년 당시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와 운동의 열세로 기초노령연금 도입은 국민연금의 후퇴를 동반했다. 앞으로 진행될 연금개혁 방향도 기초연금 확대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는 맞바꾸기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에는 다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성 문제다. 국민연금급여가 노후의 소득에 반영되었을 경우 노인 빈곤율은 41.1%, 기초노령연금까지 반영되었을 경우 36.2% 수준에 머물러 현재 급여수준은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 기초노령연금이 국민연금 A값의 10%로 상향된다고 하더라도 노인 빈곤율은 크게 줄지 않는다. 노인의 상당수가 매우 빈곤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급여수준을 상향해도 노인의 생활상태를 일부 개선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성숙에 따라 기초노령연금은 장기적으로 수급비율을 축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초노령연금의 수급비율은 오히려 축소될 전망이다.
기초노령연금 수급자격 선정에 있어서도 개선이 요구된다. 기초노령연금의 수급자격 선별요건은 소득 및 자산에 근거하는데 실제 소득을 가지고 있는 노인의 비율은 매우 낮기 때문에 수급자격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산이 될 것이다. 여타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생활에 직접적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산 때문에 수급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소득조사가 주요 선별요건이 되어야 한다.

기초노령연금의 쟁점과 발전 방안

현재 기초노령연금 발전전망에서 주된 쟁점은 급여수준보다는 급여 대상이다. 기초노령연금을 향후 노인 100%에 제공하는 ‘보편적인’ 공적연금-기초연금으로 발전시키자는 요구가 진보신당, 여성운동계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초연금으로의 발전 문제에 있어서 한정적 재원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쟁점이다. 노인 인구 100% 대상 기초연금으로 발전시키자는 주장의 근거는 장기적으로 공적연금의 혜택과 정당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각종 감세정책 철회, 재정기조 변경을 통한 재원마련으로 현재 ‘용돈’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보장수준도 높이자는 안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취약한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상황, 경제위기 하 정부 재정적자 위험 가능성, 또 부자감세나 4대강 정비사업 등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을 철회하기 위한 투쟁의 형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을 모든 노인인구에게 나누어 주기는 어렵다. 용돈 수준의 급여를 모든 노인에게 제공할 것이 아니라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문제점 개선을 통해 더 빈곤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하는 전략이 고려될 수 있다.
또한 기초연금으로의 발전 요구가 지금까지의 연금개혁 과정과 현재 이명박 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한 정세적 대응인지 검토해야 한다. 연금개혁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대상범위 확대, 기초연금으로의 전환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 삭제, 소득비례연금으로의 전환 등 국민연금의 위상을 사적 보험으로 전락시키는 방안과의 맞바꾸기가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소득재분배 기능을 소멸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근본적 전환이기 때문에 단순한 제도적 변화를 넘어서는 문제다.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빈곤층 노인의 급여수준 하락, 고소득층의 급여 수준 상승, 제도 간 중복수급을 금지한다는 단서로 인해 빈곤할수록 각 제도들을 통해 받게 되는 급여의 총합이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빈곤층의 소득보장 정책이 후퇴되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적 운영(이를 통한 공적연금의 후퇴)에 문제를 제기하고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이 실질적인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요구를 마련해 가야 한다. 현재적으로는 2028년까지 합의된 급여수준(A값의 10%) 상향을 앞당기자는 요구를 통해 위기에 처한 노인 인구에 대한 보장성을 확대해가며, 이미 지적된 문제들의 개선 요구를 통해 공적 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의 강화하자는 요구가 그 출발점이다.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정당성(소득재분배 기능) 강화라는 방향성 하에 제도적 보완 또는 이행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의회전술’이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연금관련 대응에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운동의 실천방안들(논의주체 형성을 위한 의제설정, 일상적 소재와 매개의 계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있어 위험성을 높이는 금융투자원리의 연기금 활용방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공공부문,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 부과방식으로의 장기적 전환 등 제출된 방안을 검토하고 공동의 투쟁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공적연금의 전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직해야 한다.


현 시기 소득보장정책(기본생활보장)에 관한 운동세력의 요구와 쟁점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문제의 확산에 대해 많은 요구가 제출되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세력의 요구 중 해고금지 및 고용보장, 사회서비스 등 공공분야 일자리 창출, 실업급여 확대 등은 경제위기 하 노동자의 생존 보장을 위한 공통적 요구다. 또 최저생계비 인상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 연금개악 저지를 통해 기존 소득보장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공감대가 있다.
소득보장 관련 운동세력의 요구안 중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과감한 재정 방안을 제출한 진보신당의 요구,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권리로서 기본소득 보장을 제시하는 사회당의 요구다.
진보신당은 2008년 12월 <1,008만 명 기본생활 보장을 위한 3대 개선안>을 발표하여 기초연금 도입(모든 노인에게 월 30만 원 지급), 장애연금 도입(중증장애인 월 25만 원, 경증장애인 월 12.5만 원 보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재산기준 완화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372만 명 추가해 509만 명 보장, 중앙정부 부담률을 77.38%에서 100%로 확대) 세 가지를 주요하게 요구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총 38조 6,110억 원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기본소득을 위하여』(강남훈·곽노완·이수봉 지음)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0~39세는 1인당 연 400만 원, 40~54세는 연 600만 원, 55~64세는 연 800만 원, 65세 이상은 연 900만 원을 지급하는 연간 290조 원 예산의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했다. 사회당도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제출했다.
경제위기 하에서 빈곤의 심화가 사회복지 확대를 공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계기이므로 과감한 재정 확충과 제도 신설을 요구하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운동 주체의 형성이 부족하고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투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원칙적인 확대 요구는 자칫 선명성 경쟁에 그칠 수 있다. 요구는 있으되 운동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기초노령연금 도입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후퇴’와 같이 지배세력에 활용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실제로 경제위기 하에서 재정 확충은 제약이 큰 문제인데다 정부 재정기조를 바꾸는 것 또한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요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기본소득 어떻게 볼 것인가

대량실업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문제이자 결과라는 분석에서부터 ‘일하지 않는 자의 먹을 권리’‘,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 1980년대 이후 유럽좌파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기본소득 전략은 완전고용의 불가능성, 수준 낮은 공공부조와 실업급여의 한계, 강제노동 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며 노동연계복지의 강화 속에서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키는 전략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제 기본소득 정책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시행되었다. 기존의 복지제도 대부분을 철폐하고 대신 일정한 소득한계를 정해 그 이하의 소득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복지국가의 비효율과 재정적자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기되기도 하였고, 실제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으로 수렴되어 근로장려세제 등의 유사한 제도로 관철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전략, 또는 복지제도 개혁을 통한 보편적 복지 달성 전략, 나아가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복지제도를 개혁하고 노동유연화를 보완하는 전략 등 여러 층위로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 요구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과 현실적 수용 양태, 그리고 현재의 계급역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기본소득을 현 위기의 획기적 대안으로 소개하는 운동 흐름 대해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기본소득의 경우 ‘노동하지 않아도 생존할 권리’를 요구한다. 한국에서는 사회당과 연기금 사회주의 연구자 등이 구체적인 재정 계획을 세우고 선전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주체형성과 실행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대안사회에 대한 논의 촉발’, ‘사회주의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경로’ 등의 ‘이념형’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행 소득보장 정책에서도 복지의존에 대한 비난과 증세에 대한 대중적 반발을 극복하는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고 사회보장 확대를 위한 운동이 미미한 조건에서 사회정책의 근간을 전환하자는 주장은 그 실행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중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위한 주체형성과 이행의 구체적 경로에 대한 논의 없이 재정계산으로 실현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빈곤층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의 요구

신자유주의와 함께 전 세계의 복지기조로 자리 잡은 노동연계복지는 복지의존성 공격을 통한 재정지출 축소,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형성을 통한 노동신축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하 복지 확대 요구는 단순한 재정확충과 적절한 분배 문제에 그칠 수 없다. 사회보장정책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사회 유지를 위한 노동 통제전략이자 피지배계급의 저항으로 달성된 기본적 생활 보장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경제위기 하 급증하는 빈곤층의 생존권적 요구도 단순히 재정측면에서의 가능성을 넘어서 사회복지의 방향성을 바꿔내기 위한 장기적 전망, 현실의 심각한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요구와 공동의 투쟁 형성, 노동자운동의 인식 확장과 주체 형성 문제가 핵심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가 더욱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시장화라는 점에서 우리의 요구는 사회보장의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시장화 정책에 대한 비판,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또한 현존하는 빈곤층 소득보장정책이 실제로 민중의 생존권 방어를 위한 매개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 요구를 정돈하고 운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빈곤과 실업 대책은 기존 제도의 소폭 확장과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지원방안에 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전된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빈곤층 소득보장제도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노후소득보장제도이자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에 관해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확대의 요구 등 지금까지 제기된 요구들을 제기하면서 긴급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정책 시장화에 반하는 장기적 발전방안을 그려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투쟁과 맞물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보장과 제대로 된 일자리 요구로 나아가는 운동의 주체형성을 동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경제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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