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봄.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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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하 미국 노동조합의 과제 

임월산 | 사회진보연대 회원, 국제운수노련 도시교통운영위원회 부의장

1. 글을 시작하며

 
전통적으로 미국 노동조합들은 민주당 및 민주당 행정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새롭게 당선된 바이든 정부하에서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지난 11월 3일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한 노동운동의 활동과, 대선 이후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를 살핀다. 대선 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했고, 일부 노동조합이 연대하고 있는 반인종주의 운동세력의 활동과 입장도 소개한다. 또한 노동운동이 민주당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성과와, 노동운동이 부딪힌 한계들을 짚어 본다. 노동운동이 제시하는 경제대안이 바이든의 공약과 방향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정책방향을 얼마나 그대로 유지하고 성공하는지 여부가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미국 노동운동이 대비해야 하는 시나리오들을 검토한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났음에도 상당한 위험으로 남아있는 ‘트럼프주의’에 대응하는 데에 노동운동과 반인종주의 운동 간의 교류와 연대 강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민주당에 대해 무비판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그러한 연대를 발전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국 노동·사회운동에는 미국 문제에 대해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미국 정부와 민중을 통으로 제국주의자로 규정하고 악마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 두 가지 경향을 벗어나, ‘이해’를 목표로 글을 읽기를 바란다. ‘이해’가 진정한 연대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2. 노동운동, 민주당과 트럼프  

 
작년 미국 대선에서 미국 노동운동이 민주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1936년, 뉴딜 정책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재선에 대해 미국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지지를 선언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주류 노동운동이 민주당 주류와 파트너십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관계만큼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관계가 너무나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노동운동과 민주당 양자는 이를 당연시한다. 이 파트너십을 통해 민주당은 연방과 지역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고 하고, 노동조합은 노조 활동에 더 유리한 사회와 법제도적 환경을 노린다. 이념적인 통일성보다 실리적인 판단이 관계의 기반이지만, 큰 이념적 충돌이 없기 때문에 민주당이 노동운동과의 약속을 지키는지와 무관하게 관계가 유지된다.  

물론 이번 대선은 예년과 다른 의미가 있었다. 미국의 중도좌파(리버럴)에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한 수의 조합원과 노동자가 트럼프를 여전히 지지한다는 사실은, 많은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자기 인식과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한 인식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리버럴의 세계관에서 미국은 본질적으로 ‘포용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국제무대에서는 자유주의 원칙에 기반을 둔, 원활하게 돌아가는 세계체제의 지도자다. 이 이데올로기는 길게 보면 자본 축적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 대륙의 식민화와 국가 건립의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전후시기 미국이 피해가 가장 적은 참전국가로서 국제무대에서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발전했고, 오늘날 미국의 무역·재정 이중적자를 가능하게 하는 달러 패권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제무대에서 미국 중도 세력의 세계 패권 전략인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저버렸고 국내에서는 반이민자, 인종차별적 정책을 단행하면서 백인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겨서 미국 사회가 ‘포용적인 민주주의’에 미달한 것을 증명했다. 트럼프 임기 내내 미국 리버럴은 합리성과 정중함,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있었던 트럼프 이전의 시대로의 복귀를 갈망하는 광범위한 향수를 형성하고 점점 강화했다. 노동운동도 당연히 이 향수를 공유했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노동자계급을 ‘뉴딜 연합’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 민주당과 노동운동의 동반자 관계가 이때부터 형성된다. 1935년, 루스벨트가 서명한 「전국노동관계법」(일명 ‘와그너 법’)은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며, 어용노조와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했다.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노동자의 선택=루스벨트’ 같은 표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발생으로, 트럼프의 재선을 막을 필요가 더 긴박하게 되었다. 2020년 여름,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살해되면서, 흑인 등 유색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이 운동은 경찰폭력뿐 아니라 팬데믹과 경제위기의 차별적인 영향을 폭로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코로나19가 수십만 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10월 미시간 주지사 납치 음모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백인 민족주의 세력의 물리적 폭력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위협할 정도로 강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민주당과의 일반적인 파트너십이나 바이든의 노동정책 공약에 앞서 조합원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분열을 막기 위해 트럼프를 낙선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노동조합만이 아니다. 팬데믹과 경제위기,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폭력 속에서 일반적으로 연방 정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지역사회와 사회운동 단체에서부터, 일부 중도우파까지 아우르는 반트럼프 대선 전선이 형성되었다.     
 

3. 노동조합의 대선 운동

 
트럼프의 낙선에 대한 노동조합의 절박함은 역설적으로 경선에서 오히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도록 했다. 일부 진보 성향 노동조합들이 버니 샌더스를 공식 지지한 2016년과 달리,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초기에 지지 후보를 발표하지 않았다. 반트럼프 연대를 우선적 과제로 설정하여 조합원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발표한 요구안에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성향이 드러나기는 한다. 아래에서 자세히 검토하듯이 미국노총(AFL-CIO)의 대선 요구는 바이든의 노동 및 경제 공약과 거의 동일했다. 4월 초, 샌더스가 경선을 포기한 후 노동조합들은 잇따라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경선이 끝난 후 노동조합들은 대선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대선 전략은 두 가지로 나뉜다. 많은 노동조합은 조합원과 조합원이 밀집해 있는 지역 중심으로 바이든-해리스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운동을 펼쳤다. 일부 노동조합에서 이는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던 조합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도록 재조직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다. 9월 미국노총 소속 건설 직종 노조들이 6개 경합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조합원의 비율과 바이든을 지지하는 비율은 47 대 48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이는 2016년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반면에 일부 노동조합은 경합주 내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선거구에서, 2016년에는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이 유권자로 등록하는 것을 지원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것에 주력했다. 북미호텔·요식노조(UNITE-HERE)와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경우는 전략이 간단했다. 미시건 디트로이트나 위스콘신 밀워키, 조지아 애틀랜타와 같은 대도시에서 흑인 등 유색인 유권자가 밀집 거주하는 지역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결국 후자의 전략이 더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노총의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의 지지율은 58:37로 바이든 지지가 21% 더 높았다. 미국노총 위원장은 바이든 승리에 있어 조합원의 결정적인 역할을 대외적으로 선전했지만, 이 결과는 2016년 대선 후 내부조사 결과(56:37)와 큰 차이가 없다. 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얻은 지지는 2012년 오바마와 대결한 미트 롬니가 얻은 비율(35%)보다 높다.

전체 조합원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경합주에서 노동조합이 벌인 투표 독려 활동이 효과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집중하던 경합주 모두에서, 그리고 이 주들의 1,118개 카운티 중에 1,106개 카운티에서 투표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 1,106개 카운티 중 37개만 공화당 지지에서 민주당 지지로 바뀌었는데, 주로 다인종이 거주하는 도심과 교외지역이었다. 특히 밀워키,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피츠버그 등의 선거구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대선 시기에 2016년에 트럼프를 지지했던 도시 거주 저소득 백인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에 집중했던 민주당은, 조지아주 상원 결선을 앞두고는 전략을 바꿔 흑인이 밀집 거주하는 교외지역을 타격하기로 했다. 이는 UNITE-HERE와 SEIU와 같은 노동조합이 택한 전략의 유효성을 보여준다. 
 

4. 반트럼프 전선에 참여한 반인종주의 세력

 
물론 노동조합만 선거운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기에 대선 결과를 노조의 성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이번 대선의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연방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 시민사회, 풀뿌리단체들도 대거 참여한 것이다. 특히 유색인 중심으로 구성된 반인종주의 단체들이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이러한 단체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비슷한 시기에 흑인이 피해자가 된 여러 경찰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강화되었다. 

이들은 소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구축한 대중적 역량을 트럼프 낙선 운동에 동원하겠다는 의도적인 전략을 취했다.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1차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의 여파로 결성된 전국 연대체인 ‘흑인의 생명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Black Lives, M4BL)이 대표적이다. M4BL은 ‘인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1) 인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백인 민족주의 

위와 같은 입장은 ‘인종주의’에 대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인종적 범주에 기반을 둔 차별적인 사회제도라는 틀로 접근한다. 사회적 제도로서 인종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지만, 여전히 유색인에게 물질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종주의의 영향은 경제, 사회, 정치, 법제도 등 여러 차원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권(즉, 시민권)의 부여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이렇게 개념화된 인종주의 제도는 자본주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어 있다. 이 불가분한 연계를 ‘인종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인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대서양 노예무역과 미국 노예제, 미국노예제와 함께 탄생한 인종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백인 서민에게 땅,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가 표방한 ‘민주주의’는 흑인 노예의 노동력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제도로 축적된 자본이 북부 자본주의 도약의 기반이 되었다. 

이념적으로 이렇게 연결된 민주주의와 인종주의는 백인 하위층과 자본가계급의 동맹을 뒷받침해왔다. 흑인 사회주의자이자 미국 흑인지위향상협회에서 활동한 W. E. B. 듀보이스에 따르면, 이 동맹으로 인해 흑인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 하위층은 금전적 임금 대신 ‘심리적 임금’(psychological wage)을 얻어 가난을 받아들이게 된다. ‘심리적 임금’은 백인 민족주의의 출발점이다. 

물론 노예제도 폐기 운동과 흑인 노예의 내전 참전, 이후 재건과 민권운동 등 백인 남성에게 배타적으로 부여된 시민권을 확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재건(Reconstruction) 시대는 미국의 역사에서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남북 전쟁에 이은 1865년부터 1877년까지 전국에 걸친 재건 시기, 둘째는 1863년부터 1877년까지 미국 남부의 변화를 뜻한다.

 이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형식적 보장으로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해소되지는 않아서, 항상 반동이 있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신자유주의 동맹으로 연합한 시기에, 공화당은 수면 아래에 머물고 있던 백인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재조직했다.  

인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M4BL을 비롯한 미국 반인종주의 세력은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의 백인 민족주의는 최근의 경제·정치위기 상황에서 부상한 포퓰리즘일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사회와 정치제도에 내재된 인종주의의 현재 모습이라고 이해한다. 
 

2) 경찰 예산 삭감 요구와 반인종주의 세력의 바이든 평가 

M4BL이 제시하는 제일 중요한 요구는 ‘경찰 예산 삭감’(defund the police)이다. 이 요구는 단순히 거리에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검토되고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대안이다. 경찰 예산 삭감 요구는 경찰조직과 사법제도를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보호하면서 인종주의와 인종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억압적 국가장치로, 민영화된 교도소를 초과착취가 발생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한 산업으로 이해하는 분석에서 시작한다. 요구의 목표는 단순히 경찰을 없애거나 예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 필요 충족과 빈곤 해소 등에 초점을 둔 예방적 ‘치안’ 제도에 공공재정을 재할당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해가 쉬운 표현으로 바꾸면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 강화를 위한 예산 구조조정이 핵심이다.
 
2020년 6월 7일,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후 활동가들이 백악관으로 향하는 워싱턴DC 거리에 그린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 구호. 이미 그려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구호 옆에 덧붙인 것이기 때문에, 전체 메시지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경찰 예산을 삭감하라'가 된다. (사진 출처: 《뉴욕 타임스》)

이 세력은 바이든의 과거와 현재 정책방향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1980~1990년대 민주당 리버럴과 중도우파 모두가 ‘작은 정부’와 ‘사회질서’ 재확립을 지지했던 시기에 바이든이 사회복지제도 삭감을 지지한 점과, 저소득 유색인 거주지를 표적으로 하는 ‘마약에 대한 전쟁’과 형사처벌 강화, 수감시설 확충 정책을 지지한 점에 주목한다. 바이든이 2020년 대선 시기에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한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고 경찰인력 확충을 공약한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은 트럼프 낙선 운동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바이든에 대한 투표를 ‘더 공략하기 쉬운 대상을 선출하는 것’으로 정당화했다. 
 

3) 반인종주의 세력의 대선 활동 

M4BL은 1964년 흑인 민권운동이 진행했던 ‘자유 여름’에서 영감을 얻어 대선을 앞두고 경합주에서 대대적인 유권자 등록 사업을 전개했다. 다만 북부에 사는 백인 학생활동가가 남부에 파견되었던 1964년 자유 여름과 달리, M4BL은 회원조직의 전국네트워크를 활용해 경합주에 사는 흑인 활동가를 훈련시켜 그들이 사는 지역사회를 스스로 조직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택했다.

또한 M4BL은 소수 사민주의 정당인 노동가족당과 함께 유색인 단체 중심으로 ‘프론트라인’이라는 임시 대선 대응 연대체를 구성했다. 10월에 프론트라인은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 코로나19 대응과 재난지원 관련 요구와 흑인, 유색인 조직의 주요 요구를 종합하는 ‘민중헌장’을 발표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대통령, 연방과 주 상·하원 지역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공화당 후보 낙선)를 조직했다. 민중헌장의 주요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프론트라인 민중헌장 주요 내용 
△경찰과 교도소, 이민자 보호소로부터 공공서비스로의 자원 이전 
△인종과 계급적 분리를 야기하는 토지 용도 지역 설정의 폐기
△원주민의 주권 존중
△모두를 위한 무료 코로나 검사와 백신
△실업 수당 지급 연장과 보편화
△팬데믹 기간 동안 퇴거 명령, 주택 압류 모라토리엄과 수도·가스·전기 공급 차단 금지 
△인프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15달러 연방 최저임금, 
△보편적 의료와 무상 의료
△노조할 권리 보장
△무상 보육, 유급 병가와 가족 돌봄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투자 확대
△평화와 연대에 기반을 둔 외교 관계
△정치자금 규제와 투표권 보장
 

5. 반인종주의 세력과 노동조합 간 교류

 
프론트라인의 민중헌장이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를 포함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노동운동과의 직간접적인 교류의 결과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의 차별적인 영향, 그리고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반인종주의 운동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노동조합이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정세였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평조합원과 대의원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운수노동자들은 경찰이 시위대 진압을 위해 징발한 버스의 운전을 거부하고 나섰다. 많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지도부에 시위 지지 입장을 발표하라고 요구했고, 많은 곳에서 산별지도부들도 이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경찰폭력과 인종주의를 규탄하고 대중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노총 지도부는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조지 플로이드가 죽임 당하고 8일 후인 6월 2일, 리처드 트럼카 미국노총 위원장은 인종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부 시위대의 폭력적 행위를 규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계기는 전날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미국노총 본부 건물 낙서와 방화 사건이었다. 미국노총이 시위대의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은 경찰노조에 대한 관대한 입장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찰노조들은 경찰폭력을 묵인하거나 노골적으로 정당화하고 가해 경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 때문에, 반인종주의 세력의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노총에 가맹하는 경찰노조들을 의식한 트럼카 위원장은, 본부 방화 사건 이전에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서비스노조(SEIU), 주군시공무원노조(AFSCME), 교통노조(ATU)를 비롯한 일부 노동조합은 지역, 또는 전국 수준에서 M4BL과 같은 사회단체와 조직적으로 연대하여 공동행동을 조직하거나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이 연대는 노동조합과 반인종주의 운동이 함께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조합은 경찰과 경찰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어려운 논쟁을 진행하게 되었다. 또한 범죄에 대한 사후적인 치안 활동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강화를 바탕으로 빈곤에 대응하고 안전한 지역사회를 건설하는 방안과, 이에 맞는 지역 정부 예산 편성을 고민하고 있다. 반인종주의 운동에서는 노동조합과의 연대로 특정 집단의 특수한 차별 경험을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의 영향이 상대화되고, ‘흑인 차별 철폐’ 요구를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에 내재된 불평등의 해소라는 보편적인 과제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 교류는 대선 시기에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사전 투표가 시작됐을 때부터 노동조합과 반인종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투표소에 활동가를 배치하여 물리적 충돌 가능성과 유권자에 대한 극우 세력의 협박에 맞서는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이들은 ‘투표 결과를 보호하라’(protect the results)라는 별도의 임시 연대체를 구성해서,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할 경우 대규모 전국 동시다발 시위와 행진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개표가 지연되고, 우려했던 폭력 사태가 대선 직후에 일어나지 않으면서 이 투쟁 계획은 결국 집행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간의 연대는 유의미했지만, 바이든이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선 시기에는 프런트라인과 같은 연대체들이 제시한 의제들이 부각되지 않았다. 트럼프와 공화당 보수는 우편 투표의 부정성과 ‘경제 대 방역’ 프레임을 부각시켰고, 민주당과 리버럴 언론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 가짜뉴스 전파라는 부정적 메시지에만 집중했다.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의 홍보도 트럼프를 반대하는 부정적인 메시지로 수렴되었다. 

대선일 다음날 ‘투표 결과를 보호하라’ 행동을 계획한 그대로 집행할 수 없게 되자, 연대체는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연대체 내에서는 바이든 취임 후 가장 시급히 진행되어야 하는 정책과제로 활동 의제를 바꾸고, 투쟁을 그대로 추진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연대체 내 대부분 조직의 목표와 합의지점이 트럼프 및 트럼프 지지세력의 불법적 행위를 막는 데에 그쳤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언론이 바이든의 승리를 선포하자 연대체는 사실상 해산했고, 불과 몇 주 뒤 발생한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응하지 못했다. 사회운동은 대선 시기에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바이든 당선 이후에는 트럼프 정권 전복을 완성하는 역할을 바이든과 민주당에 사실상 위임해버린 것이다. 


6. ‘역사상 제일 노동친화적인 대통령’  

 
바이든은 취임 뒤 ‘역사상 제일 노동친화적인 대통령’으로 미국 노동운동과 많은 좌파의 찬사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대선 시기부터 노동조합과 친밀하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려 노력했다. 샌더스가 경선을 포기한 후 민주당 내 단결(또는 좌파의 포섭)이라는 목표로 구성한 바이든-샌더스 통합 태스크포스에는 여러 노동조합 대표가 바이든 측 추천 위원으로 참여했다. 또한 바이든은 대선 공약으로, 노동조합 강화 및 조직률 제고 방안을 개발할 내각 수준의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동조합을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1월 7일, 바이든 대통령은 건설 및 전력 현장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북미근로자노동조합(LiUNA, ‘Laborers’) 지부장 출신 마티 월시 보스턴 시장을 노동부장관으로 내정했다. 현재 바이든은 1.9조 달러 경기부양책과 인프라 투자계획에 대해서 특히 건설업종 노동조합들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 바이든이 노동조합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바이든과 노동조합의 정책적 방향이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민주당 경선 시기에 미국노총(AFL-CIO)은 다음과 같은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에 가입할 권리(노사관계법 개정), △모두에게 좋은 일자리(연방 최저임금 15달러와 수조 달러 인프라 투자사업을 통한 완전 고용 달성),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공정무역(무역 법제도와 협정에 노동기준 포함, 관세를 동맹국 협박 수단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 농민 생산자 보호 수단으로 사용), △의료와 노년 보장제도 강화(사회보장, 메디케어, 연금 안정성 보장, 건강보험개혁법 확대·강화, 의약품 가격 인하, 노조가 합의한 민간보험제도 조세 폐지 등), △차별 없는 사회(투표권 보장, 대량투옥과 이민자 수감 철폐, 사법제도 개혁), △안전한 일터(산업안전보건법 강화, 감시감독 및 위반사업장에 대한 처벌 강화), △모두에게 일·가정 양립(노동시간 주권, 즉 노동시간과 일정에 대한 결정권) 강화, 잔업 수당 원상 복구, 유급 가족 돌봄과 병가 보장, △모두에게 양질의 교육과 공공서비스, △조세 공평성(오프쇼어링 기업에 대한 조세혜택 철폐, 법인세와 부유층 조세 인상, 월스트리트 투기세 도입), △실물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제도(자사주 취득 제한 및 장기투자 장려, 기업책임 강화 및 경영간부 연봉 한도 도입). 
 
2019년 10월 4일 LA에서 열린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모두를 위한 노동조합’ 회담에서 발언하는 조 바이든. 바이든은 "40년 넘게 SEIU를 지지해 왔고, SEIU로부터 지지받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사진 출처: 《AP통신》)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달라도, 임금과 고용 중심 경기회복을 공약한 바이든의 주요 노동·경제 공약과 기본적인 방향은 동일하다.


7. 노동운동과 바이든 정부의 관계 전망 

 
아직 노동조합과 바이든 정부의 긴밀한 관계가 얼마나 심화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분간 꽤나 화기애애한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둘 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기반을 둔 경제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이든의 취임까지에 이른 일련의 사건이, 노동조합이 지지하는 정책들을 바이든이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지하는 사회운동이 바이든 당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과, 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트럼프 탄핵을 부결시켰고 트럼프와의 깔끔한 이별을 거부한 사실이 바이든으로 하여금 양당합의주의(bipartisanism)보다 과감한 정책 추진을 택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16~2017년 촛불 이후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요구를 대거 받아들인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와 유사점이 있다. 또한 한국 노동운동이 문재인에 기대를 걸었듯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자체적 정치가 없는 미국 노동운동도 바이든 정부의 개혁 의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바이든의 경제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한, 노동운동은 바이든과 같은 방향을 지향하며 정부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더 많이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입장을 제시하는 식으로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구조와 이중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미국의 특수한 조건을 감안하면, 이러한 관계는 촛불 직후 한국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걸던 기대보다 더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재 논의 중인 바이든의 1.9조 달러 경기부양책이 상원에서 일부 민주당과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쳐 축소되거나 천천히 집행되어, 인플레이션 상승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유지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노동운동은 약간의 실망을 내보이겠지만, 정부나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부양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지출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인상한다면 채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바로 바이든 정부와 노동운동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경제정책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가 예상보다 빠르게 긴축재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노동운동의 실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2년차에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폐기하자 ‘촛불의 초심’으로의 복귀를 촉구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의 항의행동과 같은 것이, 미국적 형태로, 예를 들어 적극적인 의회 로비활동에 더 많은 조합비를 쏟아 붓는 모습 등으로 일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즉, 현재 경제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별도의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미국 노동운동도 이미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해진 정책들임에도 그런 정책을 부분적이라도 복구하라고 요구하는 것 외에 새로운 전략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것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관계가 무비판적이면 노동운동이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경기회복에 유의미하게 개입하는 데에 많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노동기본권 보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와 전략의 잠재력과 예상되는 문제를 평가한다. 또한 노동운동과 반인종주의 세력 간 연대의 발전 전망을 조명한다.
 

8. 노동운동의 요구와 전략에 대한 평가     

 

1) 노사관계법 개정과 노동기본권 확대 시도 

노동운동은 바이든이 당선되면 신속히 근로감독과 노동법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의 구성을 바꿀 것이고, 트럼프 정부의 NLRB가 내리던 반노동 판정들이 빠르게 철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소망은 이루어졌다. 

취임식 날,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판정을 일삼았던 NLRB 사무총장 피터 롭을 바로 해임했다. NLRB 사무총장은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다. 전통적으로 기존 판정을 뒤집거나, 노사관계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자 또는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기소권을 행사해왔다. 일반적으로 신임 대통령이 전 행정부하에 임명된 사무총장의 임기를 존중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임기 11개월이 남은 롭 사무총장의 해임은 이례적이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친노조’ 성향을 과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2020년 2월 5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프로 액트’(조직화권리보호법) 통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리처드 트럼카 미국노총(AFL-CIO) 위원장. 이 자리에서 트럼카 위원장은 "이 법안은 올해 하원에 상정될 입법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게티 이미지)

2월 17일, 바이든은 현재 미국통신노조 법률 자문으로 활동하는 제니퍼 아브루조를 새로운 NLRB 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 아브루조 내정자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노동조합에 불리한 트럼프 시기의 NLRB의 활동방향이 180도 전환될 것으로 예정된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시기 폐기된 ‘브라우닝-페리스 사건’ 판결(원청 업체의 공동사용자성 인정)을 복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브루조가 내정되기 전에도,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노동조합에 불리한 롭 사무총장의 내부 지침들을 폐기했고, 노사 간 중립협약(neutrality agreement, 사용자가 노조 설립을 위한 조직사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불법화를 목표로 추진 중이던 소송을 취하했다.     

노동기본권 문제에 관해서 노동운동의 최대 목표는 전국노사관계법의 전면 개정이다. 작년 한 차례 하원을 통과한 ‘조직화권리보호법’(Protecting the Right to Organize Act, 소위 ‘Pro Act’, ‘프로 액트’)은 노동운동의 요구의 상당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프로 액트는 △브라우닝-페리스 판결 법제화,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존적 계약자(특수고용노동자)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는 ABC 테스트를 연방수준에서 도입, △ 자영업자의 노조 설립권과 단체교섭권 인정 △농업 노동자에게 노사관계법 적용 등 취약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 선거 과정에서 사용자의 간섭이 입증되는 경우 카드체크(투표 없이 교섭단위 50% 이상의 서명만)로 노조의 설립 허용, △파업권 확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노조활동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개정안들도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로 프로 액트가 다시 하원과 상원에서 동시 발의되었다.    

프로 액트와 NLRB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통해 판단하면, 바이든은 임기 전반에 노동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오바마 대통령과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프로 액트가 상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통과된다면, 노동운동이 새롭게 법적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특수고용과 하청을 비롯한 비정형 근로관계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노동자들은 팬데믹 위기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고, 경기회복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프로 액트의 발의로 이어진 노동운동 내 토론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동관계의 변화 뿐 아니라 기존 노사관계법하에 이민자, 유색인과 여성노동자가 받는 차별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식 역시 노동조합과 여성, 이민자와 유색인 운동 간 교류의 결과다. 작년에 일부 노조 간부, 사회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이 노사관계법에서 배제된 소수자 노동자 모두에게 노조할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긴 토론 끝에 프로 액트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는 ‘노동자의 권력을 위한 새로운 출발’(Clean Slate for Workers’ Power)을 발표했다. ‘새로운 출발’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동자와 투옥 중인 노동자에게 노사관계법 적용, △산별교섭 법제화 방안과 △노동이사제 도입 등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출발’ 요구안이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받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시도로 유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최저임금 인상 투쟁 

15달러 최저임금도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이며 중요한 조직화 매개다. 타임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바이든은 대선 후보로서 연방 최저임금 15달러 공약을 낸 바가 있다. 노동조합은 대선 전에 연방수준에서 15달러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최저임금 투쟁이 탄력을 받고,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전국적인 토론을 촉발시키기 위해 민주당과 법안의 발의를 준비했다.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이 한 발 앞서서 2025년까지 연방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5달러까지 인상하는 안을 1월 14일에 발표한 1.9조 달러 경기부양책에 포함시켰다. 이 조치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치권 내외에서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2월 25일, 상원의 의사규칙 해석을 담당하는 의사관이 최저임금 인상안은 이번 경기부양책을 의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예산조정 절차로 결정될 수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안이 이번 경기부양책에 빠졌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추후에 별도의 법안으로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당분간 최저임금 관련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백신 접종의 효과가 나타나면 미국 경제가 단기적인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방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민주당 정부가 있는 주 또는 도시에서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용자의 저항이 강해질 수 있다. 특히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은 유리한 연구 결과만 제시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다양한 지역 경제에 미칠 상이한 영향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완책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노동조합이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조직화의 매개로 이용한다면, 이 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운동이 저임금 개선 과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도 중요하다. 노동운동 내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밥그릇’(미국에서는 ‘빵과 버터’) 의제들을, 트럼프주의에 끌리는 사람을 포함한 노동자 다수의 개인적 이해에 호소하는 데 활용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저임금 문제를 ‘탈정치적인 의제’로서 아니라 특정 부문에서 일하는 특정 노동자 집단들이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종화(와 성별화)된 이중 노동시장과 경제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3) 경기부양 정책

개인과 지역정부에 대한 지원, 방역 강화와 최저임금 인상을 골자로 한, 현재 논의 중인 경기부양책이 처리되면, 바이든 행정부는 그 다음으로 정부 조달에서 미국산 상품 우선 구매(Buy America) 정책을 통한 제조업 부양과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을 중심으로 한 2조 달러 “더 나은 재건, 회복 계획”(Build Back Better Recovery Plan)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계획은 4년 전, 트럼프 정부의 공약과 유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정책방향에서 노동운동은 바이든과 발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그랬듯이 제조업 일자리 창출 공약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해외 시장 개척 목표를 고려하는 현재 제조업의 세계 공급사슬 관리 전략과 제조업 일자리에 대한 지속적인 자동화로 인해, 미국 제조업이 회복되더라도 일자리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이든도 트럼프처럼 제조업 일자리 창출 공약을 지키는 데에 실패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간신히 넘어온 러스트벨트 경합주들은 4년 후에 다시 공화당과 차기 ‘트럼프’에게 돌아갈 수 있다. 노동조합은 과거의 경제체제와 같은, 이미 사라진 산업적 힘과 일자리에 대한 약속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러스트벨트 쇠퇴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발전적인 경제 재편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달러 패권의 혜택으로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를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단기에는 노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지출의 확대를 요청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계획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의회를 통과하고 집행된다면 4년 안에 1000만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맞더라도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감소한 일자리를 모두 상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투자가 민간부문에 대한 파급력을 가져 생산적인 투자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단기에 경기와 일자리 회복이 있더라도, 장기에는 미국 경제가 2008~2009년 경제위기 후 지난 10년 동안 존재한 저성장, 저투자, 저임금 상승 상태로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바이든 정부와 정부의 경기회복 정책을 적극 지지한 노동조합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트럼프주의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4) 반인종주의 운동과의 교류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노동운동은 노동계급 내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는 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지방에 사는 백인 남성 노동자다. 노동운동에게는 이 소수 노동자를 포섭이나 조직화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이번 대선에서 일부 노조가 그랬듯이 도시지역에 사는 유색인 노동자와 교육수준이 높은 백인 노동자-중산층 중심으로 운동을 만들어보는 것이 맞는가 질문이 던져졌다.

이번 대선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트럼프에게 보인 지지의 근거가 단순히 경제에 대한 판단이었다면, 이 노동자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정부와 노동조합의 경제 정책의 승패에만 달려 있다. 하지만 인종적 자본주의 비판에서 봤듯이, 이런 노동자들의 시각은 지난 4년 동안 훨씬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미국 역사와 사회지도에 깊은 뿌리를 내려 온 백인민족주의에서 비롯된다. 즉 트럼프주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포섭 또는 재조직화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종차별적 사회지도의 해소에 대한 대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 영역에서 일부 노동조합과 반인종주의 세력 간에 형성된 연대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연대는 노동운동이 민주당과 맺은 긴밀한 관계와 양쪽 운동의 내적인 한계에 부딪쳐서 주춤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인종주의 세력에 핵심 의제인 경찰개혁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대선 직후 민주당 주류 의원들이 일부 선거구에서의 패배의 책임을, 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한 민주당 좌파와 사회운동세력에 돌리면서 경찰개혁 의제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었다. 이 상황에서 앞으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더욱 후퇴된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대해 더 비판적인 접근 없이는, 이런 흐름이 노동조합으로 확대될  것이다. 

반인종주의 세력의 입장에서는 경찰조직을 억압적 국가장치로 이해하는 기본적 접근을 유지하면서도, 경찰조직을 공공부문 노동자의 일자리(또는 고용 문제)로도 인식해야 노동조합과의 이해 지반과 공동행동의 기반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양쪽 모두 사회제도로서 인종주의에 대한 분석과 대중적인 인식을 강화하고 사법제도뿐 아니라 노동시장과 가계부채, 교육, 의료와 사회복지제도에서 나타나는 인종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물질적, 이념적, 정치적인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9. 결론

 
현재 미국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과 과제를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조합과 다른 사회운동 세력들이 트럼프의 낙선과 바이든의 당선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의 정세 속에 바이든이 노동운동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미국의 현재 상황은 2016년 촛불 직후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노동조합이 현재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특히 노동기본권 확대 영역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바이든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대안을 스스로 모색하지 않으면, 코로나19 위기 이후 경기회복에 의미 있게 개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지기반 확대에도 실패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대선 이전 시기에 반인종주의 단체를 비롯한 사회운동세력과 유의미한 연대를 시작했지만, 민주당과 무비판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면 이 연대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대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바이든이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트럼프 이전의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만이 아니라 팬데믹으로 더욱 심화된 경제와 사회적 불평등을 폭로하는 대중적 운동의 힘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트럼프주의의 물질적인 기반인 인종주의적 제도의 철폐와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력을 병행하며, 현 경제체제에 대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미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세력에 주어진 과제다. 팬데믹 시기에 형성된 절박함과 기초적인 연대관계가 대안 모색의 충분한 기반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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