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주주의 붕괴’가 보내는 경고의 신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소개

상효정 | 인천지부 조직국장

민주주의 위기 사례에 대한 연구 고찰

 
2018년 출간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의 원제는 ‘How Democracies Die’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강한 표현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이자 국가 간 정당·정치제도의 차이를 연구하는 정치학자인 두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미묘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죽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정치적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어떻게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을까’라는 저자들의 고민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위험에 처했던 여러 국가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붕괴하는 역사적 패턴을 발견한다. 더불어서 이들은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일 수 있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안과 따르지 말아야 할 전략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위기 사례에 대한 지난 연구 끝에, 두 저자가 미국 사회에 던지게 된 묵직한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잠재적 독재자의 출현

 
민주주의 위기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위기의 발단으로 저자는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을 꼽고 있다. 즉 기성 정치인이 경제위기, 여론 악화, 선거 패배 등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극단주의자의 인기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던 극단주의자는 기성세력의 도움을 받아 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그런데 기성 정치인의 정치 수(手)는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간다. 극단주의자의 인기는 제어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전제주의 권력을 쥐게 되면서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책에서는 기성 정치인이 극단주의자에게 권력을 쉽게 넘겨줬던 사례로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를 들고 있다. 1920년대 초 이탈리아는 사회불안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당시 주요 정당이 의회 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하자, 지오반니 졸리티 수상과 같은 원로 정치인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선거동맹인 ‘부르주아 연합(국민당, 파시스트, 자유당)’을 맺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연합은 실패하고 졸리티는 사임한 반면, 무솔리니는 이를 기반으로 권력에 도전할 자격을 얻게 된다. 1930년 초 독일은 대공황으로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는 교착상태였다. 이에 보수주의 정치인은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던 히틀러를 수상 자리에 앉히기로 타협한다. 그의 높은 인기를 이용한 다음엔, 얼마든지 그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남미 브라질의 제툴리우 바르가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또한 기성세력과의 ‘동맹’을 통해 권좌에 올라간 사례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라파엘 칼데라는 자신의 정치 경력이 위기를 맞이하자, 당시 쿠데타 우두머리였던 차베스를 지지 표명하여 반정부 지지층의 인기를 획득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차베스의 반역죄 혐의를 모두 풀어주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차베스가 정치 무대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조금 더 살펴보면, 우고 차베스는 대선 유권자 과반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경우다. 석유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자, 차베스는 석유 자원이 가난한 이들에게 활용될 수 있도록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하겠다던 쿠데타 우두머리였다. 부패정권에 맞선다는 표상을 획득한 그는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1998년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하거나, 독자적인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언론 장악과 같은 독재 행보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저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시작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물론이고 조지아, 헝가리, 페루, 폴란드,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추대된 지도자가 민주주의 전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유권자 대다수가 전제주의를 지지했던 것도 아니고, 베네수엘라 국민이 독재자를 원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나이다. 저자들은 모든 독재자가 초기부터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는 부패한 기성 정치에 반대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등장한다.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얻는다. 

따라서 이 책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하기 위해선 4가지 신호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①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②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③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④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전제주의 행동을 발견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아래 트럼프의 사례에서 더 살펴보고자 한다.  

극단주의자의 호소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 집단이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이다.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정당의 역할’이다. 즉, 정당을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주체로 사고한다. 정당은 다음과 같은 민주주의의 문지기 역할을 수행한다. ① 잠재적인 독재자를 당내 경선에서 배제한다. ② 정당의 조직 기반에서 극단주의자를 제거한다. ③ 반민주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와의 모든 연대를 거부한다. ④ 극단주의자를 체계적으로 고립시킨다. ⑤ 극단주의자가 유력 후보자로 떠오를 때 주요 정당은 연합 전선을 형성한다. 두 저자는 앞서 살펴본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의 사례를 상기하면서, 정당이 포퓰리즘 혹은 극단주의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극단주의자를 배제·제거·고립·연대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당은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 인기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일과 극단주의자를 걸러내는 일이 상충한다면, 정당이 상충 관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당이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정당이라는 정치 엘리트 집단이 균형 잡히고 중도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시각을 함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의 문지기 역할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2016년까지만 유효했다. 문지기 기능이 마비되면서, 트럼프와 같은 극단주의 아웃사이더가 정치권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책은 정당의 문지기 기능이 위축되게 된 배경으로 두 가지를 짚는다. 첫째, 2010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외부 자금을 선거 운동에 수월하게 끌어들일 수 있게 되면서 자금이 풍부한 후보자들이 약진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케이블 뉴스와 소셜 미디어 산업 성장으로 인해 주변부 후보자들도 대중적 지지와 인지도를 높이기 쉬워졌다. 또한 문지기 기능은 프라이머리 과정(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 경선의 방식이다. 코커스(caucus)는 등록된 당원만 참여할 수 있는 반면, 프라이머리는 당원이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다.)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프라이머리 시즌 초반, 트럼프는 공화당 유력 인사 중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 내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빚어내 주류 방송 채널에 오르내리면서 영향력을 높였다. 결국 보이지 않는 프라이머리는 허물어졌고, 실제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전국에서 1400만 표를 얻은 그를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살펴본 ‘잠재적인 독재자’의 4가지 신호를 트럼프에 대입해보면, ① 그는 2016년 대선 결과를 부정하면서 선거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표했고, ② 오바마와 힐러리를 각각 ‘외국인’, ‘범죄자’로 규정하며 비난했다. ③ 본인의 지지자들이 폭력을 행하면, 이를 용인하거나 독려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④ 야당, 언론, 시민사회 등 자신을 비난하는 이를 처벌했다. 힐러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 검사팀을 꾸렸고,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을 처벌하겠다고 억압한 것이다. 
 

전복되는 민주주의

 
다음으로 책은 잠재적 독재자가 선출된 후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분석한다. 즉, 독재자를 제어하도록 설계된 민주주의를 어떻게 허물어뜨리는지를 살펴본다. 여러 역사적 사례를 통해 발견한 주된 특징은, 그들이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전복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로, 법원과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규제기관과 같은 사법기관은 잠재적 독재자에게 위험인 동시에 기회다. 잠재적 독재자는 사법기관을 매수하여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지지하는 편은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적은 처단하는 효과를 얻는다. 사법기관을 매수하고 난 뒤, 두 번째로 그들은 정치적 경쟁자를 매수하거나 탄압한다. 정치·경제·언론 분야부터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공직을 제안하는 식으로 회유하거나, 정치적인 장애 요인이 유발되지 않도록 침묵을 강요한다. 이에 국한하지 않고, 세 번째로 그들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헌법과 선거 시스템,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 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잠재적 독재자는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위기, 자연재해, 안보 위협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특징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상세히 서술한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검찰과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을 친여당 인사로 채웠다. 나아가서는 사법기관 구성원을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자 대법원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우회하여, 인원 중 일부를 여당 단독으로 임명할 수 있게 법률을 개정했다. 

임기 10년 동안 독재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받는 페루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정치계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페루 경제가 무너졌던 시기였다. 그는 기존 정당을 혐오하는 시민의 분노를 활용하는 등 포퓰리즘을 앞세워 등장했다. 취임 이후 초반에는 의회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기성 정치인을 향해 비난 공세를 취했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페루 정보 자문이었던 몬테시노스는 국가정보원을 이끌며 야당 정치인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불법 행동을 촬영해 협박하거나, 현금을 통해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매수했다. 후지모리 정권은 1990년대 말 주요 TV 방송국, 일간지, 출판사에 뇌물을 주며 언론계를 매수했다. 1997년 헌법재판소가 후지모리 대통령의 세 번째 대선 도전을 위헌으로 판결했을 때, 후지모리의 측근들은 헌법재판관 중 세 명을 해임했다. 

터키 에르도안 정권은 안보위기를 활용하여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였다. 에르도안이 이끄는 정의개발당이 의회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자, 이슬람국가의 테러 공격을 빌미로 조기선거를 실시해 의회를 장악했다.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 비상사태라는 명목하에 공무원을 해고하고, 신문사를 폐간했으며, 판사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포함한 5만 명 이상을 체포한다. 이윽고 2017년엔 대통령 권한 제한을 삭제한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행정부 권력을 강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두 저자는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도 법체계에는 본질적으로 내포된 개념적 공백과 의미의 모호함이 있기 때문에, 헌법 조항에만 의존해서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고 본다. 미국 사회의 경제적 풍요, 탄탄한 중산층, 활발한 시민사회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하지만, 두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이다. 민주주의는 성문화된 규칙(헌법)과 심판(사법부)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데, 책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에 의존한다. 규범은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게 하는 완충적인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규범 중에서도 저자들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다. 상호관용은 자기와 다른 집단의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의지이다. 제도적 자제는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이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뜻한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보다 더 오래된 전통을 갖는 규범이다. 예를 들어, 수정헌법 2조가 규정되기 전까지 미국 대통령의 임기 제한은 법률이 아니라 자제의 규범으로 이어져 왔다. 두 저자는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 이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하여 선순환을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서 비교적 최근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마저 무너지게 되면, 성문화된 규정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체재라고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기본적인 규범이 힘을 발휘되지 못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한다고 말하며 여러 국가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중 역사상 가장 비극적으로 민주주의가 붕괴한 사례는 칠레다. 칠레는 남미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고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로서, 마르크스주의 좌파에서 보수주의 우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그러나 냉전 체제를 거치며 칠레 정치판은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1970년 대선에서 절정을 이룬다. 당시 좌파 인민연합당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되었는데, 그는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그의 집권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표하였다. 특히 극단주의 우파 조국과 자유당은 제도적 자제를 버리고 아옌데를 끌어내릴 강경한 전략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여당이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아옌데의 사회주의 프로그램은 추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아옌데는 대통령 권한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입장을 내비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게 되면서 정당 간 적개심만 깊어지게 된다. 극단의 대립과 혼란이 치달은 끝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칠레의 민주주의는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저자들이 주되게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정치 분열이다. 정치 집단이 서로 공존할 수 없게 적대적으로 분열하면, 상호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 허물어지면서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시각에서 미국의 역사를 분석한다. 미국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는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1780년대~1790년대에 상호 관용의 규범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고, 20세기로 들어설 무렵에서야 미국 사회의 튼튼한 견제와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균형 잡힌 시스템하에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 규범이 제대로 자리 잡아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루즈벨트 집권 시기에 비대해진 행정부 권력이 균형 시스템에 위협을 가한 일, 1950년대 초 반공주의 매카시즘의 등장이 상호 관용 규범을 위협한 일, 닉슨 행정부가 전제주의 행보를 보인 일과 같은 위협 신호가 있었으나, 민주주의 가드레일은 무너지지 않았고 위기는 극복되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미국 사회가 이제는 위기의 신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을 떠받치는 규범은 사실상 인종차별과 같은 차별에 근간을 두었다. 즉, 정치 공동체가 대부분 백인의 영역으로 제한되었던 동안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서로의 존재를 위협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법을 거치며 만들어진 민주화 흐름은 미국사회를 양극화하게 된다. 책 7장에 상세히 서술된 민주당과 공화당의 분열 과정을 요약하면, 부시 정권에 이르러서는 자제 규범과 상호 규범이 위기를 맞이하고, 오바마 임기 동안엔 당파 간 적대감이 고조되면서 자제의 규범은 힘을 잃었다. 이윽고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나타난 트럼프는 극단적으로 규범을 파괴하게 된다. 


무너지는 민주주의가 직면한 과제

 
책이 집필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반이다. 저자들은 이미 트럼프가 임기 첫해부터 여러 측면에서 전제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며, 민주주의 존속 변수로 공화당 지도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여론의 지지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안보위기가 어떻게 활용되느냐를 꼽는다. 

트럼프가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 허물어뜨리진 않았지만, 그가 파괴한 규범으로 인해 미국의 헌법적 민주주의마저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의 전제주의 행보를 강력하게 제어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미국 사회는 인종적·종교적 재편, 경제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가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 사회가 다민족을 기반으로 규범의 범주를 넓혀 가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여러 풍부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다. 독자는 여러 사례를 참고하면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 경각심을 가져야겠단 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잠재적 독재자의 징후, 가짜 뉴스·대체언론, 정치적 분열, 선거 공학 등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1년 11월 발행된 사회진보연대 소책자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는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하기 위한 4가지 기준을 한국 대선 후보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재명 후보의 도의회 패싱 논란, 본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성남시 의원을 고소한 사건, 정치적 경쟁자를 적폐 세력 등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말은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 것이자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는 노력의 부족이다. 

다만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이 민주주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각 당이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하는 관용이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과연 정당 경쟁이 저자의 믿음처럼 공존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고민이 필요하겠다. 책이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보냈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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