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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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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D, '승리하는 핵전쟁'으로의 진보?

임필수 | 정책기획부장, 한반도팀
NMD 배치와 미국 내 찬반양론의 부상

최근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NMD(National Missile Defence, 미국본토 미사일방어망) 및 TMD(Theater Missile Defence, 전쟁지역 미사일방어망) 구축 계획이 국제 정치에서의 중대한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국내적으로도 NMD 구상에 대한 논쟁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1994년 미국 의회선거 이후, 공화당이 다수파가 된 새로운 의회는 북한 또는 이라크와 같은 '깡패국가'들의 (미국 본토를 공략할 수 있는) 핵-탄도미사일이라는 위협이 목전에 도달했다는 강력한 정치캠페인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물론 1995년 클린턴대통령은 "2003년까지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계속된 압력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었다. 이윽고 1996년 2월 미 국방부는 3년 내에 최초의 NMD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 결과에 따라 NMD 배치 문제를 결정하며, 그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그 뒤 3년 내에 실제로 NMD 시스템을 배치한다는 이른바 '3+3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몇번의 우여곡절 끝에 바로 올해, 2000년도가 이러한 3+3 프로그램에 따라 NMD 시스템의 테스트가 이루어지며 실제적인 배치 여부를 결정하는 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이미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미사일 요격 테스트가 매우 저조한 결과를 보이면서, 미국 내에서 그동안 잠복되었던 찬반 양론이 일거에 터져나오게 되었다.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제쳐두더라도, NMD 시스템 자체가 기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의 배경에는 또 다른 중대한 정치적 변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2000년 미국 대선이다. 공화당 부시 진영이 NMD 배치결정 자체를 대선후보의 미국 국익의 수호에 대한 의사와 동일시하는 선거홍보 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즉 NMD 배치에 대해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라는 문제를 등한시하는 태도와 같다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같은 부시후보 진영의 선거캠페인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들도 높다. 즉 연단의 후보들이 펼치는 열띤 공방과는 달리, 미국의 유권자들이 군사·외교 정책들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NMD 배치에 대해 관심이 낮은 것이 아니라, NMD 배치 반대의 목소리에 무관심하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화-민주 양당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 내에 존재하는 각종 군사안보전략연구소 및 평화운동단체들이 벌이는 논쟁의 중요성 자체가 기각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NMD의 연구 및 배치 문제가 단순한 무기체계로서의 의미 이상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향후 수십년 앞까지의 국제정세 및 세력관계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가라는 중대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NMD 배치결정 자체는 미국이 향후의 국제정세 및 세력관계를 어떤 형태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이 국제적인 세력관계에 개입하여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동맹 전략은 무엇이냐 그리고 그 동맹이 상정하는 잠재적인 적국(敵國)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세력관계에 개입하기 위한 군사력 확보의 방식은 무엇이며 그 함의는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의 주요 관심사는 후자가 될 것인데, 이는 핵전쟁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1> NMD 프로그램의 개요
1)적국의 탄도미사일 발사2)적국의 미사일이 구름위로 나타나는 즉시, 조기경보위성과 조기경보레이더는 미사일을 탐지, 추적한다
3)지상의 고성능레이더가 탄두와 레이더교란 유인물을 추적한다. 정보는 지휘본부에서 종합된다.4)지상으로부터 파괴체(kill vehicle)와 추진로켓으로 구성된 요격체가 발사되며, 지휘본부로부터 정보를 지원받는다.
5) 지상으로부터의 정보와 내장된 감지기를 이용하여 파괴체는 교란유인물과 잔해로부터 탄두를 식별한다. 6) 파괴체은 탄두와 충돌하기 위해 이동하고, 탄투와 파괴체 양자 모두 파괴된다.



미소 핵무기 시대의 개막과 방공망제한협정

NMD와 관련하여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논의들은 대부분 NMD 프로그램과 1980년대 중반 SDI 구상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NMD 및 SDI 구상과 핵전쟁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SDI(Strategic Defence Initiative, 전략적 방위 주도권)라는 표현은 1985년 1월 3일 미소 외상회담에 앞서서 미국 대통령실이 발표한 <레이건대통령의 전략적 방위 주도권>이라는 문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1983년 3월 레이건 대통령은 '21세기를 향해 우주에 전략적 방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때에는 SDI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후 SDI라는 표현이 널리 유포된 데에는 군사정책가들과 미국 내에 존재하는 각종 군사전략연구소의 이데올로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다. SDI에서의 '주도권'(initiative)이라는 표현 자체가 암시하듯이, 미소간의 핵무기경쟁 나아가 우주 공간에서의 군사력 경쟁을 강력하게 선동하고 여기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데 적절하였기 때문이다.


대륙간핵탄두미사일과 MAD전략

SDI 구상이 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미소간의 핵무기 경쟁의 역사 특히 탄도미사일방어수단 개발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탄도미사일의 원형이 되었던 독일의 V-2 로켓 기술은 연합군 즉 미국과 소련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는 양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미소는 경쟁적으로 상대방의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950년대 말에는 양국 모두 개발에 성공하였다. 탄도미사일 능력은 핵무기 기술과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양국이 상호간에 '확실하게' 수천만명 내지는 수억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군사능력을 공히 확보했다는 점에서 가공할만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점을 정확하게 인식한 미소 양국은 탄도미사일 개발과 동시에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지만 1950∼1970년대에 걸친 연구 성과는 크게 만족스럽지 못하였다.(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결국 1960∼1970년대 미소 양국간의 핵무기 경쟁은 핵전쟁을 보다 현실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방어수단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파괴적 성격을 극대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핵전쟁을 군사적으로 막을 수도 없고, 핵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없는 현실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상호공멸보장'(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다. 이는 1960년대 미국의 맥나라마 국방장관이 정식화하였다. 즉 미소 양국이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핵전력 상의 균형을 이루게 되면, 이는 각각의 국가가 상대방에 대한 선제핵공격을 회피하게 된다는 이른바 핵전쟁 '억지'(deterrence) 이론이다. 이는 양국이 핵무기를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전력을 강화함으로써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억설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소간에 체결된 ABM협정은 상호공멸보장 이론의 완성으로 보였다.


'승리하는 핵전쟁' 구상의 첫번째 좌절과 방공망제한협정

애초에 탄도미사일 방어수단에 대한 연구는 독일이 V-2 로켓 개발 구상이 외부에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연구가 본격화된 것 역시 V-2 로켓 기술 이전이 계기가 되었다. 1955년 무렵부터 미국은 나이키주스(Nike Zeus)라고 명명된 요격미사일 개발 계획을 출범시켰으며, 1963년에는 여러 시스템들이 추가되어 나이키X(Nike X) 계획으로 확대된다. 한편 소련은 1964년 붉은 광장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갤로시(Galosh)라고 불려진 신형 요격미사일을 선보였다. 이때 연구·개발되었던 요격미사일은 핵탄두를 이용한 것이었다. 당시의 군사기술 수준에서 볼 때 요격미사일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탄도미사일에 명중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따라서 요격미사일이 최대한 근접하여 핵폭발을 통해 탄도미사일을 파괴한다는 구상이었다. 미국은 수차례에 걸쳐 요격미사일 계획을 확장했으며 1970년대 초반 여러 차례의 테스트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렇지만, 1972년 미국은 핵탄두를 이용하는 요격미사일 방식의 방어망 계획을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존재하였다.
미국이 1970년대 초까지 개발한 방어망은 2중 방어망 수준이므로 각 단계에서의 요격률을 높이거나 엄청난 수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해야만 했는데, 이는 기술적 한계 또는 비용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핵탄두를 이용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은 핵폭발로 인해 요격하는 측에서도 매우 큰 피해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핵폭발로 인한 전자기펄스가 모든 전기·전자시스템을 파괴하므로 요격 레이다망에 끼칠 치명적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즉 레이다망의 파괴로 인해 2차 탄도미사일공격에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모스코바에서 SALTⅠ(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전략무기제한회담)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개의 기본 협정이 포함되었는데, '전략공격무기 제한에 관한 잠정협정'과 '미사일방어망제한협정'(ABM Treaty)이었다. 특히 후자는 "미소 양국이 각각 200개 이하의 요격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고, 요격망은 각국이 설정한 2개의 광역에서 배치할 수 있으며, 따라서 1개 광역에는 100개 이하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 그리고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 또는 그를 위한 기지 건설은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러한 협정이 이행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각국이 정찰위성이 상대국가의 영공을 통과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도 명문화되었다. 따라서 1972년의 방공망제한협정은 미국 및 소련이 상대방의 핵-탄도미사일 공격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거대 규모의 방어망 구축을 포기하고, 다시 순수한 의미에서의 상호공멸보장 전략으로의 회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SDI, 승리하는 핵전쟁을 위한 비상구?

그렇지만 미국이 미사일요격체계 개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핵무기를 이용하는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비(非)핵파괴방식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즉 빔(beam)무기와 같은 '지향성에너지무기'와 레일건, 비핵미사일과 같은 '운동에너지무기' 등이 연구주제로 등장하였다.(현재 계획 중인 NMD 시스템은 'hit-to-kill', 즉 파괴체가 탄도미사일에 직접 부딪쳐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함으로써, 탄도미사일 핵탄두의 폭발을 막는다는 아이디어에 기반한다) 미국의 비핵파괴 요격 기술 개발 구상은 1970년대에 걸쳐 장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또한 SDI 구상에 기여한 또 다른 축의 군사기술 발전은 인공위성의 실용화에 따른 우주의 군사적 이용이었다.

이 양자가 결합됨으로써, 기존의 미사일 요격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미사일방어망 구상, 즉 SDI 구상이 성립될 수 있었다.
미소가 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등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 군사적 유용성을 갖는 위성들이 하나둘씩 배치되는 시기는 1970∼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지구 상공에서 감시 및 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기경보위성을 비롯하여 통신위성, 항법위성, 해양경보위성, 전자경보위성, 첩보위성 및 우주위성시스템 등의 군사기술의 발전이 SDI 구상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즉 우주에서의 감시 및 추적 능력을 체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적국의 핵-탄두미사일 공격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구상이 비로소 성립될 수 있었다.

<그림 2> SDI 및 NMD 기본 구조 비교
1) NMD의 기본구조
DSP/ SPIRS GEO : 방어지원프로그램/ 지구정지궤도 위성 적외선 감지 시스템
SMTS(SBIRS LEO) : 우주미사일추적시스템 (저궤도 위성 적외선 감지 시스템)
UEWR : 고성능조기경보레이더
GBR : 지상레이더
GBI : 지상발사요격체
BM/C3 : 전장관리/지휘통제통신 시스템
2) SDI의 기본구조
* 센서 시스템
BSTS 추진단계 감시추적시스템
SSTS 우주 감시추적시스템
AOS 공중광학시스템
TIR 최종단계 영상레이더
NPB 중성자 빔
* 공격 시스템
SBI 우주 요격체
SBHEL 우주 고에너지 레이저
GBFEL 지상 자유전자 레이저
NPB : 중성자 빔
ERIS 외기권 재진입 요격시스템
HEDI 대기권상층 방어 요격체



SDI, '승리하는 핵전쟁'을 향한 재도전?

이처럼 SDI 구상이 갖는 웅장함과 원대함에 비례하여, 그 발표 후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게다가 당시 미국이 SDI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개시하면서 제시한 핵무기 정책은 사실상 매우 호전적인 성격을 띠었다. 다음 연설문을 잠깐 살펴보자.

"SDI의 목적은 소련의 전략적 미사일과 단거리 미사일에 대응하여 확실한 방위체계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SDI 연구계획은 소련의 조약위반에도 불구하고 ABM조약의 범위 내에서 추진될 것이다… 미국은 미소가 더 발전된 방위체계에 의존함으로써 세계안보와 안정이 제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네바에서 소련과 진지하게 논의하려 한다…
앞으로 수년 동안 핵공격력과 핵보복능력은 핵억지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대적이고 유연하며 신뢰할만한 전략 및 중거리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무기의 전면적인 철폐다. 따라서 이는 매우 장기적인 목표인 동시에 여타 모든 핵위협에 대한 방위수단의 연구와 함께 효과적인 핵무기제한협정, 그리고 재래식무기 불균형에 의해 야기되는 위협감소를 위한 노력 등을 요구한다."(1986년 6월 SDI 조직위원장의 중 와인버거 국방장관의 발언)

이를 다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무기의 전면적인 철폐이지만 어쨌든 현재의 시점에서는 핵억지 능력을 갖추기 위해 전략핵무기 및 중거리핵무기 등을 보유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적국의 핵탄두미사일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방위체계를 개발할 것인데 이는 세계 안보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셋째, SDI 구상은 ABM 조약의 틀내에서 추진될 것이지만, 먼저 ABM 조약을 위반한 것은 소련이다.(미국이 1970년대 초 빔과 운동에너지무기 개발로 방향을 전환한데 반해, 소련은 이에 대한 연구가 지체되면서 핵무기를 이용하는 요격체계를 계속 유지·발전시켰다)
넷째, 일정한 수준에서 핵무기제한협정은 추진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내용들이 종합된다면, 미국은 지나치게 수적으로 과도하게 만들어진 핵무기는 감축하되 '적정량' 이상 수준의 전략핵무기는 안정적으로 보유할 뿐만 아니라, SDI를 통해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SDI 구상이 정말로 현실화될 경우 드러날 군사전략 상의 효과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미소간의 핵정책의 근간이었던 '상호공멸보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다.(즉 핵전쟁이 발발되면 미소가 공멸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만 멸망된다는 것)
그렇다면 기존에 소련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바탕한 집단안보체제(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한 군사적 신뢰성 역시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소련의 정치적, 군사적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승리하는 핵전쟁' 구상이 관철되었다는 점을 의미하게 된다.


SDI와 반핵평화운동

미국은 SDI 구상에 대해, 익히 예상되는 반대를 염두해 두면서 그것이 순수히 '방어적' 목적 하에 계획되었다는 점을, 때에 따라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주장으로 SDI 구상에 대한 비판을 무마할 수는 없었다. SDI에 대한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은 논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미국은 SDI에 대한 연구를 가속화함과 동시에, MX나 TridentⅡ[삼지창]과 같은 전략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따라서 SDI 구상은 사실상 공격적인 전략핵무기 정책과 쌍을 이루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공격적인 핵무기와 함께 '완벽한' 방어체계를 갖추게 된다면,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제출된 것이다. 또한 이는 핵무기의 철폐를 통해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기존의 반핵평화운동을 무효화시킬 위험성을 갖는 것으로 여겨졌다.

둘째,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으로서 SDI 역시, 과거 미사일방어망계획이 노정했던 기술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들이 제출되었다. 특히 미사일방어망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 건설하더라도, 이를 돌파해낼 수 있는 미사일개발은 훨씬 수월하다는 과학·기술적 견해들이 제출되었다. 또한 SDI가 90% 수준의 방어능력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0%로도 충분히 수억명의 살상자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SDI 구상이 핵전쟁의 '절대적' 파괴력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실현 불가능한 환상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SDI 구상이 사실상 공공연하게 표방했던 바, "완벽한 핵무기 방어체계 개발을 통해 핵무기를 무력화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핵무기가 누렸던 절대적인 위상을 삭감한다"는 논리는 어디까지 '소련'의 핵무기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이는 오히려 핵무기 경쟁을 노골적으로 부채질하는 계기가 되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소련의 몰락과 SDI 구상의 축소

레이건 미대통령에 의한 SDI 연구계획 발표는 ― 그 현실적인 실현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 엄청난 정치적 효과를 발휘했다. 즉 SDI를 연구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였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SDI는 그리 간단하게 이룩될 수는 없었다. 미국의 군사전략가들과 군수산업체들이 제안하였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취합하여, 각각에 아이디어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이를 종합하여 일관된 시스템으로 구축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련의 고프바초프 서기장과 '방어적 충분성' 개념의 등장, 핵무기감축협정,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SDI라는 원대한 구상은 하나의 역사적 해프닝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군사적인 차원에서의 군사전략 및 무기체계 발전이라는 진화의 논리는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다.
1993년 중반, 미국방부는 이른바 탈냉전시대의 미국의 군사 전략, 군사력 구조, 군사력 현대화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진행한다.(이 결과물이 널리 알려진 약칭 [Bottom Up Review]라는 보고서이다) 이 때 보고서는, 미국 본토가 前소비에트연방 소속 국가들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로부터의 고의적이거나 우발적인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본토를 공략할 수 있는 장거리탄도미사일을 획득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희박다고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미 국방부는 '불확실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탄도미사일방어를 배치하기 위한 능력을 개발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즉 미사일방어망체계에 대한 기술적 준비태세(technology readiness)는 유지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에 따라, NMD 및 TMD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과거에 비해 훨씬 축소된 수준이지만, 지속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NMD와 핵전쟁의 미래

소련의 몰락 이후, 핵전쟁의 문제가 대중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1990년대 초반 미국과 러시아간의 핵군축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소연방에 소속되었던 독립국가들의 핵무기 문제도 큰 무리없이 해결되는 양상은 이러한 대중적인 이미지들을 강하게 제공하였다. 특히 최근 NMD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미국 내의 논쟁조차 핵무기 문제에 대한 분명한 논점은 누락된 듯하다.
지난 7월 8일 NMD 시스템의 3차 요격실험이 실패로 끝난 직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NMD 배치결정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검토하게 될 판단기준은 위협, 기술, 비용, 미국 안보에 끼칠 영향 등 4가지"라고 밝혔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조속한 시일 내에 NMD를 배치해야 할 정도로 '깡패국가'들이 탄도미사일 공격 능력 보유가 임박했는가. 둘째, 미사일 요격이 가능할 정도로 NMD의 기술적 난제들이 해결되었는가. 셋째, NMD 배치에 투여될 막대한 비용만큼의 값어치가 존재하는가, 또는 더 적은 돈으로 '깡패국가'들의 미사일 공격 능력 보유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넷째, NMD 배치에 따른 러시아와 중국 등이 강력한 반발하여 역효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 또는 그것을 무마할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는가.

따라서 이러한 판단 기준은 매우 현실적인 논거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소련과 중국 또는 제3세계 국가들이 왜 반발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논점은 정확하게 누락되어 있는 셈이다. (즉 냉전 시대 미국의 핵무기 정책의 근간이 왜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하는가라는 점)
현재 미국 내의 상황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된 '현실적'인 이유들로 인해 NMD 프로그램은 축소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클린턴 대통령이나 고어 후보 등은 공화당이 주장하는 수준에 비해 상당히 '절제된' 수준의 NMD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에 하나, 현재 추진되는 NMD 프로그램이 좌초된다면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될 것인가?

필자의 대답은 "글쎄" 정도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NMD 시스템이 좌절된다는 것은 핵무기 정책상으로 볼 때, 다시 세번째로 상호공멸보장 전략으로의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핵전쟁'인가 아니면 상호공멸하는 핵전쟁인가? 이것은 하나의 우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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