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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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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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겨울을 앞둔 실업운동의 고민

유의선 | 실업정책생산모임, 서울센터
시월에

추석과 태풍이 지나간 한반도에는 가을빛이 가득하다. 일찍부터 기승을 부렸던 더위와 계속되던 집중호우, 태풍도 모두 지나가고, 모두가 기대하던 10월이다. 실업자들과 실업단체에게 '10월'은 어떤 의미였던가? 10월이 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어, 실업자들은 당장의 생계곤란으로부터 한시름을 놓고 실업관련 단체들은 자활후견기관으로 재편되어 본격적으로 실업문제에 전력투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실업 및 빈곤대책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물론 이는 조심스럽게 예측되던 바였으나 이러한 우려는 이제 현실화되어 우리 목전까지 다가왔다.

첫째, 10월 1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으로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저소득실업자에 대한 생계비지원사업은 종결되었다. 사업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이로써 정부의 지원도, 공공근로사업도 하지 못하는 실업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지원이 끊긴 것이다.

둘째, 추경예산이 올라있는 국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듯하며, 이는 곧 4단계 공공근로사업이 진행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자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었던 생계비조차 9월이면 종결된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가 이전 자활보호대상자의 30%도 포괄해내지 못하는 현실은 10월이후 더욱 많은 저소득 실직가정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의료보험료의 인상, 유가인상 및 이에 따른 물가인상 등은 겨울을 앞두고 이미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실업노동자의 삶을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

초여름, 공공근로 축소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실업노동자의 외침은 추경예산의 국회부결로 인해 더 이상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어느새 4단계 공공근로의 시작일. 지난 6월, 처음으로 실업노동자가 스스로의 요구를 제기하며 거리로 나섰던 역사적 계기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적인 요구 및 조직화의 실패, 평가의 부재는 거리로 나섰던 실업노동자로 하여금 패배감을 맛보게 했으며, 또다시 개별적으로 공공근로를 찾아, 하루일감을 찾아 떠나게 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실업운동의 관점과 투쟁이 필요하다

실업운동진영에서도 하반기 예산편성 및 추경예산투쟁,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및 자활사업의 올바른 시행, 공공근로의 확대유지 및 민간위탁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반기 주어져 있는 시간은 별로 없는 듯 하며, 이러한 조바심은 무엇부터 해야할 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얼마남지 않은 하반기를 앞두고 실업운동진영은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초기 실업단체들의 활동은 IMF 직후 거리로 쏟아져나온 실업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 살 길을 찾아주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었으며, 이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의 실업운동이 처한 상황은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실업운동의 관점과 활동방향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의 예로 국회를 보자. 현재 국회의 공전은 '실업'의 문제 혹은 '실업예산'의 문제로 공전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업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민중생존권의 문제나 고용불안정의 문제 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대립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힘싸움이며, 여기에서의 승리여부가 차기 대권에 미칠 영향을 세심하게 의식하며 벌이고 있는 정치행각일 뿐이다.
정치꾼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대량 실업자를 양산해내고(실업은 구조조정의 필연적 결과였다), 소위 '실업대책'을 통하여 실업자군(群)중 일부 ― 신지식인 육성에 따른 직업훈련에서 살아남은 소수 고학력 실업층 ― 를 흡수하며, 사회안전망을 통하여 안정적 일자리 창출보다는 미봉적이고 선별적인 시혜와 불만을 무마하는 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실업노동자 및 노동대중의 일부의 비참한 상태를 회복시키지 않고, 오히려 영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은 실업을 제거하지 못하고, 빈곤의 재생산과 악순환으로부터 빈곤층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결국 실업노동자는 언제나 최소생계만 유지하면 되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사실은, 무엇보다 장기적인 삶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업노동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이나 생계의 어려움도 있지만, 앞으로의 살 길, 즉 삶의 장기적 전망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조직적 투쟁이 없다면,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반복되는 생활은 결코 손쉽게 사라지지 않고 실업자의 자식들이 실업자가 되는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실업운동 진영은 '실업'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업의 제거는 전사회적인 문제제기와 투쟁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 실업운동의 대안은 민중생존권의 쟁취, 고용의 불안정과 노동규율의 강화에 맞선 끈질기고 완강한 투쟁과 연대 뿐이라는 점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 속에서만 정권으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고,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지원을 얻어낼 수도 있다. 실업노동자들이 정권의 비리와 사회의 불평등, 불의에 대해 일상적으로 문제제기할 때 스스로의 생존권조차 사수해낼 수 있는 것이다.


실업노동자의 삶의 질은 얼마?- 실업대책예산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실업대책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요구를 제기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의 문제로 모아지게 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문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올바른 시행도, 공공근로의 유지 및 확대도 모두 예산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실업운동진영은 계속적으로 예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실업률이 정부의 통계만큼 낮지 않으므로 실업예산은 보다 확충되어야 한다"는 정책적 근거 제시로부터 시작하여, 지자체와의 교섭, 공공근로 예산확보투쟁 등 이러한 성격의 투쟁은 지금까지 전개해왔던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정부의 예산방침과 정치권의 행보는 그들이 갖는 소외계층에 대한 입장과 대책(!)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이 상정한 예산은, 기존 생활보호법보다도 못한 수준의 기초생활보장법 예산과 턱없이 부족한 공공근로예산이었으며, 자활사업예산은 책정조차 되지 못했다. 특히 공공근로예산으로 배정된 6000억원 중 2000억원은 지자체예산이며, 2000억원은 자활공공근로예산이다. 이 수준이라면 2001년 민간위탁공공근로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예산의 턱없는 축소는 법의 적절한 집행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10월부터 시작하는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은 '보여주기'식의 선심행정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근본적 대책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생활보장법이나 공공근로에 대한 터무니없는 예산삭감의 정부방침. 이것은 그나마 존재했던 최소한의 관리조차 포기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돈이 없기 때문에 실업예산을 적절하게 편성하지 않는 것일까? 돈이 있다면 실업예산을 편성할 것인가? 우리의 답은 "아니다"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정권과 자본은 자신의 계획 속에서 사회의 소외계층을 일정한 수준에서 관리하려 할 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나, 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없다.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예산의 많고 적음을 두고 싸울 뿐이다.
하기에 예산 문제는 일부 상층의 교섭으로 확보되거나, 한두번의 투쟁으로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구조조정에 파열구를 내는 것, 투쟁을 통해 예산편성의 구조변화를 이뤄낼 때만이 궁극적인 예산의 확보를 얻어낼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시기 실업대책예산 요구투쟁은 실업운동진영의 쟁점이며, 핵심요구사항이자, 과제라는 것이다. 다만, 위의 인식 속에서 긴 호흡으로 예산확보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국회가 공전되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일정상으로 하반기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투쟁과 계속적 요구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실업노동자의 분노를 조직하고, 본질을 학습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연대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업대책은 노동시장 유연화나 벤처창업, 전노동자의 지식노동자화 등 결코 안정적인 일자리와는 무관한 자본살리기 정책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외면하며, 자산을 보유한 소수를 위해 주식시장을 부양해서 비생산적인 투기와 소비를 확산하고 있다. 주요하게는 해외 금융자본에 대한 예속과 전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구조조정이 그 어떤 성과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실업, 빈곤층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

만약 정부가 실업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세원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듯이, 경제위기를 틈타 금융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은 일부 자산가들(주식투자 열풍을 보라),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책임을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재벌들(실업자들이 보기에 충분히 부유한 자들!)이 있으며, 이의 사회환원을 통한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예산확보투쟁은 단순한 부문적 요구를 넘어 전국민적 지지와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끈질긴 선전활동과 연대의 모색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일을 무궁무진하다. 선거 때의 정당과 후보자가 하는 활동을 떠올려보자. 돈을 들여하는 선거활동이 아니라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만나고 함께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시작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직화는 이미 이루어져 있다. 계속적으로 주민을 만나고, 우리 내용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지역의 주요 요소요소에서 함께 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 이를 광역별로 묶어내고, 전국적인 대중투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 성과는 전실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실업운동이 보다 강력한 사회운동의 주체로 서게 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좀 더 나은 시혜나 관리가 아니라 장기적인 삶의 전망을 갖을 수 있는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의 창출이며, 빈곤을 탈피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의 정당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실업노동자 스스로의 문제제기와 연대로!

하반기 '예산확보투쟁'과 '공공근로 상시화'라는 쟁점을 고리로 우리는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대중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으로, 폭넓은 연대를 모색하며, 하반기 실업운동의 첫발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문제제기와 연대'를 실현하는 방안은 무수하게 많다. 실업노동자 스스로가 실업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제기하고 개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쟁점에 대한 민감한 자기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실업운동단체에게 이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실업노동자 스스로의 자기 조직화를 통한 주체적 운동과 연대성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실업'의 제거 및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의 보장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길이며, 하반기 이러저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쟁점을 명확히 하며, 실천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노동 건설 경찰 포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