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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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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청소노동자 투쟁

박상은 | 사무국장
지난 2월 20일, 110여 명의 청소 시설 경비 노동자로 이뤄진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서경지부) 홍익대학교분회(이하 홍대분회)의 총회가 열렸다. 전날 저녁에 이루어진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총회였다. 전원 고용승계, 시급 4,450원, 일일 8시간 노동 및 주5일제, 노조 전임자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잠정합의안은 투표참가자 86명 중 77표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혹한 속에서 진행된 5-60대 고령노동자들의 49일간의 농성투쟁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청소노동자들, 모습을 드러내다

홍대분회 투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TV 뉴스와 신문기사에 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선 싸움이 이렇게 많이,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도된 적은 없었다. 유난히 농성투쟁이 많았던 올겨울, 모든 곳에 사람들의 관심이 고루 쏠리지는 않는 상황에서 유독 홍익대학교 투쟁에 지지연대가 쏟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저기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그 중 공통으로 지적된 것은 여성 고령 저임금과 같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실 홍대분회 노동자들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우선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을 펼치고, 투쟁에서 승리한 뒤에도 계속되는 노조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서경지부와 그 소속 분회들의 공이 크다. 서경지부는 2007년 7월 500~600명이던 조합원 수가 2001년 1월 현재 1,700여 명으로 증가했는데, 이 중 6개 분회가 2007년 이후 설립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인 노조 파괴로 인해 모범으로 꼽혔던 여러 노동조합이 깨져나가는 속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홍대분회 이전부터 서경지부 소속 분회들의 투쟁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론은 홍대분회의 투쟁이 마치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 높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노조 결성을 위해서는 자발성뿐만 아니라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공공노조 서경지부는 몇 년에 걸쳐 청소노동자 조직화 활동을 진행했고, 청소 시설 경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대학생들의 헌신적인 연대도 동반되었다. 여기에 2009년 '대학 비정규직' 부문이 공공노조의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또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위한 캠페인단’도 큰 기여를 했다.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캠페인단을 구성하여 청소 시설 경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캠페인을 1년여 간 꾸준히 펼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캠페인단은 대학이나 병원 앞에서, 휴게공간도 변변치 못하고 식사 지원도 없어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밖에도 청소노동자 행진이나 노래자랑과 같이 노동자들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사업을 기획하였다.

그러던 중 청소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연이 기사화되는 일이 늘어났다. 2010년 한 해 동안, 경희대와 연세대에서 학생이 청소노동자에게 욕설과 폭행을 퍼부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휴게실로 쓰던 창고에서 전기콘센트 스파크로 불이 났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처벌하려 했던 해운대 아파트 화재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경희대, 연세대에서의 욕설과 폭행 사건은 ‘패륜녀’, ‘패륜남’ 등 가해자에 대한 선정적인 이름 붙이기에 집중된 면이 없지 않았다. 해운대 아파트 사건은 휴게공간이 마땅치 않은 청소노동자들의 현실, 나아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했을 때에 발생하는 부당함이 극명히 드러나고 이슈화된 계기였다.

어찌 보면 충분히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들이 이슈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유령’ 이라 칭해졌던 청소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 세상에 드러낸 사회운동의 성과였다.


청소노동자 투쟁의 성과와 과제

2008년 연세대, 성신여대, 2010년 이화여대, 2011년 홍익대까지. 부당해고와 저임금, 노조불인정에 맞서 싸웠던 서경지부의 투쟁은 불패의 행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승리의 이유 중 하나는, 이들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위반인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너무나 열악한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09년 「산업별 직업별 고용구조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화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81만8천 원으로 일곱 번째로 낮은 순위였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101만8천 원, 여성이 77만6천 원이었는데,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청소 업무에서 여성들은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조건이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알려지자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보도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마음 한 켠에는 ‘귀족노조’, ‘철밥통’ 등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분노 혹은 질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운동 전반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게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 어느 정도 열린 공간에서부터 노동자운동에 대한 인식 전반을 바꿔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미화노동자들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의 질이 존재할 것인데, 이러한 통념을 바꿔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서경지부의 불패 행진은, 수치상으로는 아직 크지 않지만 청소노동자가 민주노총 내부의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는 7,853명으로 전체 청소노동자의 2.0%밖에 되지 않지만, 위의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1천6백6십만 명 중 청소업무는 379,923명으로 다섯 번째로 종사자가 많은 직종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학에서 노조 결성이 이뤄졌는데, 많은 청소노동자들이 대학과는 조건이 다른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조직화가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미서비스노조(SEIU)가 청소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했던 사례에서 보듯이, 앞으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한 일은 전혀 아니다. 조직률이 늘어난다면 청소노동자는 분명히 민주노총의 하나의 큰 축이 될 수 있다. 청소노동자가 민주노총의 하나의 큰 축이 된다는 것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인 민주노총의 구성이 다양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노동자는 여성·고령 노동자가 다수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미화노동자는 남성이 66,380명(17.5%)이고 여성이 313,543명(82.5%)으로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미화노동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50대가 41.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60세 이상이 40.5%로 유사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50세 이상이 82.1%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징이 갖는 장점이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경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간부교육은 의미 있는 시도다. 여성 고령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주체로 거듭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청소노동자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형성하는 것을 목표하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매년 벌어지며 점점 중요한 투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최저임금 투쟁의 실질적 동력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투쟁은 경제위기 아래 더욱 곤란을 겪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방편이자, 자본에게 경제위기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노조 조직률이 낮아 임금이나 고용 문제에서 가장 손쉽게 공격받는 여성노동자의 임금 방어 도구가 되기도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곧 ‘실제 임금’이 되었을 때,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악화되는지를 온 몸으로 증명하는 주체들이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청소노동자들은 이미 열성적으로 최저임금 투쟁에 나서고 있다.

최저임금 투쟁은 그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는 일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임금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자본과의 이데올로기 싸움이기도 하다. 그 투쟁에 청소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획이 병행된다면, 최저임금 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데 청소노동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교섭과 3월 총파업투쟁에서 승리하자

서경지부는 고려대분회(고려대병원 포함), 연세대분회, 이화여대분회 등 4개 사업장, 9개 용역업체를 대상으로 2010년 10월 22일부터 2010년 2월 16일까지 총 12차례 교섭을 진행하였으며, 집단교섭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 수는 약 800여 명에 이른다. 서경지부는 사업장 단위 투쟁을 넘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표준을 만들기 위해 최근 집단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9개 용역업체가 2011년 상반기 법정 최저임금인 4,320원을 고수하면서 교섭이 결렬되었다. 서경지부는 2월 22일 쟁의조정신청을 접수했고, 3개 대학에서 각각 진행된 파업 찬반투표에서 참가자의 87%가 파업에 찬성했다.

집단교섭 요구는 ▲청소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지불할 것 ▲제대로 된 쉴 곳, 밥 먹을 곳을 보장할 것 ▲진짜 사장, 대학총장이 고용·임금 책임질 것 등이다. 이는 최저임금이 곧 실제 임금이 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휴게실 등 그동안 임단협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또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 그동안 투쟁에서 과제로 제기되었던 부분을 확실한 요구 사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기도 하다. 임금 요구안은 시급 5,180원인데, 이는 2010년에 노동계가 요구한 최저임금과 동일하다.

공공노조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1만 5천여 명이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임금인상, 10시간 노동일, 노조결성의 자유 보장, 선거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103년 뒤 서울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벌이는 3월 8일 파업 투쟁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집단교섭과 파업 투쟁은 청소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제기할 계기이기도 하다. 또한 홍익대학교 투쟁을 통해 모였던 사람들이 향후에도 계속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와 투쟁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투쟁 승리로, 청소노동자들의 운동이 한 발 더 도약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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