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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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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할 때인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2011년 여성권 쟁취 투쟁을 만들어가자

방민희 | 노동위원
민주당이 당론으로 무상보육을 확정하고, 한나라당의 대응이 뒤따르면서 무상보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만성적 경제위기로 빈곤층이 늘어나고, 저출산 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지배세력 모두가 취약계층(특히 여성) 일자리와 복지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나 민주당이나 현실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들은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시설을 제어할 능력이나 공적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시장의 활성화를 기본으로 무상복지를 이야기한다, 둘째, 국가성장력 제고를 위한 여성인력활용을 주장하면서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변화시키지 않는 한편, 고학력 여성의 인력활용을 위해 단시간 근무제를 도입함으로써 노동조건을 하향시킨다, 셋째, 여전히 가사노동과 양육, 돌봄노동의 일차적 책임을 여성에게 둔 채 여성정책과 저출산 정책을 추진한다. 결국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복지 담론을 형성하고 있지만, 어느 세력도 저출산이나 여성노동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봉합을 위한 정책 논의 속에 여성의 권리는 없다. 더 파격적인 것처럼 보이는 대안을 제시하고, 더 공격적인 방식으로 담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지배세력의 이권 다툼 속에 여성의 권리는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그럴듯한 포장지를 벗기고, 보수 세력의 공격에 맞서는 여성의 투쟁 속에만 현실에 기반한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있을 뿐이다. 여성운동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무상보육논의 속에서 여성의 요구를 담아내자고 한다. 하지만 현 시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여성권과 노동권을 제기할 일차적 주체인 여성노동자의 논의를 기반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2011년 여성권과 노동권 쟁취를 위한 과제

저출산 고령사회의 위기감 속에 지배세력이 내놓은 여성인력활용방안과 저출산 대책은 소수 여성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대다수 여성의 문제 제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된 여성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일하는 여성노동자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또 낙태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활동은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하지만 민중운동은 이에 대한 토론을 전사회적으로 제기하지도, 대응을 만들지도 못했다. 한편,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확대해온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홍익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불법 파견 투쟁으로 자본의 간접고용 시스템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다. 여성의 일이라 여겨진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저평가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촉발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의 기조는 간단명료하고 단일하다. 여성의 인력을 활용하는 한편 저출산과 일가정 양립의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해 위기를 지연하려는 것이다. 민중운동과 노동자운동에게 정확한 시대 분석과 단일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1년 여성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고 투쟁을 기획하자. 또 각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권과 노동권 쟁취를 위한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유연근무제의 본질을 폭로하자

정부는 2010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소수가 장시간 노동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유연근무제를 2011년 공기업, 준정부기관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사, 육아 등으로 전일제 근무가 어려운 여성인력 활용을 촉진하고, 신규 일자리창출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작년 시범사업 11개 기관에서 단시간 노동자 2,928명을 채용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신청자의 만족도가 높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를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을 여는 ‘퍼플칼라’라고 전면 홍보하며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반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유연근무제 대응 TF팀은 정부의 의지와 달리 해당 기관의 신청이 낮고, 하위직 여성 공무원 중심으로 시간제 근무가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임금, 인사, 승진의 불안요소와 업무연계성에 대한 우려로 중상위직 공무원 신청자는 거의 없다. 결국 임금축소를 감내하면서 유연근무제를 선택하는 것은 일과 가정의 이중부담을 떠맡고 있는 하위직 여성일 수밖에 없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해 오던 여성공무원들이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시간제 근무, 선택적 근무시간제, 재택근무제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 중 시간제노동자의 74.2%가 여성노동자로 이들의 대부분이 비자발적으로 단시간 근로를 선택하고 있다.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하거나 육아, 가사 등을 병행하기 위해 단시간 일자리를 택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며, 근로시간과 임금 등에 만족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 선전하는 유연근무제는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발생하는 여성의 곤란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유연근무제를 추진하는 목적은 다른 곳에 있어 보인다. 유연근무제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론이나 공공부문 선진화를 말하며 공공부문의 고용, 노동시간, 임금의 유연화를 추진해 온 것의 결정판이다. 민간부문에서는 이미 시간제 노동을 활용하며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수요변화에 따라 노동비용을 절감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공공부문 경영 효율화를 위해 단시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지만 실업 문제 해결보다는 민간 기업처럼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숙련된 비정규직 인력을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관리하겠다는 것은 공공부문에도 상시적인 비정규직 인력풀을 형성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또 시간제 근무에 적합한 직무를 적극 발굴하겠다는 의지는 가능한 모든 업무를 비핵심 업무로 분류하고,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주로 여성 공무원들의 업무가 대상이 될 것이다.

정부의 유연근무제는 공공부문에서 노동조건과 고용의 질을 악화시키고, 여성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유연근무제 시범도입 이후 각종 관계법을 제 · 개정하며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고용정책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 시급하다. 동시에 현장에서 유연근무제를 막아내는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2) 저출산은 여성의 책임이 아니다, 낙태 단속/처벌 강화를 막아내자

저출산 고령사회의 위기감은 유연근무제처럼 여성과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한편, 여성의 몸과 재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로도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는 흐름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1)가 촉발한 낙태 처벌, 단속 강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라이프 청년회와 변호사회에 이어 최근 프로라이프 교수회까지 발족했다. 이들은 하루 1,000건 이상 생명을 죽이는 ‘낙태공화국’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캠페인을 벌이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80% 이상 낙태를 중단시켰다고 자임한다. 하지만 낙태 단속, 처벌 강화 운동 이후에 낙태 건수가 줄어들지도 않았고, 여성의 삶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많은 여성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원정낙태를 하러 떠나야 했다. 해외 건강검진처럼 포장해서 원정낙태를 주선하는 브로커들이 생겨났고, 항공비와 숙박비, 병원비를 포함해 2박 3일에 130만 원 안팎을 받으며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또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요양병원에서 불법낙태를 하는 등 음성적인 낙태가 늘고 있다. 작년 초 낙태 고발 운동이 본격화되었을 때에 낙태 비용은 평균 1.5배에서 최고 300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한편 낙태죄를 빌미로 여성은 또 다른 폭력에 놓이고 있다. 지난 6월, 한 여성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낙태를 결심했지만 남자집안에서 키워준다며 낙태를 반대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 낙태한 여성은 고발당했다. 그리고 “내 아들 죽여서 잘 사나 보자”는 등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연애관계, 결혼관계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고심 끝에 낙태를 결정한 여성에게 낙태하면 가만 안 둔다는 협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낙태 고발 정국을 활용한 남성과 사회의 공격은 여성에게 끔찍한 공포를 안겨주고 위의 사례처럼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위기감만을 운운하며 여성의 출산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 이상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내세우며 출산과 양육을 위한 몇 가지 정책과 상담서비스를 마련했으니 원치 않는 임신을 했더라도 낳으라는 격이다. 하지만 이는 여성이 출산을 결정할 때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와 출산, 양육, 직장, 사회적 관계 등을 모두 고려해서 판단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한편 낙태를 둘러싸고 다수의 여성에게 끔찍한 공포와 통제가 가해지고 있지만 이를 전면적으로 방어할 세력이 너르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민중운동 내에서는 이에 대한 토론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여성단체 일부와 임신출산네트워크 정도의 활동이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지만 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낙태를 옹호해야 하느냐는 제기나, 최근 진보신당의 한 전국위원이 ‘여성 개개인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낙태를 선택할 수 있지만, 출산을 통해 젊은 세대를 공급하는 게 현실의 공리에 부합한다’며 기고한 글에서 볼 수 있듯,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낙태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두거나 여성의 출산,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 양육까지 재생산을 둘러싼 일련의 경험과 과정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낙태는 대부분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남긴다. 심지어 낙태를 죄로 간주하는 현 시점에서 여성의 권리는 더욱 축소되고 제한된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육체에서 자유로운 남성에 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위는 제한되는 반면 책임은 여성 개인의 몫이 된다. 그럼에도 임신과 출산, 양육 등 재생산 과정을 여성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하는 현실은 여성의 권리를 제기할 수조차 없게 한다. 여성의 역할을 가족 내에 한정 짓고, 출산해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사회적 인식과 구조에 맞서 싸울 수 없게 함으로써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한다. 낙태를 죄로 몰아가며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가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또 낙태가 음성화될 경우 여성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시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음성화된 경로를 찾아 위험한 시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인에 의한 낙태 시술도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비전문인이 시술하면 건강에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억지로, 고통스럽게 지속하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여성의 대부분은 안전한 시술을 위해 고비용을 지불할 수 없고, 해외 원정도 가지 못하는 빈곤여성들이다.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을 대립시키면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출산과 재생산,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 낙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낙태가 불법화되어 있음에도 낙태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즉 여성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와 피임의 권리가 주어져 있는지, 여성이 출산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써 주어져 있는지, 현재의 성규범과 결혼제도 속에서 미혼여성의 출산이 가능한지, 기혼 여성일지라도 아이를 낳았을 때 양육과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어떠하고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갈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반문이 필요하다.

3)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자

저출산 고령사회의 또 다른 해법으로 이명박 정부는 돌봄분야 육성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아픈 사람과 가족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등 그동안 여성이 가족 내에서 수행해 온 일을 공적인 공간으로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사회서비스니 돌봄이니 하는 말을 남발하기 이전부터 민중의 요구이자 여성의 요구였다. 돌봄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임에도 개별 가정의 능력에 따라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집은 여성이 그 역할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각 가정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보편적 서비스로 사회서비스를 확충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돌봄노동이 조금씩 수면위로 등장하며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민중들과 여성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부는 일자리 수 늘리기에만 관심이 있다. ‘중고령 여성노동자에게 적합한 여성친화적 일자리’라든지,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하에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값싼 일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게다가 정부는 시장에서 민간기관들의 경쟁이 치열해야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며 국가와 사회의 책임하에 사회서비스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에 급급한 영리 기관에 내맡기고 있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돌봄노동자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이 1시간의 서비스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시급 6,000원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활동보조인이 6,000원 벌이를 위해 왕복 2시간과 교통비를 지출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이 보편적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어서 노동자나 이용자에게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난해 국가고용전략회의의 논의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은 노동자에게 노동통제를 더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관련 민간 업체의 난립과 시장화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2)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후퇴할 것이다.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고, 사회서비스가 보편적 서비스로 기능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자. 생산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고 재생산영역을 당연하게 여성의 일이라 여겼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유급이든 무급이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임을 확인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거나, 개별 가족이 알아서 능력에 맞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돈 되는 시장이라거나 일자리를 찍어내기 좋은 블루 오션으로 생각하는 정부의 기조를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이 바로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기초다. 돌봄을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당연히 해당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상승시킬 것이다.

둘째, 돌봄노동자의 주체화, 조직화에 힘쓰자. 돌봄노동에 대한 재인식과 사회서비스 정책 비판의 일차적 주체는 돌봄노동자들이다. 아직 많은 수가 조직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부의 사회서비스, 돌봄분야 육성 정책의 문제를 토로하는 해당 노동자들이 모이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해도 <돌봄노동자 희망대회>, <전국돌봄노동자대회>가 열렸으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각종 기자회견, 토론회, 집담회 등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각 분야별 대응과 함께 돌봄노동과 관련한 직종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힘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기되고 있다. 이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돌봄노동의 문제를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제기하자. 돌봄노동의 사회적 재인식, 보편적 권리로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쟁취는 돌봄노동을 화두로 한 단일 이슈 투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하고 재생산 노동을 여성에게 떠넘겼던 것과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했던 역사 등 현재의 돌봄노동이 위치하게 된 구조 전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 간의 연대와 단결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사회변혁을 위해 주요 전제로 삼아야 하는 부분이다. 그럴 때만 자본의 생산-재생산을 둘러싼 전략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4)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여성권의 관점에서 재해석 하자

올해 초에 부당해고를 당한 홍익대 청소미화노동자들이 49일간의 농성 끝에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번 홍익대 투쟁은 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며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대학과 관공서, 병원, 회사 건물의 청소미화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임금위반, 부당해고, 열악한 노동조건 등에 맞선 투쟁을 벌여왔다. 또 탄압에 대항하며 노동조합을 지켜내는 투쟁도 이어져 왔다. 그저 청소하는 ‘아줌마’로 불리던 이들이 당당한 노동의 주체이자 권리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마저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복잡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며,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다. 저임금을 받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며, 노동권을 요구할 대상마저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KTX 승무원 투쟁, 기륭전자 불법파견 투쟁, 재능 학습지 교사 투쟁을 거쳐 홍익대 청소미화노동자 투쟁까지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멈춤이 없다.

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노동을 부차적인 일로 간주하며 저평가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때문에 여성이 많은 직종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가 특징이다. 성별로 분리된 직무와 직종분리가 신자유주의 하 비정규직 고용형태와 함께 맞물리며 대다수 여성은 비정규직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동시에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인격적 대우와도 연결되었다. 낮은 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일한다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고, 인격적 모독을 당해도 되거나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현실을 참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졌던 성희롱과 폭력이다. 또 어느 지하철역에서 청소하는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용역업체 직원으로부터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도 자식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 말도 못하고, 문제를 폭로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반격과 해고이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저임금이나마 벌어야 하고,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많은 여성노동자가 사장이나 상관에게 막말을 들어도 참고 견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되찾는 길이자, 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이다.

한편 가장 낮은 임금과 열악한 고용 형태를 선호하는 자본이 택한 것은 전체 노동자의 상태를 여성 노동자에게 맞춰 일반화한 것이다. 그에 반해 노동자 운동과 노동조합은 여성이 처한 현실을 주목하지 못하여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후퇴하는 결과에 직면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억압하는 구조에 대항하기 위해 집단적인 인식과 투쟁을 조직하는 틀이라면, 여성노동자가 처한 조건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고려해야 한다. 여성비정규직 노동조건의 특수성을 보지 못하고,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만을 문제 삼는다면, 성적 차이를 매개로 고용형태를 변화시켜온 자본의 전략에 맞설 수 없다. 즉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일차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상황을 짚어내고,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 양자에서 여성 활용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야 한다. 현재도 투쟁하고 있고, 앞으로도 투쟁을 벌여나갈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주목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또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여성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 시기 가깝게는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의 청소미화노동자 집단교섭 쟁취 투쟁과 최저임금 투쟁에 주목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결합해야 한다.

5) 여성권과 노동권 제기의 일차적 주체로 여성노동자들이 결집할 수 있도록 하자

많은 여성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음에도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을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저출산 문제나 일 가정 양립이 노동자운동의 대의와는 상관없어 보이고, 여성문제 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전체 민중운동의 과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자본과 정부가 여성문제로 한정하여 퍼붓는 것처럼 보이는 공격에 맞서지 못하면, 여성을 시작으로 전체 민중들의 삶이 줄줄이 후퇴하게 될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유연근무제 도입 문제만 하더라도 단지 여성에게 일 가정 양립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체 일자리를 유연화하기 위해 경직된 일자리라 여겨지는 공공부문을 단시간 일자리로 전환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여성노동자의 문제는 전체 노동자운동의 미래다.

한편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가 겪는 특수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노동자운동의 과제로 제기하는 주체는 여성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여성이 일하며 겪는 부당한 대우나 노동조건의 문제, 또 노동조합 활동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겪는 곤란함과 어려움을 개별 문제로 접근해서는 해결 불가능하다. 오히려 왜 많은 여성이 집안일의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왜 여성이 주로 하는 노동과 활동은 낮게 평가받는지, 왜 일상적인 성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인간적으로 대우받기 어려운지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변화시킬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모으고, 집단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년 12월, 제1회 서울여성조합원대회의 문제의식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다양한 직종의 여성노동자가 서로의 일에 대해 이해하고, 노동현장과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독여주고, 또 앞으로 여성노동자가 가야 할 공동의 투쟁 전망을 그려보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노동과 삶의 주체로 여성 스스로 당당한 주체가 될 것을 결의하는 자리로 의미가 있었다. 여성들만 모여 남성 집단과 분리된 채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여성이 겪게 되는 고유한 경험과 단결의 주체로 여성 간의 소통과 교류,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 역시 이를 지원하고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서울여성조합원대회의 문제의식을 담아 지역별로 상황에 맞는 기획을 시도해보자.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3.8 세계여성의 날이 103주년을 맞았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쉼 없이 노동하고도 인간이자,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역사적 봉기의 날이다. 또 이를 계기로 각국에서 여성의 지위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여성빈곤 타파 등을 요구하는 여성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15년 멕시코와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반대 및 물가안정 운동, 오스트리아와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군부독재 반대운동,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앞당긴 여성들의 투쟁, 194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무솔리니 반대시위, 1979년 칠레의 군부정권 반대시위, 1981년 이란 여성들의 차도르 반대운동, 1995년부터 시작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 등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여성들의 용감한 투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 1995년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성주류화 전략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성주류화 전략은 배제되었던 여성의제를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나, 전략의 주요 방향이 정부와 국제기구들의 역할 설정으로 귀결됨으로써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여성이 처한 불평등과 빈곤을 근거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보완하는 것이 성주류화 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에 주요 논의가 정부 기관의 정책결정, 예산 배분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여성예산을 편성하고, 제도적 평등을 고려하도록 정부와 파트너쉽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여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여성문제를 저돌적인 신자유주의 발전 전략과 충돌하지 않는 ‘선한’ 의제로 만들 뿐이다. 여성 억압과 불평등의 결과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것을 넘어 원인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103년 전 여성들이 전쟁과 물가폭등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투쟁한 역사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핵심 캠페인처럼 여성에게 ‘사랑해요, 고마워요, 축하해요.’라는 말을 전하는 날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구조에 맞서 싸우는 날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투쟁하는 2011년을 만들어가자.


1)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는 2009년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사랑하는 모임>을 전환한 의사들의 모임이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에 대한 제보를 받고 고발하는 것, 정부에 대해 낙태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2010년 2월 낙태 시술 병원 세 곳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며, 전국의 산부인과에 불법낙태시술 중단 촉구 경고 공문을 발송하고, 정부에게 5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본문으로


2) 2010년 5월 6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사회서비스 육성 및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고용 없는 성장 추세 속에서 사회서비스 분야가 일자리 창출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 간병, 보육 등 돌봄분야를 집중육성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사회서비스를 일자리 ‘수’ 늘리기로만 접근할 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비공식영역의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지만 비급여 항목에 포함한다는 것, 돌봄서비스 제공기관 육성을 위해 제공기관 지정제를 등록제로 전환하여 진입규제를 완화한다는 것, 보육 바우처 지원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보육료 지원을 효율화 한다는 것(이는 지금 논의되는 보육료 상한제 폐지와도 연결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재정누수를 막기 위해 ‘재사요양서비스 자동청구 시스템 사업(RFID)을 도입하여 서비스 상황을 실시간 체크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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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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